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어 인문학 산책 출간 알림

소리 소문 없이 책 한권이 더 나왔습니다. 이제 문화비평연대기와 다른 번역원고 하나 더 작업하면 모두 끝나네요. 제목은 <영단어 인문학 산책>입니다. 고민고민하다가 이렇게 정했습니다. 작년에 EBS에서 진행했던 강의의 바탕이 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겁니다. EBS와 인세문제로 실갱이를 벌이는 바람에 원래 계획보다 늦게 나왔습니다. 순수한 저자의 창작물에 대해 방송국이 '저작권'을 주장하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아예 없었던 일로 해버릴려다가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서 간신히 마음을 진정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열을 받는군요. BBC수준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밤잠 설치며 책을 집필하는 작가에 대한 예의 정도는 갖춰야하는 게 아닌지, 답답합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영단어'에 대한 것입니다. 영어에 대한 '문화비평적 개입' 같은 걸 좀 시도해봤는데, 결과가 어떨지 잘 모르겠네요.  
 
 

다음은 책의 말미를 장식하는 에필로그입니다. 에필로그와 별도로, 프롤로그는 한국의 '영어광풍'에 대한 조금 긴 분석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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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든 뒤에 내가 가진 꿈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쓰는 작가였다. 궁금한 것이 많았던 나는 이것저것 난독하는 습관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책을 잔뜩 쌓아놓고 마구 읽으면 하도 재미있어서 밥 먹는 시간조차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마냥 책만 읽는다고 궁금증이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후일 책에서 읽은 지식들을 현실에서 확인할 때, 형언하기 어려운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어릴 적 단테의 <신곡>을 읽은 뒤에 나는 이 책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일 피렌체를 가본 뒤에 단테의 세계관을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피렌체의 재래시장에 서 있던 단테의 동상에서 나는 르네상스시기에 새롭게 부상하던 상인계급의 문화와 단테의 세계관이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베키오 다리에서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보고 황홀하게 여겼던 그 순간이 책에서 읽은 지식과 조우하면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경험을 했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쓰고 싶은 욕망은 영국의 작가 빌 브라이슨과 같은 작가가 되고 싶은 구체적 희망사항으로 발전했다. 영단어에 대한 인문학적인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영어로 글을 읽고 쓰면서 발견한 것은, 한국어와 다른 논리적 세계가 영어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논리에 대한 인문학적 해명을 하고 싶었던 것이 영단어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했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 하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영단어를 통해서 ‘문화사’를 한번 이야기해보자는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은 한국교육방송(EBS)에서 2009년 하반기 동안 “어휘로 보는 영미문화”라는 제호로 방영되었던 강의와 관련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방송 내용과 책이 다소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책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간결하게 문장들을 다듬고 시각 이미지를 강화했다. 따라서 방송 내용과 책은 같은 구성이지만, 내용은 서로 보완관계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영단어에 국한했지만, 영문법에 관한 인문학적 책도 기회가 닿는다면 써볼 생각이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영어를 ‘외우는 방법’이 아니라 영어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모두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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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단어 인문학 산책 출간 2010/06/07 14:36 #

    영단어 인문학 산책의 저자 이택광 선생님의 블로그 글입니다. 소리 소문 없이 책 한권이 더 나왔습니다. 이제 문화비평연대기와 다른 번역원고 하나 더 작업하면 모두 끝나네요. 제목은 영단어 인문학 산책입니다. 고민고민하다가 이렇게 정했습니다. 작년에 EBS에서 진행했던 강의의 바탕이 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겁니다. EBS와 인세문제로실갱이를 벌이는바... more

  • 영단어 인문학 산책: 이택광의 어휘로 본 영미문화 2010/07/04 19:31 #

    영단어 인문학 산책 - 이택광 지음/난장이http://elcamino.namoweb.net/tc/books2010-06-24T17:50:320.3810Broaden the Horizon, 항해를 그리다필자가 처음으로 Broaden the horizon이란 표현을 들었을 때, 참 멋있는 표현이라 생각했다. 새로운 세상에서 경험을 넓힌다라는 뜻을 '수평선을 넓힌다'라고 하다니. 그 때 필자의 머리 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꽤나 낭만적이었다. 돛을 단 ...... more

덧글

  • 고양이 2010/06/07 13:23 # 답글

    오! 강의도 무척 재밌던데요.
    광고관련 책도 내신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언제 읽을 수 있는지 기다리고 있답니다^_^
  • 이택광 2010/06/07 20:13 #

    강의를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광고책은 좀 더 기다리셔야할 듯...
  • 2010/06/07 14: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10/06/07 20:13 #

    감사합니다. 제 다리는 아닙니다^^
  • 우쭈쭈 2010/06/07 18:38 # 삭제 답글

    참..한국은 왜그리 작가주의가 허약한지..문화적인 이유가 있는 건가요?
  • 이택광 2010/06/07 20:07 #

    반지성주의도 한몫을 하겠죠. 작가주의를 보면 대체로 '허세'로 보는 경향들이 있으니까요.
  • 우쭈쭈 2010/06/08 01:05 # 삭제

    그렇군요. 전부터 드라마 작가들이 네티즌, 시청자들의 매서운 의견에 못 이겨
    드라마의 결말을 자기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급선회하는 경우도 보았고
    또 스토리를 연장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작가들이 인기(결국은 밥줄?)에 연연해서 결국 작가주의를 자신들도
    모르게 약화시키는 경향도 있지 않습니까?
  • 해피맨 2010/06/08 15:58 # 삭제 답글

    전에 EBS 강의 잘 보았습니다^ ^ 그리고 이어서 "영문법에 관한 인문학적 책"도 생각하고 계신다는데 그 내용이 어떨지 궁금하고 또 기다려집니다!
  • 고정독자 2010/06/09 18:40 # 삭제 답글

    영어광풍에 비해 정작 영어 자체를 대상으로서 이야기하는 책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이런 책이 나와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 사는 맛이 납니다.
  • 이택광 2010/06/10 00:06 #

    과찬이십니다. 항상 책을 내고 나면 좀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감사합니다.
  • 똠방 2010/06/10 05:15 # 삭제 답글

    이른바 '택빠'가 되어가는 중인가 봅니다. 이곳 블로그는 하루에 한번 이상은 오게 되는데다, 신년 초에 '책을 읽자'는 목표를 정해놓고 나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올해 구입한 책 가운데 다섯권이 님의 책이네요. 그리고 또 한 권의 책도 구입해야 되고요. ^_^. 님을 통해 인문학 공부를 하게 됩니다. 주변에선 50줄이 다된 중년이 뭔바람이냐고 타박(?)을 합니다만, 그래도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한다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님의 좋은 길잡이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이택광 2010/06/10 09:33 #

    낯이 달아오르네요. 항상 격려해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 쉽싸리 2010/06/10 12:36 # 삭제 답글

    알라딘에서 주문 넣었습니다.
    영어를 포함한 제2 외국어 어떤것도 자유롭게 독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영어가 나은것 같아요.
    하여튼 중,고등학교 6년간 배웠는데 잘 안되네요...
    지금부터라도 영어공부 좀 하고 싶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전세계 인쇄물의 절반 이상이 영어인데,, 뾰족한 수가 없을까요? ㅎㅎ
    건필하세요.
  • 이택광 2010/06/10 13:04 #

    진리는 하나입니다. 많이 읽고 쓰고 들으면 된다는 겁니다^^ 문제는 얼마나 '흥미'를 느끼느냐, 이런 거 아니겠어요. 이 책은 그 '흥미'를 발견해볼 수 있는 계기를 위해서 집필을 해본 겁니다.
  • 강태웅 2010/06/10 12:46 # 삭제 답글

    교보 갔더니 아직 없더군요.
  • 이택광 2010/06/10 13:04 #

    아마 정리 중인 모양입니다. 월요일에 출고되었으니 좀 시간이....요즘은 온라인 서점이 빠른 편이죠.
  • 똠방 2010/06/10 16:01 # 삭제

    교보문고로 오늘 아침 주문해서 좀 전에 책을 받았습니다. 온라인이 확실히 빠르군요.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근데 책이 참 잘 읽혀집니다. highjack와 hitchhike을 넘어 한 순간에 50쪽을 일게 되네요. 택광님의 저작 가운데 가장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책인듯.. ^_^ 무척 재미있고 유익하기까지 하는군요. 영 단어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 2010/06/10 13: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10/06/10 13:05 #

    아니어요. 분위기는 좀 있게 나왔네요.
  • 무명인 2010/06/10 13:26 # 삭제 답글

    음 다른 책들과 같이 주문했습니다. 잘 보겠습니다.
  • 라캉읽기를 기다리며 2010/06/11 12:49 # 삭제 답글

    이 책과 영문법에 대한 구상은 독자적인 갈래를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어 한글과 영어의 관계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 상상만으로 볼 때 비교문학이나 비교철학과 다르고 비교언어학과도 다른 지점 또는 씨앗지점을 생성할 수 있겠다 싶네용. 화이팅.(제 상상속의 그책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 walkaholic 2010/07/01 01:15 # 삭제 답글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라지만
    내용에 비해 책 디자인, 편집이 안타깝습니다;
    아 그래서인지 책날개 프로필 사진은 상대적으로 더욱 돋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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