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에 있을 인디포럼 발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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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무엇이었는가? 이것은 촛불에서 새로운 것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여기에 대해 숙고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촛불은 합의제에 기초한 부르주아 정당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발생했다.
2. 촛불은 87년 체제를 유지해온 ‘운동권’의 종언을 의미했다.
3. 촛불은 이중적인 중간계급의 욕망을 표현했다.
4. 촛불은 국가와 조우하는 것을 회피하면서 법의 지배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5. 촛불은 불평등을 인준한 평등이었다.
1. 촛불은 합의제에 기초한 부르주아 정당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발생했다.
촛불의 발생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한 것이라는 명제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촛불이 요구한 것은 기본적으로 ‘소통’이었다. 그러나 이 소통에 대한 요구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촛불은 ‘부분집합’을 셈하고 관리하고 정리하면서 재현하는 국가에게 개별자들 모두를 셈해줄 것을 요청했다. 확실히 이것은 소통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가는 언제나 사회와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국에서 이 분리의 양상은 특이하다. ‘시민사회’로부터 도래한 부르주아가 안착한 서구의 ‘국가’와 다르게, 한국의 부르주아는 이 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의 경우, 이 시민사회는 중간계급의 ‘운동’으로 등장했고, 따라서 아직도 국가에 적절하게 진입하지 못했다. 이 중간계급의 시민사회가 국가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노무현 정부였지만, 이명박 정부의 집권으로 이 시민사회의 국가화는 다시 보류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위기는 ‘언제나’ 이 때문에 발생한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주장을 차용한다면, 국가는 ‘상황상태’(l'état de la situation)의 사회역사적 양상이다. 상황이 얼어붙은 것이 상황상태이다. 상황에서 발생한 공백(공집합)을 고정시키는 것, 여기에서 상황상태가 발생한다. 이런 맥락에서 시민사회(운동)가 상황이라면, 국가는 상황상태이다. 국가는 원소, 다시 말해서 구체적인 무한성의 체현자인 개인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지위나 자질로 규정된 개인을 상대한다. 이렇게 국가는 항상 부분의 특성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집합’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국민’이라는 일자(l'Un)로 환원된 무한성으로 국가에서 재현된다. 이 재현에서 개인은 국민으로 빨려 들어가서 사라진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에 개인은 없는 것이다. 있다면 오직 특정집단, 다시 말해서 부분집합으로 국가와 마주하는 ‘국민’ 또는 ‘시민’이라는 특정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특정한 부분집합은 항상 공집합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마치 1이라는 숫자가 1+0을 의미하듯이 말이다.
국가는 이렇게 부분집합으로 개인들을 재현하면서, 사회라는 기원적 상황에 속해 있는 다수들의 ‘안정’을 보장하고 ‘일자’의 수립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은 흡사 집합을 구성하는 {1,2,3,4,...}라는 특정한 부분집합만을 우리가 인지하고 그 집합이 포함하고 있는 공집합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공백은 항상 그 집합 속에 존재한다. 이 공백은 곧 상황상태를 발생시킨 기원적 상황의 흔적이다. 국가라는 상황상태가 흔들릴 때, ‘국민’은 ‘시민’으로 돌아간다. 평소에 국가의 기능은 관리이다. 지금 사회가 부르주아 사회인 까닭은 이 관리로 인해 사회적 일체성과 일자의 작용을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리를 통해 중간계급은 부르주아의 욕망을 갖는다. 그러나 이 일체성이 흔들릴 때, 다시 말해서 공백이 다시 방황하기 시작할 때, 국가는 강제를 통해 상황과 상황상태를 분리하려고 한다. 국가는 흔들리는 일자를 최초의 상황에서 분리해서 고정시키려고 하는데 이것이 강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는 ‘정치’라고 보기 어렵다. 역사적 공산주의의 오류는 국가권력의 장악을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구조화의 필연성을 체현하고 있는 재현의 재구조화일 뿐이다. 따라서 국가는 누군가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객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단순하게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관리하는 장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의 집단적 통일성을 보장해주는 장치이다. 국가의 목적은 서로 다른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국가는 새로운 질서, 또는 주체의 출현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국가는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관리하는 기능과 새로운 질서를 강제하는 기능을 동시에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촛불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위기를 통해 출현했다”는 명제는 이 국가에게 구성원들이 자신의 공백을 셈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뜻이다. 이 공백은 안정적 삶을 위한 위협이고 일자의 작용을 무화시키는 방황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주장은 인민권력을 표현하는 말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 주어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에 있다. 이 국가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가 아닌 국가 대한민국에게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를 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촛불이었다.
2. 촛불은 87년 체제를 유지해온 ‘운동권’의 종언을 의미했다.
촛불은 과거에 정치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 정치의 모습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소울드레서’나 ‘쌍코’처럼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던 20대 여성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것이나, 연예인 팬클럽을 주축으로 동질감을 형성한 10대 소녀들이 청계천으로 모여든 것은 기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에 대해 이른바 ‘운동권’은 뚜렷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촛불은 보수진영 못지않게 진보진영에도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촛불이 한창일 무렵, 인권운동가 미류는 <한겨레21>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락치라는 말이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만드는 키워드가 된 거죠. 프락치가 엉뚱한 곳으로 사람들을 데려가서 연행된다는 얘기가 있으니까요. 저도 얼마 전 행진을 하다가 길에서 ‘민증’(주민등록증)을 까서 실명을 확인하자는 분들을 만나서 당황했죠. 서로를 믿으려면 어쩔 수 없다, 이런 분위기였어요. 거리로 함께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전의경은 민증을 반납해서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까 구분된다는 얘기였어요.
분명히 촛불은 기존의 운동권에게 낯선 풍경이었다. 지도부가 시위대를 주도하거나 조직할 수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더 나아가서 메가폰을 잡고 ‘운동권스러운’ 분위기만 연출해도 시위대에서 추방당하는 상황은 황당하다는 말밖에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처음에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촛불문화제가 개최되고 난 뒤, 이 행사를 처음으로 기획한 이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깨닫고 이른바 운동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운동권이 촛불에 개입해서 시도한 것은 전형적인 운동권식 행사진행 방식이었다. 메가폰을 들고 행사 진행 순서와 투쟁가를 가르쳐주는 것이 이른바 운동권의 ‘개입’이었는데, 이런 ‘도움’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운동권은 여전히 촛불을 ‘낡은’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었고, ‘지도’와 ‘조직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어떻게 그것을 촛불에서 실현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어떤 이념과 배후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건이 바로 촛불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촛불은 이념적인 구호보다 ‘쾌락’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즐거운 광장’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명박 정부의 집권 초기에 발생한 촛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낯선 정치성이다. 소울드레서나 쌍코, 그리고 연이말(연예인!? 이제 그들을 말한다)이라는 비정치적인 카페회원들이 촛불을 들었던 까닭은 ‘분노’ 때문이었다. 이 분노는 ‘소통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정권’에 대한 것이었다. 소통을 거부하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에서 이명박 정부는 부도덕했다. 촛불의 가치판단은 이렇게 권위와 관련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탈권위주의적인 동기부여로 인해서 촛불은 운동권의 지도마저 권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하겠다.
3. 촛불은 이중적인 중간계급의 욕망을 표현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중간계급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완전하게 신자유주의를 진보의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인 집단이다. 부르주아가 시민사회라는 상황을 국가라는 상황상태로 안착시키는 과정을 거친 적이 없었던 한국의 특수성은 중간계급에게 정치적 역동성과 혁명성을 부여했다. 물론 여기에서 중간계급은 중산층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에서 바라보아야하는 이데올로기적 범주이다. 태생적 신분이나 자산의 총량을 기준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계급의식을 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매트릭스로서 ‘중간계급’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중간계급은 이데올로기적인 주체이지 존재론적인 처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중간계급은 한국 사회에서 부르주아도 프롤레타리아도 아닌,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고 의식하는 이데올로기적 주체의 효과이다. 문제는 이 주체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사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들을 촛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쾌락의 평등주의’이다. 이 평등주의는 칸트적이라기보다 사드적인 ‘억압의 극장화’를 전제한다. 근대적 도덕의 주체를 위해 칸트가 제거해버린 그 주이상스(향유이면서 동시에 향락인 금지된 즐거움)를 끊임없이 요청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쾌락의 평등주의이다. 쾌락의 평등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의 논리가 만들어낸 평등의 이데올로기이다. 앤디 워홀이 말하듯이, 부자든 가난뱅이든 코카콜라를 마시려면 1달러를 지불해야하는 평등을 승인하는 것이 바로 쾌락의 평등주의이다.
물론 이 쾌락의 평등주의는 삶의 안정을 희구하는 중간계급의 이상에 대한 위협을 상징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측면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쾌락의 평등주의는 아버지의 억압을 극장화해서 보여주는 촛불의 스펙터클을 낳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거부는 ‘아버지의 이름’에 대한 부정과 맞물려 있지만, 근본적으로 촛불이 이런 아버지(법)에 대한 단절을 의미한 것인지는 되새겨 봐야할 일이다. 촛불은 “내 자식에게 병든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는 중간계급의 이기적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국가에게 중간계급이라는 부분집합의 공백을 셈해줄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촛불이라는 중간계급의 판타지에 내재한 역설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을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을 통해, 다시 말하면 신자유주의에 더욱 충실한 논리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무능한 정권’이라고 부르는 그 동기는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적절하게 구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지칭하는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에서 인식의 범주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의 원리 개념이다. 말하자면, 지금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과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는 엄연히 다른 차원을 갖는다. 정부가 주장하는 것이 경제적 측면의 신자유주의라면, 중간계급은 정치적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세계관으로서 체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으로 인해 현실적 신자유주의의 효과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정치화의 실체이고, 그 결과가 ‘좌파’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4. 촛불은 국가와 조우하는 것을 회피하면서 법의 지배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촛불을 논의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폭력/비폭력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른바 운동권들은 촛불의 비폭력성 때문에 한계에 봉착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명박산성’을 넘어가는 그 ‘의지’가 부족했다고 촛불을 평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양적 축적이 질적 전환을 이룬다”는 80년대식 변증법적 유물론을 연상시킨다. 80년대식 발상이라고 해서 모두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촛불은 이런 방식으로 세계를 단순하게 인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체로 촛불옹호론자들은 명박산성을 국가권력, 또는 국가폭력의 상징이라고 보고 있지만, 이런 ‘합의’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일부 촛불을 비판하는 입장도 명박산성을 국가의 출현으로 이해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명박산성을 국가권력으로 보았을 때, 국가를 거부하지 못한 촛불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촛불이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촛불의 한계를 드러낸 증거로 보는 것은 크게 틀린 판단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입장은, 촛불은 처음부터 명박산성을 넘어설 수 없는 조건 위에서 피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촛불은 명박산성을 넘어갈 수 없는 탈정치성의 상황 자체가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폭력/비폭력 논쟁 자체가 촛불의 한계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볼 수 있다. 폭력/비폭력 논쟁은 촛불이 주이상스에 대한 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촛불이 처음부터 탈법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었다면, 명박산성 앞에서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양적 축적을 통한 질적 전환” 같은 ‘법칙’은 없는 것이다. 이른바 개혁세력이 약속한 ‘점진적 개혁을 통한 혁명’이라는 사기극이 지난 세월 동안 남겨 놓은 후과들을 성찰하지 못하는 이들이나 비폭력을 통한 폭력의 전화 같은 믿음에 몸을 맡기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구조의 차원에서 단절의 주체들이 만들어져야한다는 사실이다. 이 단절의 주체야말로 삶이 곧 죽음인 ‘헐벗은 자’이다. 이 부정성의 저항에서 새로운 주체가 나오는 것이다. 촛불은 이런 맥락에서 단절과 부정이라기보다, 연속과 긍정의 선상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명박산성은 국가권력의 현시라기보다 법의 출현이었다고 보아야한다. 명박산성은 이명박 정부의 권력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정권조차 국가권력의 현시를 반기지 않는다는 역설적 상황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명박산성은 이명박 정부의 ‘불법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법을 준수하는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명박산성은 명확하게 시민사회를 거쳐 국가에 안착하지 못한 한국 부르주아 계급의 실상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역설적으로 국가가 자기 것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명박’이라는 부르주아의 ‘관리인’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명박산성을 쌓은 것이다. 이들은 ‘폭력’을 통해 촛불을 진압한 것이 아니라 ‘법’을 통해 촛불을 소환하고자 했다. 촛불이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법의 지배를 인준한 상태에서 촛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촛불이나 이명박 정부나 모두 ‘80년 광주’와 같은 폭력적인 국가권력의 현시를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보다 오히려 용산참사야말로 국가권력의 현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일지도 모른다. 촛불과 용산참사는 서로 다른 사건이라기보다 한 사건의 다른 면이라고 볼 수가 있다. 촛불의 어둠이 곧 용산참사인 것이다.
5. 촛불은 불평등을 인준한 평등이었다.
촛불은 중간계급의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한계만 남겼는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촛불은 시민사회와 국가라는 대립적이면서도 협력적인 관계에 대한 전면적 사고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탈정치성에서 정치적인 것을 발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은 시장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중간계급의 역동성’이었다. 시민사회가 중간계급의 상황이라면, 이 상황을 사회역사적으로 고정시켜줄 중간계급의 국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물론 노무현 정부가 이들의 ‘국가’를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였지만, 모든 개인의 몫을 셈해주기를 바라는 중간계급의 요구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중간계급은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지만, 결과는 더 참담했다. 촛불은 이런 참담한 결과에 대한 항의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탈정치성의 문제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노태우 정부 이후로 한국 사회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내고자 했고, 이런 시도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통과하면서 일정하게 성과를 올렸다고 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는 중성국가(a neutral state)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냈고, 이에 따라 자율적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는 도덕체계가 만들어졌다. 한국의 중간계급에게 이 중성국가야말로 ‘정상국가’이지만, 실제로 중성국가는 국가의 역할을 통해 국가의 존재를 소멸시켜야하는 자체 모순을 내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국가를 소멸시키기 위해 국가권력을 장악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구좌파의 생각과 닮아 있는 것이다. 한국의 중간계급에서 이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이른바 386세대가 현실의 삶을 구성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지난 과거에 획득했던 80년대의 경험 사이에서 아무런 모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까닭 중 하나를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성국가=정상국가’라는 공식에 따라, 시장논리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고 반시장논리는 시대착오적이고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한 것이라는 판단 범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시장논리는 탈권위주의에 대한 지지를 낳았고, 한국 사회를 주도하는 중요한 인식체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런 탈권위주의적인 경향이 전일적으로 관철되는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에 근거한 탈권위주의는 일상의 권위주의는 용인하면서 상징적 권위주의는 부정하는 기이한 현상을 등장시켰다. 일상의 권위주의는 인맥과 학연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따라서 시장에서 부분집합의 이해관계를 국가에 관철시키기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해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일상의 권위주의는 시장논리의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중간계급이 추구하는 쾌락의 평등주의는 겉으로 보기에 평등하지만, 구조적으로 결코 평등하지 않다. 이 평등주의는 실재와 조우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판타지일 뿐이다. 달리 말한다면, 이 평등주의는 시민사회라는 상황에서 발생한 공집합(공백)을 국가라는 상황상태에 고정시켜서 보이지 않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그 공집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셈하기는 공백을 전제한다. 마찬가지로 촛불이 발현시킨 중간계급의 쾌락들은 평등주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불평등의 구조를 인준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민 노동자나 비정규직에 대해, 그리고 용산참사에 대해 촛불의 평등주의가 침묵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촛불을 통한 중간계급의 정치성은 국가권력을 현시시키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정치를 전면적으로 출현시킨 ‘새로운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촛불이 중간계급의 것이기 때문에 혁명적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국가에 대한 한국 중간계급의 사유는 상당히 맑스주의적인 것이다. 그래서 중간계급은 국가를 “지배계급의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디우의 말처럼, 이렇게 국가를 지배계급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가 이미 사회역사적으로 현시된 사물을 다시-현시(재현)한다는 것을 강조해서 국가의 허구성을 폭로할 수 있다는 이점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식은 부르주아적 ‘정상국가’가 제대로 작동하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한국처럼 부르주아가 시민사회를 가져본 적이 없고, 중간계급이 시민사회의 상황을 접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국가에 대한 요청은 이율배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구조에서 한국 사회의 중간계급은 정치적 역동성을 획득했는데, 어떻게 보면, 촛불의 교착상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는 이제 이 구조를 벗어난 새로운 상황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를 고민해야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려주는 하나의 신호등이 바로 촛불이었지 않을까?
따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국민들’이 보여주는 추모 열기는 국가에 대한 요청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요청은 87년 6월 항쟁에서 시작해서 노무현 정부에서 일정하게 정치적 성취를 맞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이런 중간계급의 판타지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판타지가 깨어지는 순간에 새로운 정치성이 출현가능하지 않을까? 과연 그것이 깨어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정치적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촛불은 비록 중간계급의 운동이었지만, 그것의 한계를 염려하는 모든 이들에게 충분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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