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계기는 2008년 촛불이었을 것이다. 보수언론들이 광우병에 대한 과장된 풍문을 이 명칭으로 부르면서 발단이 된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찾아보면, 괴담은 “괴상한 이야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현실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은 내용을 말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서 괴담이라는 말은 앞서 거론한 사전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번 천안함 침몰사고에 대한 합동조사단 발표를 믿는 비율이 72%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군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 태도가 음모론에 경도된 탓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얼마 전 한 보수신문이 2008년 촛불의 원인으로 광우병 괴담을 지칭하면서, 일부 전문가와 지식인의 경거망동으로 쓸모없는 일에 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일갈한 맥락과 비슷하다.
과연 이런 생각은 적절한가. 괴담과 괴담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준의 자의성은 둘째치고라도, 정작 문제는 괴담이나 음모론에 대한 지나친 경계의식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적개심을 자연스럽게 인준하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찬반을 두부 자르듯이 나누어서 반대의견을 무조건 괴담이라고 치부해버리는 데서 매카시즘의 광풍마저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천안함 발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론 분열상을 개탄하기에 앞서 과연 정부와 군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도록 처신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원래 괴담이나 음모론이라는 것은 공공영역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공공영역이라는 것은 자유롭게 사회 구성원들이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공간을 의미한다. 적과 아(我)를 선명하게 갈라쳐서 한쪽을 타도 대상으로 보는 정치영역과 대조적인 것이 바로 공공영역이다. 공공영역은 국가나 민족의 개별 구성원에게 자기 정체성을 부여해서 공동체라는 일반성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정체성은 전체에 대한 인식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정체성이 없다면 개별적인 것은 물론 전체적인 것도 알아볼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일부가 괴담이나 음모론을 통해, 국가나 정부가 제공해주지 못하는 정보를 파편적 인식을 토대로 짜맞춰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인터넷을 괴담이나 음모론의 진원지로 지목하면서, 자유방임적인 인터넷의 개방성을 그 원인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않다. 현실이 적과 아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힌 정쟁의 영역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인터넷이 풍문의 통로 노릇을 하는 것이다.
디지털매체의 파괴력은 ‘복사의 용이성’에서 기인한다. 원본을 복사하는 순간, 그 내용은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오는 결과를 초래한다. 원본의 내용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옮겨질 때 필연적으로 ‘왜곡’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토론과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게 디지털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현재의 정부와 보수언론은 이런 상황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이 내세우는 ‘과학적 증거’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모두 괴담이나 음모론에 사로잡힌 것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이 사실만은 밝혀두자. 진정한 과학은 서둘러 결론 내리고 반대의견이나 의문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는 대화의 자세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괴담을 잠재울 수 있는 지름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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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게재되었음.
그러나 21세기 한국에서 괴담이라는 말은 앞서 거론한 사전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번 천안함 침몰사고에 대한 합동조사단 발표를 믿는 비율이 72%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군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 태도가 음모론에 경도된 탓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얼마 전 한 보수신문이 2008년 촛불의 원인으로 광우병 괴담을 지칭하면서, 일부 전문가와 지식인의 경거망동으로 쓸모없는 일에 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일갈한 맥락과 비슷하다.
과연 이런 생각은 적절한가. 괴담과 괴담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준의 자의성은 둘째치고라도, 정작 문제는 괴담이나 음모론에 대한 지나친 경계의식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적개심을 자연스럽게 인준하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찬반을 두부 자르듯이 나누어서 반대의견을 무조건 괴담이라고 치부해버리는 데서 매카시즘의 광풍마저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천안함 발표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론 분열상을 개탄하기에 앞서 과연 정부와 군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도록 처신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원래 괴담이나 음모론이라는 것은 공공영역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공공영역이라는 것은 자유롭게 사회 구성원들이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공간을 의미한다. 적과 아(我)를 선명하게 갈라쳐서 한쪽을 타도 대상으로 보는 정치영역과 대조적인 것이 바로 공공영역이다. 공공영역은 국가나 민족의 개별 구성원에게 자기 정체성을 부여해서 공동체라는 일반성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정체성은 전체에 대한 인식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정체성이 없다면 개별적인 것은 물론 전체적인 것도 알아볼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일부가 괴담이나 음모론을 통해, 국가나 정부가 제공해주지 못하는 정보를 파편적 인식을 토대로 짜맞춰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인터넷을 괴담이나 음모론의 진원지로 지목하면서, 자유방임적인 인터넷의 개방성을 그 원인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않다. 현실이 적과 아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힌 정쟁의 영역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인터넷이 풍문의 통로 노릇을 하는 것이다.
디지털매체의 파괴력은 ‘복사의 용이성’에서 기인한다. 원본을 복사하는 순간, 그 내용은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오는 결과를 초래한다. 원본의 내용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옮겨질 때 필연적으로 ‘왜곡’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토론과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게 디지털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현재의 정부와 보수언론은 이런 상황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이 내세우는 ‘과학적 증거’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모두 괴담이나 음모론에 사로잡힌 것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이 사실만은 밝혀두자. 진정한 과학은 서둘러 결론 내리고 반대의견이나 의문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는 대화의 자세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태도야말로 괴담을 잠재울 수 있는 지름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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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게재되었음.



덧글
ㅁㄴㅇ 2010/05/29 09:13 # 답글
PD수첩
투표꼭합시다 2010/05/29 22:25 # 삭제 답글
주변분들께 투표 꼭 하시라고 당부해 주십시오! 투표독려 동영상입니다.http://www.youtube.com/watch?v=zvIZQj-7rGw&feature=player_embedded
안디슨 2010/05/30 03:04 # 답글
월플라워님 제블로그에 글이 있는데 그게 많이 퍼지고 알려져야 하는 글이라서요, 사랑의 실천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모교생들을 차별하는 저희 대학좀 혼내주세요 ㅠ 와서 보시구 긁어서 블로그랑 여기저기에 퍼트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ㅠ 링크 : http://ahndison.egloos.com/351155
아노말로칼리스 2010/05/30 11:50 # 답글
집에서 경향을 보는 터라 이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insurance 2011/04/01 23:25 # 삭제 답글
풍문을 이 명칭으로 부르면서 발단이 된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찾아보면, 괴담은 “괴상한 이야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현실에서 일어
continenta 2011/04/13 02:03 # 삭제 답글
로나에 위치한 두 개의 지점에서 해당 지역의 교육기관인 ‘잉글리시 메타스(English Metas)’와 손을 잡고, 상호 간 교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