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flower.egloos.com

WALLFLOWER

포토로그





천년 묵은 나무, 그리고 도시 세상읽기



후쿠오카 텐만궁에서 봤던 천년 묵은 나무들. 이 나무로 인해 이번 여행은 즐거웠다. 후쿠오카는 일본에서도 작은 도시이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세월'을 갖고 있었다. '천년 고도'라는 경주의 계림에서도 보기 어려운 굵직하고 늙은 나무들이 즐비한 풍경은, 이 작은 도시가 왜 일본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건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의 토토로>에 나오는 풍경들이 여기서는 일상처럼 보였다. 여행객의 눈에 비친 주마간산의 이미지들이라 그 속내를 온전히 짐작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형식이 곧 내용의 논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깨끗하고 맑은 공기와 조화로운 색채와 가지런한 선을 가진 집들은 도쿄 같은 '각'을 보여주진 않지만, 그래도 순리대로 삶의 질서를 구축한 큐슈 특유의 문화를 보여주기에 족했다.



요즘 나는 일종의 슬럼프에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희망 같은 걸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너 혼자 잘 살면 되는데, 왠 배부른 소리냐?"고 일축하는 이도 있지만, 이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실 삶에서 '나만의 즐거움' 같은 건 없다. 모든 쾌락은 다른 이를 염두에 둔 즐거움이다. 심지어 '나'를 주장할 때도 우리는 항상 나를 인정해줄 '어떤 다른 이'를 상정한다. 이래서 우리는 모두 '공동체의 인간'인 거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태도는 이런 연대를 파괴해서 결국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매일 텔레비전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이런 내용이지 않은가? 우리는 이런 연속극을 만들고, 보면서 스스로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진보'라는 건 이런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가난하지만 모두가 행복하게 살 건가, 아니면 부유하지만 일부만 행복하게 살 건가 하는 문제에서 앞의 문제의식을 가진 삶의 태도가 진보이다. 맑스가 꿈꿨던 건, 인류 전체가 예술가처럼 사는 세상이었다. 콘도 후시요미의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에서 그려지는 세계가 곧 진보의 꿈이다. 이런 태도를 진보라고 부르는 건, 인류가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진보는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일본이나 서구의 지식인들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2002년 무렵에 모두가 희망적으로 그려보았던 청사진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열린 우리당은 몰락했고, 민노당도 바야흐로 같은 운명에 처했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386세대 정치인들이나 민노당 자주파들에게 돌리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이런 발언들을 보고 있으면, 예전에 <조선일보>에서 기획한 386특집을 떠올리게 만든다. 거기에서 "학생운동권"이라는 직함을 달고 인터뷰를 한 '아해'가 "주사파 때문에 학생운동이 망했다'고 발언했는데, 참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지금 민노당의 상황은 소위 한국의 진보세력들이 <조선일보>인터뷰에서 드러나는 수준을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증명하는 사건에 불과하다.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은 한윤형이 <민주노동당 : 이건 분당이 아니라 파당이다>에서 탁월하게 제시한 적이 있어서 내가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상황은 한윤형의 분석대로 흘러왔다.

물론 민노당의 위기 때문에 내가 한국사회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 정도에 내 희망을 정박시켜놓을 만큼 나는 순진하지 않다. 민노당의 위기는 한국 진보주의의 실체를 보여주는 징후에 불과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진보를 근본에서 다시 사유해야한다. 내가 절망하는 건, 이런 큰 문제 때문이 아니다. 큰 문제는 언제나 작은 문제를 통해 드러난다. 나를 절망하게 만드는 건, 황량한 한국 사회의 내면 풍경이다. 이건 좌우파의 문제를 넘어서는 거다. '천박함'이 곧 '교양'으로 전락해버린 이 사회에 나는 절망하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곳을 가볼 때마다 나는 이런 절망적인 한국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높은 빌딩과 잘 닦인 도로들을 보겠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 잠식 당하지 않는 무언가를 남겨 놓은 '인간들의 저항'을 읽는다. 지금 한국에 없는 건, 선진국의 빌딩이나 도로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저항이다. 나무 한 그루를 지킨다는 건, 그래서 그냥 나무 한 그루를 위한 일이 아니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wallflower.egloos.com/tb/1710171 [도움말]

핑백

  • 8con님의 글 - [2008년 2월 10일, 일요일] 2008-02-10 12:40:54 #

    ... "지금 한국에 없는 건, 선진국의 빌딩이나 도로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저항이다. 나무 한 그루를 지킨다는 건, 그래서 그냥 나무 한 그루를 위한 일이 아니다." 천년 묵은 나무 그리고 도시 - 이택광 오후 12시 40분 댓글 (0) &laquo; 2008년 02월 09일, 토요일   Today 257 / Total 92601 Profile 8con It ... more

덧글

  • -浪- 2008/02/10 12:57 # 답글

    연휴 동안에 모노노케히메를 봤는데 정말...
    이런 얘기를 할수 있다는게 너무 부러웠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새로이 가져야할지에 대한 사유가, 그리고 배제도 화해도 타협도 아닌 공존을 모색한다는게, 너무 좋았어요.
  • 이택광 2008/02/10 13:08 # 답글

    -浪-/ 힘이 빠질 때마다, 이들의 애니메이션을 봅니다. 보고 나면, 그래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나죠. 고작 '로보트 태권 V' 정도를 '명작'이라고 부르며 뿌듯해하는 우리들입니다. 삼류가 곧 한국 문화의 성격이 되어버렸죠.
  • 닷오-르 2008/02/10 14:45 # 답글

    로보트태권브이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에 대한 평론가들의 혹평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관한 측은지심이랄까요. 그것만 빼면 로보트태권브이에 관한 열광(?)은 디워와 유사합니다.
    건담을 좋아하고 슈퍼로봇대전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로보트태권브이는 꺼림찍하더라구요...
  • 이택광 2008/02/10 15:47 # 답글

    닷오-르/ 상당히 서글픈 얘기지요. 측은지심이면 다행이겠지만, 이게 '진심'이라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문화적 퇴행현상 자체를 '대중화'로 착각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죠.
  • 닷오-르 2008/02/10 16:41 # 답글

    하긴 저도 '로보트태권브이 보러 갈래?'라는 선배의 제안에 '싫어'라고 대답하게 될 때까지 로보트태권브이에 대해 별 생각없이 호의적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3, 40대의 향수 따위는 나랑 상관없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그리고 표절의혹이나 작품성에 대해서도 아무 말 없었죠 아마? 정말이지 디워사태처럼 되지 않은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 hyun 2008/02/10 18:36 # 삭제 답글

    낯간지러운 말 같아서 좀 망설이다 댓글 답니다.
    저는 선생님 블로그(그리고 두어 개 더) 발견하고 나서 얼마나 위안을 받는지 모릅니다. 위대한 인류의 스승들의 발자취를 책 속에서 접하면서 나를 다잡는 것에는 한계가 있더라구요.
    네, 다른 이를 상정하지 않고 어떻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살짝 신세한탄도 하고 싶어지는데 것두 부질없는 짓인데다가 예의도 아니죠 댓글에서.
  • sapa 2008/02/10 22:36 # 삭제 답글

    이젠 별로 가난하지 않고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수준인데...한국인의 욕망은 바야흐로 그로테스크로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데... 맨션(우리나라 아파트)에 사는 주부가 단독주택으로 이사가는 꿈을 이루는 이야기였습니다만, 어떻게 우리와는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사고할 수 있는지 참 흥미롭더군요. 아파트가 답답한 것인가 단독주택이 답답한 것인가...
    지금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아파트(와 그 욕망)들, 한 20년쯤 후에는 볼썽사나운 자태로 처치곤란이 될런지...
  • 이택광 2008/02/11 00:28 # 답글

    hyun/ 이곳은 원래 '수줍은 이들'을 위한 사사로운 블로그입니다. 물론 공적인 담론이 요즘 좀 늘어나긴 했습니다만...균형을 좀 맞춰야지 하고 있습니다.

    sapa/ 아파트가 없는 풍경을 보면 숨이 탁 트이지요...
  • 2008/02/11 00:38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N. 2008/02/11 05:49 # 삭제 답글

    나의 우울이 (물론 선천적인 부분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시대의 우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한편으론 위안을 받지만 한편으론 좀더 절망스럽기도 하고... 뭐 그렇네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걸까요?

    그래도 저는 아직 한국에서 사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전 할 줄 아는 게 영화보는 것밖에 없어서, 원래 한국영화보다는 미국영화와 서유럽영화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근래의 한국영화의 흐름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냥 뭉뚱그려서 말해보자면, 장르를 막론하고, 직설법이든 영화가 전혀 의도했던 바가 아니든, 근대성의 연원을 찾으려는 시도같고... 연원을 탐구하는 것도 실은 앞으로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를 찾기 위한 전초전 같은 거라 생각하다 보면, 살짝 희망 같은 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에고 이게 야밤의 웬 헛소리인지 모르겠네요.
  • 이택광 2008/02/11 08:49 # 답글

    비공개/ 아직도 자리에서 들썩거리고 있지요^^ 그래서 가끔 박노자 같은 이가 부럽기도 합니다.

    N./ 그게 위안이지요. 여하튼 이런 절망감을 인식론적 충동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의 대안이겠죠. 미학의 시대 뒤에 오는 이 인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식의 충동...이게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하곤 합니다.
  • 아큐라 2008/02/11 09:24 # 답글

    미학의 시대라고 말씀하신 부분에서 머리속 하얗게 되네요. 저도 인식의 충동 때문에 글을 남깁니다. 남은 방학 잘 보내시고요.

    이게 희망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연대와 협동, 보살핌과 평화, 평등 등이 단지 좌파나 진보의 기치가 아니라 우리 인류가 수만년 혹은 수백만년 살아온 과정에서 생존의 지침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살아내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 2008/02/12 14:4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덧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