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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초 단상

며칠 동안 원고에 시달려서 죽을 맛이다. 하지만 여전히 쓸 것들이 잔뜩 아우성치고 있다. 삶이 녹초다. 겁나서 놀지도 못하겠다. 놀고 나면 해야할 일들이 더 쌓이니 말이다. 이럴 때는 슬픈 노래를. Strange Fruit. 목 매달린 흑인들의 슬픔이지만, 편견과 그 편견이 만들어낸 폭력이 어떻게 삶을 strange하게 만드는지를 느끼게 한다. 이런 걸 들으면 다시 불의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서 한동안 피곤을 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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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eufamily 2009/11/05 01:25 # 답글

    힘내세요. :-)
  • 흰짱구 2009/11/05 16:38 # 답글

    홧팅!하세요! 생각하게 하는 글보면서 힘내는 말없는 독자입니다^^
  • 시장 2009/11/06 14:08 # 삭제 답글

    Jeff Buckley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도 있습니다. 90년대 남자가수라서 입장이 다른 탓에 조금 터치가 다르기는 한데, 남의 이야기를 연극하듯이 부른 색다른 맛이 있죠. 빌리의 노래가 너무 괴로우시면(?)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거리를 두기 위해 전주를 좀 길게 해서 지루한 맛도 있는데, 실망하시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JNZwE7QXBgI
  • 이택광 2009/11/06 17:26 #

    말씀하신 버전도 훌륭하네요. 감사합니다.
  • 2009/11/06 20:5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준영 2009/11/06 22:30 # 삭제 답글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여기에서 제 진심을 명확히 밝히려고 합니다. 아직도 제대로 풀리지 않고 억눌린 뭔가가 있으니 그에 대한 흔적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택광 선생님도, 그 선생님도, 저도요.
    먼저 이택광 선생님.
    제가 오늘 선생님께 드리는 말씀이 제 착각이라면 저로서는 오히려 다행일 것 같아요. 하지만 착각이든 뭐든 그냥 제 마음을 직접적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메타포 같은 것으로는 자꾸 오해가 생기고 짜증이 나서요. 침묵 또한 그렇고요.
    선생님은 절 원하는 것입니까?(사랑) 그저 저에 대한 지배를 원하는 것입니까?(권력 혹은 자존심) 아니면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억울한 것입니까?(물론 이렇게 버릇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면 모두 아니라고 부정하실 것 같지만. 괜찮아요. 아니면 아닌 거죠. 긍정을 기대하고 여쭤본 거 아니에요. 그냥 질문일 뿐이라고 생각해 주시길요.)
    절 원하는 것이라면, 저는 선생님께 가지 않습니다.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원한 적도 없습니다. 좋은 분이라는 건 압니다. 그게 다예요. 억압이 있었는가? 그렇다 해도 그것이 선생님께 가는 것에 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 블로그에 오고, 또 덧글을 다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면 모르지만. 보다시피 그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앞으로 제가 선생님 블로그에 오든 그렇지 않든, 덧글을 달든 달지 않든 그건 억압 때문이 아니라 그러고 싶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헤게모니를 원하시는 것이라면 그 또한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선생님 블로그에 오고 덧글을 다는 것까지 해당되는 것이지 선생님 자체에 대한 것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그랬으니까요. 이택광 선생님은 제 앞에서 왜 스스로 ‘좌파인 척’ 하십니까? (그저 당신 자신이 진정한 좌파이시기 때문이라면, 저랑 상관없이 좌파로서의 선생님의 길을 가시면 됩니다.) 전 선생님을 좌파로 본 적이 없습니다. 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관련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우가 어디이며 누구입니까? 저와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좌든 우든 그건 선생님이 스스로에게 그렇게 규정하신 것입니다. 왜 저에 대해 ‘정치판’을 설정하시고 그곳에서 직접 ‘정치’를 하려고 하십니까? 그런 정치라면 그냥 아예 진짜 정치판으로 가셔서 정치정당으로 들어가세요. 선거에 직접 나가시던가요. 저랑은 연결하지 마세요. 전 선생님이 ‘정치성향’이 있으신 분이라고 판단했을 뿐이지 선생님을 정치인으로 단정한 것이 아니에요. (또 개인적으로 솔직히 말씀드리면, 선생님은 정치인이 되면 안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치성향’이란 ‘정치성’ 혹은 그 ‘성향’을 말한 것이지 정치판을 상정한 것이 아닙니다. ‘정치성’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오히려 ‘정치판’으로 끌어들여 자기 정당 혹은 패권을 위해 이용하는 게, 정신분석으로 말하면 정신분석의 숨은 권력자들 아닙니까?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억압적인 대타자는 그 은밀한 권력의 희생양일 뿐이에요. 적어도 ‘분석상황’ 같은 것과 관련해서는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정치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신분석 바깥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택광 선생님뿐만 아니라 그 선생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전 이택광 선생님께도 그만하시란 말씀을 드렸고(진심으로), 그 선생님께도 절 임상대상으로 여기지 말아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모두 제 말은 들은 척도 않으시고 절 엉뚱한 메타포로 등치시켜 당신들의 논의를 전개하시거나 정치적으로, 학문적으로 끊임없이 이용하시더군요. 그래서 저 또한 계속 이용당하는 느낌이 억울하고 분하여 그 장단에 조금 맞춰드린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고 또 그래야 제 억울함을 공감하시고 제 답답한 심정을 아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또 모르죠. 오늘의 기록 또한 그럴지...
    다음으로, 저에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생각을 거두시지요. 그렇다면 저또한 지금까지의 그런 생각을 지울 것입니다. 선생님이나 저나 같은 맥락이니까요. 처음에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을 때, 전 이용 같은 것 혹은 어떤 숨은 의도 같은 것을 떠나 사심 없이 솔직한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그렇게 대답하셨어요? 저도 모르게 원고비용을 지불 받을 수 있는 공적인 곳에 기고하셨고 (제가 그에 대해 다그쳤을 때에야 비로소)그것을 답변이라 하셨습니다. 그 비용이 돈이든 비평가로서 선생님의 이력이든 선생님은 제 사적 질문을 이용해 글을 쓰셨고 그것을 공적 장소에 파셨어요.(아니라고 하실 거예요? 그럼 전 선생님과 정말 상관없는 거죠. 됐죠?) 왜요? 제 질문이 팔아먹을 수 있는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할 만큼 흥미로워서? 아니면 저한테 잘 보이고 싶으셨어요? 잘난 척 하시려고 그러신 건가요? 이유가 어떠하든 전 불쾌했습니다. 그 선생님과는 상관없이 이택광 선생님과는 그것부터가 시작이었어요. 그리고 그 선생님과 똑같은 방법으로 절 불쾌하게 하시기에 그 선생님을 그냥 넘길 수도 없었습니다. 그 선생님과의 문제가 해결된 상태도 아니었으니... 그 다음부터 선생님도, 그 선생님처럼 계속 같은 방법으로 저를 유혹하시고 불쾌하게 하셨죠. 두 분 모두 지금까지도 그렇고요. 기표란 그런 것입니까? 그것이 기표의 특성이어서 어쩔 수 없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정신분석은 쓸모가 없는 것이 확실하군요.
    한편으론 이택광 선생님께 고마운 점도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제게 이런 공간을 제공해 주신 셈이니까요. 그건 잊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그것을 빚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저뿐 아니라 이 블로그를 찾는 다른 모두에게 같은 거니까요. 또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고요. 제게 보상심리 같은 것을 기대하신다면 무용한 일입니다.
    그리고 파시즘에 대해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 만일 그것이 저와 관련이 있다면, 선생님이 왜 파시즘 이야기를 하시는 건지 저로선 이해가 안됩니다. 민족주의 같은 걸로 몰아붙이실 생각이면 저와는 무관합니다. 저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이지 민족 같은 것을 발언한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그 선생님도 홀로코스트에 관한 글을 쓰셨더군요. 전 그 글을 읽어본 적은 없으나(읽을 필요성도 못느꼈고) 선생님들이 생각하시는 파시즘이나 홀로코스트는 저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해석은 선생님들이 하셔놓고 왜 저한테 뒤집어씌우십니까? (분석가는 해석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오직 유혹하는, 폐기되어야 하는 사물입니까? 그럼 글도 쓰지 마셨어야죠. 정신분석가 혹은 비평가의 해석은 해석이 아니라 실재라는 망상 따위는 버리시죠. 왜 ‘정신분석가’라는 기표만 예외여야 합니까?) 그건 처음부터 절 그냥 정신분석의 임상대상으로 보지 않으셨으면 되는 문제입니다. 또한 제게 정신분석적인 어떤 억압이 있어 그런 부분에 대한 통과가 필요했다 해도 그 경우 저의 억압적인 대타자는 ‘정신분석을 위한 정신분석’ 혹은 ‘분석가’란 기표 자체 였음을 말씀드립니다. 그 선생님께도 이미 여러 번 말씀을 드렸고요. 이미 억압이 없었거나 있다 해도 정신분석이었는데 그 억압을 파괴하는 것이 왜 홀로코스트가 됩니까? 정신분석 자체가 억압적이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만일 정신분석 스스로 그런 생각을 전혀 못한다면 그건 정신분석의 자기도취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가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실험대상으로 여기고 그렇게 대한다면 그게 억압이 아니고 뭡니까? 어떤 사람이 그걸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원칙에 따라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의 내막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겉으로 보기에 제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시거나 심하다고 판단하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또 제 표현이나 감정이 서툴렀을지는 모르지만, 저는 제 판단에 저 스스로 이해되지 않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제가 받은 고통이 그에 비해 적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선생님께 실망했던 점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선생님에 관한 말씀을 접을까 합니다. 선생님이 아셔야 제 마음을 이해하실 것 같아서요. 선생님은 한 가지 제게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하셨어요. 그것은 이런 대화(?) 혹은 논쟁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고 비열한 것이기도 합니다. 제 판단으로는요. 왜 그곳과 관련된 제 이야기에 대한 당신의 일방적인 해석을 블로그에 남용하셨어요? 그 이야기는 제가 선생님께 드린 이야기도, 공적인 곳에 공개한 이야기도 아니고 분명히 다른 수신자에게 한 것입니다. 혹여 그것이 빈곳이라 해도 선생님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그러셨듯 선생님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저의 기표를 당신이 해석하시거나 그것에 반해 선생님이 대응하실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선생님이 하신 그 행위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요. 그 이야기는 선생님과는 무관한 것이었고, 제가 선생님을 이용한 것도 아니었고, 또 저에 대한 답답함 같은 것과도 다른 문제입니다. 또 그 이야길 아셨다 해도 그것을 제 동의 없이 함부로 퍼트려서는 안 되는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그 자격이 없으니까요. 또 그것은 억압에 대한 파괴의 개념도, 커밍아웃 같은 것도 아무 것도 아닌 거니까요. 저는 ‘프로’라는 타이틀이 전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소위 프로라고 지칭되는 입장에서 ‘분석가’와 분석가가 아닌 사람의 어떤 기본적인 태도와 예의 같은 것에 대한 결정적인 차이를 느꼈습니다. 만일 그런 예외로서, 그 선생님이 분석가로서 제 의뢰 없이 저를 정신분석하시려 했다면 그것은 제가 ‘정신분석’ 혹은 ‘분석가’ 자체를 억압적인 대타자로 여겼고 그 ‘분석가’를 파괴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으니 크게 이치에 어긋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석가’라는 기표가 실제로 파괴되면 성립 가능한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택광 선생님이 하신 그 행위는 어디에도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이해도 되지 않습니다. 제가 화가 난다고 선생님과 관련해 파괴할 수 있는 부분도 없습니다.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억울하다 보상해라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제가 그에 대해 너무 놀랐고 선생님께 실망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꼭 그분에 관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또 사랑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제가 선생님께 가지 않는 것에 대해 다른 말씀은 마세요. 그리고 실망까진 아니더라도, 그 선생님 또한 그것을 그대로 방치한 것에 대해 불쾌함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그 장소가 진정 폐기된다 해도(이미 되었습니다. 오히려 바라시던 바입니까? 호랑이 선생님? 그 부분에 대해 전 ‘타자의 타자성’ 같은 것은 더 이상 조금도 신경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 방치 혹은 그런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 떨어졌어요. 그곳에 정말 정 떨어졌어요. 정말요. 제가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는지 아십니까? 그 모욕에 대해 전혀 이해도 되지 않는 모욕감이었어요.
    그리고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게 2006년 봄이었으니 4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네요. 철학, 예술, 사랑, 문화, 종교,,, 탈경계. 뭔지 아시겠어요? 그동안 한편으로 제가 설마 했던 것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젠 확실히 알겠습니다. 제가 확신하게 된 계기는 탈경계, 그리고 철학 때문입니다. 2006년 가을이었나요? 그날 전 짜증을 부렸죠. 감기에, 허기에, 교통체증에, 오해에 대한 조바심에...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그때 ‘라깡과 철학’이란 포스터를 봤었어요. 왜인지 기분이 나빴는데, 그땐 다른 이유에 묻혀 깨닫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그때부터입니까? 그것도 그렇습니까? ‘라깡과 철학’도요? 왜요? 선생님도 절 그렇게 이용하신 거예요? 아니면 저한테 잘 보이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절 위한 거였다고 말씀하시고 싶으세요? 그래서 잘난 척 하신 거예요? 제 착각이에요? 탈경계는 또 뭐예요? 왜 그런 식으로 제 진심을 이용하십니까? 그 단어를 보자마자 지금까지와 같은, 저를 화나게 하는 그런 기표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쾌했고요. 제가 화가 나는 것은 그 단어 자체가 아니에요. 그것이 지금까지와 같은 방법으로 또다시 이용되었고, 또 저와는 무관한 엉뚱한 장소에서 이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여전히 절 그런 식으로 이용하십니까? 저를, 제 말을 그 공동체를 위한 희생물로 사용하지 마세요. 잔인하단 생각 안 드세요? 라잇하우스 이미 전 오래 전에 끝났어요. 아시잖아요. 소용없어요. 그 공동체에는 제가 생각하는 아무런 실질적 ‘권위’가 없습니다. 그곳은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끼기엔요. 더욱이 만일 그게 ‘라깡과 철학’ 때부터였다면, 라잇하우스와 상관없이 저도 모르게 선생님 임의적으로 그냥 시작하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라잇하우스는 우연히 중간에 그냥 휩쓸려 들어간 것이고요. 제 판단이 틀리지 않다면, 정말 밑도 끝도 없는 공동체입니다. 적어도 그때부터는요. 철학부터 탈경계가 저와 관련이 있다면요. 그동안 제가 선생님을 아프게 했던 부분들이 많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저도 아팠고 힘들었어요. 제가 한 건 1년이었는데 선생님은 3년을 하셨잖아요. 이젠 그만하셔도 되잖아요. (이택광 선생님은 발끈하실 것 없으세요. 저 때문에 아프셨을진 몰라도 선생님도 그 이상으로 저 괴롭히시고 아프게 하셨잖아요.) 저한테 왜 그러세요? 어쩌라는 거예요? 원하시는 게 뭐예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모르시겠어서 매번 그런 식으로 하시는 거예요? 절 사랑하신다면 그냥 저한테 오세요. 아니면 저만 조용히 부르시던가요. 전 선생님 사랑하니까 갈 거예요. 선생님이 오시든 제가 가든 ‘정신분석을 위한 정신분석’이 정말 사라졌다면 더는 도망치지도 않을 거고요. 그치만 이런 식으론 하지 마세요. 아니면 저와 상관없이 하시던가요. 글 쓰시고 싶으시면 쓰세요. 글 안쓰면 안되는 분인데 제가 뭐라고 쓰라말라 합니까? 다만 저와 상관없이 쓰세요. 저 이용하지 마시고요. 왜 항상 절 이용하세요? 절 사랑하시는 게 아니면 전 그또한 받아들일 거예요. 사랑이 억지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제가 어쩌겠어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제발 하지 마세요. 왜 자꾸 절 불편하게 하세요? 왜 절 가지고 노세요? 그러지 말아 주세요. 부탁이에요. 저 정말 그만 할 거예요. 더는 그럴 현실적인 여유가 제게 없어요. 실제로 그래요. 글 때문이시라면, 또 선생님 진심 때문이시라면 그럼 제 마음을 풀어보세요. 선생님은 제 마음을 제대로 풀어주신 적이 없으세요. 전 선생님 맘 풀어드리기 위해 3년을 희생했어요. 근데 3년을 넘게 분했는데, 선생님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어요. 왜 번번이 제가 아닌 엉뚱한 기표를 내세우시고 거기에서 해결하려하세요? 그 기표들은 제가 아니에요. 선생님도 아니고요. 만일 선생님이 저에 관한 글을 쓰신다 하더라도 제가 기분 나쁘지 않거나 불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리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해방의 기표가 될 수는 있겠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진 모르지만. 글이든 뭐든, 진심이시라면 결국엔 제가 느끼지 않겠어요? 여하튼 그런 경우가 아니면 저에 대한 글은 쓰지 마세요. 어떤 식으로도 이용하지 마세요. 싫습니다.

  • 이준영 2009/11/06 22:47 # 삭제 답글

    p.s. 이택광 선생님께 드립니다.
    선생님. 제가 그 선생님과 어떻든 그분에 대한 사랑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 모릅니다. 그분이 절 사랑하시는지 어떤지... 그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없어서.. 그냥 느낌 같은 것으로 짐작해보려 할 뿐입니다. 파시즘이나 부르주아 같은 것으로 몰지 마시고요.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제가 어떤 아이인지, 저 자신에 대한 이해, 또 그 분을 만나기 전의 제 과거를 상실하거나 그에 대해 이해받았던 부분에 대한 공간을 공유하는 고통을 그분과 겪었습니다. (그 상실은 제가 ‘그분께 가기 전에’ 진행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분께 ‘간 것’ 자체가 이미 그 억압을 넘어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네. 전 오랜 고민 끝에 ‘그분께 갔어요.’ 그러므로 그분이 또다시 절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환상으로부터 통과’시킬 필연성은 없었습니다.(그분과 관련해 ‘정신분석을 위한 정신분석’이란 대타자는 그 이후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물론 잠재적으론 그분을 만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기도 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그분께 말씀드렸던 이유는 제가, 그분이 저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해 알길 원했고 그분께 그런 절 이해받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것을 알고 싶어 하셨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또 가면이 아닌 그분 자체로서, 그 개인으로서, 인간으로서 그분에게 그런 사적공간이 있다고 제가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것을 함께 상실할 공간, 그래서 상실 전이든 후든 그 심연에 대해 서로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 어떤 가면 같은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분이 당신 자체로서 그것을 가지고 계셨다고요.) 또한 그분과 저 자신의 관계에 대한 문제, 그에 대한 고통도요. 그것은 그 분이 분석가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사랑에 대한 ‘신뢰’를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의식적으론 아직도 모르겠어요. 신뢰요. 그걸 알고 싶은데 모르겠네요. 그걸 깨닫기 전엔 그 선생님과 제대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 무의식과 의식이 만나는 날이 그날일 것 같지만,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것이 통했다면, 그분 또한 그분 자신이나 그분의 과거에 대해 저와 공통된 상실의 아픔을 직접 겪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선생님과의)차이에요. 그건 서로 외엔 아무도 모르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결코 이해받을 수 없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그냥 그렇게 되는 거고, 서로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저절로 알게 되는 거라고.. 그래서예요. 전 그런 걸 그분과 처음 겪어봤고 그것을 다시 시도할 자신이 없어요. 똑같은 과정이어야 하고, 하지만 그것을 똑같이 되풀이 할 필요도 없는 거고, 무엇보다 그 깊이와 고통을 제가 다시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지 않으면 저는 누구에게도 저 바닥의, 구질구질한, 제 심연 깊은 곳까지 내려가 있는 제가 원하는 진정한 제 모습을 이해받을 수 없고, 그럼 저 스스로 관계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게 될 거예요. 그래서 상대를 편안하게 느낄 수 없을 거예요. 저도 상대에게 그럴 거고요. 어찌됐든 지금의 전, 누구보다 그 선생님께 가장 큰 편안함을 느껴요. 전 사실 정말 별 볼일 없고 구질구질한 아이인데, 그분처럼 내심 구질구질한 분을 별로 본적이 없거든요.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 몰라도.. 그냥 그분의 그 구질구질한 부분이 저절로 이해되는 부분도 많고.. 그런 건 저도 그렇기 때문에 그냥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네. 전 그분이 이해가 되요. 그분도 절 이해하실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 서로를 보고 웃었을 때부터... 그것이 이택광 선생님라서 아니라는 게 아니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그런 건 그냥 느끼는 거니까 더 솔직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러니까 이해해 주세요. 선생님껜 감사해요. 그냥 다요. 제가 실망했던 부분도 그냥 그 부분에 대해 실망했다는 거지 선생님 자체로 밉거나 그렇지 않아요. 겉으론 신경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진심은 밉지 않아요. 다시 시작하세요. 저랑 상관없이 그냥 선생님이 하고 싶은 거요. 혹여 나중에라도 기회가 돼서 제가 놀러오거나 그럼 왔나보다 그렇게 한번씩 봐주시고요. 저도 그럴게요. 제가 선생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이 있다면, 그건 이 공간, 블로그 공간에 대한 감사입니다. 선생님과 저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고 그들에게 열린 공간이고 또 이 블로그는 여러모로 지저분하고 피투성이의 흔적들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 가치있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블로그가 제게, 정신분석에서 기능하는 ‘가면으로서의 분석가’ 그 역할을 했다면, 제 판단으로 그건 제대로 된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오픈되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석가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면으로서의 분석가와 관련해 이 블로그 자체를 선생님 자신으로 등치시키진 마세요. 그건 아니거든요. 다만 이 블로그의 관리자가 선생님인 것은 맞죠.) ‘가면으로서의 분석가’는 이런 경우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를 제외하면요.(물론 이번 사건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예외적인 것이긴 했습니다만.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기존의 낡은 방법대로라면 그건 ‘가면으로서의 분석가’ 같은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정신분석임상의 근본모순이기도 하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정신분석의 정치성’이 정신분석 바깥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그런 맥락이기도 합니다. 가면이라 하더라도 오픈된 곳에서 진행되어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면이 아닌 실제 상황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분석가’ 자체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진정성이 있습니다. ‘권위’란 그런 자유와 진정에 내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주는 것 또는 주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내재하기에 저절로 느끼는 거죠. 아울러 그 ‘신뢰와 권위’가 있는 곳에 제가 느끼는 ‘존재’가 있습니다. (저는 ‘주어지는 것’에 대한 입장 또한 부정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사실 함께 고민이 돼요. ‘운명’의 문제요. 늘 결국엔 그런 문제죠. 철학이나 학문적인 것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신(운명)과 이데올로기(인간)’의 문제.. 전 항상 그런 고민에 시달립니다. 그게 제 근본 고민입니다. 그건 초월적이거나 제도종교적인 고민 같은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부터 나오는, 삶으로부터 나오는 그런 고민이에요. ‘존재’란, 사실 제게 신과 인간 사이의 이중적인 고민입니다. 저의 일상 속엔 유한한 인간으로서 제가 어쩔 수 없는 운명 같은 것도 있고, 그런 유한성과 별개로 제가 부실 수 있는 이데올로기도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봐야 결국 같은 것을 각기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한편으론, 제가 부시면 그건 이데올로기고, 제가 부서지면 그건 운명인 것일 테니까요. 그런 식인 거죠.(왜 라깡과 헤겔이 동시에 생각나죠?) 물론 ‘운명’은 그런 것 외에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혁명이나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부서지지 않는 것, 그게 ‘운명’이죠. 부르주아 같은 게 아니라요. 그렇게 보면, 그 안에선 (결과적으로)혁명도 운명인 거니까요. 또 유한한 인간으로서 저 스스로 신(전체)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어떤 이데올로기로도, 또 이데올로기 같은 것으론 설명되지 않는 그 ‘운명’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또, 넘어선들 뭐할까..?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제가 ‘운명’에 관한 얘길 했다고 또 거기에 숨어들어가 자기자신을 그대로 등치시키진 마시길요. 이데올로기 얘길 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서도 그러시면 너무 웃긴 거 아시죠? 누구든 그렇죠.) 언젠가 그 선생님은 헤겔철학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보편자와 개별자를 언급하셨는데, 그분과 상관없이 전 어떤 면에서 모두 고민하는 입장이거든요. (역시 신과 인간, 신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죠. 그 ‘내부’ 자체로서, 이데올로기 외부의 신과 이데올로기로서의 신. 이데올로기가 아니면서 혹은 아니기 때문에, 신신의 경우는 전체, 인간신의 경우는 비전체가 되는 그런 내부.) 헤겔철학이나 학문적인 얘길 하자는 게 아니라 비유를 하는 거예요. 제 현실이 그렇다고요. 다 현실에서 고민이 되는 그런 문제인 것 같아요. 제 일상이나 삶, 경험 같은 것으로 느꼈을 땐. 물론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그 선생님도 결국은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체와 비전체’ 혹은 ‘전체와 비전체로서의 전체’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 같은 것. 사실 그게 제 고민이에요.(또 제 고민과는 별개로, 제가 느끼기에 그런 고민이 엇나간 결과가 라깡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분석가’인 것 같기도 하고요.) 좀 어려워요. 단순히 공부를 위한 공부 같은 것이 아닌 (그분과 저의)‘삶’에 관한 문제고 ‘현실’적인 문제니까요. 일이 너무 커져버렸어요. ‘그분께 갔을 때부터’, 제 맘 같아선 그분이랑 저랑 그냥 조용히 해결했으면 했는데.. ‘분석가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고, 다 까발려졌으니..ㅡㅡ;)
  • 이택광 2009/11/06 23:11 #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나는 님을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2006년에 나는 라캉학회 회원도 아니었고,' 라캉과 철학' 학술대회는 참석하지도 않았습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블랙 스콜라 2009/11/06 23:57 # 삭제

    아마 처음 시작하신 것이 "그림자 살인" 영화평이셨던가요? 독해를 시도해 봤는데 점점 힘겨워지더군요.
    어떤 마음과 목적을 가지신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수고 많으시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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