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에 대한 비판? 단상

인터넷에 보면 냉소주의를 비판으로 착각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라캉정신분석학에 대한 '잡설들'도 이런 종류에 속하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한국에서 라캉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 치고 라캉을 제대로 읽은 사람을 못 봤다. 이들이 라캉이라고 비판하는 경우는 대부분 프로이트주의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프로이트주의나 융의 입장에서 라캉을 '이단'으로 취급하는 '풍문'을 되풀이하는 수준이다. 물론 두 부류와 다르면서도 겹치는 해괴한 이공계형 '인정투쟁'이 없지 않아 있지만, 사소한 찻잔 속 미풍일 뿐이다. 라캉주의가 인터넷 잡설 몇 마디로 그 학문적 토대가 무너질 리도 없고, 이 세상에는 아직도 현명한 사람이 바보들보다 많기 때문이다.

라캉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는, 정신분석학자가 마치 '의사'처럼 환자의 정신상태를 감정해서 '처방'을 내린다는 '상상력'이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근대적 임상치료의 관점에서 무의식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인데, 어떻게 라캉에 대한 비판이 하나 같이 "라캉주의는 비과학적인 치료방식"이라는 결론으로 귀결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라캉을 읽지 않았거나, 설령 읽었더라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경우라고 하겠다. 정신분석학은 치료라기보다 치유에 가깝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약간의 어폐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치유라는 건 일종의 대체의학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가 아니라 치유라고 해도 결국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을 '치료'라는 패러다임에 구겨 넣어서 비난하는 각다귀들을 잠재우기 어렵다.

라캉은 정신분석학의 한계를 분명하게 명시했는데, 이 문제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학이 만병통치약일 수 없다는 걸 라캉 자신도 인정하고 있는 마당에 '임상실패'를 예로 들어서 라캉주의를 매도하는 건 실소를 자아낸다. 라캉주의는 임상을 대체하거나, 임상을 자임하는 것이 아니라, 임상이 실패하는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분석가의 윤리는 '분석의 끝'을 결정하는 순간에 출현한다. 말하자면, 정신분석의 문제는 윤리의 문제이지 임상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라는 제도적 직업에 불과한 존재가 분석주체를 '환자'라고 명명하면서 증상을 억압하기 위해 효과도 확실하지 않는 약물을 처방하는 '권위'에 대해 라캉주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문제제기는 단순하게 '의사'라는 특정 존재에 대한 의심을 넘어서서, 의료제도, 또는 임상의학이라는 근대적 신화, 더 나아가서 이런 신화를 지탱시키고 있는 자본주의적 상징질서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라캉주의의 혁명성은 빛을 발한다.

솔직히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라캉주의를 비판해서 무슨 소득을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라캉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에 안존하려는 '강단 자유주의자들'의 말과 이런 논리가 어떻게 다른가? 학계에서 라캉의 존재감을 주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줌도 되지 않는 진지한 라캉주의자들이 몇몇 얼치기 인터넷 논객들 사이에서 그렇게 '강력한 논적'으로 실체감을 획득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라캉주의에 대한 반감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자기 욕망을 분석하기 싫어하고 증상의 쾌감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속셈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건 라캉의 수용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처럼 초점 없는 비판을 넘어선 진정한 비판의 담론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건 학계의 몫이지 인터넷의 역할이 아니다. 인터넷을 무슨 '소통'의 장으로 착각하는 자유주의적 판타지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소통은 없다. 오직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자기애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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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는 현명한 사람이 바보들보다 많다 2009/12/30 00:18 #

    라캉에 대한 비판? (이택광) 인터넷 상에서 이뤄지는 라캉주의에 대한 비판에 이택광이 반박(?)을 내놓았다. 이 글은 하나면 끝? 매우 적은 표본에 기반한 라캉주의식 글쓰기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왜곡된 현실인식, 자의적인 개념 사용, 근거와 논리의 부재.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두 문장이 하나의 글에 공존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두 부류와 다르면서도 겹치는 해괴한 이공...... more

  • Lacan... 2010/02/06 22:35 #

    라깡이고 뭐고 그냥 이거하나면 병 투더 신 인증. _-_; 그러나 저거 저렇게 써도 뭔소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기도 하긴 함. 하아......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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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12/28 14: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s 2009/12/28 16:58 # 삭제 답글

    라캉이 국내에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에 들뢰즈다 포스트페미니즘이다 안티 라캉주의들이 득세한 탓도 좀 있는거 같습니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소위 안티라캉 혹은 정신분석가들이 많은데 대부분 들뢰즈주의와 페미니즘과 공명하는 경우가 많고...정작 라캉은 커녕 정신분석관련 텍스트 한줄도 안읽어본 사람이 대부분이더군요...

    그런데 치료와 관련한 문제는 물론 선생님이 말씀하신데로 임상의 실패를 라캉주의의 부족함으로 돌리는 것도 우습지만....그걸 또 임상 무의론이나 라캉의 이론 속에서 임상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도 웃기다고 봅니다. 주로 슬로베니아 학파쪽 텍스트만 어설프게 읽은 얼치기 라캉주의자들이 이런 경우가 많더군요..물론 저도 그런 얼치기 라캉주의자중에 하나입니다만...
  • 이택광 2009/12/29 14:47 #

    공감 가는 말씀입니다. 라캉의 이론에서 임상이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 파악하는 태도는 항상 경계해야겠죠.
  • 2009/12/28 18:4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09/12/29 14:50 #

    subconscious라고 부르든, 뭐라고 정의하든, 어쨌든 우리에게 언어로 재현할 수 없는 어떤 '충동'이 있고, 이게 우리 삶을 밀고 가는 건 사실이죠.
  • 크르크르 2009/12/28 18:56 # 답글

    선생님께서 적당한 라캉 개설서를 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 이택광 2009/12/29 14:51 #

    라캉만은 아니고, 내년에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라는 이론책을 낼 계획입니다.
  • 적절한 라캉 개설서 2009/12/29 04:56 # 삭제 답글

    적절한 라캉 개설서는 나와 있는데, 이건 뭐 오역을 넘어서 악역 이더군요...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아니카의 책 말이죠. 이 책이 다시 제대로 번역됐으면 좋겠네요.
  • postcard 2009/12/29 09:57 # 삭제

    잘못 번역된 번역서가 끼치는 해악에 대해서는 어떤 핑계도 구차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그러나 번역서가 수용되는 역사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이나 라캉이 무엇인지도(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시기에 나온 문예출판사의 책들--라캉 원문을 처음 소개한 영어 중역 발췌본 '욕망이론'도--은 그것에 비록 오역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소명감과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번역을 한번이라도 해보셨다면, 번역문을 따라 그 번역이 나오기까지의 고뇌를 따라가보는 수고로움을 한번이라도 해보셨기를 바랍니다.
    물론 오역이 있다면 '다시 제대로 번역'되기를 저 역시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그러한 오역이라는 둘러가기, 헤매기의 과정 역시 학문의 수용 방식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100%원전에 기초한 맞는 번역이 있고, 그것만이 옳다는 식의 '로쟈식 번역비판'은 납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저의 생각이 턱없는 '동문선'식 오역을 용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번역에 대한 노고를 오역에 대한 폄훼 정도로 깎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의 이런 번역에 대한 생각은 야나부 아키라의 <번역어 성립사정>(일빛)에 터한 것입니다.
  • 이택광 2009/12/29 14:51 #

    postcard님의 생각이 번역에 대한 저의 생각과 일치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pinhead 2009/12/29 17:08 # 삭제 답글

    근래에야 비로소 정신분석학 등 심층심리학에 대한 색안경을 벗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습게도 미국식 정신질환 진단체계인 DSM의 문제점을 깨닫고 난 뒤의 일이니 돌아도 한참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요즘은 먹고사니즘으로 인해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자리 잡힐 때까지 아무래도 길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글쎄... 상대하기 제일 괴롭고 힘든 사람들은 '환자'가 아니라 역시 저와 같은 의사들입니다. 정신의학은 이제 워낙 견고하게 생물학적 치료에 경도돼 있어 임상의사들에게 정신분석학이란 그저 농담 같은 게 되어버린 지 오래지요. 아무래도 국내에서 정신분석학이 임상적인 정착을 하지 못한 때문에 더더욱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듯합니다. 치료는 쉬워도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역설이 가능한 것이 정신의학계의 현주소입니다. 아무튼... 프로이트와 융조차도 백안시당하는 현실에서 라캉까지 제대로 수용되길 기대한다는 건 아무래도 당분간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뿐입니다.
  • 이택광 2009/12/30 11:24 #

    그래도 pinhead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죠. 새해에 모든 문제가 잘 풀리기를 기원합니다. 그건 그렇고 시간 나실 때 한번 뵈어요. 요즘 근황도 듣고 싶고, 함께 나눠볼 얘기도 있고 그렇습니다.
  • pinhead 2009/12/30 16:25 # 삭제

    감사합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장래 희망'이었던 한량이 돼 갖구선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쓸 팔자는 못 될 것 같습니다. 자리를 잡으려면 (괴로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임상 경험을 더 쌓아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스펙 쌓기에 여념 없다는 20대 친구들 얘기는 제게도 해당되는 얘기인 듯합니다. ^^; 내년 4월부터는 시간적 여유가 생깁니다. 지금은 주말에는 그래도 시간 내는 게 가능하고요. 아무래도 제가 올라가기는 힘들 것 같고, 거꾸로 여기 내려오셨는데 혹 생각 나시면 언제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제 이멜 주소들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내공이 바닥을 치고 있는 데다,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고 매일 '난 돌대가리'라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선생님 만나면 뭐라도 주워듣고 자극받을 만한 게 생길지 모르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과 관련하여 생각나는 게 한 가지 있어 말씀드리면... 임상의사들에게는 어쨌든 중요한 것이 치료 효과입니다. 이론이 아무리 정교하고 그럴 듯해도 실제 효과가 없거나 혹 있어도 효과가 적다면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지요. (믿지 못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의사 사회에는 그래도 환자의 목숨 가지고 장난칠 수는 없다는 윤리적 대전제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아무튼 거기다 의료보험 청구 문제 및 시간적인 제약, 그리고 당장 나타나는 항정신병 약물이나 신경이완제의 치료 효과(?)에 압도당하다 보니 정신분석학은 치료 도구로서는 매우 비효율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보통입니다. 치료 적용 대상도 제한돼 있고요. 이러한 딜레마로 인해 적어도 한국의 실제 임상에서 분석 치료가 제대로 정착되기는 매우 힘듭니다. 앞으로도 '매우' 힘들 것이라 전망합니다. 색안경을 벗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과문한 탓인지 정신분석학이란 이미 흘러 지나간 과거의 것, 요컨대 '의미없음'이 돼 버린 게 아닌가라는 서글픈 생각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 우오오오 2009/12/30 14:20 # 삭제 답글

    과연 라깡하는사람답군요....
  • 우오오오 2009/12/30 14:21 # 삭제 답글

    아이추판다님의 라깡까는 글들에는 제대로 반박도 못하는주제에... 과연.
  • 이딴소리를 진지하니 2009/12/30 14:22 # 삭제 답글

    라캉주의에 대한 반감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자기 욕망을 분석하기 싫어하고 증상의 쾌감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속셈이다. 라캉주의에 대한 반감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자기 욕망을 분석하기 싫어하고 증상의 쾌감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속셈이다. 라캉주의에 대한 반감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자기 욕망을 분석하기 싫어하고 증상의 쾌감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속셈이다. 라캉주의에 대한 반감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자기 욕망을 분석하기 싫어하고 증상의 쾌감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속셈이다. 라캉주의에 대한 반감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자기 욕망을 분석하기 싫어하고 증상의 쾌감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속셈이다. 라캉주의에 대한 반감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자기 욕망을 분석하기 싫어하고 증상의 쾌감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속셈이다.
  • adsjfk 2009/12/30 14:22 # 삭제 답글

    그나저나 라캉주의가 "인터넷 잡설" 몇 마디로 무너지지는 않죠. 이미 학문적으로 무너졌잖아. 오히려 인터넷 잡설 몇 마디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해야겠지 ㅋㅋㅋ
  • asdgasg 2009/12/30 14:23 # 삭제 답글

    이미 다 망가진걸 붙잡고 있으면 즐겁나요?
  • 2009/12/30 15:28 # 삭제 답글

    1. 사실 라캉은 일단 번역부터 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부만 번역된 중역본(권택영 외)이라든지 개설서(르메르) 외에는 자료를 본 적이 얼마 없네요. 회사에 묶여 있어 들이파지 못하는 상황도 있지만, 에크리나 세미네르 같은 1차 자료가 제대로 구비가 되어 있지를 않으니(서울대 도서관에 에크리가 한 권 있던가......),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줄어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1-1. 그러고 보면 라캉 비판은 도대체 무엇을 읽고 진행이 되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2. 그래도 누가 전에 라캉이 허수 i를 가져다 팔루스를 설명해 놓은 부분을 (누가 라캉 까려고 옮겨다 놓은 블로그에서) 읽었을 때의 충격은 좀 컸습니다. 아니 이 사람 수학 공부를 어떻게 한겨... 하는 느낌이랄까요......
    2-1. 그래도 “음, i를 그런 상징으로 쓸 수도 있긴 할 거야.” 하면서 생각해 보면 또 수용 가능하기도......

    3. 그러고 보면 번역서는 여러 번 나오는 게 좋은 듯합니다. 다른 번역과 참고하여 볼 수도 있고,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볼 수도 있고 말이지요(그러나 라이센스 독점 계약의 시궁창......).
    3-1. 그건 그렇고 2006년 경에 담배 피우다 흘려 들은 이야기인데, D출판사는 역자에게 돈과 시간을 아주 박하게 주는 경향이 있답니다. 공들여 번역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있다는 건데, 지금은 좀 나아졌으려나 모르겠네요.
  • 중간자 2009/12/30 15:35 #

    그 서울대 도서관에 있는 에크리는 영역본입니다. 확실히 라캉은 제대로 번역조차 된 적이 없죠.
  • ... 2009/12/30 19:11 # 삭제 답글

    굉장히 감명 깊네요. 인터넷에 소통은 없고 끝없는 자기애만 있을 뿐이라는 말씀이...
  • 빵꾸똥꾸라는 대상a 2009/12/31 00:52 # 삭제 답글

    라캉주의에 대한 반감은 궁극적으로 욕망의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방어에 불과하다. 자기 욕망을 분석하기 싫어하고 증상의 쾌감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속셈이니, 라캉에 대한 비판 마저도 라캉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겠군요.

    우리들은 이미 라캉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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