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현대 (31): 유럽의 모더니즘이 발견한 뮤즈 그림읽기

피카소가 홀로 전통을 해체하기 전에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은 1938년 무렵에 이미 그 전통과 다른 무엇을 멕시코에서 발견했다. 바로 그것은 바로 프리다 칼로였다.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19세기의 종언을 알리는 두 사건으로 보어전쟁과 멕시코 혁명을 거론한다. 보어전쟁에서 영국은 2만 명이 넘는 민간인들을 게릴라 소탕이라는 명목으로 학살했고, 이것은 '제국'으로 군림하던 영국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건이었다. 이와 함께 20세기의 도래를 알리는 멕시코 혁명은 하나의 국가 단위에서 농민을 주축으로 일어난 최초의 사회혁명이었다. 멕시코 혁명은 러시아 혁명보다 7년이나 앞서 일어났다.

디아스 장군의 독재로 인해 처음으로 발화한 이 혁명의 지도자들은 프란시스코 마데로,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있는데, 간혹 이들은 할리우드 서부영화에서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는 산적 두목으로 그려지곤 했다. 당시 멕시코에서 미국인들은 디아스 정부의 비호 아래 광업과 시멘트 생산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반외세'를 노골적으로 주장한 멕시코 혁명이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멕시코 혁명이 칼로의 그림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건 아니다. 칼로의 그림들은 격동의 시절을 담아내고 있다기보다는 프리다 칼로라는 한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측면이 브르통과 같은 유럽의 초현실주의자들에게는 동질성으로 보인 모양이다. 브르통은 칼로의 그림을 격찬했고, 멕시코를 방문한 이듬해인 1939년에 파리에 있는 피에르 콜르 갤러리에서 '멕시코'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의 제목이 그냥 '멕시코'라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브르통에게 멕시코가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이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멕시코는 '꿈의 땅'이었고, 이 꿈은 다분히 초현실주의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유럽의 전통을 벗어난 미지의 땅에서 원시 상태에 있는 무의식을 브르통은 발견했던 것이다. 이 땅은 '경제법칙에 인이 박힌 현대 사회와 동떨어진' 순수 자연의 세계였다.

이런 차원에서 브르통은 칼로의 그림에 매력을 느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칼로의 자화상에 눈길을 보냈는데, 이 자화상들이 드러내는 '순수한 초현실성'에서 진정한 초현실주의의 정신을 읽어낸 것이다. 이런 브르통의 흥분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멕시코 혁명은 상류층들의 유럽중심주의를 혐오한 문화혁명의 성격도 짙기 때문이다. 칼로의 남편이기도 한 디에고 리베라는 이런 문화혁명의 선봉에 서 있던 공산주의 화가였다. 브르통이 멕시코를 방문한 이유는 트로츠키 때문이었다. 트로츠키는 칼로의 집에 머물면서 자신의 영구혁명론을 신봉하는 국제노동자연맹을 만들려고 했는데, 브르통은 이에 호응하는 혁명적 예술가 동맹을 위한 선언문을 만들기 위해 멕시코를 방문했다가 프리다 칼로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프리다 칼로에 대한 브르통의 관심은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이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심하게 말하자면, 칼로는 멕시코의 혁명 예술을 파리에 소개하기 위한 들러리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일컬어 후대의 미술사가들은 브르통이 칼로를 '작은 조각상'으로 취급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무관심 때문이었는지, 칼로도 유럽의 초현실주의자들에 대해 좋은 말을 남기고 있지 않다. 파시즘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던 유럽의 현실에서 정치적인 개입에 무능했던 초현실주의자를 비판하는 칼로의 목소리는 맵짰다. 칼로는 "이런 멍청한 지식인들이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불러들인 것"이라고 호되게 꼬집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공산당에 가입한 피카소가 정작 그린 것들이 너무도 비정치적인 것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건 무기력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브르통이 칼로의 그림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건 이미 유럽에서 무너져가고 있었다. 초현실주의자 브르통이 멕시코 전통에 충실한 칼로에게서 애써 초현실성을 찾으려고 할 때, 이미 모더니즘은 내리막길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비극이었지만, 또한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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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에 게재되었음.

덧글

  • 2008/01/25 17:5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08/01/27 00:11 # 답글

    비공개/ 그 주제로 직접적으로 쓴 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사석에서 왜 식민지 시대에 대한 '낯설게 하기'가 최근 한국 문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한 적은 있지요.
  • 2008/01/28 02:2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08/01/30 16:07 # 답글

    비공개2/ 반갑습니다. 방명록은 요상한(?) 광고물이 많이 올라와서 지워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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