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부와 권력? 단상

세간에 만연해 있는 인식 중에서 "영어가 곧 부와 권력의 조건"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옳지 않다. 이명박 당선자나 이경숙 인수위원장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들이 과연 영어를 잘하나? "당신을 환영합니다"를 "You're very welcome!"이라고 하는 당선자나, Orange를 "오레인지"라고 하는 인수위원장이나, 아무리 봐도 영어를 잘하는 것 같지 않다. 영어 잘하는 걸로 치면 이들보다 백배 천배 나은 이들이 한국에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들은 대통령도 인수위원장도 하지 못한다.

결론은, 영어를 잘하면 부와 권력이 따라오는 게 아니라, 부와 권력이 있으면 영어를 못해도 잘하는 게 되는 거다. 영어를 잘하면, 영어를 못해도 괜찮은 부자나 권력자로부터 떡고물을 더 받아먹을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줄세우기의 위계구조를 타파하는 거다. 따라서 국제화시대에 영어가 필요하다는 객관적 사실과, 영어를 잘해야 부와 권력을 쥔다는 주관적 믿음은 아무 상관이 없다.

덧글

  • 낮달 2008/02/02 10:20 # 삭제

    왠지 영어를 잘하면 만사 잘 된다는 생각을 인수위가 퍼트리려고 작정한 것 같네요. 실질적인 권력 차이나 부의 차이는 뒤로 감추고, '너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해주려는 듯. 근데 요즘 동기나 후배들을 보면 다들 '할 수 있다' 혹은 '나태해서 가난하고 불만있는 거다'라고 말해서 식껍합니다... 기본적으로 이게 뒷받침이 되니까 별 저항 없이 인수위의 주장이 먹혀들어가는 것도 같고...;
  • Life 2008/02/02 11:32 # 삭제

    요즘 인수위원장을 해리포터 5편에 등장하는 돌로레스 엄브릿지 차관에 빗대어 말하더군요. 그 볼드모트가 무서워서 현실을 바라보는눈을 상실했던, 바보같고 독선적이고 뻔뻔했던 마법부차관말입니다.
  • 2008/02/02 22:28 # 삭제

    선생님! 영어관련 글 세편 퍼 갑니다. 번번히...범하는 무례를 용서하시길. 출처는 선생님 블로그 표시를 할 것이고, 차후 보시고 마음에 안드시면 댓글 남겨 주세요. 삭제하겠습니다.
  • mminsq 2008/02/03 01:24 #

    이게 만약 레벨 10이 제한인 RPG게임이라면...

    영어를 못하면 기본 시작 레벨 0
    영어를 잘하면 기본 시작 레벨 5

    이 사람들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영어는 세계적으로 가지각색의 발음들이 있는데 이러다가 호주 영어 특강이라든이, 영국 영어 특강이라든지, 아니면 미국 남부 특강도 나오겠습니다.
  • 2008/02/04 10:56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_- 2008/02/04 11:01 # 삭제

    팔고 싶은 물건이 안좋은데 마케팅부터 강조하는 꼴이죠.
    영어 못해도 능력만 좋으면 다 팔려나가는 세상입니다.
    나라꼴이 어떻게 되려는지...
  • 2008/02/05 03:49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08/02/07 08:15 #

    비공개2/ welcome을 형용사로 썼을 때, 문법상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의미상 이상하죠. 이 표현은 허락의 의미가 들어 있어서 자칫 건방진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뉘앙스를 설명하자면, "당신은 이곳에 필요하니 마땅히 오는 걸 허락합니다" 이런 뜻이죠. 그리고 우리가 쉽게 "천만에요"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you're welcome이라는 표현은 다소 거만한 의미를 감추고 있습니다. 원래 이 말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권할 때 하는 말이죠. 여기에서 고맙다는 말에 대해 공손하게 대답하는 "천만에요" 같은 의미가 나온 겁니다. 내가 원하진 않았지만, 당신을 위해서 당연히 했습니다, 뭐 이런 뜻입니다. 의미는 이렇지만, 뉘앙스는 상당히 냉정하게 들리는 말투죠. 그래서 여성이 남성에게 곧잘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렇게 싸게 노는 여자가 아니거든요, 대충 이런 뜻을 감추고 있습니다. 이런 말 잘못 쓰면 곤란합니다. 차라리 이 경우는 no problem이 낫습니다.
  • YourMuse 2008/04/27 15:29 # 삭제

    제가 Lone Star 사건이 났을 때 제 online discussion board 에 올렸던 글입니다. 요즘처럼 영어교육이 난리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목적이나 목표가 뭔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아요. How 에 앞서서 Why를 한 번쯤 생각해 봐야할 것 같은데요. 영어교육과 대학원에서도 Why 보다는 How 인 teaching technique 이나 testing 에 관심이 더 많구요. 영어선생이라는 게 짐이 되버린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

    The recent incident of Lone Star made me think again for what purpose Koreans learn (or teach) English. Steven Lee, the former head of Korean Lone Star’s office, is now on charge of tax evasion and embezzlement. He, according to the newspapers, is Harvard graduate Korean American. Without a doubt, he is fluent in English (actually native speaker of English). He must be one of the paragons that most Korean parents want their children to be. But as I read the articles about Lone Star and him in the newspapers, I could not help but ask a question what kind of person he was. He must have been a successful model in Korea and in the Korean community in the States (and his parents must have been proud of him), since he is a fluent English speaker, earned MBA from Harvard, and got a job at a major American fund company. However, look at what he has done and how much he damaged on Korean economy (and us) with his talent and educational background. Without his language ability and Harvard MBA, it is unlikely that he was in such a powerful position to control the situation and in turn, brought all the damages.

    Evelyn said “ English becomes the gateway to money, status, knowledge and protection” (under the discussion of "Why learn English?"). It is so true. But we should envision beyond personal needs and interests. Education can sometimes serve for wrong need, desire, and interest. Then, there will be a dangerous marriage. It can raise a monster who disturbs a democratic society and destroys others’ happiness, as in the example of Steven Lee. I am sure that he reached his personal goal in his life (not any more, though) and worked hard for his company’s benefit, but against Korea’s benefit (his or his parents’ country). As watching all the Harvard law school graduate, fluent English speaking Korean lawyers who speak for Steven Lee and Lone Star, I blamed their parents for not teaching them to see beyond money and fame.

    Helen Kim, the first president of Ewha Womans University, was also fluent English speaker. During the Korean War, she negotiated several political matters with the U.S. as a Korean representative. The American representatives, persuaded by her eloquence, agreed upon Korea’s requests (I don’t know what that was). One of the American representatives later said, “Who the hell taught her English?”

    Ah, the same tool can be used in such different ways and for such different purposes!

    <중략... 2006년 4월에 씀>
  • 이택광 2008/04/27 16:43 # 삭제

    YourMuse/ 내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한국의 근대 주체성'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도 주네요. 한국의 영어교육에 지금 필요한 건 바로 영어를 왜 가르쳐야하는가에 대한 근본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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