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술이다. 어떤 이들은 와인을 '신의 물방울'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황금빛 도는 맥주야말로 인류가 발명해낸 최고의 술이라고 생각한다. 에바 캐시디가 보리밭을 "황금의 벌판"이라고 노래한 것도 맥주 빛깔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태어나서 자란 한국에서 맥주는 그냥 소주 마신 뒤에 입가심하는 술로 여겨졌고, 그래서 나 역시 영국 가서 공부하기 전까지는 '맥주 맛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맥주 찾아 삼만리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 재미있는 일이다. 나도 움베르토 에코처럼 벨기에 맥주 구즈(gueze)를 마시기 위해 그토록 외진 곳까지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에코는 영국 에일(ale)이 훨씬 맛있기 때문에 구즈 따위를 마시러 벨기에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친절하게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지만, 여하튼 입맛이란 건 취향따라 다른 것이니 에코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구즈 마시는 걸 포기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내가 한창 데모를 하고 다닐 때, 외숙부 중 한 분이 나를 앉혀 놓고 '충고'라고 해준 말이, 이 세상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되도록 다 해봐야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것' 중 하나가 세상 음식 모두를 즐겨보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당시 충고치고는 생뚱 맞기 그지 없는 말이었는데, 아직까지 두고 두고 생각나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외숙부는 위험에 빠진 조카를 구하고자 '안전한 쾌락'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후일 생각하게 되었지만, 역시나 그 충고는 송곳 같던 내 젊은 날을 다독여주기에 적절하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불의 시대를 거쳐서 '낙심한 자'가 되었을 때, 그 외숙부의 말은 기억의 뿌리를 타고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여하튼, 내가 딱히 미식가는 아니지만(나는 그냥 음식은 배를 채우는 용도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미주가이기는 해서, 이 충고가 이 세상 술을 되도록 마셔보는 쪽으로 바뀌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나오는 거의 모든 술을 마셔봤지만, 그 풍부함이나 다양함에서 맥주를 따라올 술은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맥주 마시면 배부르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배부를 때까지 맥주를 마시니까 그런 것이다. 안주 먹으면서 맥주 마시는 이들은 솔직히 우리밖에 없다. 맥주를 마시든지, 아니면 식사를 하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하는데, 둘 다를 하니 배가 부를 수밖에. 술 마시는 문화가 건강에 그렇게 좋은 쪽으로 발달하지 않은 게 한국이다. 게다가 한국 맥주는 '시원한 맛' 이상을 주지 않는 '맹물형 알콜'이니 "맥주를 즐겨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좀 우습다. 오후 5시 무렵에 일과를 마치고 여름 햇살 뜨거운 비어가든에서 빛깔 고운 맥주를 마시는 호사는 한국에서 어지간히 노력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맥주는 노동계급의 술이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술은 아니다. 한국으로 치면 막걸리 같은 것이다. 영국에서 우스개 중 하나가, 낮 12시 이후 길에 다니는 거의 모든 차량은 음주운전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낮부터 영국인은 맥주를 마신다. 맥주를 음식의 일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게다가 대다수 영국인은 맥주가 몸에 좋다고 생각한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막걸리가 건강에 좋다'는 생각을 한국인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주 마시지 않고 맥주 마신다고 욕 들어먹던 시절도 있었지만, 맥주가 소주보다 훨씬 맛있는 술인 건 사실이다. 어쨌든 이제 맥주에 치킨이라는 새로운 음주문화가 월드컵 특수를 타고 전성기를 누리기까지 한다. 월드컵 기간동안 치킨과 더불어 맥주 판매량이 치솟았다는 사실도 분석해볼만한 문화적 특징인 것이다. '맥주 맛도 모르면서...' 라는 한 맥주광고는 이런 문화적 변화를 보여주는 단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창 데모를 하고 다닐 때, 외숙부 중 한 분이 나를 앉혀 놓고 '충고'라고 해준 말이, 이 세상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되도록 다 해봐야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것' 중 하나가 세상 음식 모두를 즐겨보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당시 충고치고는 생뚱 맞기 그지 없는 말이었는데, 아직까지 두고 두고 생각나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외숙부는 위험에 빠진 조카를 구하고자 '안전한 쾌락'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후일 생각하게 되었지만, 역시나 그 충고는 송곳 같던 내 젊은 날을 다독여주기에 적절하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불의 시대를 거쳐서 '낙심한 자'가 되었을 때, 그 외숙부의 말은 기억의 뿌리를 타고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여하튼, 내가 딱히 미식가는 아니지만(나는 그냥 음식은 배를 채우는 용도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미주가이기는 해서, 이 충고가 이 세상 술을 되도록 마셔보는 쪽으로 바뀌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나오는 거의 모든 술을 마셔봤지만, 그 풍부함이나 다양함에서 맥주를 따라올 술은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맥주 마시면 배부르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배부를 때까지 맥주를 마시니까 그런 것이다. 안주 먹으면서 맥주 마시는 이들은 솔직히 우리밖에 없다. 맥주를 마시든지, 아니면 식사를 하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하는데, 둘 다를 하니 배가 부를 수밖에. 술 마시는 문화가 건강에 그렇게 좋은 쪽으로 발달하지 않은 게 한국이다. 게다가 한국 맥주는 '시원한 맛' 이상을 주지 않는 '맹물형 알콜'이니 "맥주를 즐겨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좀 우습다. 오후 5시 무렵에 일과를 마치고 여름 햇살 뜨거운 비어가든에서 빛깔 고운 맥주를 마시는 호사는 한국에서 어지간히 노력하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맥주는 노동계급의 술이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술은 아니다. 한국으로 치면 막걸리 같은 것이다. 영국에서 우스개 중 하나가, 낮 12시 이후 길에 다니는 거의 모든 차량은 음주운전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낮부터 영국인은 맥주를 마신다. 맥주를 음식의 일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게다가 대다수 영국인은 맥주가 몸에 좋다고 생각한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막걸리가 건강에 좋다'는 생각을 한국인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주 마시지 않고 맥주 마신다고 욕 들어먹던 시절도 있었지만, 맥주가 소주보다 훨씬 맛있는 술인 건 사실이다. 어쨌든 이제 맥주에 치킨이라는 새로운 음주문화가 월드컵 특수를 타고 전성기를 누리기까지 한다. 월드컵 기간동안 치킨과 더불어 맥주 판매량이 치솟았다는 사실도 분석해볼만한 문화적 특징인 것이다. '맥주 맛도 모르면서...' 라는 한 맥주광고는 이런 문화적 변화를 보여주는 단서인지도 모르겠다.



덧글
2010/07/04 23:0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이택광 2010/07/05 13:37 #
벨기에 맥주 특이하죠.
Gony 2010/07/04 23:02 # 답글
저도 상당한 맥주 러버로써 한국에서 좀 제대로 된 맥주가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이택광 2010/07/05 13:41 #
맥스도 나왔고, 앞으로 나오긴 하겠죠.
erte 2010/07/04 23:42 # 삭제 답글
그나마 직수입하던 외산 맥주들도 하나둘 라이센스로 국내브랜드들이 만들면서 왠지모르게 맛이....멀리도 필요없고, 전 일본에 놀러가서 라멘에 일본맥주를 마셨더니 그렇게 기가막히게 맛이 궁합이 맞아 참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
이택광 2010/07/05 13:40 #
그게 미스테리한 것 같더군요. 호가튼이 대표적인 경우인 듯....
강태웅 2010/07/05 11:42 # 삭제 답글
유학시 긴장된 마음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자료사냥을 다니던 시절5시가 지나 더 이상 돌아다닐 필요가 없을 때 조금은 허탈한 기분으로 혼자 조그만 펍에가서 먹던
암스텔맥주 생각이 나네요. 얼마전 일본에 갔는데 선토리에사 만든 몰트맥주가 우리나라 XX맥주라고 하더군요.
이택광 2010/07/05 13:42 #
암스텔 맥주... 이번에 가서 마실 참입니다. 그러고보니 암스테르담은 강박사하고 인연이 깊네요. 데카르트가 거닐던 거리도 있으니 말이죠.
민이 2010/07/05 13:53 # 삭제 답글
"...배부를 때까지 맥주를 마시니까 그런 것이다." ㅋㅋㅋ 그랬군요!날 좋던 날, 프랑크푸르트 마인강변 벼룩시장에서,
소시지 버거 하나랑 플라스틱잔에 맥주 한 잔.. 점심으로 먹었던 날 기억나게 하네요.
냥~ 런던 어느 pub(bar였나?)에서 첨 마셔본 기네스도!
출장 잘 다녀오시고, 더운 날 서울에서 찬 술 한 잔 하시죠~!^^
똠방(안테바신) 2010/07/05 20:44 # 삭제 답글
이젠 간경화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처지입니다만, 와인보다는 맥주를 선호했죠. 지난 해 버마(미얀마)에서 마신 '미얀마'란 맥주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택광 2010/07/06 13:00 #
간경화는 술을 드시면 안됩니다. 동남아시아에도 맛있는 맥주들이 많이 있죠. 대표 맥주들은 모두 맛있더군요.
저나무 2010/07/06 00:43 # 삭제 답글
몸은 못가도 마음만은 암스텔담으로 날아갈랍니다... 저는 지금 버드와이저, 밀러, 하이네켄 골고루 사다가 마시고 있습니다.. 택광님의 글이 약간 띄운 면도 있습니다... 저희 동네는 못사는 지역이라 이 정도도 대단한 호사죠... 독일사람들이 맥스가 괜찮다고 해서 저도 먹어봤는데... 글쎄 뭐랄까요 좀 정착이 안된 맛이던데요... 맛있는 음주기 기대해 보겠습니다... 잘 다니오이소!
이택광 2010/07/06 13:01 #
'정착이 안된 맛'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군요.
2010/07/06 01:55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절망의신 2010/07/06 19:17 # 삭제 답글
'존중이니까 취향해주시죠.' 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한국 맥주는 택광님과 같은 수많은 미주가님들에겐 좀 밍밍한 맛이죠. 아는 분 중에는 정말 맛있는 국산맥주 한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사람도 있으니까요...ㅎㅎ '맥주 맛도 모르면서...' 라는 카피는 어쩌면 그런 분들이 광고주에게 날리는 일갈로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어요.ㅋ
해피맨 2010/07/06 23:54 # 삭제 답글
저는 몇 년 전 라오스 여행 중 라오 맥주를 맛잇게 먹엇던 기억이 있습니다. 필리핀의 산미구엘이라는 맥주도 좋아하구요. 더운 나라에서 얼음을 넣어 먹는 기분이 좋더군요^ ^;
이택광 2010/07/07 00:16 #
산미구엘 좋더군요. 산미구엘 프리미엄이라는 게 최근 나왔는데, 환상입니다.
에피큐리언 2010/07/07 11:18 # 삭제 답글
부산오면 흑맥주 한 잔 합시다. 찐하게 ㅋㅋ
. 2010/08/15 16:53 # 삭제 답글
국내에 수입된 맥주중에선 어떤게 젤 맛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