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미아>라는 뮤지컬이 올해 영화로 만들어져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영화를 본 소감은 무대 뮤지컬에 비해 다소 느슨하지만 장르의 한계를 뛰어 넘어 선방했다는 느낌이다. 특히 뮤지컬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아름다운 지중해의 풍경은 인기 있는 무대 뮤지컬을 굳이 영화로 다시 만든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원래 이 작품은 스웨덴 출신의 댄스 그룹 ‘아바’(ABBA)의 노래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뮤지컬이라서 화제를 낳았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창작했다기보다 기존에 인기 있는 노래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전형적인 ‘쥬크 박스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는 아바의 히트곡을 사용했지만, 플롯은 1968년에 나온 <부오나 세라 미시스 캠벨>이라는 영화에서 차용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전적으로 ‘문화산업의 논리’에 맞춰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작품은 별반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색안경을 걷어내고 이 뮤지컬을 본다면, 상업주의를 넘어가는 대중문화의 위력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물론 여기에서 지칭하는 ‘대중문화’라는 것은 근대의 출현과 함께 역사를 주도했던 ‘민중적인 것’(the popular)을 의미한다. <맘마미아>는 모더니즘의 자기모순을 넘어선 대중문화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모더니즘은 미학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본주의에 저항했는데, 이런 논리는 상품이면서 상품이기를 거부하는 역설을 낳았다. 말하자면, 모더니즘 작품은 비상품성 또는 반상품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상품화해서 자본주의 시장에 유통시켰던 것이다. 모더니즘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고급 미학의 이념을 추구했던 것인데, <맘마미아>같은 뮤지컬은 이런 경우와 반대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맘마미아>가 추구하는 것은 대중의 파토스에 대한 공감이다. 이 공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바로 아바의 노래와 함께 청춘을 보낸 ‘디스코 세대’의 향수이다. 한국에서 다소 낯설지만 위트 스틸먼 감독이 만든 삼부작 중 하나인 <디스코의 마지막 나날들>은 <맘마미아>의 들뜬 낭만주의를 차분히 가라앉힌 판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맘마미아>는 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중년을 맞이한 세대의 향수를 달래고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을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으로 치자면 공지영 류의 ‘386세대 후일담 문학’ 같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측면이 작품의 인기로 이어졌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에서 소재를 가져 왔지만 <맘마미아>는 그리스 고전극의 요소와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을 흥미롭게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성’과 ‘소비주의’라는 당대의 문제에 대한 성찰을 제공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 작품에서 즐거움만을 얻는 것은 아니다.
<맘마미아>의 성공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른바 문화를 고부가가치 산업의 총아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런 게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이런 우스개가 있다. 한국영화에서 진중한 이야기를 발견하기 어려운 까닭은 영화 관계자들이 영화만 봐서 그렇다고. 한때 한국에서 ‘게임만 잘해도 대학 간다’는 황당한 이야기들이 횡행했는데, 게임만 잘해서 대학을 갈 수 있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곳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디 워>같은 영화를 만들어놓고 세계시장 공략이라는 민망한 구호나 남발한다면, 한국대중문화의 앞날은 결코 밝을 수가 없다.
대중문화의 생명은 공감의 보편성이다. 청소년층부터 노년층까지 세대 간 차이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공통의 경험치를 부여해주는 것이 바로 대중문화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은 세대 문화를 넘어선 대중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이기도 하다. 한국형 쥬크 박스 영화였다고 할 수 있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실패는 이런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명성황후>같은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보편적 진실을 담고 있는 작은 일상들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일상에서 보편적 체계의 진리를 찾아내는 훈련이 지금 시급한 것이다. 영화 <맘마미아>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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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에 게재되었음.
원래 이 작품은 스웨덴 출신의 댄스 그룹 ‘아바’(ABBA)의 노래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뮤지컬이라서 화제를 낳았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창작했다기보다 기존에 인기 있는 노래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전형적인 ‘쥬크 박스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는 아바의 히트곡을 사용했지만, 플롯은 1968년에 나온 <부오나 세라 미시스 캠벨>이라는 영화에서 차용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전적으로 ‘문화산업의 논리’에 맞춰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작품은 별반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색안경을 걷어내고 이 뮤지컬을 본다면, 상업주의를 넘어가는 대중문화의 위력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물론 여기에서 지칭하는 ‘대중문화’라는 것은 근대의 출현과 함께 역사를 주도했던 ‘민중적인 것’(the popular)을 의미한다. <맘마미아>는 모더니즘의 자기모순을 넘어선 대중문화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모더니즘은 미학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본주의에 저항했는데, 이런 논리는 상품이면서 상품이기를 거부하는 역설을 낳았다. 말하자면, 모더니즘 작품은 비상품성 또는 반상품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상품화해서 자본주의 시장에 유통시켰던 것이다. 모더니즘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고급 미학의 이념을 추구했던 것인데, <맘마미아>같은 뮤지컬은 이런 경우와 반대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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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맘마미아' 포스터 | ||
<맘마미아>는 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중년을 맞이한 세대의 향수를 달래고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을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으로 치자면 공지영 류의 ‘386세대 후일담 문학’ 같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측면이 작품의 인기로 이어졌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에서 소재를 가져 왔지만 <맘마미아>는 그리스 고전극의 요소와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을 흥미롭게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성’과 ‘소비주의’라는 당대의 문제에 대한 성찰을 제공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 작품에서 즐거움만을 얻는 것은 아니다.
<맘마미아>의 성공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른바 문화를 고부가가치 산업의 총아로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런 게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이런 우스개가 있다. 한국영화에서 진중한 이야기를 발견하기 어려운 까닭은 영화 관계자들이 영화만 봐서 그렇다고. 한때 한국에서 ‘게임만 잘해도 대학 간다’는 황당한 이야기들이 횡행했는데, 게임만 잘해서 대학을 갈 수 있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곳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디 워>같은 영화를 만들어놓고 세계시장 공략이라는 민망한 구호나 남발한다면, 한국대중문화의 앞날은 결코 밝을 수가 없다.
대중문화의 생명은 공감의 보편성이다. 청소년층부터 노년층까지 세대 간 차이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공통의 경험치를 부여해주는 것이 바로 대중문화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은 세대 문화를 넘어선 대중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이기도 하다. 한국형 쥬크 박스 영화였다고 할 수 있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실패는 이런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명성황후>같은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보편적 진실을 담고 있는 작은 일상들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일상에서 보편적 체계의 진리를 찾아내는 훈련이 지금 시급한 것이다. 영화 <맘마미아>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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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에 게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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