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에 대하여 단상

인문학과 사회학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겹치는 부분들이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독일의 변증법 전통에서 이 문제는 '개념'(Begriff)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인문학에서 개념은 사유의 모순을 드러내는 매개이지만, 사회학에서 이것은 모순 없는 세계의 반영을 의미한다. 루카치가 자신의 소설비평들을 'Soziologie'라고 가끔 언급한 건 이 때문이다. 루카치에게 소설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사회를 이해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 것이었기에 사회학적이라고 봤던 것이다.

루카치의 시절에 사회학은 신생학문이었고, 베버나 짐멜이 추구하던 방법론과 무관하지 않았다. 학자들은 이들에게 영향을 준 유력한 철학사조로 신칸트주의를 거론하기도 한다. 신칸트주의는 '칸트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 하에 칸트의 명제들을 근대과학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사상운동이기도 하다. 신칸트주의는 감춰져 있는 유럽현대철학의 기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론보다 인식론을 우위에 둔다든가, 사물의 차이에 천착해서 세계를 가치체계의 총체로 본다든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신칸트주의에서 발원한다.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인문학은 사회학과 달리, 사회를 경험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토대로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지 않는다. 인문학의 목적은 사유 자체이다. 말하자면, 인문학은 예술이나 사랑처럼, 사회에 속하지만 그 사회의 가치체계에 균열을 초래하는 '진리'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다. 한국 사회에서 종종 목격하는 인문학에 대한 조롱은 이런 인문학 고유의 무목적성에 대한 몰이해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문학적 문화비평은 그 자체로 무슨 정보나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이미 모든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 정보와 지식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소녀시대에 대해 논하는 건 소녀시대 자체를 '이해'하거나 '품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던지는 개념들은 그 개념에 소녀시대를 끼워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을 통해 소녀시대를 사유할 틈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소녀시대를 이해하는 방식은 이미 '합의된 가치체계' 내에서 결정되어 있다. 이 가치체계는 곧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윤리이다. 욕망을 중심으로 쾌와 불쾌를 나누는 윤리 말이다. 이 합의적 윤리를 깨는 것이 바로 개념이다. 이렇게 이질적인 개념은 우리에게 대상을 낯설게 바라볼 간격을 제공한다. 나에게 문화비평의 본령은 사회학적이라기보다 인문학적인 의미에서 개념을 사물의 질서에 던져 넣는 행위이다. 그렇게 일어난 파문에서 우리는 돌연 다른 풍경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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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비적 개념 사용에 대해, 그리고 사회과학 연구 프로그램에 대해 다시 몇 마디 2010/02/26 05:05 #

    음. 어쨌든 논쟁스러운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 이택광 블로그의 공이지만, 그것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써먹지도 않는 듯 하다는 것은 괴악한 일이다. 괴악함을 줄이기 위해 몇 마디 남겨두고 싶은 밤이다. 하여튼 쓸만한 공격이 많이들 들어갔으니 뭐 짧게 합시다.1. 개념의 유비적 사용에 대해.1.0.1 비슷한 것들에 대해 텅 빈 기표라는 일부 업계에선 라깡의 표현... more

덧글

  • erte 2010/02/07 17:24 # 삭제 답글

    뭐랄까... 한국 문학교육의 폐해가 아닐까 하는생각이 듭니다.

    중고등학교때 "이 시에서 이 단어는 이러이러한 것을 의미한다 외워라" 라는 식으로 비평이나 해석에 대한 개념을 받아드리고 자란 사람들이라, 비평이나 해석에 대한 개념을 그렇게-끼워 맞추기로- 알 수 밖에 없게되고, 또 본능적 거부감(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을 가지게 된게 아닐까 합니다.
    사실 저도 비평의 비교적 올바른 개념을 여기 오게 되면서 세우게되었으니까요 ^^;;
  • oh! 2010/02/07 17:29 # 삭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촌스러운 교육입니다.
    국어시간..이육사 님 詩 청포도 가져다놓고 여기서 청포도가 어떤 의미라고?
    읽는 눈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게 육년에서 십년을 배워도
    이게 뭔 의미지 하고 시집 던져버리게 되죠
  • montgoose 2010/02/07 19:40 # 답글

    곰곰히 읽고 또 읽는데, 잘 모르겠네요. 이해는 가는데, 제가 이 글에 개념을 끼워넣을 틈이 없네요.
    다루는 주제가 제 전공과 비슷하지만, 또 동시에 너무 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벌써 머리가 굳어버렸을지도 모르구요ㅠ
    다른 풍경들 재밌게 보고 갑니다.
  • rr 2010/02/07 23:17 # 삭제 답글

    문제는 인문학적 방법론을 일종의 '사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죠.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뭐 사실 '사기'가 맞기는 맞습니다만.

    재밌는 사기죠.
  • theabler 2010/02/08 22:46 # 삭제 답글

    선생님 블로그 잘 보고 있습니다. 종종 도움 많이 얻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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