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털어버린다는 것 단상

어제 본 '엽기적'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 나오는 대사 한 마디. 정확하게 문장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또 털어버리면 돼", 대충 이랬다. 삶을 살다보면 모든 걸 털어버려야할 때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대관절 습속의 동물이라서 이게 쉽지 않다. 나보다 앞서 모든 걸 털어버린 이들을 보면 존경심이 솟아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건 분명 중요한 삶의 도약이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신념의 기사'야말로 이 도약을 이룰 수 있는 주체이다.

유성용이 새로운 책을 내었다. <한겨레21>에 박수진 기자가 쓴 기사를 보고 냉큼 책을 사서 읽었다. 그의 글은 여전히 '장주 풍'이다. 그가 지리산에 은둔하며 차를 내리고 살 때, 장주에서 글로 몇 번 스친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의 문체가 조금 반갑다. 이번 책에서 돋보이는 건 역시 바뀐 제목. 이전에 낸 '여행생활자'를 뒤집은 듯한 '생활여행자'. 이 제목만으로도 삶을 대하는 그의 경지가 한층 높아진 듯하다. 그렇다 생활 자체가 여행인 것이지 여행이 곧 생활이 되는 건 아니다.

후자는 레비스트로스가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여행가'와 크게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유성용이 들려주는 얘기. 생활여행자라는 화두는 그가 발견한 한 사내의 모습에서 나온 것 같다. 모포와 생활물품을 꼭꼭 여며서 수납한 배낭을 메고 청계천 무료 급식차 앞에 줄을 서 있던 그 사내의 모습이 곧 생활여행자인 것이다. 생활여행자야말로 모든 걸 털어버릴 수 있는 삶인 걸까. 법과 함께, 법을 거스르면서 나아갈 수 있는 묘한 삶. 그 지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덧글

  • Jocelyn 2008/11/10 18:17 # 삭제 답글

    '소년은 울지 않는다' 엽기영화지요. 정말 엽기영화. 힘들게 힘들게 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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