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위기, 정치의 가능성 세상읽기

점입가경이다. 정부와 여당의 행태 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서 1년 동안 해놓은 일이라고는 분란이나 일으키고 말썽이나 부린 것이 전부다. 이런 평가가 박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을 것 같다. 도대체 대통령은 그렇다고 쳐도, 참모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들려올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생각한다면, 정부와 여당이 뭘 모르고 이런 추태를 연출한다고 볼 수는 없다. 나름대로 계산을 갖고 행동했지만, 그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고 봐야할 거다. 누구는 이런 이명박 정부의 행보를 두고 ‘파시즘의 악취’를 맡는다고 했지만, 민중의 지지가 없는 파시즘이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지지도가 이렇게 낮은 이명박 정부는 아무리 파시스트가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그 부르주아 세력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라 파시즘을 송충이보다 싫어하고, 한국의 부르주아 정치구조가 인맥과 학맥으로 나눠 먹기식으로 짜여 있는 조건에서 파시즘이 권력을 접수하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실패하고 물러났을 경우이다. 이때가 사실 파시즘에게 호기일 수 있다. 자본주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 지금 한국의 현실이 히틀러의 집권 이전과 유사하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건 좀 다른 문제이지만, 어쨌든 한국 사회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정치의 위기라는 게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건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에 대한 혐오는 이번에도 되풀이되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런 추태를 연출하는 모습에 모두 즐거워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런 불편한 심기는 익숙한 양비론적 정치 혐오주의의 귀환이라기보다,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에 진짜 민주주의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국회의사당 밖에 있었다. 이른바 ‘국민’은 이 사실을 경험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정치인’은 이런 바깥의 민주주의에 모르쇠를 놓고 있는 모리배집단으로 비칠 뿐이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고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이중구조는 항상 정치와 민주주의를 충돌시켰다.

국회의사당의 활극은 이런 까닭에 가능하다. 여의도를 지배하고 있는 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이념이지만 정작 부르주아 자신은 이런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쳐본 적이 없는 곳이 한국이다.

오히려 부르주아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민중’이 부르주아를 위해 이념을 사수해온 게 한국의 역사이다. ‘반공’과 ‘멸공’은 이런 괴리를 매끈하게 메워주는 대중적 판타지였다. 이런 반공주의는 냉전 종식 이후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진입하기 편리한 고속도로를 닦아놓았다.

겉으로 보기에 두 이데올로기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실상은 ‘이기적 자본주의의 옹호’라는 측면에서 높은 친화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반공투사가 ‘비즈니스맨’으로 순식간에 대체될 수 있는 곳이 한국인 거다. 이건 비관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우리의 조건이다. 자신의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 자체가 희극에 지나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 자기 규율과 도덕에 투철한 ‘상승기’ 부르주아의 재탄생을 꿈꾸는 건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개혁’이라는 건 결국 이기적 자본주의를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고, 국가의 부를 인구의 2%를 위한 금고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어차피 자본주의가 이기주의라면 가장 이기적인 놈이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 ‘국민’은 이런 이명박식 경제논리를 지지했지만, 앞으로 낙오병이 점점 늘어난다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회의사당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을 일괄 처리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고집은 앞으로 닥쳐올 정치적 위기를 본능적으로 예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위기는 바로 이들이 ‘정치’라고 생각하는 그 균형과 통제의 파괴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의 위기야말로 ‘다른’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줄 계기이기도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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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에 게재되었음

덧글

  • 2009/01/06 13: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1/14 06:2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09/01/15 10:32 #

    위기가 아니면 이상하겠죠^^
  • 2009/01/14 06:2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09/01/15 10:31 #

    '이르다'기보다,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통치의 실패는 필연적으로 혼란을 초래하죠. 뭐, 지극히 자연스러운 예측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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