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공장이다 세상읽기

인문학은 자본주의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가? 물론 아니라고 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처럼 CEO들이 인문학을 공부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학경영자들이 인문학을 ‘돈 벌어주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업에 성공한 CEO들이 여유 있게 배우고자는 하는 인문학은 저자거리에서 생동하는 인문학적 사유라기보다, 교육시장의 최상위를 차지한 이른바 ‘명문대학’에서 제공하는 인문학에 관한 지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핵심이 비판에 있다고 했을 때, 인문학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인문학의 본성과 상동하기 어렵다. 인문학이 본성상 자본주의와 불화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인문학에 내장되어 있는 회의주의가 언제나 기존의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영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자신들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직원들이 인문학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영국에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미들섹스대학(Middlesex University)의 철학과 폐지 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대학당국이 경영상의 이유를 핑계로 철학과를 일방적으로 없애겠다고 통보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교수와 학생들은 즉각 반발하면서 학교 건물을 점거하고 철거농성을 벌였는데, 이제 사태는 전 세계의 인문학자들이 “철학을 구하자”라는 취지 아래 미들섹스대학의 지지서명에 참여하자는 조직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가디언>에 기고한 조내선 월프 교수(UCL)의 지적처럼, 미들섹스대학 같은 신생대학이 경영난을 이유로 철학과나 기타 ‘장사’가 되지 않는 인문학전공 학과들의 문을 닫는 일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들을 영국에서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장구한 역사를 자랑했던 맨체스터대학의 고전학과가 없어진 것이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문화연구의 산실 버밍엄대학의 문화연구학과가 사라진 것은 신자유주의 이념의 도입 이후 영국대학에 불어 닥친 변화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굵직굵직한 학과들도 없애버리는 마당에 미들섹스대학처럼 ‘작은 대학’의 철학과 하나쯤 폐과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대수인가 싶은 생각이 들만도 한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다. 미들섹스대학은 영국, 아니 영미 권을 통 털어서 대륙철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몇 되지 않는 철학과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신생이긴 하지만, 워릭대학을 제외하고 미들섹스대학만큼 최근에 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주목을 받는 대학은 없다.

월프의 말처럼, 미들섹스대학의 철학과가 없어진다면, 영국은 유럽의 지적 지형도에서 한발을 뒤로 빼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목격할 수 있는 프랑스철학의 약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앞으로도 당분간 대륙철학은 보편적 인류의 지적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미들섹스대학의 철학과처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을 경영상의 이유로 폐지한다는 것은 영국 전체, 아니 더 나아가서 영미 권 전체로 봐서도 어마어마한 손실을 초래할 것은 명백하다.

이 대학의 철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철학자들이 바로 피터 홀워드와 피터 오스본이다. ‘두 명의 피터들’이라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두 사람은 이 대학의 철학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또한 둘 다 지금 영미 권뿐만 아니라 대륙철학의 본산지에서도 주목을 받는 대표적인 학자들이기도 하다. 홀워드는 알랭 바디우의 제자로서 바디우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영미 권에 소개하고, 이를 토대로 독창적인 이론을 구축해가고 있는 소장학자이고, 오스본 역시 비판이론에 근거해서 프랑스철학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는 논문들을 발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학자들인 만큼 대학이 내세우는 것처럼 경영상의 부담을 그렇게 많이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경영의 입장에서 봐도 이들은 낮은 임금을 받는 존재들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미들섹스대학의 철학과 폐지는 경영을 담당한다는 이들에게 뿌리 깊이 인식되어 있는 인문학에 대한 편견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정된 재정을 특정한 분야에 집중시켜야한다는 발상은 신자유주의 이전에 없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라는 현대판 ‘종교’는 머리만 있으면 손발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식의 세계관을 경영인들에게 주입해왔다. 그 결과가 바로 인문학에 대한 대학당국의 홀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들섹스대학의 서명운동에 동참하면서, 나는 “이런 풍경은 너무도 한국에서 익숙하다. 이것은 미들섹스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이다”고 부기했다. 영국의 교육부장관이 한국의 대학을 본받자고 주장할 정도로 한국의 대학은 솔선수범해서 ‘반인문학적 경영’을 펼쳐왔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중앙대의 문과대학 개편도 이런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배우려는 바깥의 것이 사실은 우리에게 이미 있는 것이라는 역설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문제는 대학이라는 곳이 기업이나 공장과 달리, 정책의 결과가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책의 오류를 깨닫고 수정하더라도,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놓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의 문제는 ‘계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렇게 자기계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특정한 개인의 결정이나 선택이 교육 전체의 질서를 뒤흔들어놓을 수가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교육을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학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는 미들섹스대학의 풍경은 흡사 1968년 5월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내건 현수막에 쓰여 있는 문구는 “대학은 공장이다. 파업하라! 점거하라!”였다. 촌철살인의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 대학을 공장으로 만들고, 교수들을 노동자로 만들고 있는 주역은 누구인가? 공장의 인문학, 이것이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화두이다.

----------
<중앙대대학원신문>에 게재되었음.

덧글

  • 山田 2010/06/07 08:25 # 답글

    칼럼을 게제한 신문 이름이 가슴아프군요.;
  • skywhale 2010/06/07 08:41 # 답글

    아- 졸업은 했지만 모교의 상황을 지켜보노라면 가슴이 묵직 해 집니다.
  • ㅇㅇ 2010/06/07 11:13 # 삭제 답글

    이름 쩌네요 미들섹스
  • 이택광 2010/06/07 12:39 #

    Middlesex라는 말은 the territory of middle saxons라는 뜻을 가진 고대어입니다^^ sussex, wessex와 같은 맥락이죠.
  • 아노말로칼리스 2010/06/07 12:52 # 답글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IMF이후 우리나라의 인문학이 어떻게 자본주의에 의해 왜곡되는지 10년이 넘게 보아오니
    영국의 일이 남얘기처럼 들리지 않는군요.

    참고로 제가 다니던 학교는 무려 영문학과과 중문학과을 묶는 학부제를 단행했었습니다.
    복학해서 보니 어이가 없더군요.
  • 세계명작산책 2010/06/07 13:01 # 삭제 답글

    '두명의 피터들'이야 다른 곳에서 서로 데리고 가려 하겠지요.
    그들도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중앙대의 교수나 강사들은 뭐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임용은 보상받으셨는지, 학생들이 한강 다리에, 크레인에 올라가고, 삭발을 하고 퇴학을 당하는데도
    왜 그렇게 자신들의 밥그릇도 챙기시지 않으시는지.
    왜 그저 몇년 공부하다가 졸업해 떠나는 학생들이 그들의 밥그릇까지 챙겨주어야 하는지,
    짜증이 왈칵 들더군요.

    자신들은 학생들도 알고 있는 '대학은 공장'이라는 사실을, 교수들 자신들도 노동자임을 모르는 걸까요.
  • 이택광 2010/06/07 13:04 #

    두 명의 피터들은 시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을 보세요.

    http://www.facebook.com/group.php?gid=119102561449990&v=info
  • ......... 2010/06/07 14:19 # 삭제 답글

    조선일보에서 기사를 보았습니다만...
    철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지난 3년간 1년에 약 12명 정도밖에 없다는 이유에서 폐지를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철학과에 들 돈으로 그래도 상대적으로 좀 더 사정이 나은 다른 인문학에 투자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 decoy 2010/06/07 16:02 # 삭제

    그건 결코 근본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이 못됩니다.
  • 음.. 2010/06/07 16:06 # 삭제

    안타까움에서 나온 말씀이신건 알겠지만, 왠지 이번 투표때 나왔던 얘기 맥락과 비슷해 보이는건 제가 너무 예민해서겠죠;;
  • ......... 2010/06/07 16:07 # 삭제

    투표랑은 다르죠. 대학이야 돈이 없으면 유지가 불가능하지만 민주주의는 소수 정당도 생존하라고 있는거 아닙니까?
  • 음.. 2010/06/07 16:23 # 삭제

    이번 투표에서의 논리가 '소수정당' = '표가 안된다' = '그냥 다수에게 몰아주는게 낫다' 라는 것을 보니, 왠지 비슷해보여서요. 물론 대학의 유지는 자본으로 이루어지고 정당은 득표수로 세를 불리거나 유지할 수 있습니다. 표가 정당에게는 유가증권의 의미를 가지니까요. 물론 저도 말씀드린것처럼 예민해서인지 좀 과하게 확대해석 한 느낌도 듭니다.

    제 글이 좀 망글이긴 한 것 같은데. 말씀하신 시장논리로 따지면 남을 학문이 그닥 없을 것 같네요.
  • 음.. 2010/06/07 16:48 # 삭제

    아 그리고 망글에 일부러 댓글을 친절하게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격하려는건 아니었고요. 비유가 그냥 망글이었던것이죠. 이해는 하셨으리라 믿어요..;
  • CB좌파자파자파타 2010/06/07 21:59 # 삭제

    좀 상관없는 얘기지만 :
    저 한 사범대에서 국어교육 전공하고 있는데
    제 학교는 한 학년에 18명씩 다니는데도 잘 유지되던데요?;

    뭐 수백명이 다니는 학과랑 똑같은 인프라를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철폐라니;ㅋ
  • ......... 2010/06/07 23:10 # 삭제

    교수가 2명의 피터들 포함해서 총 6명인데 학생이 12명이니 교수 1인당 학생 2명 정도..
    그리고 영국은 루리웹에서 들어보니까 그리고 영국대학은 전부 정부지원형 사립대라서... 등록금이 3000파운드로 동일하다고 하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냥 정부 지원금 더 많이 받고 싶어서 학과 폐지를 결정한듯 합니다.
  • 샤유 2010/06/07 15:48 # 답글

    철학과도 살려주고 자연과학대도 좀 살려줘 ㅜㅜ
  • -_- 2010/06/07 23:30 # 삭제 답글

    좋은 글입니다.
  • 요요 2010/06/08 01:56 # 삭제 답글

    저도 가디언에서 이에 관련된 기사를 봤습니다. 철학과 폐지를 위해 지젝도 한 몫 거들고 있더군요.
  • 2010/06/09 05:44 # 삭제 답글

    피터 홀워드, 피터 오스본, 에릭 알리에즈, 스텔라 샌드포드는 런던의 킹스턴대학으로 옮긴다고 합니다. 미들섹스에 재학 중인 철학과 대학원생 전원과 함께요. http://savemdxphil.com/2010/06/08/announcement-8-june-the-crmep-is-moving-to-kingston-university/
  • 에규데라즈 2010/07/12 12:01 # 답글

    본문좀 퍼가겠습니다. (사실 저 이미지가 너무 확 끌려서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