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글을 쉽게 쓰는 것이 아니다 단상

밑에 인용한 이메일 내용이 왜 문제인 걸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은 이렇다.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에게 당신네들은 왜 <선>이나 <미러>처럼 기사를 쓰지 않느냐 하고 시비를 거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될 거다. 판매부수로 치면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가 <선>이나 <미러>를 이길 수 없다. 이런 논리를 앞세워서, 부수도 얼마 발행하지 않는 주제에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도 <선>이나 <미러>처럼 기사를 써야한다고 주장하면 얼마나 황당한 얘기이겠는가? 엄연히 '독자층'이 다른데 말이다. 이렇게 '다르다'는 것에 대해 한국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은 참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이나 <미러>를 보면서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를 읽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그럴려면 이 둘을 함께 읽고자 하는 노력은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노력은 제쳐두고 <가디언>과 <인디펜던트>에 와서 당신네들 신문은 너무 재미가 없어서 못 읽겠다고 한다면 좀 이상한 것 아닌가?

내가 주목하는 건, 이렇게 논리적으로 이상한 주장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용인하는 그 심리적 기제에 대해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지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지목했던 것이다. 앞서 이 블로그에서 논의한 적이 있지만, 반지성주의는 반지식인주의이기도 한데, 지성적 사유와 지식인 일반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태도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반지성주의에 대해"라는 포스팅을 참고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문제의 이메일은 반지성주의라는 '신종'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무지한 독자'가 자기도 모르게 보낸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이 독자가 공개되지 않은 나의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고 마침내 내 이메일 주소를 찾아 메일을 보내도록 만든 그 열성의 원인은 반지성주의라는 추상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메일에서 드러나는 내용(그냥 쉽게 써달라는 호소)과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열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자존심의 상처'이다. 이 상처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신의 몫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글을 통해 자신이 배제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에 나에게 적극적으로 '소통'을 요구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논리구조는 작년에 발생한 촛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이명박'도 아니고 '정부'도 아니다. 말하자면, 이메일을 보낸 독자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까닭은 이런 논리구조에서 나를 마땅히 자신과 소통해야할 책임을 가졌으면서도 소통하지 않는 존재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는 그냥 상징적일 뿐이지, 정치성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독자에게 정치성이 있었다면 그는 짜증을 내는 대신, 나에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도대체 팜므 파탈이 뭐고, 상징적 대타자가 뭐냐고. 80년대 배움의 질문으로 차고 넘쳤던 노동계급운동을 직접 목격한 나로서 이 상황은 참으로 끔찍한 것이다. 전태일은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이라고 개탄했지, "대학생은 내 친구가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 '정신분석학'이 필요하다고 말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정치적 기획이 무용한 이 황량한 탈정치의 사막에서 오직 정치적일 수 있는 것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욕망의 정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 세계의 작동방식을 바라보아야하는 요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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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 2009/04/29 19:56 # 삭제 답글

    냉수를 마음껏 들이킨 기분입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 댓글 2009/04/29 21:06 # 삭제 답글

    글을 어렵게 쓰는 것과 지성, 과는 별 관련이 없고, 팜므 파탈과 상징적 대타자, 라는 '용어'를 구사하는 것과 평론의 수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영화 평론에서 라캉의 냄새가 나는 것이야 말로 극히 한국적인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테면 님이 프레시안에 기고하신 글에서 드러나는 문제가 이번에 쓰신 글에도 있는데요. 님의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전 정말이지 님이 구태여 [가디언]과 [인디펜던트], [선] 이나 [미러] 와 같은 영국 신문의 예를 드는 것에서 어떤 '징후'가 보입니다.

    한국 신문의 예를 들어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글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위해서 [가디언]과 [인디펜던트], [선]과 [미러]가 영국 사회에서 어떤 '느낌'을 가지는지 까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 erte 2009/04/29 21:47 # 삭제

    흠 제 짐작이 맞다면, 왜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와 "일간스포츠"같은 것을 비교하지 않고 영국신문을 드느냐, 하는 종류의 질문인듯 한데요....

    제 생각으로는 저 신문들로는 느낌이 아무래도 안나는데요;;; 조선일보 같은 신문들이 (물론 한겨레조차도 -_-) 기사를 쓰는 수준이 스포츠신문과 구별이 안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단 말이지요.

    쉬운 이해를 위한 예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별로 '적합한 예'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이택광 2009/04/29 23:52 # 삭제

    재미있는 댓글이군요. '라캉 냄새'라고 하셨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지젝이죠. 지젝스러운 분석은 외국의 영화평론에도 단골메뉴입니다. 게다가 팜므 파탈은 정신분석학적 용어도 아니랍니다. 영화평론에 라캉 냄새가 나는 것이야말로 한국적 상황이라고 했지만, 정신분석학에 대한 반감이 이렇게 거센 나라도 좀 드물죠.

    그리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박찬욱 감독은 분명히 정신분석학을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만들었어요. 정신분석학적인 영화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논의하는 게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군요.

    erte님 말씀처럼, 한국 신문은 적절한 예가 될 수 없어요. 이념을 떠나서 대체로 타블로이드스러운 구석이 많거든요. 또 기사의 수준에 따라 신문을 보기 보다 이념적 경향에 따라 신문을 선택하죠.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소위 대학에서 영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영국문화전공자'가 영국의 신문들에 담긴 문화적 함의를 좀 알려드린다고 해서 이곳을 찾는 방문객에게 손해갈 게 있나요? 돈 주고도 배우려는 마당에.
  • 연애편지 2009/04/29 22:49 # 삭제 답글

    오늘 환경스페셜에 택광님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 예전에 블로그에서 사진을 뵌적이 있었는데 사진보다 실물이 나으신듯 ㅎㅎ 그런데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글의 문체와는 많이 달라서 초큼 놀랐습니다.

    블로그에서는 차분하고, 냉소적인것 같은 관찰자적인 지식인의 모습인데 tv에서 본 모습은 다정다감하면서 다분히 소심한듯한 모습의 평범한 사람같아 보였습니다. 블로그에서 보다 tv에서 본 모습이 더 좋아보였습니다 ㅋㅋ

    오랜만에 댓글 남기고 갑니다. 가끔 지적인 모습보다는 현실의 택광님의 근황이 더 궁금해집니다. 요새 무척 바쁘신것 같으신데 건강 잘 챙기세요^^
  • 2009/04/29 23:5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09/04/30 00:35 #

    그 메일 주소는 제것이 아닙니다.
  • esall 2009/04/30 00:20 # 답글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에게도 어떤 '해답'을 주는, 그런 글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부적절한 예 2009/04/30 00:47 # 삭제 답글

    도대체 이 글에 왜 '80년대 배움의 질문으로 차고 넘쳤던 노동계급운동'과 '전태일'이 등장하는지 도통 모르겠군요. '문제는 글을 쉽게 쓰는 것이 아'닐 수 있지만, 글을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것일 수는 있지요.
  • Wizard King 2009/04/30 00:54 #

    이 말에서 '쉬운 글'과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 궁금하네요. 글이 쉽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저 자기 수준에 맞게 쉽게 써달라고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전태일 같은 사람처럼 배우려고 애쓰라는 간단한 이야기 같은데요.
  • jk 2009/04/30 01:55 # 삭제

    모르면 배워라는 이야기죠
  • 부정변증법 2009/04/30 01:51 # 답글

    그래도 최대한 쉽고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합니다. 글쓰기는 투쟁이고 거기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아주 맛깔스럽고 쉽게 그 새로운 개념들을 펼칠수 있는 글쓰기였습니다. 라캉인지 누군지 잘 기억 안나는데, 하여간 그 계통 사람들도 프로이트의 글쓰기에 경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댓글 2009/04/30 02:03 # 삭제 답글


    한국 신문이 적절한 예가 될 수 없다는 점은 잘 알겠습니다. 서구, 의 문화적 함의를 속속들이 모조리 이해하는 것이 이 시대 한국의 '교양'인 것도 잘 알겠습니다. 허나 '풍부한 한국적 함의'를 담은 다른 어떤 예를 찾아서 사용해 보면 어떨까요? (님이 기왕에 한국어로 글을 쓰고 계시고 얼마전 홍콩, 과 말레이시아, 에 대해 언급한 것도 기억하고 있기에 하는 소리입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논의해서 잘못되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반감도 아닙니다. 지젝스러운 분석에 대한 반감도 아닙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글 쓰는 방식에 대한 반감입니다.

    아울러 미국의 영화평론들에선 지젝스러운 분석이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님이 지칭하신 '외국'이 어느 나라의 어떤 영화 평론가 들인지 근거를 대주셨으면 좋겠군요.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소위 파푸아뉴기니에서 유기농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고 있는 김씨는 인터넷에 글을 쓸 때 돈 주고 파푸아뉴기니에서 유기농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파푸아뉴기니에서 통용되는 유기농 아스파라거스의 문화적 함의를 '비유'로 사용해 가면서 풍부하게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답니다.

  • 댓글 2009/05/01 17:18 # 삭제


    1. 궁금해서가 아니라 택광님께서, '지젝스러운 분석은 외국의 영화평론에도 단골메뉴입니다'라고 '외국에서도 이렇게 한다, 그러니 괜찮은 것이다.' 라는 가장 제가 싫어하는 이유, 를 드셨길래 받아친 것입니다.

    2. 말을 돌린 것이 아니라 그게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의 핵심, 입니다.

    3. 첫째 문장과 둘째 문장이 상호모순이군요. 둘째 문장은 비문이라 이해하기 어렵구요. 그리고, 누가 독자를 '지정'합니까?

    4.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강화하기 위한 제 나름대로의 비유, 였으나 님의 그런 반응을 보니 실패했던 것 같군요.
  • 댓글 2009/05/02 12:26 # 삭제

    저도 사족,입니다.

    1,4. 님이 무슨 말씀하려는지 잘 알겠습니다, 제가 단순히 '짜증나서' 이 논쟁을 시작한 건 아닙니다만.

    2,3. 저도 논쟁이 길어지는 와중에 저 스스로 "구조적 측면에 "요청"해야 할 것을 특정 개인에게 "요구"했다." 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국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건 개개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요.) 아무튼 문제의식, 이 전달 되었다면, (그것에 동의하든 안 하든)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윤형 2009/04/30 02:25 # 삭제 답글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솔직했으면 좋겠음.

    "나같은 무식한 놈도 이해할 수 있도록 써주면 좋겠음"이란 말은 성립하지 않음. 그 말 자체가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말임.

    "나처럼 잘난 놈도 이해하지 못할 글을 쓰는 너를 욕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렇구나...저는 님이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리고 전공영역이 다른데 뭐 어쩌라고. 의사 앞에서도 저렇게 말하나? ;
  • 댓글 2009/04/30 03:08 # 삭제


    의사가 환자에게 라틴어, 나 알파벳 약자, 로 되어 있는 전문 용어로 말을 한다면 의사 앞에서도 '저렇게' 말을 하겠지요.

  • 한윤형 2009/04/30 03:30 # 삭제

    의사는 환자에게 '지시'를 해야 하니까 당연히 그렇게는 말을 안 하죠. (그런데 비평이 명령을 위한 것인가요? 뭘 명령해야 하죠?) 하지만 의시가 쓰는 글(?)은보신 적이 있을 것 아님둥?

    물론 그게 좋다는 건 아님. 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쓰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으니까.

    내 말은, 그런 건 전공영역이 다르면 못 알아먹을 수도 있지 뭐가 그렇게 억울하느냐는 거임.
  • wsch 2009/04/30 06:54 # 삭제 답글

    부정변증법 : 우선 택광님의 글이 프로이트에 비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음. 그리고 이택광님이 님이 말한 목적으로만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 marishin 2009/04/30 10:37 # 삭제 답글

    문제는 여전히 글을 쉽게 쓰는 것입니다. 이는 명백한 것이며, 이런저런 논리로 이 명백한 사실을 피해가려고 해봐야 궤변이 되기 십상입니다. (굳이 한마디 덧붙이자면,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가 선이나 미러보다 글을 더 어렵게 쓰기 때문에 고급지인 것도 아니고, 선이나 미러는 글을 더 쉽게 쓰기 때문에 황색지인 것도 아닙니다. 이 맥락에서 나올 이야기가 아니죠.)

    그리고 저 독자는 “이택광 교수”에게 소통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명박'이나 '정부'한테만 소통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한국의 “지식인”이자 “대학 교수”이고 게다가 공적 논의의 장인 “신문”(인터넷 신문과 종이 신문 두루)에 글을 쓰는 “권력”을 향유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권층”이니, 이 “특권층”에게 소통의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전혀 부당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당사자인 “이택광 교수”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이는 저 독자의 요구 자체가 정당하냐 아니냐와 별개로 다룰,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위에 쓴 이야기는 또한,
    이번에 프레시안에 쓴 글이 “쓸데 없이” 어려웠는지 아니면 어려운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어차피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지, 또 저 독자가 최소한의 공부도 하지 않고 “날로 먹으려고” 했는지 여부와 전혀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별개로 따질 문제입니다.)

  • 이택광 2009/04/30 11:01 # 삭제

    나는 쉽게 써야할 글은 쉽게 씁니다. 내가 <시사인>이나 <경향신문>에 실리는 칼럼을 일부러 어렵게 쓴 적은 없어요. 그 정도를 어렵다고 불평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단어 선택까지도 모두 고려해서 쓰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이택광은 글을 어렵게 쓰는 현학취미에 빠졌다"고 매도하면 좀 곤란하죠.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시는지...

    그리고 신문에 대한 내 언급을 좀 과하게 해석하셨네요. <가디언>의 기사가 <선>의 기사보다 어려워서 고급지라는 말을 내가 했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취향의 문제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건데... 내가 말하는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의 개념에 대해 오해를 하신 듯. 나는 지금 그런 평가가 상대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 marishin 2009/04/30 11:58 # 삭제 답글

    ““이택광은 글을 어렵게 쓰는 현학취미에 빠졌다”고 매도하면”이라는 말을 들으니, 괜히 말을 꺼냈다 싶군요. 이만 신경 끊도록 하겠습니다. 이택광님도, 제 헛소리는 그냥 잊으시기를 부탁합니다.
  • 이택광 2009/04/30 13:22 # 삭제

    그 '매도'를 marishin님이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글을 쉽게 써야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글만 쓰는 것도 아닌데, "글은 쉽게 쓰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씀을 굳이 이 와중에 하실 필요는 없었죠.
  • 데학생 2009/04/30 14:11 # 삭제 답글

    평론이 단번에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모르는 개념에 대해서는 도서관에 갈 것도 없이 구글링 정도만 해봐도 개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글이었고, '쓸데없이' 어렵고 내용은 없는 글도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반응이 꽤나 격렬하네요.
    자신이 '무식하다고' 생각하면 굳이 화낼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무식이 생물학적 속성이 아닌 이상 공부하면 되는거죠. 아마도 이러한 반응의 이면에는 '나는 전혀 무식하지 않은데 너는 왜 무식하지 않은 나도 이해하지 못할 난해한 글을 써서 잘난척 하느냐' 정도의 심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배제에 대한 두려움 혹은 짜증이 작동하는 것 같은데, 이러한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다수에 의한 소수의 탄압의 차원이 아닌, 소수에 대한 다수의 반응이라는 것은 매우 흥미롭네요.
  • 박쥐 2009/04/30 14:57 # 삭제 답글

    교수님의 '박쥐' 평론은 저도 처음에는 잘 읽히지는 않았습니다만 참을성을 갖고 딱 한 번만 더 읽더라도 관련지식 없는 사람도 어느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인 것 같은데...적절하게 영화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고 말이죠. 제가 잘났다는 건 아니고 저는 보통 신문 사설 하나 읽는데만해도 10분이 걸릴 정도로 지독하게 '한글 독해력'이 떨어지는 인간입니다.(외국인 아니고요;) 이택광 교수님이 쓰신 글 읽으려면 서핑은 필수로 하고 한 두어번 읽어야 이해하는 편이죠. 근데 밑에 '재미있는 대한민국'에서 교수님께 메일을 보낸 자의 일화를 읽으면서 "왜 글 쓴 사람이 공들여 글을 쓰는 만큼 공들여 '읽는' 독자들이 드문 것일까? 그리고 잘 안읽히는걸 왜 글 쓴 사람 탓을 하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볼 때 참고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네요.

    교수님의 글이 어렵다며 비판하는 사람치고 '읽는 이'가 가지는 '소통의 의무'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의문나는 점이 있으면 블로그에 질문을 하면되고 때에 다라서 답변도 달아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을텐데 말이죠. 우리나라 사회에서 '교수'라는 '특권층'이 이렇게 블로그를 운영하며 익명의 다수들과 교류하는 것 자체가 이미 '소통의 의무'를 충실이 이행하고 계신거라고 생각합니다만...
  • 박쥐 2009/04/30 15:00 # 삭제 답글

    또. 난해함으로 따지자면 '더 리더'에 대한 평론도 박쥐 평론과 비슷했던 거 같았는데. 그 평론에 대한 '짜증'은 없었는지.. 궁금하네요. ㅎ
  • 한윤형 2009/05/01 06:45 # 삭제

    "박쥐"라서 그런 거죠. 칸에서 상을 받을지도 모르는 자랑스러운 박찬욱은...... "내꺼"인데 왜 이상한 지식인이 설치냐능?! 뭐 이런 느낌....ㅋㅋㅋㅋ
  • 2009/04/30 18: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타키온 2009/04/30 18:45 # 답글


    인터넷 덕분에 일반 대중은 세련되게 무식해지고 있어요.
    정보와 의견은 넘쳐나는데 올바른 견해를 취할 안목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놓고선 이제 '나도 안다'라고 생각하죠.
    뭐 이 정도면 잘난척 하는 지식인 따위, 다이 다이로 거꾸러트릴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2000년대 초까지, 인터넷 덕에 여러 분야에서 철옹성 같던 미신이나 도그마가 깨져나가는 걸 목격하며, 저는 이제 진리의 시대가 도래할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거야 말로 순진한 착각에 불과하더군요.


    그들은 섣부른 판단과 거기서 나오는 독선에 절어 있습니다.
    누가 감히 나를 가르치느냐.....이걸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당분간은 답이 없다고 봅니다. - 판단을 요구하는 사건이 터지면...98 대 2의 상황이 항상 재연되쟎습니까.


    전자 민주주의는 환상입니다. 오히려 매트릭스 환경만 제공하게 생겼습니다.
    반지성주의를 해체할 수 있는 건 초등학교 부터 시작되는 제대로 된 교육이겠지요. 인터넷은...책 읽고 사유하는 인간과 그렇지 않고 분수를 넘는 소통 도구만 얻은 인간의 숫자가 그대로 반영되는 공간일 뿐인 듯 합니다.



  • 이택광 2009/04/30 18:58 #

    푸코가 그런 문제를 일찍이 지적했죠. 한국은 이제야 포스트담론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군요. 계몽에 대한 재계몽전략이 절실한 시점이죠.
  • 타키온 2009/04/30 19:28 # 답글

    혹시 그 재계몽 전략에 대한 복안이 있으십니까?
    전 정말로 궁금합니다....황박 사건을 하도 지긋 지긋하게 겪어서요.
  • 이택광 2009/04/30 23:52 #

    그게 문화비평의 개입입니다. 사실 한두마디로 말하기는 좀 복잡한데요, 합의된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에 불일치를 들이미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좀 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 안다는 게 허위일 수 있다는 걸 끊임없이 폭로하는 방법밖에 별 뾰족한 수는 없겠죠.
  • 억겁 2009/05/01 01:56 # 삭제 답글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이택광 선생님께서 '전태일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독자에게 답장을 하셨다면, 그 독자가 선생님께 '전태일'이 되어주었을지도 모른다, 라구요. 선생님께서 받으신 그런 류의 편지를 쓰고도 남을 사람과 같이 살면서 늘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제게 이 포스트에서 보여지는 이야기들은 참 많이 차갑습니다..
  • erte 2009/05/01 02:11 # 삭제

    1, 나귀를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나귀에게 물을 먹일 수는 없습니다.

    2. 가득 찬 찻잔에는 아무리 좋은 차를 더 부어봐야 찻잔안에 담기지 않습니다.
  • 댓글 2009/05/01 12:17 # 삭제 답글

    이 글에 맨 처음 '비판적인' 댓글을 달았던 사람으로써 한 번 더 말하고자 합니다. 우선 택광님의 글을 꽤 오래 전 부터 흥미 롭게 꾸준히 읽어 왔다는 것을 밝힙니다. (아마, 문제 의식, 이나 택광님 특유의 '외부자'적인 시선이 맘에 들어서 일 겁니다.) '문제'의 '프레시안' 글을 읽어 보고 싶었던 건 님이 그 글을 쓰기 이전에 이 블로그에 적은 "박찬욱 감독은 (한국)관객에게 어렵고 비평가에게 쉬운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라는 구절이 흥미로워서 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프레시안'에 실린 글을 읽었구요. (프레시안을 애독한지는 블로그라는 매체가 대중화 되기 이전부터이니, 꽤 오래 되었습니다.) 안 읽혀서 그냥 넘겼습니다. 처음엔 윤형님의 반응 대로 내 세계가 아닌 가 보다, 하고 말았습니다. 그건 이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제가 다 읽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테면 "랑시에르, <미학적 무의식>" 와 같은 글 말입니다. 어차피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거든요. (만약 제가 더 알고 싶다면, 묻거나 찾아 보겠지요.)

    그리고 나서 이 블로그에서 택광님이 받은 '이메일'에 대해서 택광님이 두 번이나 포스팅을 하셨지요. 처음엔 좀 택광님이 좀 '짜증'이 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문제를 '반지성주의'로 보시면서 '정신분석학' 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하시는 걸 보면서 댓글, 을 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고픈 말은, 세 가지구요. 이 세 가지는 택광님 개인을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지금 이 블로그 포스팅에서 오가는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첫 째로는 그렇다면 지성인/지식인, 들이 쓰는 글에는 과연 '반지성주의'를 자극하는 요소는 없는가, 라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허지웅씨가 박쥐에 대해 쓰신 글에 달린 '로오나'라는 분이 단 댓글, 과 그 밑에 '어휴'라는 분이 단 댓글, 을 보시면 더 정확하게 전달이 될 것 같습니다. (허지웅씨가 쓴 글 자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http://ozzyz.egloos.com/4123442


    두 번째로는, '서구 사회'의 어떤 특수한 것이나 지식, 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보편 교양'으로 되는 것에 대한 생각 입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돈 있고 여유 있는 부르주아들이 교양을 쌓는 것에 대한 의무감이나 강박이 없어서 그런진 몰라도, '보편 교양'이라는 것이 척박하고 수준이 낮은 것에 대해선 논외로 하자구요. 그러면 대체 어떤 것이 '보편 교양'이 되어야 하는 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외로 하자구요.)

    '반지성주의'가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 것일 수도 있는, '디워 사태' 때를 돌이켜 보면, 제가 진중권씨가 출연한 100분 토론, 을 아주 속이 시원-하게 지켜 보다 불현듯 '데우스 엑스 마키나' 라는 '전문 용어'를 그 분이 언급했을 때의 느낌은 좀 쌩뚱함이었습니다. 속으로, '아니, 이 분이 어제 '그리스 비극' 교양 수업을 듣고 흥분해 있는 대학생도 아니고 왜 이러실까?' 라고 생각 했었거든요.

    택광님의 이 글에 한 해서 다시 말하자면, 이 글의 목적은 그 이메일을 통해서 발견한 뭔가 택광님이 문제시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지, 이 글 자체가 '영국 사회와 미디어'에 대한 글은 아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그 예는 (아마도 영국에서 문화 연구를 전공하신) 택광님에게는 매우 와 닿는 적절한 예가 될 수 있으나, '영국 사회와 미디어'에 대한 '교양'이 없는 사람에게는 읽히지 않는 열 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보자면, 만약 예컨데 미학자, 영국 문화 연구자, 라는 인증을 받지 못한 어떤 사람이 자기는 '보편 교양'으로 생각하던 어떤 것을 말했을 때 받게 되는 '반지성주의' 적인 태도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 군요.)


    마지막으로, '매체에 실리는 영화 평론'이라는 문제 자체에 대해서 인데요. 특히 '지젝스러운 분석'에 대해서는 예전에 김영진 평론가가 자세하게 견해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46251 저의 경우엔, 이 견해가 그냥 평론가 김영진의 견해, 라기 보다는 매우 적절하고 정확한 견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을 꽉 조여서 쓰진 못했지만, 말하자면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요소(?)가 '반지성주의'를 유발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입니다.
  • 이택광 2009/05/01 14:41 #

    반지성주의는 누군가 '유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호명하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일종의 세계관이라는 거죠. 지식인이 글을 어렵게 쓰든 쉽게 쓰든 반지성주의는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반지성주의는 '무식한' 대중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를 통해 유포되는 겁니다. 톨킨 같은 경우도 반지성주의적 경향의 작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프레시안에 실린 <박쥐>에 대한 평을 '지젝스러운 비평'의 단점을 가진 글이라고 주장하시려면 증거를 보여주는 게 타당하죠.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박찬욱 감독은 정신분석학적 문제의식을 전제하고 영화를 만들었어요. 정신분석학을 통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굳이 설명할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진 않군요.

    나는 <박쥐>평이 그렇게 잘 빠진 글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하고 싶은 말을 반에 반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의식과 윤리 문제를 파고 들어가기 위한 좀 더 개념적인 분석들이 뒷받침되어야하지만, 학술논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제했던 측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좀 더 지적 호기심이 많은 독자를 위해 곳곳에 실마리를 숨겨놓았죠. 그게 댓글님이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유발한다고 지적한 지젝적인 개념들입니다.

    하지만 잘 보면 아시겠지만, 굳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 부분을 빼고 읽어도 논지를 따라잡는데 별반 어려움이 없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배치를 해놓았습니다. 물론 그것도 어려우니 더 쉽게 써달라고 한다면 고려해볼만한 말이지만, 어려운 개념만을 늘어놓아서 어렵다는 평가는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나는 생소한 개념을 제시할 때도 "정신분석학에서"라고 전제를 깔아두었죠. 정신분석학에서 본다면 이렇다는 뜻이지, 그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밝혔어요. 내가 정신분석학적 지식으로 현학을 과시했다는 주장은 그래서 내 의도와 전혀 상관 없는 것입니다.
  • 댓글 2009/05/01 18:26 # 삭제


    전 어법에 맞는, 그리고 잘 읽히는, (그러나 통찰이 있어서 글과 개념을 되새김질 하게 되는) 글을 읽고 싶을 따름입니다. (아마 택광님의 글의 '내용'이 읽을 가치도 없다면 여기 와서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지도 않을 겁니다.)

    택광님이 위에 쓰신 글을 다시 예로 들어, 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주체를 호명하는 이데올로기" 라는 식의 표현은 이제 좀 바뀌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입니다. 택광님께서는 영국에서 문화 연구를 정식으로 공부하셨다고 알고 있으니, 라캉이나 지젝의 '번역' 서적을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구 보다도 그러한 개념들을 읽기 좋은 한국어로 적합하게 표현할 능력이 있는 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 입니다. (밑에 보니 '라캉 카페'라는 것도 여실 계획이고, 라캉의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이려시는 것 같아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톨킨 같은 경우도 반지성주의적 경향의 작가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문장도 역시 읽는 이가 [반지의 제왕]을 읽지 않았거나 영국 사회에서 톨킨, 이 차지하는 위치, 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것 역시 우리 나라 사회에서는 '반지성주의'를 유포하는 '지식인'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요.)

    이상입니다.
  • 이택광 2009/05/01 19:32 # 삭제

    그런 글은 댓글님이 쓰시면 되겠군요.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채 하는 건지, 답답하신 분이군요. 겉으로는 합리적인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내가 몇 번이고 독자층에 따라 표현의 수위를 조절한다고 말해놨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시는군요. 그리고 "주체를 호명하는 이데올로기"나 "톨킨"은 댓글님 정도면 알아들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달아놓은 겁니다. 남의 표현까지 간섭하는 건 글쓰는 이의 쾌락을 통제하려는 발상이기도 합니다. 김영민의 글에 대한 강유원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 까닭이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영진의 주장도 일리는 있지만, 개념을 함부로 갖다 쓰기 때문에 설익은 비평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죠. 김영진 자신도 정성일의 예를 들면서 그렇게 현학적인 표현을 뒷받침할 수 있는 호소력과 유머가 있으면 괜찮다고 분명히 밝혀놓았으니까요.
  • 한윤형 2009/05/01 20:13 # 삭제

    1. '주체를 호명하는 이데올로기' 정도의 표현을 문제삼는다면 그것 자체로 반지성주의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주체, 호명, 이데올로기 등을 풀어서 쉽게 설명할 수는 있겠죠. 개념을 설명하는 글에서요. 하지만 이것 자체를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을까요? 이렇게 되면 이건 '쉽게 쓰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어'에 대한 고민이 되어 버리는데요.

    번역 중에서 좀더 쉬운 말로 바꿀 수 있는 것들도 있구요. 일본식 한자어 번역이 아니라 한국어 번역어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 문구의 경우 특별히 이해가 어려운 것 같지도 않고 어떻게 손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네요.


    2. 톨킨 정도면 준수한 편이죠. 반지의 제왕은 영화 덕분에 누구나 다 봤습니다. 그래서 저도 http://yhhan.tistory.com/473 이런 글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3. 예시 자체가 서구의 교양이라는 거, 고민되는 지점이긴 합니다. 가령 라캉 설명하면서 안티고네 얘기를 하면, 사드 얘기를 하면, 우리는 그 문학작품들을 안 봤단 말이죠. 그래서 저도 다른 예시들을 들어야 한다고 많이 고민을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한국인들은 누구나 아는 문학작품의 예시'라는 게 쉽지는 않더군요. 저는 소오강호의 영호충을 라캉적 주체로 풀어서 얘기해볼 까...따위의 기획도 해봤습니다만, 이것 참 예상독자의 숫자가 견적이 안 나오더군요. ^^;;;


    이런 그 자체로 힘든 작업을 남에게 과제로 제시하면서 이런 노력이 부족하니 문제라고 말하는 건...뭐 할 수는 있는 일이겠지만, 이 맥락에서 그러는 건 물타기라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 뭐가 그리 불만이신지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 댓글 2009/05/01 21:09 # 삭제


    제가 애초에 말귀를 못 알아 먹었던 건 독자층에 따라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는 일이 본질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 사회 처럼 '보편 교양'의 범위가 각각의 지식인들이 어느 나라에서 유학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나라에서는 그 '독자층에 따른 표현의 수위 조절' 자체도 힘들다고 봅니다. 비판이나 비꼬는게 아니라 그냥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아가, 어떤 독자 층이건 간에 읽기 힘든(개념의 어려움이 아니라)글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구요. 이를 테면 이 곳에 댓글 다는 분 들에도 "저도 사실 그(프레시안) 글을 읽기는 힘들었지만,,," 이라고 댓글을 다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좀 주목할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강유원씨와 김영민씨 글 읽어 보았는데 김영민씨의 글이 '공공'의 매체에 실리는 '공공'의 언어, 였기 때문에 강유원씨의 비판에 동의합니다. 그게 '글쓰는 이의 쾌락을 통제하려는 발상' 이라고 까지는 생각진 않습니다.

    하지만, 택광님 '개인' 매체인 이 곳에서, 제가 위의 댓글에서 택광님의 표현 자체를 다시 한 번 예로 들며 언급하거나, 택광님에게 일종의 개인적 요구를 한 건 사과 드립니다. 좀 선을 넘은 것 같습니다.

    뭐,,, 평소 품고 있던 문제 의식을 여기서 좀 '오버'해서 늘어 놓은 것 같습니다.윤형님 말마따나 그 자체로 힘든 작업인데 말입니다.
  • 한윤형 2009/05/01 12:47 # 삭제 답글

    댓글 님께//


    1. 지식인들의 수사에는 반지성주의적 수사가 없나?

    -> 반지성주의가 한국의 '대세'라면, 당연히 지식인들에게도 반지성주의 수사가 있겠죠. 특히 어떤 지식인이 '쿨'한 척 하면서 대중 앞에서 다른 지식인들을 비판할 때 그런 모습이 많이 발견되는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지식인들의 상호비판은 매우 '좋은 일'이고, 사실 지식인 비판을 하다보면 반지성주의 수사들이 섞이기가 쉬운 것은 사실이죠. 논쟁이 격화되면 인신공격이 안 나오는 경우가 드물듯이. 하지만 그 정도나 양상의 문제가 있겠죠.)

    이런 것들은 당연히 비판될 수 있겠죠. 하지만 지식인들의 반지성주의 수사가 있다고 하여,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보는 것인 불편하다? 이건 좀 '발끈 러시'인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막혔습니다.


    2. 서구인의 교양을 우리가 모두 알아야 하나?

    -> 문제의식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디워 때의 진중권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용어를 썩 적절한 방식으로 썼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미학론을 들이미는 건 영상언어에 무지한 것이다....라는 류의 빅뉴스 패거리들이 맞다는 건 아니구요. (걔들은 그냥 무식한 사기꾼이죠.)

    1) 그 단어를 안 쓸 수도 있었다는 것.

    2) 사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디워 서사 문제의 본질적인 측면이 아니라는 것. (<식신>이나 <A.I>처럼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끝나는 작품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들의 서사구조가 <디 워>급인 것은 아니죠.)

    에서 진중권의 그 순간의 언급을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사실과 지금 이 문제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3. 지젝주의적 영화평론에 대한 비판적 관점

    -> 저도 지젝주의적 영화평론들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

    1) 영화평론가들이 유해하는 담론을 막 활용하는 터라 그 수준이 대학원생 정도인 경우가 많고,

    2) 지젝이 보여주는 평론의 정치성이 거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젝은 영화평론과 정치평론 사이를 날라다녔죠. 하지만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은 자기 장르에 갇혀서...)

    제가 이택광 쌤 글을 좋아하는 건 1),2)에 해당하지 않는 글을 쓰기 때문이죠. 1)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전공자라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이겠고, 2)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윤리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래서 이 비판도 이 사실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2.와 3.을 이어서 생각해보면, 댓글 님이 지식인에게 가지고 있는 모종의 비판의식이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제가 보기엔 그 관점을 굳이 '반지성주의'라고 불러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식인에게 고유한 허위의식을 이택광에게서 발견해 냈고, 그것을 비판할 생각이라면, 그냥 그렇게 비판하면 되지요. 그건 비록 비판받을 만하다 하더라도, 반지성주의와는 반대 방향에 있는 악덕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댓글 님이 굳이 '반지성주의'라는 수사를 받아치고픈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발끈러시를 하신 것일까요?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는데, 한국 사회의 '반지성주의'의 문제는 (다른 사회에도 반지성주의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비판받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민족주의 - 민중주의 - 반지성주의가 이어지면서 지식인이든 정치인이든 누구든 건드려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인데, 그래서 사람들은 평소의 이택광의 어려운 평론이 아니라 자신들이 즐길 수 있고 칸에서 국위선양을 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박쥐>에 대한 영화평론에서 발끈한 것이겠죠. 댓글 님의 댓글은 박쥐를 보위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영역 자체를 은폐하려고 하는 무의식의 소산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 댓글 2009/05/01 13:26 # 삭제 답글

    윤형 님께//


    1. (스타 리그 용어를 잘 몰라서 '발끈 러시'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지식인들의 반지성주의 수사가 있다고 하여,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보는 것이 불편하다." 아마도 그 비판하는 지식인 당사자인, 인 택광님에게서 그런 반지성주의를 유발하는 '요소'를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 정밀한 윤형 님의 분석 1), 2) 다 동의합니다.

    그 사실을 가져다 쓴 것은 제가 위에서 이야기 한 그 '요소'를 뒷받침 하고 싶어서 였기 때문이었습니다.


    3. 지젝주의적 영화 평론을 썩 좋아하지 않은 이유 1), 2) 잘 읽었습니다.

    택광님의 글은 저도 (골라가며) 즐겨 읽습니다. 이유는 윗 댓글에서 밝힌 바 있구요.

    궁금한 건 윤형님은 (본인이 안 읽히셨다고 하셨죠), 택광님이 올리신 지젝주의적 영화 평론 '프레시안' 글에 대한 언급은 안 하시고 있군요.

    그래서 택광님의 '프레시안' 글이 윤형님이 말하는 1), 2) 에 해당하는지 않는지 알 수가 없군요.


    2와 3을 이어서 생각해보면.

    이후에 쓰신 글 들 중에서 첫째 문단은 동의, 하고요. 둘째 문단은 무슨 말을 하고 있으신지 이해, 가 갑니다. 그런데 세 번째 문단, "그러니까..." 이후에는 약간 섣부른 분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지난 번 '디워 사태' 때 학을 띨 만큼 띠었던 터라, 그 '영역' 자체를 은폐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요.


    끝으로, (이건 논외인지라)

    제가 [박쥐]를 보지 못했고, 언제 보게 될른지 모르지만, 모르긴 몰라도 [박쥐]는 [디워]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에 놓여 있는 텍스트, 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대중들이)' 지난 번 [디워] 때 처럼 [박쥐]에게서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며 지난 번 처럼 거의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는 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 한윤형 2009/05/01 13:41 # 삭제

    예. 대략 서로의 생각을 다 확인한 것 같습니다.


    "제가 [박쥐]를 보지 못했고, 언제 보게 될른지 모르지만, 모르긴 몰라도 [박쥐]는 [디워]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에 놓여 있는 텍스트, 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대중들이)' 지난 번 [디워] 때 처럼 [박쥐]에게서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며 지난 번 처럼 거의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는 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 말씀에 동의합니다. 추측해보자면 택광쌤에게 메일 보내신 분도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이 아닐까 합니다. --;;
  • 쟁가 2009/05/01 17:03 # 삭제 답글

    잘 나가다 약간 의아하게 봉합되는 느낌이네요.^^; 근데 댓글님이 대강 수긍해 버려서 제가 말하기가 더 뻘쭘해지는데, 댓글님이 애초에 말한 것, '이택광 선생님의 글에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자극하는 요소가 과연 없나'라는 것과 한윤형님이 말한 '지식인의 수사에는 반지성주의적 수사가 없나'라는 건 논점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택광 선생님이 정확히 지적했듯 반지성주의는 주체를 호명하는 이데올로기이고 일종의 세계관입니다만, 특정한 순간에 대중의 반지성주의가 이례적으로 '격발'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디워 사태가 그랬지요. 디워는 좀 다른데, 한국대중에게 디워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 '기술'이라 인식되면서 처음에 관심을 받았다면, 박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 '예술'이라 인식되어 관심을 받습니다. 굳이 가르자면 '기술입국' 판타지냐 '문화입국' 판타지냐의 차이랄까...

    저는 댓글님이 언급한 "세 가지 요소"가 반지성주의를 '유발'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만연한 반지성주의가 구체적으로 '표면화'되는 조건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고 봐요. 이번 경우에는 '박찬욱'이라는 세계적 브랜드 혹은 아이콘이 있고, 대중에게 다소 난해해보일 수 있는 '박쥐'라는 텍스트가 있고, 그것을 제대로 '소비'해낼 수 있는지 조바심내는 대중이 있었지요. 이택광 선생님의 비평이 반지성주의의 원인이라 말하는 건 분명 오류이지만, 전문가의 비평적 개입(이것은 또한 비상업성, '업계'의 시선이 아닌 무엇입니다)이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반지성주의를 폭발시키는 기제로 작용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무엇을 소비할지 콕 집어주긴커녕 피곤하게시리 무엇을 사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으니 말이죠.
  • 이택광 2009/05/01 19:58 #

    명쾌한 지적입니다. 특히 특정한 조건에서 비상업적이고 업계의 시선이 아닌, 전문가의 비평적 개입이 반지성주의를 폭발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인상적이네요.
  • 블랙 스콜라 2009/05/04 17:47 # 삭제 답글

    사실 제 생각에는 '영화를 충분히 소비한 후 영화와 자신의 이해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매뉴얼로써, 즉 고급 기능을 이해하고 싶은 심정을 충족하는 측면에서' 예의 평론에 접근했다면 적절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시작점인 '메일' 은 '영화를 관람하기 전 카탈로그를 보는 기분으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글' 을 택해서가 아닐까 어설픈 추측을 해봅니다.

    트랙백을 위한 글을 며칠째 붙잡고 있다가 완전히 맛이 갔습니다. 아직은 '읽어야지' '쓸 때' 가 아니라는 깊은 반성만 거듭 했습니다.

    제게 비슷한 상념을 던져준, 그리고 언급하신 '반지성주의' 에 얽혀있을 수 있는 대화를 엮은 트랙백으로 대체하여 남겨봅니다.

    왠지 모르게 죄송합니다-_-; 행복한 일만 있으시길.



  • ellouin 2009/05/13 02:22 # 답글

    생각이 나는게 좀 있어서 트랙백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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