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환의 촛불론 책읽기

조정환 선생의 <미네르바의 촛불>을 읽었다. 단일 저자가 책 한권 분량으로 촛불을 논했다는 점에서 일단 박수를 보낼 만했지만, 전체적으로 읽어본 소감은 좀 실망스러웠다. 정교한 분석이라기보다, 그냥 정치팸플릿을 읽는 느낌이랄까. 누구는 거대한 농담을 듣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런 면도 다분했다. 특히 앞 부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에 대한 비판은 함량 미달이라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저런 문제를 모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쳐도, 결국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자율주의 최고'라는 말로 결론이 나는 것 같아서 아스트랄했다.

정녕 촛불은 자율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위대한 혁명적 봉기였단 말인가? 그 혁명적 봉기가 2005년 프랑스 폭동보다 못한 타격을 '적들'에게 입히고 끝난 건 그럼 도대체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촛불은 패배했지만, 존재론적 차원에서 촛불이 승리했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소리이다. 그 존재론적 차원의 변화라는 것은 이미 2008년 촛불 이전에 인터넷에서, 비정규직 투쟁현장에서, 시민운동에서 실현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정환 선생이 촛불과 존재론적 차원의 변화를 언급할 생각이었으면 2002년 촛불로 눈길을 돌렸어야했을 것이다. 2008년 촛불을 계기로 존재론적 차원에서 변화가 일어났다는 건 '마음씨 좋은 낙관주의'이긴 하지만, 증명이 필요한 문제이다. 나 같았으면,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를 비판하기보다, 안병직의 책을 더 주도면밀하게 분석했을 것 같다. 그게 오히려 전략적으로 옳은 일이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는 단일 저자의 단독저서가 아니다. 참여한 이들에 따라서 촛불에 대한 입장 차가 조금씩 있다는 것이다. 나는 촛불을 정상국가에 대한 요청으로 읽었지만, 백승욱 선생이나 다른 필자는 아나키즘적인 반정치로 보았다. 그런데 이런 시각 차이를 하나로 놓고 비판을 하니 비판 자체가 우스꽝스러워진다. 이건 의도적 오독이라기보다, 자율주의적 관점이라는 '이론적 전제'를 충족시키기 위한 끼워맞추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자율주의로 보면 촛불은 위대한데 그렇지 않다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논리가 기득권의 촛불론과 유사하다, 그래서 잘못되었다, 이런 삼단논법인데, 여기에서 중요한 건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의 주장이 기득권의 촛불론과 유사하다는 그 '판단'이 자율주의에서 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독자로서 '자율주의로 촛불을 평가해야할 까닭'을 궁금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논증은 없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정동과 지성의 결합체인 다중지성과 그것의 운동은 운동의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탈근대적 운동의 토대이고 조건"이라는 자율주의적 교리의 반복은 정작 "그렇다면 굳이 2008년 촛불에서 어떤 특이한 존재론적 차원의 변화가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감격스럽게 묘사한 다음과 같은 상황들도 그렇다.

"촛불봉기에서는 거대한 연대와 공통화의 힘이 솟구쳐 나왔다. 대책회의를 위한 모금은 물론이고 부상자를 위한 모금운동이 빠르게 가동되었다. 시위대를 위한 물, 김밥, 우의, 빵, 라면, 커피를 제공하려는 자발적 기부운동이 놀랄 만큼 강렬하게 작동했다."

이런 특징은 2008년 촛불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또한 이런 논리로 보자면,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노란 바람'도 '다중의 봉기'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연대와 공통화의 힘'으로 치자면 2008년이 아니라 이미 2002년에 조짐들을 보였던 셈이다. 그런데 그 '봉기'가 노무현 지지라는 '제도화'로 자연스럽게 안착하고, 나중에 부분적이긴 하지만 이명박 지지로 전환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론 이 현상을 설명할 자율주의적 개념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어쨌든 자율주의적인 관점에서 이 현상을 설명하면 할수록 2008년 촛불을 가장 자율주의적 관점에 들어맞는 '봉기'로 규정할 이유는 점점 더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짧은 리뷰일 뿐이기 때문에, 촛불에 대한 자율주의적 분석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지만, 다음과 같은 오독은 좀 지적을 해야겠다. 조정환 선생은 백승욱 선생의 글을 인용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괴담의 배경에는 '유사 과학'이 있다. 그것은 진지한 이론적 노력을 대체하는, 그렇지만 외형상 매우 체계적인 지식의 형태를 갖춘 어떤 논리들을 말하는데, 그 지식은 하룻밤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을 지식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단순함을 갖추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전문용어들'이 배치되어야 한다. 촛불 집회는 광우병 자체와 관련된 매우 세부적인 지식들이 전문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며, 이를 습득한 이른바 '대중지성'의 등장이라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대중지성'이 정세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대체하게 된다. 광우병, 신자유주의, 정치, 이 모든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 문단의 내용을 조정환 선생은, "결국 괴담의 진원지는 '대중지성론'이라는 유사과학이었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여, "이 유사과학의 위험은 대중과 이론가 사이, 괴담과 비판 사이의 고유한 구별을 사라지게 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건 명백한 오독이다. 조정환 선생의 주장은 백승욱 선생의 주장을 '반지성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자율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슬쩍 바꿔치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백승욱 선생의 비판은 푸코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조정환 선생의 입장에서 본다면, 백승욱 선생이 지적하는 촛불의 양상을 '공통적인 것'의 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판단하기에 2008년 촛불이 일정하게 반지성주의적 경향을 드러내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여하튼,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들이 조금 더 일어났으면 한다. 그것이 논쟁이든 토론이든, 자꾸 촛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정환 선생의 말 대로 "영혼의 촛불을 가시화하고 사회화하는 행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사족: 조정환 선생은 책 머리에 "이 사회의 정치적 엘리뜨들이나 지적 엘리뜨들이 촛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정치적 엘리뜨'나 '지적 엘리뜨'는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설마,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를 쓴 저자들도 여기에 포함하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다중의 출현을 주장하시는 분이 엘리트와 대중을 나누는 공리계적 발상에 너무도 쉽게 동의하는 꼴이라서 말이다. 과문해서 그런지 나는 외국에서 발간한 어떤 '정치적 책자'에서도 이런 말을 발견하지 못했다. 비슷한 정치적 지향을 가진 동료들을 '엘리트' 운운하는 건 전략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적절하게 비판하려고 했다면, '엘리트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적도 알튀세르에 대한 비판에서 이미 제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알기로 한국에서 더 이상 알튀세르주의를 추종하는 '이론가'는 없다. 조정환 선생은 자율주의를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건 '낡은 것'이다. 한국은 그 이론들보다 훨씬 더 미래로 나아온 사회이다. 게다가 한국처럼 기존의 이론으로 포착할 수 없는 복잡성을 무더기로 보유한 나라에서 '이론적 관점'으로 현실을 분석하는 건 섬세한 주의를 요하는 작업이라는 걸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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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leopord 2009/05/05 20:59 # 답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와 <미네르바의 촛불>을 둘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의 리뷰 감상은 (리뷰의 맥락을 그대로 적용시킬) 위험이 있긴 하지만, 촛불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는 작업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논지에 동감합니다.
  • 현진 2009/05/05 23:19 # 삭제 답글

    확실히 조정환 선생은 지나친 낙관론에 빠져있습니다.
    네그리에 푹 빠지시더니, 이젠 '네그리의 그늘'에 영원히
    갇혀있는 것 같아요.
  • 이택광 2009/05/06 00:38 #

    사실 책을 읽어보면, 네그리라기보다 헤겔의 냄새가 더 많이 납니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에서 뛰어라"는 헤겔의 경구나 미네르바 얘기나, 여하튼 정신과 물질의 합일을 이렇게 훌륭하게 설파하기도 힘들 듯.
  • duripop 2009/05/06 10:48 # 삭제

    한국자율주의자들이 많이들 그런가요? 냠...
  • 현진 2009/05/06 20:33 # 삭제

    근데 조정환 선생은 헤겔의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하면 엄청 싫어하실 것 같네요. 맑스에게서 헤겔적인 부분을 지워야한다고 하는 입장에서는 알튀세리언들보다 훨씬 더한 것 같아서요.
  • 이택광 2009/05/07 10:33 # 삭제

    조정환 선생이 헤겔주의자라기보다, 어떤 '유토피아적인 차원'을 촛불을 통해 제시하려다보니 헤겔적 수사학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어요.
  • 부정변증법 2009/05/07 10:50 #

    로두스 뛰어라는 헤겔의 경구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경구입니다. 헤겔은 그 다음에 한 마디를 덧붙였죠. 장미있다 춤춰라였던 것 같은데...
  • 이택광 2009/05/07 11:15 #

    부정변증법/ 그리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걸 저 의미로 유행시킨 건 헤겔이죠. 법철학 서문에서.
  • 바람과나무 2009/05/06 06:33 # 삭제 답글

    언젠부턴가 여기선 본문만큼 댓글이 재미있어지더군요
    뭔가 더 발전시켜봐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조정환 2009/05/07 06:31 # 삭제 답글

    이택광 선생님, 첫 문장이 "조정환 선생의 <미네르바의 촛불>을 읽었다."인데, 정말 책을 "읽은" 것인가요? 나의 생각과 접속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책을 (혹은 글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할까요? ...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적절한 자리인 것 같지는 않고 "촛불에 대한 자율주의적 분석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기다린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리뷰가 올랐다는 (다지원의) 게시물을 읽고 왔다가 몇 자 남깁니다. 늘 건필하기 바랍니다. 이만 총총...조정환.
  • 이택광 2009/05/07 10:12 # 삭제

    조정환 선생님의 생각과 '접속'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읽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들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공감을 했습니다만, 이건 말 그대로 블로그에 올리는 짧은 리뷰라서 제 입장에서 문제시되는 부분만 지적한 것입니다.
  • 조정환 2009/05/07 07:09 # 삭제 답글

    이곳에 등장한 여러 이름들과 관련해서. 나는 헤겔과 루카치를 대략 8년, 알뛰세를 2년, 네그리를 지금까지 15년째, 그리고 맑스를 30년째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들을 "이해했다"고 과거형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습니다. 읽을 때마다 다시 새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이름들이 농담처럼, 사물처럼, 상점의 상품들처럼 취급될 때에 내가 먼저 느끼는 것은 분노입니다. 피와 땀과 눈물과 환희를 섞지 않고서 촛불을 논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듯이 말입니다.
  • 이택광 2009/05/07 10:21 # 삭제

    조선생님의 삶과 저 이론가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이들은 분명히 '이론가들'이고 그래서 오류나 한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어서 쓸모가 없는 게 아니라, 그 오류와 한계에서 새로운 사유를 태어나게 하는 것이 이론가를 '읽는' 행위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론을 읽는 것은 '과거형'이지만, 이론의 한계를 사유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론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이고, 그것이 이론을 읽는 목적이라고 저는 생각할 뿐입니다. 조정환 선생님이 '상점의 상품들처럼' 저 이론들이 취급당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듯이, 저 또한 그렇습니다만, 이론을 상품화의 그물망에서 구해낼 수 있는 것도 끊임없이 그것의 목적을 실천적 문제 속에서 재정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이해'의 문제라기보다 '사유'의 문제겠죠. 세상 그 무엇도 '이해했다'는 과거형으로 끝낼 수 있는 것들은 없지 않겠습니까. 일단 화두를 조정환 선생님이 던지셨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차근 차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웃기네 2009/05/13 12:44 # 삭제 답글

    촛불집회,,삼보일배..삭발...모든문제를 데모와 감정적 정으로 표현하는거 같다,ㅡ 그들의 주장이 옳고 그른것을 떠나서 거리에서 그런 행동은 잘못된것이다,ㅡ그리고 그런 행동은 아주 위험해서..다른 어떤 불순한 단체들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실제로,,오느단체는 기고만장해서 청와대에게 고한다" 라고 했을까 불순한 소수의 세력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선동되기 쉬운데,,바로 이런 우려가 위험한것이다,,정치나 어떤 요구는 절차와 국회.다른 정당한 방범으로 요구하고 표현해야지,,자꾸 순수 순수 그러는데..아직도 대다수의 바보같은 국민들이 많은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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