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주의 시대의 인문학자 세상읽기

지식인의 종언이라는 말은 꽤 오래전부터 운위되었지만,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서구에서 출현했던 그 근대적 지식인의 종언이라는 문제의식과 사뭇 다른 것이다. 한국에서 지식인의 종언은 인터넷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인터넷 글쓰기의 출현은 '글 쓰는 존재'로서 권위를 부여받았던 지식인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 측면이 강하다.

조금 복잡하게 말하자면, 지금 '생각하는 주체들'은 인터넷이라는 사유기계를 통해 사유하는 인터넷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세대, 특히 사회과학적 개념훈련을 통해 세계관을 획득했던 386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대이다. 인터넷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책을 찾아보는 세대이지 책을 통해 인터넷에 들어오는 세대가 아닌 것이다. 책을 통해 공부하고 관념세계를 만든 다음 인터넷에서 글을 쓰는 세대와 다른 세계관을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가 있다. 말하자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학습하고 자기의 세계관을 정립하는, 완전히 다른 세대들이 나타난 셈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 인터넷 세대와 이전 세대가 글을 독해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사유가 다르니 당연히 독해의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인터넷 세대는 문어체의 글을 잘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충돌들이 일어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 때문에 오히려 사유의 계기들은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런 차이를 인터넷 세대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 같다.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사전지식체계에 글의 내용이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택할 수 있는 방식은 사전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다중매체는 과거에 불가능했던 이런 쌍방향 소통에 유리한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터넷 때문에 읽고 쓰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었다는 주장은 적절한 현상 진단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문제는 독해 방식의 차이라기보다, 글에 대한 냉소적 태도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더 흔한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냉소는 다분히 글이나 그 글을 쓰는 지식인에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까지도 포괄하는 경향성을 드러낸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생존의 공포를 통해 체화된 측면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내용이야 어떠하든, 절차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정치는 좌·우파의 권력교체를 경험했다. 그 이전까지 민주화운동세력의 기본적인 정치의제는 바로 정권을 평화롭게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화로운 정권교체 이후 어떤 내용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지향이 무엇인가, 이념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들은 고스란히 과거의 습속을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과 다른 괴리들을 노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들, 특히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세대의 대중들은 정치인과 지식인 전반에 대한 냉소주의를 체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현실사회주의를 체험한 동유럽인들이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냉소주의를 한국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들은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너무 많은 진실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은 정치인과 지식인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이들로부터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모순적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냉소주의가 만들어낸 현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대중들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존재할 수 없지만, 존재하고 있는 이상한 공간이다. 공간만이 남아 있고,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마땅한 이 모순의 조건에서 지식인의 글쓰기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결국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런 앎을 넘어선 앎, 또는 계몽에 대한 재계몽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21세기 한국에서 인문학자가 할 일이 있다면 이런 냉소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고군분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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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에 게재되었음.

덧글

  • 김원철 2009/11/14 00:30 # 삭제 답글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사전지식체계에 글의 내용이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맞지만, '지식인스러운' 문장 자체가 인터넷에 맞지 않는 독해 방식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먹물깨나 묻었다는 사람들이 번역투 문장뿐 아니라 지저분한 비문까지도 버젓이 쓰고 있단 말이지요. 어떤 언어학자는 도대체 한국어로 학술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지 진지하게 의문을 던지기도 하더군요. 그런 점에서 보면 이택광 선생님 글은 매우 예외적으로 깔끔합니다.

    ① 비문 극복 ② 번역투 문장 극복 ③ 한자어·외래어 줄이기 ④ 만화적 상상력을 글쓰기에 들여오기. 이런 식으로 목표를 정해서 글쓰기 습관을 인터넷 세대와 어울리게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내용이 어려울수록 문장은 쉬워야지요. 사람의 주의자원(attention resource)은 한정되어 있으니 내용이 아닌 어휘나 통사구조 따위에 낭비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인용한 문장은 저라면 이렇게 쓰겠습니다: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사전지식체계에 글의 내용이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보통 사전지식체계에 글 내용이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보통 글 내용이 사전지식체계와 안 맞기 때문이다."
  • 이택광 2009/11/14 07:29 #

    김원철님이 지적하신 부분은 새겨두고 항상 고민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나도 되도록 한자어를 쓰지 않고, 말을 풀어쓰려는 노력을 하지만 한계가 있지요. 네이버에 연재하는 인상파 관련 글들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쓰는 편이고, 이 칼럼의 경우는 '인문학 칼럼'이라는 시리즈 제목이 붙어 있기 때문에 '신문투'를 좀 가져다 썼습니다. 예전에 이런 나를 두고 어떤 소설가는 너무 '전략적'으로 글을 쓴다고 야단을 치곤 했죠. 이처럼 나에게 문체라는 건 그냥 전략일 뿐입니다
  • 아열대 2009/11/14 04:19 # 삭제 답글

    문제의 본질은 글을 쉽게 쓰느냐, 어렵게 쓰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내용이 어려울수록 문장은 쉬워야지요'라는 강박 속에 잃어가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소통'이라는 것이 말의 친근성에만 종속되어 있다면 우리가 정작 찾아야 할 '진실'을 쉽사리 잃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의 학생은 이미 너무 '떠먹여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럴수록 자신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로 우려해야 할 것은 글을 쉽게 쓰느냐 어렵게 쓰느냐라고 하는 형식적 문제보다, 아도르노가 말했듯, 객체를 중심으로 그것을 닮아가며 진실에 귀 기울이려하는 주체의 미메시스적 능력의 소실입니다. 글을 쉽게 쓴다고 '소통'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정말로 심각한 소통의 단절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형식이 아니라 진실에의 관심, 그것이 진정한 소통에 필요한 관계의 비용입니다.

    "구제불능의 상황에서 빚어진 대표적 현상은, 닮아빠진 언어를 가지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개혁가가 그의 진실성에도 불구하고 마모된 범주들과 함께 그 뒤에 숨어 있는 사악한 철학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그가 분쇄하고자 하는 기성 세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거짓된 '투명성'은 신화의 다른 명칭에 불과하다. '신화'는 선명하게 밝혀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둠 속에 내버려두는 것이다. 예로부터 신화의 특징은 친숙성과 함께 개념화의 노고를 피하는 것이었다."-계몽의 변증법 서문 중에서
  • 이택광 2009/11/14 07:31 #

    폐부를 찌르는 댓글입니다.
  • 김원철 2009/11/14 15:02 # 삭제

    댓글에 링크를 달았더니 스팸으로 분류되네요. 블로그에 써서 트랙백 날렸습니다.
  • 아열대 2009/11/14 18:35 # 삭제

    닮아빠진->닳아빠진.
  • 2009/11/14 08:2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09/11/14 15:35 #

    하하 정말 무서운 동지입니다. 이런 동지야말로 진짜 동지이겠지요. 요즘 마음 상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너무 마음 쓰지 마시길. 님의 작업에 대해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 2009/11/14 13: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09/11/14 15:37 #

    동감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 계몽을 대중들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는 현실이겠지요. 그 상식의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전략적 사고를 해봐야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썰렁한당근 2009/11/14 15:22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전에 댓글 달았던 것이 생각나네요. 분석을 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면 쉬운 글쓰기가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다소 무례할 수 있었던 댓글을 썼습니다. 현상에 대한 글이 아니라 이러저러 하자는 선언에 가까운 글을 굳이 어렵게 쓸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어려운 말을 쓴다면 그에 합당한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말만 무겁고 복잡하지 실상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가벼우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지식인의 종언은 지식인의 뻘짓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과잉된 자의식에서 남발되는 문장들과 무책임한 발언들이 지식인의 종언에 크게 한 몫 했다고 봅니다. 어쩌면 지식인으로 자기 규정한 유사 지식인의 뻘짓 때문에 글에 대한 냉소가 커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상품은 잘 팔리는 것이 평균적 진리인 것처럼 좋은 글은 잘 읽히고 잘 소통되는 것이 진실입니다. 쉬우면서도 뜻이 분명한 글을 쓰도록 노력하는 것이 글밥을 먹는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자기선언에 지나지 않는 글에 과도한 수사와 개념을 사용하는 것과 사전지식체계의 차이에서 오는 불통은 분명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 이택광 2009/11/14 15:42 #

    무례하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뻘짓하는 지식인과 최대한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지식인을 구분한 능력을 갖춘 대중'이라는 말이 과연 논리적으로 성립 가능한지 모르겠군요. 그런 판단을 가능하게 만드는 그 대중의 지위는 도대체 무엇을 통해 규정될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대중이 알아먹을 수 있는 글'을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무엇이지 그것도 궁금하군요. 내가 지칭하는 인문학 오타쿠라는 이들은 대체로 인문학을 정치의 문제와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들끼리 은어들을 주고 받기 바쁩니다. 이런 이들을 찾아내서 한번 제대로 비판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모든 걸 정치화하려는 나 같은 사람을 붙잡고 뻘짓한다고 그러지 말고 말이죠.
  • 썰렁한당근 2009/11/14 16:15 # 삭제 답글

    '뻘짓하는 지식인과 최대한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지식인을 구분한 능력을 갖춘 대중'이라는 말이 과연 논리적으로 성립 가능한지 모르겠군요."

    일반적으로 성립할 수 없겠지만, 개별적인 글을 기준으로 보면 성립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상에 대한 분석에는 엄밀한 글쓰기가 요구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글이 현상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기선언에 불과한 글에 어려운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지요. 이런 점을 저는 뻘짓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타쿠를 비판하라고 말씀하시는 뜻은 무엇인가요? 그들이 대학에서 교수로 있고 강연을 하고 책을 내고 그러는 사람을 오타쿠라고 하는가 봅니다. 이택광 님. 교수,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분께 분명한 글쓰기를 요구하는 것이 이상한가요? 오히려 쓰레기 같은 오타쿠를 상대로 시간낭비하는 것이 이상하지요.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자부하시는 분에 지식인다움을 요구하는 게 이상한가요?
  • 2009/11/14 16:55 # 삭제

    일반적으로 성립할 수 없겠지만 개별적인 글을 기준으로 보면 성립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참 썰렁하군요. 자기선언에 불과한 글쓰기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궁금하군요.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에게 지식인다움을 요구하는 건 굉장히 이상합니다. 무슨 자격으로 그걸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열대님이 위에 쓰신 댓글을 인용하고 싶군요.

    "실제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의 학생은 이미 너무 '떠먹여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럴수록 자신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왜 그걸 요구하나요. 이상하지 않나요.
  • 썰렁한당근 2009/11/14 22:17 # 삭제

    바로 윗글을 가지고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제가 썰렁한지 썰렁하지 않은지 판단해 주세요.

    지식인의 종언을 논의의 터로 잡고 입론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저에게는 과도하게 보입니다. 잔뜩 부풀러 놓고 엄살을 피우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근대 학문의 성립과 작동방식을 조금만 고려해 보면 지식인의 종언은, 자본과 결탁한 권력에 지식인이 예속된 상황에서 오는 것이지 인터넷 문화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소위 사회에서 지식인이라고 인정받았던 사람들이 했던 작태들을 떠올려보면 왜 한국적 상황에서 지식인의 종언을 맞았는지 그냥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운찬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세대간의 지식 수준의 차이 때문에 소통의 어려움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에 지식인의 종언을 운운하는 것은 과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간단히 쓰고 가겠습니다. 제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세요.
  • 썰렁한당근 2009/11/14 22:47 # 삭제

    그리고 지식인이라고 자부하시는 분께 그만한 기대와 요구를 하는 것이 왜 이상한가요?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선생을 선생답도록 요구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저는 냥 님이 정말 이상해 보입니다. 자격이요? 어떤 자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냥 님은 평소에 글을 일반적으로 읽으시나요. 한번에 하나 씩 읽지 않고 일반적으로 통틀어서 읽으시는 분인가 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말이 그렇게 어려우신가요?
  • 이택광 2009/11/14 22:48 #

    썰렁한당근/ 나는 지식인이라고 자부하지 않습니다.
  • 썰렁한당근 2009/11/14 22:50 # 삭제

    예. 공연히 트잡이 하는 사람처럼 제가 보이게 되네요. 그럼 회의주의자라고 생각하면 되는 겁니까?
  • 2009/11/14 23:39 # 삭제

    유령같은 지식인이네요 ㅎㅎ

    기대하고 요구하는 건 꼭 부모에 대한 아이의 감정 같군요.
  • 썰렁한당근 2009/11/14 23:43 # 삭제

    웃음이 나오세요. ^^ 생각을 조금 해보면 웃을 일이 아닙니다.
  • 2009/11/15 00:08 # 삭제

    힘들어서 뭐에라도 기대고 싶으니까 기댈 수 있는 대상으로서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네요. 그 자리에 뭐가 들어가든,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어 보이는 것에는 무슨 요구를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요.

    그러지 마시고 좀 쉬세요. 쉴 환경도 못 만들 것 같으면 왜 자신이 그런 환경을 못 만드는지 고민해보세요. 기대지 마시고 자기를 단련해보세요. 대입 논술같은 느낌처럼 글을 쓰시긴 하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뭐가 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건 있잖습니까. 그걸 단련해보시라구요. 그러고 있으면 시간 참 잘 갑니다(별로 나쁜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니구요).
  • 썰렁한당근 2009/11/15 00:16 # 삭제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댓글 쓰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부풀리세요. 이러저러 인터넷 글을 읽게 되었고 댓글을 쓴 것인데요. 뭐 그리 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1년에 댓글은 한 두번 쓰는 편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단, 한번 댓글을 달면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니 다른 분들이 오해를 하실만은 하겠습니다.
  • 썰렁한당근 2009/11/15 00:31 # 삭제

    그리고 제가 빤한 단어로 나열하고 문장 구조가 단순하니 지식이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죠. 과연 그럴까요? 댓글들이 소통되는 방식을 보고 나름대로 연구해서 쓰는 단어와 문장 구조이니 너무 얕잡아 보지 마세요.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사태를 거짓없이 드러내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
  • 2009/11/15 00:33 # 삭제

    굳이 그걸 무슨 큰일이라고 말하실 필요가 있나요. 오해를 했다고 말하기는 참 쉽죠 ㅎㅎ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시는게 너무 귀엽군요 >ㅁ<
  • 2009/11/15 00:34 # 삭제

    ㅎㅎㅎ 부족해보인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왜 지레짐작하시나요.
  • 썰렁한당근 2009/11/15 00:38 # 삭제

    아니요. 단어로 '단순하다'라고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수능 논술이라고 말하셨잖아요.^^ 잘 아시면서, 모르시는 척 하십니까?^^
    그런데 평소에 글을 어떻게 읽으세요. 저는 한번에 한편 씩 읽으며 이해하고 분석하고 비평을 하는데요. 냥 님은 어떻게 하시나요.
  • 2009/11/15 00:45 # 삭제

    잘 알면서 모르는 척 하긴요 ㅎㅎ 수능 논술이라는 표현이 그런 식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해서 굳이 그렇게 말하실 거 있나요 - 구체적으로 이런 표현은 어떻게 저런 표현은 어떻고, 이런 건 이런 부분에서 지식이 부족하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왜 하필이면 그렇게 해석하시나요(무슨 수능 논술과 관련된 안 좋은 추억이라도 있나봐요)

    글을 어떻게 읽냐는 질문은 꽤 히스테릭하네요. 일년에 한 두번 밖에 댓글 안 다시는 썰렁한 당근님은 꽤 한가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채팅이라도 하지 않으시렵니까 메신저 쓰시는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 썰렁한당근 2009/11/15 00:54 # 삭제

    화나셨나요. 저런^^. 자 보세요. 이렇게 말씀하셨죠.

    "굳이 그걸 무슨 큰일이라고 말하실 필요가 있나요. 오해를 했다고 말하기는 참 쉽죠 ㅎㅎ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시는게 너무 귀엽군요 >ㅁ< "


    "ㅎㅎㅎ 부족해보인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왜 지레짐작하시나요. "

    왜 이렇게 굳이 말씀하시나요.
  • 2009/11/15 00:57 # 삭제

    말하시는게 너무 사랑스러워서요. 옆에 있었으면 끌어안아드렸을텐데
  • 썰렁한당근 2009/11/15 00:59 # 삭제

    ㅎㅎ 거부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글을 어떻게 읽으세요. 한편씩 읽으시나요?
  • 김원철 2009/11/14 16:44 # 삭제 답글

    이택광 선생님은 문체를 전략으로 다루시는 분이니 제 주장은 썰렁한당근님 댓글과는 다름을 밝혀둡니다. -_-; 다만, 어휘 수준에서는 좀 더 쉽게 쓰셨으면 좋겠어요. 학술용어 말고 그냥 한자어 같은 것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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