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 6.10 촛불집회는 대의민주주의라고 불리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위기를 드러내는 정치의 출현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노래 가사가 증명하듯이, 이번 사건은 부르주아 대의민주주의체제가 억압하고 있던 '진짜 민주주의'를 거리로 끄집어내었다. "정치인들은 국회로 돌아가라"는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모든 민주주의는 '배제의 원리'를 통해 작동한다는 걸 정확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둘째, 6.10 촛불집회는 개인과 가족의 안전이라는 중간계급의 불안을 민족이라는 '숭고대상'으로 치환시킨 스펙터클이다.
이번 사건은 아주 복합적인 상황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계기는 우발적이었지만, 그 진행은 필연적이었다. 처음에 판이 벌어진 건 '광우병'이라는 개인의 안전 문제였지만, 판을 키운 건 '쇠고기 재협상'이라는 민족의 자존심 문제이다. 6.10 촛불집회는 '광우병' 문화제가 '재협상' 시위로 '질적 전환'을 일으키는 상황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6.10 촛불집회는 우발적으로 퍼져 나가던 '정치적인 것들'을 '민족'이라는 하나의 영토 속으로 흡수하는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셋째, 6.10 촛불집회는 과거 사건들의 귀환일뿐, 아직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근본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역사적 사건은 언제나 반복해서 귀환한다.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은 "공공성의 물화"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과 교육이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의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 국가와 계약한 국민들"은 이 둘의 물화로 인해 국가를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주거공간과 교육제도의 물화는 한국 사회에서 '강탈에 의한 축적'을 정당화하고, '시장 원리'를 넘어선 비합리적 경제논리를 만들어냈다. 6.10 촛불집회로 인해 초래될 결과는 이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넷째, 6.10 촛불집회는 하나의 증상이다.
한달 동안 촛불집회를 가능하게 만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6.10 촛불집회는 흥미롭게 드러냈다. 시청 앞에 모인 인파들은 '시위'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를 벌였다. 이들은 시위의 슬로건보다, 촛불이 부여하는 그 분위기에서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 이들이 원하는 건 이 증상으로부터 끝없이 즐거움을 얻어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한 게 이 정도인데, 아직은 이 생각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느슨하다. 사안들을 좀 더 분석한 후에 결론을 내리는 것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여러 의견들을 주시면 감사.



덧글
노지아 2008/06/12 09:02 # 삭제 답글
네번째에 특히 공감이 가네요. 저는 "비폭력"이라는 구호와 굳이 저지선을 뚫으려는 의지가 없음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그냥 이 상태가 만족스러운 게 아닌가, 이들이 원하는 건 일정한 목표의 달성이 아니라 그저 선명한 '악'의 존재가 주는 안락함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택광 2008/06/12 12:42 #
그곳에 나들이 나오신 분들은 확실히 그런 것 같더라구요. 다소 종교적인 측면도 있어요. 지인 한분이 대뜸 혼자 시위 현장에 가셔서 촛불을 사서 밝혀들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셨다는데, 이런 걸 봐도 뭔가 성지순례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윤형 2008/06/12 09:30 # 삭제 답글
흥미롭고 공감이 가는 시각들입니다. 작업이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고 계실까봐 알려드리자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저 노래는 탄핵반대 촛불집회 때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만든 사람은 역시 윤민석...-_-;;
이택광 2008/06/12 12:33 # 삭제
뜨악...그랬단 말이지.
노지아 2008/06/12 09:48 # 삭제 답글
윤형 / 아놔.. 나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인데 그렇다면 정말 골때리는군.
사령 2008/06/12 10:46 # 삭제 답글
정부에서 민족의 성웅(?)으로 일컬어지는 이순신 앞에 컨테이너로 진을 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마치 촛불을 든 사람들이 왜적이라도 된 것 같더라구요. 민족이라는 판타지는 촛불 쪽만 아니라 청와대 쪽에도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요?. 양쪽 모두, 민족 정통성이란 무의식에 의해 작동한 측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택광 2008/06/12 12:40 #
우연의 일치이긴 하겠지만, 그것이 주는 문화적 효과는 충분히 고려해볼만하겠어요.
쟁가 2008/06/12 11:37 # 삭제 답글
전체적 논지에 크게 공감합니다. 저 역시 중간계급의 거리정치라는 점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다만, 저는 '민족'보다 '국가'의 귀환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게 효순미선 집회와는 또다른 측면이 있어서 말입니다. 중간계급의 불안이 공공성의 문제와 닿아있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민족을 향하고 있는지 국가를 향하고 있는지는 좀더 세밀하게 분석해보아야할 듯... 민족-국가의 판타지가 북한의 쇠락과 함께 급속히 약화되면서 오히려 지금 남한시민의 감성은 亞제국주의에 더 가까워졌다고 보는데요, 똑같이 민족을 강조하긴 하지만 일테면 그것을 수단으로 보느냐 목적으로 보느냐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일전에 황우석 사태 때 포스팅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최근 촛불집회를 보면서 좀더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집회의 양상은 탈근대적이지만, 내용은 폭력적일 정도로 근대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언급하신 일반민주주의의 문제와 직접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지인이 진중권씨를 "일반민주주의의 위기에서만 작동하는 비평기계"라는 탁월한 표현을 썼는데, 촛불정국에서 진중권의 '본좌등극'이야말로 일반민주주의의 문제를 드러내는 증거가 아닐지... ㅎ
저도 조만간 못참고 글 하나를 써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택광 2008/06/12 12:33 # 삭제
지적하신대로, '국가'의 귀환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군요.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세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윤형 2008/06/12 12:24 # 삭제 답글
흠, 쟁가 님 덧글도 매우 공감이 갑니다. ;;
그림 2008/06/12 14:02 # 삭제 답글
뜬금없이 무지를 드러내서 죄송(?) 한데...윤민석 씨가 그 노래를 만들었던 게 어떤 문제가 있나요...?
혹시 그에 대한 논쟁 같은 것이 있었나요?
봉구 2008/06/12 14:25 # 삭제
윤민석씨는 90년대 초반부터 '전대협 진군가' '애국의 길'등의 노래로 잘 알려진 민족해방(NL) 계열의 노래운동가(작곡가)이고요, 최근 몇 년간 반미라는 주제의식을 직접 표출하는 대신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하루이틀 안에 바로바로 노래를 써 내는 스타일로 변신하셨죠 -_-;; 뭐랄까.. 그 분은 민족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노래로 승부하시는 분이고 -_-; 그다지 '민족혼'에 불타오르지 않는 분들께는(저를 포함해서) 호오가 극명하게 엇갈린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1세기판 김민기'(아침이슬 작곡가) 대신 윤선생님을 모시게 된 현 시국이 굉장히 가슴아프다는 T_T
봉구 2008/06/12 14:37 # 삭제 답글
집회 현장에서 넘쳐나는 '태극기'와 일부에 의해 현장에서 격앙된 소리로 외쳐지는 '비폭력', 아파트와 안정된 직업을 꿈꾸는 데 조중동이 그것에 방해되는 존재인 것 같아서 조중동은 물러가야 한다는 H대 대학원생의 인터뷰 등등.. 시위에 나선 사람들의 일차적인 목표가 '적을 물리치고 국가의 테두리 안에 안전하게 복귀하는 것'이라는 예증은 많은 것 같습니다. 대의민주주의 정치를 복원하려면 건강한 좌파의 활동이 필수적인데, (저를 포함해서) 다들 아직 촛불 꽁무니 따라다니기 바쁜 듯 싶네요.. 정치적 실체로서 사람들 손에 뭔가를 쥐어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좌파건 사람들이건 지금으로썬 누굴 탓하고 싶진 않구요.. 이 시대의 모순이 집약된 캐릭터 '이명박'의 끈기가 먹을것 없는 몇 개 안되는 메뉴 중 하나를 골라야 했던 빈약한 현재의 대의민주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중의 각성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네요..
N. 2008/06/12 16:52 # 삭제 답글
촛불행렬을 비하하고 싶진 않고, 어제자 경향신문을 보니 김지하 씨가 월드컵 운운하시더라고요. 갑자기 든 불경한 생각, 그렇다면 촛불시위는 월드컵 시즌 2인 건가... 싶더군요.
인형사 2008/06/12 22:49 # 답글
저 역시 국가의 귀환에 한표. 공공재를 제공하는 존재로서의 국가가 그 의무를 포기함으로서. 보이지 않던 것이 갑자기 보이게 된 것이지요. 이기적 개인들도 공공성이 자신의 이익과 크게 관련이 있다는 것을 갑자기 깨닿게 된 것이지요.그러하기에 국가의 귀환, 혹은 공공성의 귀환이 적절하겠지요.
공공성의 물화는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계신지 더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상당히 재미있고 의미있는 표현 같습니다.
다만 이미 있던 공공성이 물화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인데, 아마 그 공공성의 물화는 대한민국의 출생 때부터 같이한 태생적 조건이 아닐까요? 분배와 사회적 통합의 무원칙성이라고 할까요?
물론 그 무원칙성에도 나름의 원칙은 있을 것이며, 그런 무원칙성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분배와 사화적 통합을 해온 것인데, 다만 변화된 조건에 따라 더 이상 그런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이제는 문제로 인식된다는 차이가 아닐런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건이라는 지적에는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그 반복의 시작을 어디로 보시는지? 저는 이회창 대쪽론으로 시작하고, 노무현 열풍에서 반복되고, 황우석 사태가 계승하고, 지금은 광우병 사태로 다시 반복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번에는 진짜 공공성에 접목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기대를 해봅니다.
현재 그 공공성의 귀환이 공공성의 물화를 존재근거로 하고 있는 정당체제를 강타하고 있지요.
오히려 무정부적이기까지한 대중의 자발성이 공공성을 대변하고 있고, 기존의 제도와 정당이 공공성의 물화를 대변하고 있기에 해법을 찾기가 더 어려운 것이 아닐까요?
진짜 민주주의와 부르주와 민주주의의 대결이라? 한국에서도 토크빌이 나올 때인가봅니다.
2008/06/12 23:1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이택광 2008/06/12 23:42 #
쟁가님은 우석훈 박사님과 다른 분입니다. 같이 책을 쓰신 공저자이지요.
2008/06/13 07:5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데학생 2008/06/13 17:58 # 삭제 답글
제 주변을 보자면 2번째 항목과 4번째 항목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5월 31일에서 6월 1일로 넘어가는 피의 일요일의 현장에서 87년을 직접 겪지 못한 대학생 세대는 '역사의 현장에 있다' 는 일종의 숭고미를 느끼는 듯 합니다. 그리고 나서 숭고한 분노에 의해 추동되어 계속 시위에 나오더군요.시위를 단순한 '축제' 로서 소비하는 층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영웅적 체험' 으로 소비하는 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변두리 2008/06/16 19:29 # 답글
이번 촛불집회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이 많은 편입니다.1. 대의민주주의의 대한 문제는 원천적으로 그 전제조건인 '정당민주주의'나 '정책관련선거'가 충족되지 못하는 한국에서 늘 일어나는 문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과 별 다를 바 없는 부분이었고 현정부는 선거이전부터 현재의 정책들을 시행하리라 이미 알려진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코메디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이를테면... '어.. 그냥 남발하는 공약인줄 알았는데 진짜로 하는거야?' 이런 식인데... '이론따로 실무따로' 라는 한국의 특수한 부조리한 상황이 선거와 정책에도 그대로 유지되어 온 '식민지 시절의 생존필수적 위선과 이중성'이 계속 살아숨쉬어 왔다는 사실만을 증명하고 있는 해프닝이 아닌가 싶어요.
2. 87년 체제는 독재정권과 불법국가를 종식하고 형식적이나마 대의민주주의와 대선직선제를 관철시키는 것 외에 세부적이고 각 분야별로 많은 논의결과에 따른 디테일한 장치들이 준비되고 계속적인 오류수정이 되어야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작동하는 장치였을텐데..
말그대로 불법국가의 종식이외에는 아무런 합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형식적인 조항만을 가지고 있는 헌법을 가지고 '위헌적인 합법결정을 통한 지배구조의 계속적인 보수화'와 간헐적인 떡밥을 통해서 근본적인 모순을 애써 모른채 하며 20년을 보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촛불이 과연 이러한 문제까지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을 생각을 하는 개헌의 의미도 가지고 있는 지는 저는 의문을 가지고 있네요.
(제 분야이다 보니 몇 개의 사족을 첨부합니다: 한국의 제6공화국 헌법은 '개인의 존중'과 '인간의 존엄'이라는 현대민주주의의 절대명제를 사문화한 헌법이며 '닥치고 재산권의 존중'과 '닥치고 선거결과주의'가 전면에 나와 있는 우파의 헌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이전 국제그룹 등과 관련한 불법독재군사정권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서 당연한 수순이긴 합니다만 87년 이후의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할 만한 헌법은 아니었죠. 국가조직뿐만 아니라 여러분야에서 현실과는 괴리가 큰 헌법이고 개헌이 필요한 시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근본모순에 대한 어떤 합의가 국민들간에 이루어졌는지는 촛불로 미루어 짐작하기가 힘들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