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지혜 책읽기

"스무 살 때, 나는 아달베르트 푀슈라는 이름의 연세 지긋한 가구 전문 목수의 도제가 되었다. 그의 밑에서 일한 기간은 1922년부터 1924년까지로,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 그는 우리가 작업장에서 단둘이 일할 때마다 자기 머릿속에 무진장 들어 있는 지식의 창고에서 갖가지 보물들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곤 했다 ... 내 생각에 이른바 지식의 이론에 관해서라면, 그 이전까지 다른 여러 선생님에게 배운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바로 그 전지전능한 목수로부터 배운 것 같다. 어떤 선생님도 나를 이처럼 졸지에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주인은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깨우쳐주었음은 물론이고, 내가 열망해 마지않는 지혜는 오로지 나 자신의 무지가 무한하다는 것을 완전히 깨달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칼 포퍼, <끝없는 탐구> 13면.

목수의 도제였던 철학자. 이 문단이 전하는 메시지는 전지전능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무지를 깨달을 수 있다는 대가의 통찰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고백하고 있지만, 책상 만드는 일보다 지식을 나누는 일에 더 열성적이었던 주인이나 도제공이 질 좋은 책상을 만들 수는 없었다. 철학은 마호가니 책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포퍼는 책상 만드는 직업을 떠나 철학교수가 되면서 이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었다.

덧글

  • 언젠가 2009/10/23 00:03 # 삭제 답글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했던 말을 상기시켜 주는 일화입니다
    "너희들, mba 가야 별로 남는 거 없다. 차라리 네브라스카 주에 있는 가구점 하는 할머니를 며칠 동안 관찰해라. 배우는 게 더 많을 거다" 뭐 이런 취지였던 거 같습니다ㅋ
  • erte 2009/10/23 00:24 # 삭제 답글

    아... 유럽도 저럴진데... 한국에서는 건축도 제대로 잘 못하면서 지식인인척 하고싶어하는 건축가들이 종종 있어서 참 좌절입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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