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라는 게임: 조민석의 픽토그램과 건축 철학 그림읽기

이 글은 한 건축가에 대한 인상주의적인 논평(commentary)이다. 이 글이 인상주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건축에 문외한이라는 까닭이 주효하다. 물론 건축을 주제로 논하는 철학을 익히 읽긴 했지만, 말 그대로 건축을 논한 철학의 텍스트를 읽은 것이지 건축적 엔지니어링이나 디자인을 해봤다거나 건축술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과감하게 이런 글을 쓰겠다고 나선 것은 주제넘은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흥미진진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감히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건축가가 행하는 것이 곧 건축이다는 영국 건축가 세드릭 프라이스(Cedric Price)의 말 때문이다. 이 말이 옳다면 결국 건축의 문제는 경험의 영역에 놓인 것이고, 데카르트가 일찍이 간파했듯이 경험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다. 내 생각에 이 문제의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축가가 지금 이 글의 주제로 놓여 있는 조민석이 아닐까 한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그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렀던 전시는 인상적이었다. 남한과 북한의 모더니티를 건축물의 대비로 표현한 작품은 아카이빙이라는 방법론을 강력한 서사화의 수단으로 새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모더니티의 상동성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한반도의 경계를 넘어서서 성찰적인 시선을 관람객에서 요구하고 있었다. 건축이 경험적이라는 사실은 출발점에 불과했던 것이다.

건축가로서 조민석은 변방의 늑대처럼 세계를 주유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험의 자리는 결코 변방일 수 없었다. 멈춘 자리에서 보편성과 연결될 통로를 만들어야 했다. 베니스의 전시를 보면서 나는 일종의 지도 그리기를 그가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도 그리기는 무엇일까. 보통 지도는 일정한 영토와 경계를 전제하지만 조민석의 지도는 그렇지 않다.

그에게 지도는 오히려 그려낼 수 없는 장소들을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어떻게 이런 지도를 그릴 수 있을까. 픽토그램이 하나의 대답이다. 등고선과 척도로 이루어진 지도는 지리적 현실을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픽토그램은 보편적인 소통의 기호이다. 장소성이 갇힌 경험의 한계를 이 소통의 기호는 넘어선다. 이것을 의미’(sens)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의미는 있음의 논리를 허물어뜨린다. 장소의 존재성에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운동으로서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는 기호의 작용을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이런 측면에서 실제적 장소성의 지리 위에 놓인 픽토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픽토그램을 사용해서 자신의 건축물을 설명한다. 자신이 어떤 지점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픽토그램을 통해 구성요소들을 설명하는 것은 흥미롭다. 한국을 이루고 있는 장소들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그의 작업 하나하나가 바로 픽토그램인 셈이다. 이 픽토그램은 한국의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의 건출물은 이런 점에서 시공간을 탈구시키는 난민’(refugee)의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근대성이 만들어놓은 매끄러운 공간은 난민의 흐름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중동에서 유럽으로 흘러가는 이 난민은 정착하고자 하지만, ‘정주의 권리를 부여받지 못한다. 머물지 못하는 존재들은 시공간에서 떠밀린 파도와 같다. 조민석의 건축공간은 이렇게 정주의 권리를 상실한 존재들을 위한 피난처처럼 보인다. 픽토그램의 지도는 이 피난처를 알려주는 비상구의 기호이다.

다음의 제주도 사옥은 이런 비상구의 의미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옥이라는 경험적 진실을 위반하는 이 건축물은 용도만을 위해 지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한다. 기호적 물질성이 그대로 자연의 일부를 이루면서 자연스러움을 연출한다. 그러나 이런 조화를 거슬러 건축물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자연과 어우러지는 인공성을 이렇게 표현하고자 했다면, 도시 건축은 확실히 미적인 회화성과 조형성을 뽐낸다. S 트레뉴 타워와 부티끄 모나코는 주변 환경을 밀어내면서 우뚝 서 있다. 공간을 과장하지 않고 비틀어서 낯설게 만들어줌으로써 이런 효과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의 건축은 안과 밖을 하나로 통합한다. S 트레뉴 타워는 이자 이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공간 에 위치하면서, 에 들어가지 못하는 을 비틀어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으로 들어간 연출은 다른 건축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종로의 송원 아트센터나 양평군 구하우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으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구조는 사실상 으로 들어감으로써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남해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는 이런 조민석의 특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 같다. 이 건축물의 조망은 건축이자 동시에 풍경이다. 인공성과 자연성을 경계를 허물어버린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연이 되고자 한다.

이런 다른 자연의 구현을 통해 그의 작업은 건축 철학이라는 난제로 이어진다. 분명히 건축은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을 빼놓을 수 없지만, 일단 완성된 건축물은 그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 ‘건축 철학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제기된다. 적어도 건축은 토목건설의 차원에 머물 수 없는 미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 건축가는 이런 의미에서 마냥 예술가일 수 없으면서도 예술가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조민석은 훌륭하게 이 건축가의 딜레마를 실천해온 것처럼 보인다. 그의 픽토그램은 이런 딜레마를 지시하는 기호이다. 이 기호는 홀로 작동하지 않는다. 여러 개의 픽토그램이 그의 건축물을 지시한다. 이 기호들은 공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이 의미는 조민석 작품을 단일성으로 수렴하지 않게 만든다. 이런 다양성이 그의 작품을 차이의 미학으로 비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건축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은 관습의 경계를 허물고 평범한 의식을 깨우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그의 건축은 계몽적이다. 이 계몽은 서구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는 서구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비서구적이다. 서구적인 것의 탈구. 그의 작업은 서구의 것을 그대로 한국이라는 장소로 옮겨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서구라는 을 우리의 으로 끌고 들어온 건축가였다. 이 지점에서 그는 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에게 건축은 튀어나온 공간이어야하기 때문이다.

튀어나왔다는 것은 시공간의 경험을 넘어간다는 뜻이다. 경험을 넘어가는, 시공간을 살아냄으로써 도달하는 탈구된 공간의 구현, 이것이 그의 건축이 추구하는 철학적 결론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그는 일방적으로 도드라진 차이만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첨단에 대한 갈망으로 똘똘 뭉친 집요한 야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선뜻 자신의 공간을 열고 풍경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곧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일찍이 눈 밝은 이들이 살폈듯이, 그래서 전원과 도심에 놓인 그의 건축물들이 서로 다른 분위기를 전달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흐름을 개방해서 서로 다른 사물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즐기는 일처럼 보인다. ‘색다른 경험에 만족하지 않고, 경험의 차원을 드높일 수 있는 방법은 경험의 한계들끼리 서로 열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픽토그램은 이질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이것이야말로 건축을 통해 그가 그려온 지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이다. 이렇게 이제야 그의 지도 그리기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건축이 지도 그리기라는 말이 의아했을 수도 있겠다. 그의 지도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지리상의 목표물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용도를 갖고 있지 않다. 그의 지도는 이미 우리가 들어와 있는 이 에서 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게임적 리얼리티처럼, 이 지도는 롤플레잉 게임의 배경과 같다. 그의 건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계몽은 곧 배우면서 가르치는 게임의 공간이다. 그가 가르쳐준 언어로 각자 픽토그램을 구상해서 서로 교환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그의 건축이 꿈꾸는 미래일지도 모를 일이다


랑시에르 세상읽기

자택 문이 열리자 자크 랑시에르는 변함없이 보랏빛 스웨터를 입고 나를 맞이했다. 처음부터 인터뷰를 기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 학술행사가 있어서 들른 차에 잠깐 찾아뵙고자 했던 것인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길어져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도 청탁할 것이 있었고, 또한 다른 부탁도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고 있던 참이었다.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앉은 거실도 변함없었다. 아담한 살굿빛 소파가 놓여 있는 정경은 몇 년 전에 찾았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지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특강 때문에 무리를 하셨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건강은 어떠신지 염려를 전하자 괜찮다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나의 지인이기도 한 제자가 보내줬다는 대만산 차를 함께 내리면서 이야기가 슬슬 꽃 피기 시작했다. 먼저 랑시에르는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지난 촛불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그리고 이후 이어진 정치 상황에 대해 내가 간략하게 보고 아닌 보고를 했다.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의미심장한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하자, 그는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해서 의미심장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고 맞장구를 쳤다. 마크롱 집권 이후 프랑스 상황에 대해 내가 묻자, 랑시에르는 마크롱 이후에 거대한 변화 운운하는 말들이 있지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고 응답했다. “마크롱은 좌파의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저는 그보다 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테제를 실천하려고 준비되어 있는 정치인을 볼 수 없습니다는 것이 랑시에르의 진단이었다.

사르코지 재출마설까지 대화는 번져나갔다. “푸틴이 돌아오는 것처럼, 기성 정치에 더 이상 새로운 대안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랑시에르는 사실 더 중요한 일은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정치인이 부상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많은 정치인들이 변화를 약속하지만, 변화야말로 요즘 정말 가장 하기 쉬운 일이죠.” 우리는 함께 쓴 웃음을 지었다. “기술의 발달을 보세요. 마음만 먹으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약속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변화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변화인가, 이 문제겠죠.” 말하자면, 랑시에르에게 중요한 문제는 변화 자체라기보다, 그 변화의 목적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된 이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형국에서 무엇인가 달려졌다고 환호하는 것은 새로운 것의 출현과 무관하다. 랑시에르의 평소 지론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했다. “급격하고 근본적인 단절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진행됩니다. 그 일상에서 변화라는 것은 항상 일어나는 일이죠.” 그래서 그런지 최근 랑시에르는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모더니스트의 소설을 재조명하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잠깐 저서로 옮아갔다. 이 책에서 랑시에르는 울프, 콘래드, 플로베르, 보들레르 같은 모더니스트 작가를 부르주아 사상과 대입시켰던 종래의 관점을 비판하면서 근대 민주주의와 이들의 미학 사이에 놓여 있는 관련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의 철학은 이처럼 정치와 미학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조명으로 각광을 받는데, 특히 이를 통해 정통 문학연구의 교조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런 생각은 그의 철학을 관통하는 요지이기도 한데, <아이스테시스>에서 그는 모더니즘이라는 고급예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당대의 대중문화와 감각적으로 연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이 말은 단순하게 모더니즘이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정도에 그치는 주장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대중문화와 자신의 미학을 분리함으로써, 모더니즘은 탄생했던 것이다. 모더니즘이 스스로 고급예술로 자기 규정을 수행하는 과정이 흥미로운 문제라는 것이 랑시에르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스테시스> 후속편을 써야하는 것 아닌가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는 “<아이스테시스>가 1945년도에서 논의를 끝냈기 때문에 후속편이 필요하긴 하다고 인정하면서도 현대로 넘어오면 사정이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어디에서 손을 대야할지 난감하다고 솔직히 말했다. 노철학자의 고민이 읽히는 대목이다. 랑시에르는아무래도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미 정립되어 있는 미학적 산물을 다루는 것이 더 편하다고 겸손을 표하기도 했다.

최근 관심 사항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랑시에르는 2008년 이명박 정권 시절 최초로 일어났던 촛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 무렵 랑시에르는 한국을 방문했고 촛불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놓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먼 아시아 국가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운동은 독보적인 민주주의 철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 랑시에르에게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증거일 것이다.

지난 촛불 역시 랑시에르의 입장에서 보면, 혁명이냐 아니냐 가리는 문제라기보다, 촛불 자체의 출현이 중요하다. “근본적 변화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어떤 것이 변화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지금 너무도 쉽게 변화를 감행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은 무엇을 위한 변화인지에 대한 물음이죠.” 변화는 없던 것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지만 나타나지 않던 것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는 종종 변화를 현실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여기지만, 현실을 이루고 있는 것들의 재구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감각은 이런 재구성의 과정에서 출현하는 것이지요. 겉으로 단절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이지요.”

얼핏 들으면 랑시에르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회의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랑시에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근본적인 변화가 오려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현실의 계기들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랑시에르는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여성의 미투(#MeToo)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 한국의 미투는 처음에 미국과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지만 점차 보편 인권의 문제로 확대되면서 폭발력을 가지게 되었다. 정치와 감각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랑시에르는 이런 전환의 지점들이 모든 요구에 사실상 감춰져 있다고 보았다. 미투 역시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할 계기들이 내재해 있는 것이고 한국의 경우는 이 계기들이 데모스의 분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단했다.

특히 한국에서 오랫동안 을 박탈당해 왔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대단한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랑시에르의 진단이다. <불화>에서 랑시에르는 잘못되었다는 선언이 정치의 발생이라고 말했는데,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미투에서 여성들이 기존의 질서와 위계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발언하기 시작한 것이야말로 기성 정치를 허무는 다른 정치의 시작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굳이 이 정치가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분명 대의제 정치로 다룰 수 없는 데모스의 정치를 여성들이 실행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아닐까. 기존의 질서에 붙잡혀 있던 감각이 서로 교차하고 뒤섞이면서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미투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런 내 생각에 대해 랑시에르는 공감의 뜻을 비쳤다. 민주주의가 가진 역동성이 여성의 목소리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한국에서 여성은 몫 없는 자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일 테다.

나는 한국의 경우 미투의 대상이 대체로 이른바 진보진영이라는 사실을 랑시에르에게 전하면서 이 사실이 정치적 대의를 잃어버린 좌파의 곤경을 드러내는 증상 같다고 말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확고한 대의를 제시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극우들이다. 랑시에르의 지론처럼 좌파들은 함부로 희망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극우들은 선명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지구화를 거부하고 영광스러운 민족의 기원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면 손쉽게 관심을 끌 수 있다. “그렇습니다. 좌파는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비해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아주 손쉽게 자신들을 드러낼 수 있죠. 이것이 지금 프랑스에서 극우들이 부상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노인 세대가 누리는 혜택을 지금 젊은 세대가 누릴 수 없다는 불안이 확산되고 있죠. 이런 불안을 극우들이 이용해서 지지기반을 닦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크롱을 비롯해서 신자유주의자들은 역설적으로 국경을 더 개방함으로써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죠. 둘 다 나쁜 것이거나 아니면 더 나쁜 것일 뿐입니다.”

어리석게도 나는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 랑시에르는 친절히 답변했다.“올해까지 계획한 책을 다 쓰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입니다.”내가 할 일이자 동시에 우리가 할 일이다. 거창한 이상을 꿈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고 섣불리 좌절하고 냉소할 필요는 없다. 랑시에르의 가르침은 이 지점에 있다. 그는 규범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항상 의심하고 뒤흔드는 작업을 해왔다. 역시나 이번에도 랑시에르는 망설이지 않는 결연함보다는 항상 주저하고 되짚어보면서 앞길을 모색하는 신중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대안이라는 것은 현실에 다 있습니다. 이 현실 너머에 무엇이 있다는 생각보다 이 현실을 다시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말은 대안은 없다는 우파의 슬로건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이 현실을 넘어선 대안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대안은 없다는 주장이 오류인 까닭은 그럼에도 현실은 새로운 감각의 출현을 통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대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또는 확실하게 희망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대안은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존재를 부여할 때, 다시 말해서 몫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울려나오도록 할 때, 비로소 감각은 기존의 나눠진 상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감각으로 다시 분배될 수 있다. 이 세계의 목적성은 사실상 우리가 부여하는 것이지 체제 자체에 목적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세상만사에 무심한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기술의 발달은 분명 인류에게 거대한 변화를 가져다줬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우리와 무관한 것일 수 있죠. 기술의 변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가 무엇인지 숙고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은 변화를 빠르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멈춰서 그 변화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투 운동이 인류 보편의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과 접속해야할 필요는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미투가 운동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미투가 그렇게 되어야한다는 훈계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훈계야말로 미투를 불러일으킨 그 기저에 놓인 여성비하 또는 여성혐오의 구조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2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랑시에르는 자택의 입구까지 나와서 나를 바래줬다. 이제 건강상 긴 여행은 할 수 없게 되어서 한국에 한 번 더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다고 아쉬워하는 노철학자와 작별의 포옹을 나누고 나는 총총히 여전히 바람이 쌀쌀한 오후의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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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3월 10일에 이루어진 만남을 기록한 것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게재되었다. 


김수철의 <정녕 그대를> 세상읽기



ㆍ또다시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그대’ 

삶을 물들인 많은 노래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가수 김수철의 <정녕 그대를>을 꼽는다. 바쁜 일상에 잠깐씩 찾아오는 멍한 시간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곡이다. 1983년 내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들은 이 곡은 지금까지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다. 같은 가수가 부른 <두 보조개>도 <정녕 그대를>에 견줄 만한 노래지만, 내 마음은 후자에 더 기울어 있는 것 같다. 이 노래는 그저 그런 사랑노래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이 노래는 일상에서 매일 우리를 흔들리게 만드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을 마치고 정처 없이 유학길에 오를 때였다.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더께를 걷어내고 싶은 마음도 절반은 있었다. 학문의 길로 나아간다는 결기가 개인적인 감회를 덮어버린 그 시간에도 나도 모르게 흥얼댔던 노래가 <정녕 그대를>이었다. 조그마한 비행기 창으로 그때까지 발 딛고 있던 땅이 가뭇없이 사라지는 순간 김수영이 읊었던 거대한 뿌리를 문득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대한 뿌리는 나라는 한 인간을 만들어왔던 정체성의 기원이었다. 육체적 장소를 옮김으로써 나의 정체성은 이제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녕 그대를>은 이런 나의 심정을 그대로 들려주는 노래였다.

마찬가지로 군복무 시절 끝없이 펼쳐진 강원도의 산맥들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리듬을 불러냈던 노래도 바로 <정녕 그대를>이었다. 연둣빛으로 찾아올 봄날을 기다리면서 나는 마치 벤야민이 말한 것처럼 만났던 연인들과 만났을 수도 있었던 연인들 모두를 상상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 다시 들어도 이 노래에는 내 심금을 울리는 무엇인가가 녹아 있다. 마치 저녁노을처럼 마음이 저무는 한 시절이 되면 그냥 그렇게 흘러나오는 노래가 <정녕 그대를>인 것이다. 이 노래의 미덕은 ‘어떻게 살 것인가’ 따위를 가르치지 않고 ‘삶은 어떻게 살아지는지’를 노래한다는 것에 있다. 삶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결정한다는 것.

가수 김수철은 인기 정상을 달리던 무렵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음악공부를 하겠다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에게 ‘그대’는 음악 자체였던 셈이다. 최근 출간된 그의 회고록은 가수 김수철의 음악여정에 대한 중간결산이었다. 책을 읽고 나니 더 절절하게 <정녕 그대를>이 내 귓가를 맴돌고 입가에 머문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는 법인 모양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소년은 이제 50대로 접어들었다. 386세대로 불리고 더 이상 ‘젊은 패기’ 운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한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정언명령을 따르던 ‘철부지 시절’도 있었다. 여전히 ‘철없는’ 동시대인들이 비일비재하게 사고를 치고 있지만, <정녕 그대를>에 담긴 성정을 가슴에 담는다면 그나마 나 자신이라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대’를 그리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되어서라도 찾아가는 그 사랑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다시는 안 보리라 다짐해놓고 
난 또다시 그대를 찾아 헤매네
생각을 안 하리라 다짐해놓고 
난 또다시 그대를 그리워하네

정녕 그대를 못잊는다면 
한 조각 구름이 되어 흘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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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에 게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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