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같던 서울광장이 열렸다. ‘서울시장의 개인정원’이라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하면서 시민단체의 집회를 불허했던 험악한 과거는 어디로 사라지고 갑자기 상냥한 표정으로 공권력이 길을 비켜줬다. 긴가 민가 했지만, 역시나 그랬다. 누군가 온다고 하니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가놓았던 빗장을 열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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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일 '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다' 집회가 서울광장에서 열렸지만 광장은 여전이 닫혀 있었다ⓒ권순택 |
사연인즉슨 유엔에서 표현의 자유를 감독하는 보고관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시민단체들이 이때를 맞춰서 일제히 집회신청을 한 것이었다. 지난 6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허가를 해줬다는 것인데, 허가를 받고도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쉽게 허가해줄 수 있는 것을 왜 해주지 않았는지 당연히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다. 그냥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넘겨버릴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곰곰이 짚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생각거리가 여기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번 일은 서울광장의 집회를 불허한 이들도 자기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건이다. 말하자면 이들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확신범들’인 셈이다. 둘째, 이번 일로 인해 정부와 집권여당, 그리고 서울시가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공권력’을 전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국민의 뜻에 따라서 권력을 이양 받은 이들이 국민 몰래 곳간에서 쌀가마니를 빼돌리다가 들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것은 특정 사회에서 갈등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 물론 치안의 위협이 발생할 때 국가권력은 군대나 경찰의 모습으로 출현해서 과잉의 요구를 제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불허한 행태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더 조장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꼴이다. 이를 위해 부당하게 국가권력을 사용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겠다.
서울광장에 집회를 불허했던 논리는 ‘만인의 것’인 광장을 특정 시민단체들이 점유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핑계였는데, 이런 발상 자체가 참으로 황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단체와 국민을 분리해내는 것도 그렇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갈등이라는 일반적인 정치의 조건을 자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서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렇다.
국가는 원칙적으로 시민사회와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계의 문제를 특정 시민단체의 ‘이념성’으로 환원시켜서 속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서울시나 정부의 태도였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서울광장에서 오늘은 평화롭게 거닐며 꽃구경을 하는 ‘선량한 국민들’이 갑자기 ‘쾌락의 평등주의’를 주장하면서 시위를 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광장의 역할이고 시민의 정체성이다. 국가와 갈등하지 않는 시민사회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결국 광장의 집회를 불허하겠다는 것은 시민사회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세력들을 포용할 줄 모르는 강박증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똘레랑스는 사실 좌파의 주장이라기보다 우파의 주장이다. 좌파는 연대를 말하지, 너도 좋고 나도 좋다는 나이브한 호혜주의를 별반 반기지 않는다. 똘레랑스가 가능하려면, ‘밉지만 그도 프랑스인이요’라는 도저한 애국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가들에게 이런 묵직한 아량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문화부장관이라는 사람이 풍자의 가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자기를 놀린 것으로 간주되는 네티즌을 고소했다가 철회하지를 않나, 여하튼 평소에 ‘국격’을 떠들어대던 입술과 너무도 다른 행동들을 서슴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결론적으로 이들에게 ‘국격’이라는 것도 우리의 힘을 모아 만들기보다, 외부의 시선에 맞춰서 평가가 이루어져야하는 것에 불과하다.
2008년 촛불 때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할 것을 시사하면서 엄청난 엄포를 놓았는데, 물대포만 사용했지 최루탄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 까닭도 한국의 집회에 관심을 가진 엠네스티의 활동을 의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도 국제적인 시선이 두려운 것이다. 그만큼 세계는 부드러워져서 유동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세계에 전송된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세계의 시선 앞에 세워야한다.
‘철없이’ 이 모든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나 오세훈 시장 탓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이들이 좀 세계화의 국면에 제대로 적응을 못한다는 말은 하고 싶다. 막을 것을 막아야하고, 하지 말아야할 것을 금지해야한다. 그런데 막지 말아야할 것을 막고, 해야 할 것은 금지하는 것은 남들에게 비웃음을 살 뿐이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과학적으로 제시해서 주변국들을 ‘설득’시키겠다고 호언을 늘어놓고 있지만, 자국민조차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하는 조사결과를 국제사회에 내놓겠다는 대담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부나 서울시는 이제 눈을 바깥으로 그만 돌리고 안을 좀 둘러보기 바란다. 꼭 유엔에서 무슨 보고관이 오면 그렇지 않은 척 굴지 말고, 평소에 제대로 기본부터 차근차근 지켜나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우파의 미덕이 아니겠는가. 좌파가 우파를 걱정해주는 사회는 한편으로 바람직하지만, 또한 그만큼 우파가 제대로 역할을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파가 잘해야 좌파의 자리도 생기고 목소리도 선명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파가 갈팡질팡 중심을 못 잡으니 이 모양인 것 아니겠는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것, 이건 근대국가의 상식이다. 이제 우리도 ‘정상적인 근대국가’ 한번 제대로 가져볼 때가 되었다. 더 이상 표현의 자유 ‘보고관’ 정도에 쪼는 정부나 서울시가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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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에 게재되었음.





덧글
장학사 오신날, 공감입니다.
어쩐지 갑자기 광장 개방한게 수상하더니 이런 일이 있었군요.
2010/05/11 19:13 #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