메리 셸리 이마고


칠곡 가시나들 영화읽기


김재환 감독의 <칠곡 가시나들>을 보러 갔다. 시사회에 간 건 오랜만이다. 알 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칠곡은 내 고향이다. 물론 청소년기와 성년은 부산에서 보냈지만, 칠곡은 내 유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장이다. 이른바 '조상님 선산'이 있는, 자라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몰락한 남인 가문'의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 내 고향이다. 민족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상흔으로 남아 있다고 할까. 일제 시대 일본 관청이 들어왔고, 일본이 물러가자 미국의 군사기지가 들어왔다. 씨레이션과 탱크와 철조망과 팝송이 난무하던 그곳은 많은 이들이 향수 어린 눈빛으로 회고하는 '시골 생활'과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진 경험이었다. 복거일의 소설에 등장하는 캠프 세네카의 풍경이 바로 내 고향의 모습이다. 

물론 이 영화는 이런 풍경을 보여주진 않는다. 칠곡은 넓은 고장이고, 그래서 많은 면과 리를 가지고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동네는 약목면 복정리이다. 어린 시절, 당시 30대였을 부친의 자전거 뒤에 앉아 물놀이를 가던 강변 인근이다. 집안 선산이 맞은 편에 있어서 지금도 벌초니 묘사니 가면 산등성이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네이다. 큰 저수지가 있었고, 여름이 지나면 운 없는 초등학교 동기 중 한 두명이 거기에서 불귀의 객이 되곤 했다. 

김재환 감독은 <칠곡 가시나들>을 <미스 프레지던트>와 동시에 작업했다고 전했다. <미스 프레지던트>에 등장하는 이 지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칠곡 가시나들>의 다크 버전이 <미스 프레지던트> 아니겠냐고 함께 갔던 지인과 히히덕거리면서 촌평을 나눴지만, 두 작품은 다루는 소재도 다르고 분위기도 딴판이다. 그럼에도 분명 어떤 연결고리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그 연결고리는 대상에 대한 김재환 감독의 태도이다. 이 태도는 불가해하다고 명명된 것들을 이해하려는 집요한 호기심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그래서 남들이 건드리지 않는 주제도 과감히 건드리는 것이 김재환 감독의 특징인 것 같다. 이런 호기심은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트루맛쇼>에서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나 싶다. 그의 필로모그래피를 보면 확실히 남들 관심 없는 소재를 끈질기게 다루는 근성 같은 걸 느낄 수 있다. 

영화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면, 어떤 이들에게 이 영화는 '인간 극장'의 극장판 정도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서정적인 풍경 묘사들은 완성도의 측면에서 보면 훌륭한 영상미를 성취하고 있다. 보는 나도 내 고향이 이렇게 예뻤나 싶을 정도였다. 많은 부분 이 영화는 <워낭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영화가 히트친다면 약목이 일약 인스타그래머들의 성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무엇이 그늘처럼 숨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80대 할머니들이 처음으로 한글을 배워서 시를 썼다는 사실이다. 따져보면, 이 어른들은 대개 1930년대 생들이다. 1930년대면 만주사변에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의 팽창정책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이다. 당연히 이 분들에게 한글은 금지의 언어였을 것이다. 새로운 공화국이 들어섰지만, '살아남기'가 지상과제였던 이들에게 한글은 여전히 남의 일이었다. 그렇게 방치된 세월을 보낸 뒤에 한글을 배움으로써 이들은 비로소 '민족-국가'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 80대에 조우하는 국가의 실체란 무엇일까. 이 영화는 그 실체를 '배움터학교 선생님'이라는 인격을 통해 보여준다. 사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운운하는 '공동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실체적 인격'으로 육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결코 국가는 개인을 상대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가는 인격으로 육화함으로써 개인을 만난다. 확실히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종교성을 띤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간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롭다. 할머니들의 시는 국가의 언어(문자)로 포섭할 수 없는 '인민'의 과잉을 보여준다. 예고편에 등장하는 박월선 할머니의 "사랑"이라는 시를 보라. 이 '인민'의 언어는 거짓말이기도 하고 참말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으로 이 영화는 '노년의 지혜'를 듣고자 영화관에 앉아 있는 관객의 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다. <워낭소리>와 다른 지점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이 영화는 최소한 대상을 '원시화'하고 있진 않다. 그 이유는 언어(문자)와 거기에서 빠져나가는 주체의 긴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이념 서어판 단상


나와 지젝이 편집한 공산주의 이념 세번째 권의 서어판이 나왔다. 2016년도에 나온 이 책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 기쁘다. 서울에서 저 행사를 기획하고 정말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던 기억이 새롭다. 숱한 오해(?)도 낳은 행사였지만, 처음부터 '우리'가 작정했던 것은 분명했고 그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다. 그 '우리'였던 분들과 뒤에서 몰래 도와주셨던 모든 분들이 저 행사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저때 만들어진 '유령학교'의 정신은 지금 '경성콤'으로 이어지고 있다. 혹시 저 정신에 동참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보안여관 지하에서 열리는 '경성콤' 세미나에 오시기 바란다. 

오시고 싶은 분들은 여기로 문의 http://b1942.com/cont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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