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혀> 표절 논란에 대해 세상읽기

또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논문 표절이 아니라 문학작품의 표절이다. <혀>라는 동명의 작품을 두고 신인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중견 작가가 베꼈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얼핏 보면 이 문제는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문단권력의 문제라고 하겠다. 솔직히 말해서, 문제를 제기한 측에서 본다면 이 사건은 진실공방이겠지만, 그동안 벌어진 양상은 애석하게도 진실의 차원을 떠나버린 것처럼 보인다.

원래 싸움은 당사자들에게는 생사를 건 일일 수 있지만 구경꾼들 입장에서는 재미난 일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서로 상처 받을 일을 왜 벌였는지 불만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은 기왕 붙을 거면 제대로 붙어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싸움의 몫은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혀>를 둘러싼 표절 논란은 확실히 많은 걸 말해준다. 무엇보다도 이 논란은 계급문제를 감추고 있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표절 문제이지만 그 아래에 숨어 있는 건 강자-약자, 또는 가진 자-못 가진 자라는 대립구도에 대한 문제제기다. 또한 이 논란은 계급갈등을 양심의 문제로 풀려는 스미스주의적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지극히 한국적 진보주의를 재현한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논란은 자본주의의 상업구조로 인한 문학의 물화라는 문제를 ‘권력’의 범주로 치환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결국 이 물화의 구조에서 권력이라고 지시되는 건 ‘독점’을 뜻한다. 따라서 문학권력이라는 건 시장의 독점을 유지하기 위한 ‘특권’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담합구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주이란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했을 때 그 의도는 ‘순수’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순수했다는 뜻은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대중에게 호소해서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 번 ‘혀’를 떠난 발화는 복잡한 맥락들을 드러내면서 한국 문학이 처해 있는 외설적 조건들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른바 문단 내에 있는 ‘작가들’이 정작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혀>의 표절 논란은 그러므로 특정 작품의 진위나 특정 작가의 양심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문학판-문단 전체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드러내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정작 문단은 이 문제를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문단이 나선다고 해서 이 불신이 해소될 것처럼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건 구조적인 문제이다. 서비스가 부실하다고 항의하는 시장의 소비자와 문학 독자가 다르게 존재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문단이 편들어야할 이는 안 봐도 비디오이지 않겠는가? 이 구조에 대한 성찰 없이 문제를 표절에 축소시켜 ‘법’을 통해 풀려고 하는 건 패배주의를 미리 상정하는 일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논의는 표절의 진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좀 더 확장된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현재의 한국 문학이 재현하고 있는 주체와 계급의 문제, 그리고 한국 문학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 이와 함께 한국 문학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로 논의를 확장시켜가야 한다.

70년대와 80년대에 공공영역의 담론생산을 주도했던 한국 문학은 기본적으로 농촌에서 대도시로 이주한 이행기 주체들의 정서를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보수작가의 대표격인 이문열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건 이런 이행기의 가치혼란 속에서 자신이 지지했던 세계가 몰락해 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가부장적 남성주체의 내면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보와 보수, 순수와 참여를 막론하고 이 시절의 한국 문학은 모두 무너져가던 가부장적 공동체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정서의 근간으로 삼고 있었다.

이른바 지금 우리가 ‘가벼운 문학’이라고 부르는 90년대 이후 한국 문학들은 자본주의가 전일적으로 관철되고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와 개인주의가 환상의 커플을 이루던 시기에 출몰했다. 과거의 문학에 비해 이런 문학들이 시장논리를 훨씬 더 체현하고 있다는 증거는 이른바 ‘참신한 소재’에 대한 집착에서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서사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향하는 새로운 시장의 회전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묘책이었던 셈이다. <혀>를 둘러싼 표절 논란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건 ‘새로운 것’(newness)에 대한 공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결판이 나겠지만, 어느 쪽이 진실이든 그 결과는 한국 문단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시장논리를 넘어설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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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에 게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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