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쿠오카 텐만궁에서 봤던 천년 묵은 나무들. 이 나무로 인해 이번 여행은 즐거웠다. 후쿠오카는 일본에서도 작은 도시이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세월'을 갖고 있었다. '천년 고도'라는 경주의 계림에서도 보기 어려운 굵직하고 늙은 나무들이 즐비한 풍경은, 이 작은 도시가 왜 일본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건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의 토토로>에 나오는 풍경들이 여기서는 일상처럼 보였다. 여행객의 눈에 비친 주마간산의 이미지들이라 그 속내를 온전히 짐작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형식이 곧 내용의 논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깨끗하고 맑은 공기와 조화로운 색채와 가지런한 선을 가진 집들은 도쿄 같은 '각'을 보여주진 않지만, 그래도 순리대로 삶의 질서를 구축한 큐슈 특유의 문화를 보여주기에 족했다.

요즘 나는 일종의 슬럼프에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희망 같은 걸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너 혼자 잘 살면 되는데, 왠 배부른 소리냐?"고 일축하는 이도 있지만, 이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실 삶에서 '나만의 즐거움' 같은 건 없다. 모든 쾌락은 다른 이를 염두에 둔 즐거움이다. 심지어 '나'를 주장할 때도 우리는 항상 나를 인정해줄 '어떤 다른 이'를 상정한다. 이래서 우리는 모두 '공동체의 인간'인 거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태도는 이런 연대를 파괴해서 결국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매일 텔레비전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이런 내용이지 않은가? 우리는 이런 연속극을 만들고, 보면서 스스로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보'라는 건 이런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가난하지만 모두가 행복하게 살 건가, 아니면 부유하지만 일부만 행복하게 살 건가 하는 문제에서 앞의 문제의식을 가진 삶의 태도가 진보이다. 맑스가 꿈꿨던 건, 인류 전체가 예술가처럼 사는 세상이었다. 콘도 후시요미의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에서 그려지는 세계가 곧 진보의 꿈이다. 이런 태도를 진보라고 부르는 건, 인류가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진보는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일본이나 서구의 지식인들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2002년 무렵에 모두가 희망적으로 그려보았던 청사진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열린 우리당은 몰락했고, 민노당도 바야흐로 같은 운명에 처했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386세대 정치인들이나 민노당 자주파들에게 돌리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이런 발언들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조선일보>에서 기획한 386특집을 떠올리게 만든다. 거기에서 "학생운동권"이라는 직함을 달고 인터뷰를 한 '아해'가 "주사파 때문에 학생운동이 망했다'고 발언했는데, 참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지금 민노당의 상황은 소위 한국의 진보세력들이 <조선일보>인터뷰에서 드러나는 수준을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증명하는 사건에 불과하다.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은 한윤형이 <민주노동당 : 이건 분당이 아니라 파당이다>에서 탁월하게 제시한 적이 있어서 내가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상황은 한윤형의 분석대로 흘러왔다.
물론 민노당의 위기 때문에 내가 한국사회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 정도에 내 희망을 정박시켜놓을 만큼 나는 순진하지 않다. 민노당의 위기는 한국 진보주의의 실체를 보여주는 징후에 불과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진보를 근본에서 다시 사유해야한다. 내가 절망하는 건, 이런 큰 문제 때문이 아니다. 큰 문제는 언제나 작은 문제를 통해 드러난다. 나를 절망하게 만드는 건, 황량한 한국 사회의 내면 풍경이다. 이건 좌우파의 문제를 넘어서는 거다. '천박함'이 곧 '교양'으로 전락해버린 이 사회에 나는 절망하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곳을 가볼 때마다 나는 이런 절망적인 한국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높은 빌딩과 잘 닦인 도로들을 보겠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 잠식 당하지 않는 무언가를 남겨 놓은 '인간들의 저항'을 읽는다. 지금 한국에 없는 건, 선진국의 빌딩이나 도로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저항이다. 나무 한 그루를 지킨다는 건, 그래서 그냥 나무 한 그루를 위한 일이 아니다.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