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냉소주의에 대해 세상읽기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냉소주의자를 일러, "모든 것의 값어치(price)를 알면서 어떤 것의 가치(value)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와일드의 말이 옳다면, 냉소주의자는 '속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아냥거림을 감춰두고 있다는 점에서 냉소주의자는 오히려 속물의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현실주의자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원래 냉소주의는 희랍어에 연원을 두고 있는 말인데, 인간의 선함이나 진실함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입장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냉소주의는 인간의 삶에 내재한 허무주의에 대한 솔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와일드의 말을 마르크스의 언어로 변주한다면, 냉소주의는 교환가치의 전일적 지배로 인해 사용가치가 소멸해버리는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와일드에게 자본주의의 실상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작업은 '낭만주의'였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낭만주의는 "자기가 보는 것을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것"을 뜻하는 사실주의의 다른 말이었다. 산업자본주의가 통합적 지배를 관철시켜나갔던 19세기 빅토리아시대의 현실은 이처럼 '예술가의 거울'을 싫어했던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1980년대 이른바 노동문학이나 민중문학이라는 문학적 정체성은 1990년대를 맞이하면서 찾아온 역사적 공산주의 국가의 소멸과 더불어서 명맥을 다했다. 사회의 모순,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착취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문학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오랜 풍월로 취급당했고, 슬라보예 지젝이 언급했듯이, 과거에 행해졌던 모든 일들은 돌연 모두 잘못한 일이거나 아니면 아예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취급당하는 냉혹한 부인(denial)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프로이트의 지적처럼, 부정(negation)이 욕망의 억압을 방어하면서 그 욕망을 자기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라면, 부인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현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이다. 부인을 통해 경험은 원초적인 장면처럼 기억 속에 봉인된다.

이념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뒤에 한국문학에 출몰했던 '역사적 인간'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대의와 문학을 구분하지 않았던 과거의 '민족문학'은 비루한 일상과 사소한 개인주의를 자양분으로 삼은 새로운 문학적 주체에게 길을 내어줘야 했다. 이념적 쟁투에서 주변적인 것으로 밀려나야만 했던 것들이 갑자기 문학의 중심주제로 진입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이런 문제점을 작가라는 개인의 범주에서 찾지만, 이와 같은 입장은 너무 단순하게 문학적 담론의 변화와 작가라는 개인의 범주를 매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작가의 역할이라기보다, 특정한 문학의 형식을 규제하는 현실성의 논리가 아닐까.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을 일컬어 냉소와 환멸의 문학이라고 규정하는 익숙한 명명은 작가의 양심과 책임감이라는 인간주의적 테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생각은 확실히 현실의 질량에 비해 넘치는 비분강개이다.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는 1980년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성에 차지 않는 문학이었지만, 그 이후 문학들이 보여주는 나르시시즘에 비한다면 훨씬 진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종연이 언급한 '비루한 것의 카니발'은 비루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니라 카니발이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것이다. 어떻게 1980년대에 보이지 않던 것이 갑자기 1990년대에 분출하게 되었던 것인가.

이런 변화를 단순하게 문화적 헤게모니의 문제로 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말하자면,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벌어진 담론투쟁이 전반적인 사회의 보수화와 맞물려 냉소와 환멸이 득세하게 되었다는 판단은 너무도 주관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사회의 보수화가 무엇을 의미하며, 여기에서 발생하는 냉소와 환멸이 어떤 문제를 드러내는 징후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언제나 선험적이다. 여기에서 선험적이라는 것은 경험에 근거하기보다 그 경험을 불러내어 재구성하는 것을 상상력이 담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개념은 칸트 철학에서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인데, 헤겔이 이런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만들어낸 것이 종합의 활동이라는 생각이다. 헤겔의 입장에서 상상력의 종합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헤겔에게 부분의 총합은 전체보다 크다. 왜냐하면 상상력의 종합은 감각의 다양성을 그냥 모으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각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내용들을 분해해서 종합하는 것이 상상력의 실체이다. 지젝의 지적처럼, 이런 맥락에서 헤겔이 구상한 상상력은 초월적이다. 이 초월적 상상력은 종합이면서 동시에 분열적이고 해체적이다. 분열과 해체를 통해 상상력이 도달하는 지점이 헤겔이 '세계의 밤'이라고 부른 무한한 창조의 공간이다. 이 텅 빈 공간에서 우리는 "피 흐르는 머리"와 "하얀 유령"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품고 있는 이 무(nothing)의 영역이야말로 무의식이면서도 실재의 자리이다.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할 이런 내면에서 작가는 무엇인가를 발굴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최근 젊은 작가들 사이에 만연한 냉소주의는 작가 개인의 태도나 세계관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상상력과 연동하는 사회적인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하듯이,미학적 형식은 봉쇄전략의 일종인데, 이와 같은 봉쇄는 리얼리티에 대한 작가의 판단이 불가능할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티의 지점에 가면 가치의 위계는 붕괴하고 혼란에 빠진다. 상대적 차이를 통해 균형을 이루고 있던 가치체계는 리얼리티의 가장자리에서 분해되는 것이다.

냉소주의는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리얼리티에 대한 주체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티를 적절하게 감당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지 못할 때 주체는 도덕적 범주로 도피한다. 리얼리티를 드러내야할 지점에서 주체는 자기 자신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상상적 봉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백영옥의 <스타일> 같은 '칙릿'에서도 이런 경향은 드러난다. 작품 속의 화자가 뉴욕의 현실과 서울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장르의 규칙이 강제하는 비현실성을 빠져나갈 때, 작가는 명백하게 도덕적 판단의 범주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도 마찬가지이다. 작품의 형식논리를 지배하는 이정희와 김해연의 사랑은 여기에서 민생단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자리를 내어주고 밀려난다. 말하자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독자는 김해연의 운명을 바꾼 이정희를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이정희야말로 소설 형식의 경계이자 리얼리티의 가장자리인 셈인데, 이 지점을 '역사성'이라는 범주로 은폐함으로써, 작가는 '역사소설'을 얻는 대신 '연애소설'을 버린 것이다.

리얼리티야말로 바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내장해 있는 모순이다. 작품의 형식이 이 모순에 직면했을 때 작가는 이를 봉합하기 위해 인식을 포기하고 도덕을 채택한다. 냉소주의는 인식이라기보다 도덕의 문제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이를 천재라고 지칭한 자크 랑시에르의 말을 변주한다면, 우리는 이런 작가의 냉소주의가 작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그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리얼리티에 대한 주체적 대응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냉소만이 오늘의 한국 작가에게 유일한 도덕인 셈이다.

---------
<경희대학원보>에 게재되었음.

덧글

  • 쟁가 2008/12/17 21:03 # 삭제 답글

    그 냉소주의가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은 탁월하네요. 잘읽었습니다.^^
  • 이택광 2008/12/18 08:13 #

    리얼리티의 불가해성, 사실 냉소는 이에 대한 주체적 방어전략일지도 모르죠.
  • scene 2008/12/18 00:45 # 답글

    이해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리얼리티에 대한 주체적 대응으로서의 냉소는 오늘의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는 저같은 독자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 이택광 2008/12/18 08:20 #

    독자의 측면에서도 그럴 수 있겠네요. 이런 맥락에서 냉소는 '시대정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2008/12/18 04:3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