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주의 단상

한국 사회가 빠져 있는 깊고 깊은 냉소주의의 늪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아찔하다. 이 책임은 일정하게 '민주세력'에게 있을 텐데, 누구도 반성하지 않는다. '국개론'은 사실 이 와중에 나온 냉소주의의 일단일 뿐이다. 이 냉소주의를 대적하는 것이 지금 시급한 정치적 기획 중 하나일 것이고, 나를 포함해서 한윤형 같은 몇몇 논객들이 여기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지만, 적절하게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답답하다. 인터넷 공간을 가득 메운 이 냉소주의의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내가 라캉 정신분석학을 차용하는 것은 이처럼 냉소주의가 압도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지젝의 입장과 같은 것이다. 유명한 지젝의 말은 이렇다:

It is clear, therefore, that confronted with such cynical reason, the traditional critique of ideology no longer works. We can no longer subject the ideological text to 'symptomatic reading', confronting it with its blank spots, with what it must repress to organize itself, to preserve its consistency — cynical reason takes this distance into account in advance. Is then the only issue left to us to affirm that, with the reign of cynical reason, we find ourselves in the so-called post-ideological world? Even Adorno came to this conclusion, starting from the premiss that ideology is, strictly speaking, only a system which makes a claim to the truth — that is, which is not simply a lie but a lie experienced as truth, a lie which pretends to be taken seriously. Totalitarian ideology no longer has this pretension. It is no longer meant, even by its authors, to be taken seriously — its status is just that of a means of manipulation, purely external and instrumental; its rule is secured not by its truth-value but by simple extra-ideological violence and promise of gain. It is here, at this point,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symptom and fantasy must be introduced in order to show how the idea that we live in a post-ideological society proceeds a little too quickly: cynical reason, with all its ironic detachment, leaves untouched the fundamental level of ideological fantasy, the level on which ideology structures the social reality itself.

여기에서 지젝이 주장하는 것은 알튀세르적인 '징후 독해'가 냉소적 이성의 시대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증상과 판타지를 구분하고 그를 통해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사회적 현실을 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문화비평'은 냉소주의적 이성을 대적하기 위한 지적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작업은 이데올로기를 폐기했다고 믿는 냉소주의에게 그것을 다시 돌려주는 일이다.


덧글

  • leopord 2009/10/17 16:26 # 답글

    그러고 보니 지젝도 벌써 예순이군요.
  • 이준영 2009/10/17 22:34 # 삭제 답글

    라깡은 ‘대타자는 없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라깡, 혹은 라깡이론(임상)을 보증해주는 대타자는 어떻게 성립할 수 있나요? 라깡이 신은 아니지 않습니까? 라깡이란, 혹은 분석가란 대타자는 어쩌실 건가요? 대답하실 수 있습니까? 왜 ‘대타자는 없다’는 발언 주체의 (그 억압적인)‘대타자’는 그렇게 멀쩡하게 ‘존재’해야만 합니까? 그 로고스는 대체 뭡니까? 주체조차 성립할 수 없는 그 최초의 로고스요. 아무 결여, 혹은 상처도 없는 고정불변의 그 로고스요. 그게 왜 라깡이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시작의 이데올로기가 있겠죠. 그걸 한번 증명해 보시죠.(증명이라고 ‘타자의 타자는 없다’ 그런 말씀이시라면, 필요 없어요. 그럼 라깡에 대한 제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정말 인정해 드릴께요. 그걸 증명 못하면 누구든 다 사이비야. 그 권위 혹은 이데올로기는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진짜인 척 하는 사이비인 라깡은 이미 죽었으니(라깡(이론(임상))이 사이비가 아니려면 그 발언을 한 주체 혹은 분석가 스스로 죽으라고 하세요. 그러고도 부재가 아니라 ‘존재’할 수 있다면 인정해 드리죠.) 이택광 선생님이든 누구든 그걸 납득 시켜 주시는 분께 저의 입장에서 최소한 진정 그 신뢰와 권위를 드리지요. 그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분께 실로 그 신뢰가 있으니.. 그런 분을 본 적이 없어서요. 입으로만, 없다없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못하니.. 믿을 수가 없잖아. 인정할 수가 없잖아. 내가 이런 말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욕망하는 주체고 뭐고,, 웃기지도 않아. 라깡 혹은 분석가(빈공간-분석가를 빈공간으로 등치시킨 것도 라깡이야. 왜? 분석가 말고, 라깡 혹은 누구든 자기 이름 걸고 빈공간 한번 등치시켜 보시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잖아? 어디서 그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놓고.. 자기는 멀쩡히 그 이데올로기로서 ‘존재’하면서 말이야. 그럼, 존재를 부정하는 그 자신 스스로도 ‘부재’해야 할 거 아니야? 그 이론, 혹은 임상에 따라 분석가 때려치고, 글(논문)쓰는 거 때려치고 논문 쓸 수 없으니 교수 때려치고, 그럴 수 있으면, 그러고도 부재가 아니라 ‘존재’할 수 있으면 선생님이고 누구고 올인하지요. 인정해 드리죠. 그렇지 않으면 다 사이비야. 스스로 권위(대타자) 없다 했으니 뭐라고 할거야? 억압적인 대타자고 보증자로서의 대타자고 어쨌거나 대타잔 없다면서? 증명해 보시죠?(제가 한 말(‘의미없음’을 강조하는 이론들의 딜레마 있잖아요. 결국엔 자기이론의 의미없음 또한 인정해야만 하는 그런 딜레마.. 아시죠?) 알고 계시면, 그대로 쓰진 마시죠. 그건 제 생각이니..) 선생님께만 드리는 말씀 아니에요. 라깡주의자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에요. 스스로 라깡과 관련있다, 그 특권의식에 으쓱해 하시는 선생님들 말이에요. 특히 특별한 한 분 계시죠. 대단하신 분 계시죠. 원하지도 않았는데 치료해주겠다고 말이야. 의뢰도 안했는데, 분석 혹은 치료 못해서 안타까워 미치는 사람 있어. 병원놀이, 혹은 분석하는 놀이 하고 싶어서 미치는 사람 있어. 나 그 사람 상관없는데,, 이젠 상관없는데,, 근데, 그 사람이 나 어거지로 누르고 스스로 잘난 척 하는 꼴은 못 보겠어. 그 사람이 실제로 그럴 만한 사람이면, 나를 납득시킬 수 있으면 인정하겠어. 내가 눌렸다고 해도.. 그치만 아니...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난 제대로 ‘만족’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걸. 나고 누구고 라깡이란 노예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난 만족 못해. 응, 라깡의 노예..
  • 이건 뭐.. 2009/10/17 23:12 # 삭제

    무슨 소설에나 나오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보는 듯...ㅎㅎ
  • erte 2009/10/18 00:54 # 삭제

    머 제가 상관할바는 아니긴 한데... 기억이 맞다면

    저번에 무슨 글로 한번 이렇게 길게 몇 번 댓글 쓰셨다가
    다시 볼일 없을거 같다고 말하고 사라졌었던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_-

    왜 계속 이 곳을 예의주시하고 계신건지 좀 궁금하네요 ㅋ
  • 행인A 2009/10/18 01:28 # 삭제

    이건 무슨 눈먼자들의 도시같은 문체인가요 ㅇㅂㅇ
  • 가끔 옵니다 2009/10/18 14:22 # 삭제

    흠.. 위에 장황한 댓글 쓰신 분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좀 찔리네요. 제가 전에 다신 여기 안온다고 해놓고서 다시 나타났기 때문에. 뭐 당신들은 자기가 하는 행동의 이유를 다 알고 있나요. 생각하는 의식이 주체인가요, 아니면 나도 모르는 무의식이 주체인가요. 현대인이라면 생각 좀 해보고삽시다.
  • erte 2009/10/18 23:20 # 삭제

    가끔 옵니다 / 제가 쓴 댓글이 조금 불편하셨으면 죄송합니다만.. ㅋㅋ 전 뭐 딱히 그런 심오한 것을 물어보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그냥 자기가 공공연하게 한 말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지않겠느냐 하는 뜻이었지요. ^^
  • 가끔 옵니다 2009/10/19 10:54 # 삭제

    erte님! 제가 나타나건 말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제가 책임질 일은 별로 없는것같네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