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면 다 되는가? 세상읽기

인수위의 뻘짓 중에서 가장 최고가 아마도 '영어로 영어수업'이라는 방침인 것 같다. 시간이 없어서 아직까지 이에 대한 본격 비평을 쓰진 못했지만, 사태는 점입가경이다. 나중에 시간 날 때 차분한 분석을 해볼 참이다.

어떤 인수위원의 주장처럼,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소신'이 이 문제를 더욱 불거지게 만든 것일 수도 있는데, 섣불리 단언하긴 어렵지만, 이건 단순한 '소신'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깊은 이해관계가 굳건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 발표된 "교직 개방안"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인수위는 영어수업을 영어로 하기 위해 "영어전용교사"를 뽑기로 했는데, 이들은 (1)국내외 영어교육과정 이수자(TESOL 등), (2)영어권 국가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 (3)교사자격증은 있지만 임용이 안 된 사람, (4)전직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 같은 전문직 중에서 선발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핵심은 1번이다. 2,3,4번이야 일반인들에게 그림에 있는 떡이지만, 1번은 좀 다르다. 국내 대학의 TESOL(TESL)과정에 진학해서 자격증을 따면 되기 때문이다. 이제 로스쿨 못지 않게 박터지게 생긴 곳이 바로 여기다. 로스쿨의 경우처럼, 아마 조만간 강남에 TESOL과정 준비학원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대학은 돈 벌어서 좋고, 노는 고급인력은 일자리 얻어서 좋고, 여하튼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 인수위가 양보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교직개방은 교계 내 세력재편을 불가피하게 만들어서, 전교조 같은 단체의 영향력을 퇴조시킬 공산이 크다. 이걸 반길 이들도 있겠고, 우려할 이들도 있겠지만, "영어면 다 된다"는 인수위의 발언은 이런 복잡한 내용의 논리를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워낙 반발이 거세니까, 전과목 영어수업에서 후퇴하긴 했지만, 어쨌든 영어는 이제 한국의 부르주아/중간계급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공교육에서 영어로 영어수업을 잘 진행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지점에서 진짜 문제가 발생하는 거다. 교육은 단순한 기능의 전수가 아니다. 교육자의 세계관이 가장 결정적 요소라는 건 교육학을 전혀 모르는 이도 체험적으로 아는 사실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수학의 공식만을 가르쳐준 교사를 '스승'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영어면 다 된다는 발상은 한 개인의 소신 문제가 아니라 한국 부르주아 집단의 내면세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음란한 풍경이다.

덧글

  • hyun 2008/01/30 17:19 # 삭제 답글

    이번 영어사태를 보고 선생님 포스팅 기다렸어요. 역쉬~
    위에서 정리하신 2번과 4번에 해당되는 사람들과 제가 사적으로 경험이 좀 많아요.특히 4번에 해당되는 분들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 분들도 문제 너무 많아요. 영어 교사 자격 왕창 미달입니다. 도대체 아는 게 뭔가 싶구요 완전 지 편한대로예요. 사안과 상황에 따라서 서양식, 한국식을 자기 유리하게 적용시키는데 그러고 있는 저도 모르고 하는 거 같아요.
    그들이 사는 방식을 보면 영어로 떠들 줄 아는 거(내용 없이 시끄럽기만 한) 하나 가지고 한국에 나와 있는 외국인과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 사람들 착취해먹는 딱 그 모양이에요(여기에는 분명히 그 구조 속에서 놀아나는 한국인들의 잘못도 너무나 크긴 합니다만). 그 와중에 거기에 좀 어떻게 낄려고 대롱대롱 매달린 사람들 위에서 영어로 행세하고 누리는 꼴이란 참, 그린코리안의 전형이에요. 옆에서 보기에도 어찌나 화가 나는지 심정이 상합니다. 대체 우리는 왜 이런 걸까요. 사는 게 재미 하나도 없어요.

  • 때때로진실 2008/01/30 19:19 # 답글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어요. 꼭지 잡고 쓰자면 10꼭지도 넘게 쓸 수 있겠는데 왜 계속 가고 있는건지. 이 거대한 민족적 찌질함에 눈물이 다 나요.
  • 2008/01/31 08: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08/01/31 12:26 # 답글

    비공개/ 개인이 영어를 잘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건 취향이나 적성에 속하는 문제인 거죠. 그런데, 이렇게 특이성에 속하는 걸 보편적인 걸로 만들어버리니, 폭력성을 띠게 되는 겁니다. 영어 잘하는 사람이 아무 죄없이 욕먹는 구조를 지금 인수위가 만들어내고 있죠.
  • 2008/01/31 13: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마른미역 2008/02/02 12:19 # 답글

    국내에 TESOL과정이 처음 생긴 대학이 숙대라고 하더군요.
  • 이명계 2008/10/08 17:50 # 삭제 답글

    네, 이선생님의 예상되로 강남역 사거리에 Global Tesol College - 본사는 Edmonton, Canada에 위치하고 있슴 - 강남지점 제1호가 2008년 6월에 탄생했습니다.

    물론 잘못 해석하면 이선생님의 말씀과 우려되로 한국의 부르주아/중간계급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다른면에서 본다면 예전부터 부쩍 늘어나는 유학생들중 TOEFL 혹은 TOEIC의 점수는 다른나라 유학생에 비교해 월등히 앞서가나 Speaking에서 한발 밀리는 그러한 사례가 빈번했던 우리의 유학생들의 불운한 장면을 많이 목격하다 보니, 결코 나쁜 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얼마만큼 정부에서 공정성과 스탠다드를 설정해놓고 각계층의 대학생및 현교직자 등등에게 기회를 주는가가 관건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미국서 30년 이상을 살며 고등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다니며, 한국에서 배웠던 영어교육이 - 제름대로는 영어를 좋아했고 남못지않게 잘했다 생각했는데 - 공항에 착륙함과 동시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던 그때 당시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대학을 다니며 모일류대를 다니다 유학을 왔던 Classmate를 보면서 무언가 변화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하고 제마음속으로 되새겨 봤습니다.

    Global Tesol College의 한국 독점권을 얻어내고, 강남 1호점을 탄생시키는데 일조를 한 저는 이 사설 교육기관이 대한민국의 희망이고 미래인 어린이들에게 영어로 영어를 물론 서방 문화도 함께 전수할 수 있는 질적으로 향상된 교사를 양성해 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도입해 온 것 입니다.

    이선생님께서 혹여 시간이 허락되시면 한번 저희 사설 교육기간을 방문하시고, 저희들이 미처 보지못하는 단점이 있다면 직언을 해주시길 바라며 두서없는 덧글을 올립니다.

    이명계
    Global TESOL College 강남점
    서울시 서초구 서초4동 1317-20 아라타워 7층
    010-2050-9292
    e-mail : edward@globaltesol.co.kr (or) honoredu@naver.com
  • 이명계 2008/10/08 18:10 # 삭제 답글

    죄송합니다. 제가 교수님이라 존칭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Jocelyn 2008/10/09 09:46 # 삭제 답글

    이명계 님/ 별 거 아닐수도 있겠지만, 제 은사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나서 코멘트 드립니다. 교수(님)는 직함이고 선생님은 호칭입니다. 정확히는 교수님이라는 표현은 그냥 직함에 '님'이라 존칭을 붙인 것이지요. 선생님이라고 표현하신 것이 더 정확하고도 올바르게 하셨던 걸로 판단됩니다. 제 은사님께서는 '교수님'이라고 부르시면 반드시 '선생님'으로 정정해 주셔서....
  • 이명계 2008/10/09 15:30 # 삭제 답글

    Jocelyn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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