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세상읽기

어제 1/n세미나 This Content/Discontent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오실 줄 몰랐는데, 시간에 쫓겨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한 마디로 '허걱'이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오실까 걱정이라던 김한민 편집장의 '예감'이 적중했다. 60명 정원인 카페 안은 발디딜틈이 없었고, 자리를 못 잡은 분들은 바깥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서 세미나를 경청했다. 특별히 홍보를 하지도 않았고, 모임을 조직하지도 않았지만, 오직 '지금 우리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아무나'가 작은 공간으로 모여들었다. 오래 꿈꾸었던 일이 현실화하는 느낌이다.

유럽의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제일 부러웠던 것은 이렇게 카페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배움의 자리'였다. 수많은 책들이 토론되고, 주제들이 오가는 그 공간이 곧 나의 학교였다. 이 학교를 한국에서 실현해보자는 것이 김한민 편집장과 내가 의기투합한 아이디어였다. 이제 그 첫발을 내딛었으니, 다양한 방식으로 이 학교를 '운영'해나갈 생각이다. 오직 '앎의 성찬'을 위해 한국 사회에서 '우리의 문제'를 고민하는 '생각들'을 불러들여서 함께 해볼 생각이다. 이렇게 몇 년 하다보면, 무엇인가 '무늬'가 생기지 않겠는가? 제도에서 비평을 탈주시키고, 대학에 갇혀 있는 인문학적 사유를 '저자거리'에 풀어놓는 작업이 이 세미나의 목적이다. 매달 주제는 바뀌지만, 그 형식은 반복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새로운 것의 발명'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어제 세미나에서 다루었던 내용에 대한 간략한 요약문이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매히님께서 강의 동영상도 촬영하셨으니,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조만간 링크를 걸어놓을 생각이다.


아름다움은 합의의 산물이다. 지금 우리에게 아름답다고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둘러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합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꿀벅지’와 ‘초콜릿복근’을 보자. 소녀시대나 ‘짐승돌’은 어떤가? 이들이 보여주는 ‘몸’은 단순한 살덩어리일 수 없다. 자본의 형식을 통해 만들어진 ‘인공의 주형성’이 여기에 있다. 이 주형성에서 우리는 몸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단적 집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집착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몸의 아름다움은 쾌락적인 판단이다. 이것은 감정과 정서에 근거한다. 감각적인 판단을 거쳐서 쾌인지 불쾌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쾌와 불쾌를 나누는 것은 선악을 판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욕망에 근거한 윤리적 판단을 통해 대상을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으로 구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얼짱, 몸짱 신드롬을 거쳐서 오늘날 우리가 목도는 ‘성형열풍’은 모두 이런 윤리적 판단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실제로 아름다움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배운 것’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사회적 합의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조선시대의 <미인도>에 담겨 있는 미인의 기준이 지금 우리에게 통용되고 있는 그것과 다른 까닭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우리 내면에 선험적으로 위치하게 된 것이다. 인상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지금 누구도 인상파의 그림을 보고 이상하다거나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19세기 파리에서 관객들은 인상파의 그림을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졸도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아름다움은 학습의 산물’이라는 진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예술교육에 대한 철학들이 나온다. 예술을 통해 사회를 계몽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일정한 사실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쉴러나 러스킨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러스킨은 문자보다도 시각이미지를 더 투명한 것으로 파악해서 미술교육을 강조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도 그림을 그릴 수는 있다”는 진술은 예술교육을 계몽의 문제와 결합시켰던 러스킨 특유의 관점을 드러낸다.

이렇게 예술을 학습의 산물로 본다면, 미학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어떻게 인식을 바꿀 수 있는가? 칸트 식으로 말하면, 무관심한 판단이 여기에 해당한다. 감각적 판단과 윤리적 판단을 넘어선, 아니 이런 이해적 관계와 다른 무관심한 판단은 인식의 감각을 바꾼다. 이것이야말로 말로 ‘낡은 감각’에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는 계기이다. 무관심한 판단이야말로 미학적인 판단인데, 여기에서 윤리적 위계에 따라 판단하던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너진다. 이런 변화의 의미를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한 사람이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이다.

랑시에르에게 미학적 판단은 하나의 차원으로서, 정치적인 것을 생성한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적인 것은 ‘정치-치안’과 다른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정치에 내재하는 과잉의 순간이다. 랑시에르의 주장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에게 정치적인 것은 존재론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미학적 차원은 존재의 구성이다. 물론 이 구성은 일시적이고 가상적이지만, 실재의 작동이기도 하다. 랑시에르와 들뢰즈가 만나는 지점이 여기에 숨어 있다.

자본주의의 상품화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 속삭인다. 아니 역으로, 욕망의 판단-쾌락원칙에 들어맞는 ‘아름다움’만을 자본주의는 상품화한다. 기본적으로 상품은 합의된 아름다움을 반복한다.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의 휴대폰들은 내용물을 전혀 바꿀 필요가 없다. 오직 ‘디자인’만이 바뀐다. 그러나 이런 반복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새로운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저항이다. 새로운 것은 합의된 것들에 대한 의심을 통해 발생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합의를 깨트리는 새로운 미학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의 다른 차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덧글

  • 도시랍 2010/04/03 09:58 # 삭제

    mbc 공감특별한세상 좀전 뒤태美를 살려라~ U라인열풍 엉짱 방영 했습니다.
  • 해달 2010/04/03 10:36 # 삭제

    안녕하세요. 김선문입니다. 어제 인사는 나누지 못했지만, 반가웠습니다. http://AMUZ.kr 로 들어와 보시면 첫 화면에서 "지금 우리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3월 25일부터 받아본 짧은 글줄의 생각들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블랙 스콜라 2010/04/03 11:50 # 삭제

    흑 T-T 그런데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개최되지 않을까요? 상경의 고생을 하더라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항상 글을 읽다가 '벅참'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솨.
  • 기마 2010/04/03 12:06 # 삭제

    정말 흥미롭고 속 시원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정리 되지 않은 생각들이 집에 돌아오면서 정리가 되며 질문도 생기더라구요^^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주제를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 쑥대밭 2010/04/03 14:07 #

    헉 다음 기회엔 저도 찾아보고 싶네요
  • 으잌 2010/04/03 16:03 # 삭제

    오 힘들것 같다더니 촬영외 되었군요!
  • 이택광 2010/04/03 17:11 #

    따로 계획을 한 건 아니고, 이 분이 자발적으로 촬영을 하셨습니다.
  • 잇글링 2010/04/03 19:07 # 삭제

    [잇글링] jellyfish님이 이 글을 [지금이 아름답다]의 아랫글로 연결하셨습니다. (보러가기 : http://www.itgling.com/spot/15756 )
  • 잇글링 2010/04/04 02:16 # 삭제

    [잇글링] 이 글이 [궁극의 랍스타]님에 의해 스크랩되었습니다.(보러가기 : http://www.itgling.com/spot/15756 )
  • 쑥대밭 2010/04/04 03:24 #

    (redz!) 오늘 한겨레21봤는데 노땡큐에 연재 시작하셨더군요 ㅎㅎ 인쇄된 지면으로 읽으니 블로그와는 다른 맛이~
  • 이택광 2010/04/04 07:32 #

    네,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 고운 2010/04/04 14:18 # 삭제

    어쩌면 사람들은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나 자리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연한 기회였지만 참석해서 즐거웠고, 그날의 강의는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시작이 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ㅎㅎ
  • 아비아니짜 2010/04/04 15:46 # 삭제

    참석하진 못했지만, 앞으로 그런 세미나가 개최되면 꼭 가야겠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면, 아름다움에 컴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듯이 사람들은 반응하더군요.
    다이어트와 성형, 자본주의의 거대한 형식인 백화점에 대해 비판만 하면, 마치 갖지 못해서 비판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아름다움에 대한 비판은 현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미인들이나, 초콜렛 복근을 지니고 있는 남자들이나 비판해야 인정해주는 것 같습니다.
  • tedy 2010/04/05 10:14 # 삭제

    정말 가고 싶었는데, 너무 멀어요

    강남으로만 넘어와도 좋으련만.

  • 격암 2010/04/09 08:25 #

    강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위의 요약은 고맙게 잘읽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공자 세미나가 아니라면 칸트나 랑시에르같은 이름들을 언급하는 대신 그냥 이택광의 언어로 이택광의 철학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일반대중에게 너희도 나만큼 읽으세요라고 하려면 전문가가 뭐하러 있겠습니까. 전문가는 자신이 아는 것을 녹여서 자신의 언어로 우리의 언어로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데 그 대중적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칸트나 랑시에르를 읽지 않고 그저 이택광만 읽어도 되도록 하는 것이 전문가로서 사회적 지원을 받는 사람의 역할이 아닐까요. 물론 정도 문제이긴 합니다만.
  • 이택광 2010/04/09 08:41 #

    좋은 지적이십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는 칸트나 랑시에르를 원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날 세미나를 해보고 님이 지적하신 문제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긴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그렇게 진행을 할 생각입니다. 이런 문제와 별도로 나이와 관련한 뿌리 깊은 관습도 있죠. 40대 학자가 자기 목소리를 낸다고 하면 아마 반기는 쪽보다 '건방지게 벌써?' 이런 얘기를 더 많이 듣게 될 겁니다. 사실 이런 걸 두려워하는 내가 아닙니다만, 세상을 혼자 사는 게 아닌지라...-_-;;
  • 격암 2010/04/09 09:51 #

    답변감사합니다. 또한 공감하신다는 말씀을 들으니 기쁩니다. 분위기를 이기는 모난 돌이 되기는 힘들이기는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틀려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더 옳다라는 풍토가 좀더 퍼졌으면 합니다. 그렇지 못할때 강의의 내용이 현대철학이라도 그 강의의 분위기가 진짜로 강의하는것은 계몽주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에 모든 것을 의존하던 서양중세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듭니다. 이선생님강의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그렇게 되기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권위로 가치있는 것을 찾는 것이 되고 마니까요. 성서대신 칸트나 랑시에르 책을 들었을 뿐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이런 말씀은 안드려도 다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잇글링 2010/07/14 23:26 # 삭제

    [잇글링] jellyfish님이 WALLFLOWER님의 [1/n 세미나 영상]을(를) 아랫글로 연결하셨습니다. (보러가기 : http://www.itgling.com/spot/21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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