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서울'을 위한 문화재 파괴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서울시가 중장비를 동원해서 문화재 위원회가 ‘근대 문화재’로 지정한 서울 시청 건물을 밀어버린 것이다. 남대문 방화 사건과 다를 게 없는 사건이다. 서울 시청을 그대로 보존하라는 주장에 대해 서울 시청은 입에 발린 대응을 해왔다. “서울 시청 건물을 해체해서 복원하겠다”는 서울 시청의 말은 그 자체로 징후이다. 문화재를 중장비를 동원해서 때려 부순 뒤에 복원한다는 건 발화의 의미가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생각해보라. 영국의 런던 타워를 안전 상에 문제가 있다고 부숴서 복원하면 그게 중세 건물일 수 있을까? 그러면 과연 런던의 상징성은 보존될 수 있을까?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서울 시청 건물은 역사도 그렇게 길지 않고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인데 그 까짓것 좀 부숴버리고 새 건물을 지을 수 있지 않나. 특정한 이념의 잣대로 본다면 이런 말도 설득력은 있다. 그러나 시간의 문제는 좀 차원이 다른 얘기다. 특히 문화재라는 것은 말이다. 그러면 미국은 무엇 때문에 영국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지어진 건물들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걸까? 또 영국은 왜 과거 바이킹이 침공해서 세운 고성들을 남겨두고 관광 상품으로 써먹고 있는 걸까?

예전에 영국 여왕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더 타임즈>는 서울의 풍경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기사를 연일 게재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일국의 수도라는 곳에 30년 이상 오래된 건물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고궁을 제외하고, 가서 볼만한 건물이 눈 씻고 봐도 없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었다. 한국이 반만년 역사를 말로만 자랑하면 뭘 하겠는가? 물론 민족주의자도 아닌 내가 나서서 이런 걸 걱정해줄 까닭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국가라면 원칙이나 기조 같은 건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기야 깊이 없음이나 분열증을 한국 사회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사실이라면 굳이 우리가 이 좁은 한반도에 모여서 국가라는 이름으로 세금 내고 살 필요가 없다. 국가 발전이고 나발이고 그냥 먹고 튀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가 없다. 근대국가의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민족이라는 상상 공동체의 구성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근대국가가 문화재를 지정하고 보존하려는 건 따라서 지극히 당연한 ‘생존본능’인 것이다. 한국은 어떤 가치도 고정적인 것이 없다고 본다는 점에서 참으로 탈근대적인 국가인 셈인데, 이 탈근대성이 좋은 의미로 그런 게 아니라 일부 모리배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한에서만 탈근대적이기 때문에 문제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세훈 서울 시장이 내건 서울의 이미지는 ‘디자인’과 ‘문화’이다. 그런데 서울 시청을 저렇게 만들어버리는 걸 보면 오시장이 생각하고 있는 디자인은 뭐고 문화는 무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울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압축 성장에 따른 도시기능의 체증 현상과 도시 미관의 훼손”이라고 진단했던 오시장이 하는 일이 또 다른 ‘압축 성장’이라는 건 뭘 말해주는 걸까? 압축 성장은 먼 과거에 누군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진행 중인 대표적인 한국 사회의 병폐이다. 오시장 자신이 압축성장의 수혜자이자 동시에 추진자인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를 적절하게 대접하는 것이 바로 문화일 텐데, 그 문화라는 개념도 ‘디자인중심도시’라는 지극히 압축성장적인 패러다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결코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가 없다.

외국에서 누군가 손님이 올 적마다 나는 곤혹스럽다. 특히 그 외국 손님이 유럽에서 오는 고집 센 이라면 사실 데려갈 곳이 마땅찮다. 물론 워낙 과거를 강조하는 곳에서 사는 이들이니 현대화된 한국의 모습을 이국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 왔다 가는 손님들이 ‘뉴욕 못지않게 편리하고 놀기 좋다’는 말밖에 남기지 않는다면 이걸 마냥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만약 서울의 도심이 지금처럼 마구 개발되지 않고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면, 아마 요즘처럼 요란한 홍보가 없더라도 서울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시장이 바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도 꼬이고 돈도 모여들지 않겠는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소중해지는 것들은 모두 부숴버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쓸모없어지는 것들만 만들어온 게 바로 한국의 현대사였다. 국가는 존재했으되 그 국가의 쓸모에 대해 아무런 자각이 존재하지 않았고, 국가의 이미지는 오직 폭력과 권위로만 재현되었다. 그러므로 문화재라는 건 한국 사회에서 지독히 ‘쓸모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성장주의자들에게 문화재라는 건 그냥 없애 버려야할 ‘초가집’일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우리가 그토록 따라 배우고자 하는 선진국이라는 곳이 초가집도 잘 가꾸어서 문화재로 보존하는 까닭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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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뉴스>에 게재되었음. 

by 이택광 | 2008/08/28 09:10 | 세상읽기 | 트랙백(2) | 핑백(2)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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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8/28 09: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kristine at 2008/08/28 13:37
솔직히...할말이 없습니다. 솔직히 영국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솔직히 저도 한국사람이지만 고궁빼고는 그다지 가서 볼만한게 글쎄요 정말 없는듯 해요...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은 근대화라는 것은 삐까뻔적한 현대적인 건물을 짓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글쎄요.. 한국이 고베나 다른곳처럼 뭐랄까 지진이나 또는 전쟁으로 부셔진 터에서 새로이 짓는 곳는 곳도 아니고.... 과거부터 거슬러온 것인데 단지 현대화, 근대화의 목적으로 새로 짓는 것은... 글쎄요...
Commented by 필부 at 2008/08/29 10:39
가끔 와서 눈팅만 하고 가다가 미투데이에서 링크 걸었는데 트랙백이 두 개나 와버렸네요. 하나는 지워주세요 ㅠㅠ

아, 그리고 평소에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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