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민간인 사찰 문제가 불거졌다. 공무원의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허용된 권력을 정치적 목적으로 민간인 감시에 사용했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다. 솔직히 이런 문제가 왜 21세기 한국에서 소란스러운 의제가 되어야 하는지 황당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사건을 몇몇 ‘정신 나간 사람들’의 오버로 치부하면서 일단락지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권력 남용을 ‘정신 줄 놓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뒤늦게나마 진화에 나서려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가 다행스럽다고 안도해야할까? 사전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관리’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뒤늦게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을 한다면 전화위복의 계기로 이번 사건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류와 별개로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정당한 문제제기에 ‘물타기’를 시도하는 해괴한 논리도 여전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예를 들어, 사찰 대상이던 김종익씨가 노사모 회원이었고 진보성향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사찰이 정당했다는 식으로 변호하는 궤변이 대표적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념투쟁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런 논리는 여전히 일부 보수언론과 우파 정치세력에 먹음직한 먹잇감으로 보이는가 보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대국가에 대한 상식적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국가는 여전히 ‘자기 편의 것’이어야 하는 소유의 대상으로 보일 뿐이다. 권력을 장악하면 국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이들의 사유를 지배하고 있기에 이런 판타지가 현실감을 얻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발상은 한국의 보수언론과 우파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북한 권력집단의 생각과 충격적일 정도로 닮아 있다. 북한 체제의 논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당화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근거에서 일인 독재를 정당화해주는 ‘수령론’이 체제유지를 위한 논리로 한반도의 반쪽에서 인준 받아오지 않았던가? 한국의 우파 중에 박정희체제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의 생각은 한마디로 한국의 번영을 위해 박정희 같은 대통령이 다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만일 한국이 민주주의로 이행하지 못하고 일인 권력체제로 세계화에 진입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그 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국가가 바로 북한이다. 서로 싸우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희한하게도 한국 우파의 억지주장은 그토록 혐오하는 자신의 적을 가장 많이 빼다 박은 꼴이다.
상식에 근거해서 생각해보자.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졌다고 국가권력이 함부로 민간인을 사찰한다면, 그 권력은 독재라는 용어 이외에 달리 정의할 말이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말은 ‘빨갱이들’이 내뱉는 말이 아니라 헌법에 적혀 있는 말이다. 정부에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도대체 몇 세기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노사모이기 때문에 사찰해도 괜찮다는 논리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끝장토론이라도 해보고 싶다. 국가에 세금을 내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부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 정부는 특정 정치세력의 것일 수 있지만, 국가는 국민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최소한 근대사회의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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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게재되었음.
정부와 여당은 이번 사건을 몇몇 ‘정신 나간 사람들’의 오버로 치부하면서 일단락지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권력 남용을 ‘정신 줄 놓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뒤늦게나마 진화에 나서려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가 다행스럽다고 안도해야할까? 사전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관리’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뒤늦게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을 한다면 전화위복의 계기로 이번 사건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류와 별개로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정당한 문제제기에 ‘물타기’를 시도하는 해괴한 논리도 여전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예를 들어, 사찰 대상이던 김종익씨가 노사모 회원이었고 진보성향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사찰이 정당했다는 식으로 변호하는 궤변이 대표적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념투쟁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런 논리는 여전히 일부 보수언론과 우파 정치세력에 먹음직한 먹잇감으로 보이는가 보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해서 일어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대국가에 대한 상식적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국가는 여전히 ‘자기 편의 것’이어야 하는 소유의 대상으로 보일 뿐이다. 권력을 장악하면 국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이들의 사유를 지배하고 있기에 이런 판타지가 현실감을 얻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발상은 한국의 보수언론과 우파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북한 권력집단의 생각과 충격적일 정도로 닮아 있다. 북한 체제의 논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당화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근거에서 일인 독재를 정당화해주는 ‘수령론’이 체제유지를 위한 논리로 한반도의 반쪽에서 인준 받아오지 않았던가? 한국의 우파 중에 박정희체제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의 생각은 한마디로 한국의 번영을 위해 박정희 같은 대통령이 다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만일 한국이 민주주의로 이행하지 못하고 일인 권력체제로 세계화에 진입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그 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국가가 바로 북한이다. 서로 싸우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희한하게도 한국 우파의 억지주장은 그토록 혐오하는 자신의 적을 가장 많이 빼다 박은 꼴이다.
상식에 근거해서 생각해보자.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졌다고 국가권력이 함부로 민간인을 사찰한다면, 그 권력은 독재라는 용어 이외에 달리 정의할 말이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말은 ‘빨갱이들’이 내뱉는 말이 아니라 헌법에 적혀 있는 말이다. 정부에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도대체 몇 세기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노사모이기 때문에 사찰해도 괜찮다는 논리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끝장토론이라도 해보고 싶다. 국가에 세금을 내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정부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 정부는 특정 정치세력의 것일 수 있지만, 국가는 국민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최소한 근대사회의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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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게재되었음.



덧글
놀이네트 2010/07/10 18:53 # 삭제 답글
예전에 덧글로 택광님의 글쓰기 전략을 말라르메적인 애매함?과 연관시켜 말씀하신 기억이 있는데요.요즘 글은 명쾌해서 저같이 어리바리한 사람들에게 좋긴한데 또 글맛이 떨어진달까 그런 아쉬움이 있네요 ㅎㅎ
여하간 이번 사태에 대한 포탈 덧글을 확인하면서 한국인에게 근대의 멘탈리티가 얼마나 낯선 것인지 새삼 확인하고 있습니다. 명박빠들이나 명박까들 모두 봉건적 신자유주의라고 해야 하나요 에효 ㅜㅠ
김원철 2010/07/10 20:15 # 삭제
이택광 선생님은 아니지만, ^^'말라르메적 글쓰기'는 다수가 가지고 있는 상식 내지는 '프레임'을 깨는 내용이라야 효과가 있겠죠. 이런 글에서는 내용이 뻔할 수밖에 없으니 글이 명쾌하면 좋겠지요. 비판 대상이 세련되지 못하면 더욱 그렇겠고요.
퐁퐁 2010/07/10 21:42 # 답글
극과 극은 통합니다.
들사람 2010/07/11 10:03 # 삭제 답글
글쎄요,, 사실 전 한국 같은 곳'들'에서 소위 공사를 안 가리는 사찰이 버젓한 게 과연 "근대국가에 대한 상식적 인식"의 부재 탓이랄 수 있을까 싶어요. '사찰/감시'란 말에 함축된 근대국가 권력의 관음증적 욕망이, 이를테면 '국세조사' 같은 걸로 (그 성공 여부를 떠나) 관할영토 내의 인구, 즉 "국민"을 세세히 규율-관리하고파 해온 주권적 통치술의 미시권력적 욕망과 다르고 멀대 봐야 얼마나 그럴까 싶거든요.이명박 정부가 그만한 깜냥이 있든 없든 간에 한국산 부르주아지 "일반"은 물론 "국민 일반"까지 대표해야 함에도 이러는 데 필요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에 끔찍하리만치 삽스럽단 지적이야 부르주아지 일반 내에서조차 불거질 만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어떤 "근대사회의 상식" 같은 이념형에 바탕해 비판하는 건 명쾌할진 몰라도 무척이나 심심하다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이명박 정부가 뭔 뻘삽짓을 하든 그게 엄연히 "근대적인 민주공화제 정부"하에서 이뤄지는 것임을 전제로, 이념형/상식과는 보란듯이 헛도는 정치경제적, 문화지정학적 조건이나 "압박"은 과연 어떤 건지 충분히 다뤄져야 하는 게 아니냔 거죠.
헌데 이런 식의(="사회과학적") 접근과 이해가 부재하다시피하다 보니, 택광님 칼럼의 논지는 예컨대 좌파정치적인 세력화를 하기엔 아직 "정치적 근대화=정당중심적 대의정치의 제도화"가 먼저라느니, 수구반동부터 먼저 압박하고 볼 일이라느니 하는 도식적이고 "비지론"적인 정치 노선에 본의 아니게 뒷심을 실어주잖을까 싶어 좀 걱정스럽네요. 제가 보기에 외려 현 상황은, 길게 보자면 좌파적인 사회변환 구상을 지렛대 삼아 합리적 우파(내지 민족적 민주개혁파)들과 일정한 "문화적 합의"를 유도해 내는 한편, 사회 좌경화에 필요한 일상화, 대중화된 연대의 기술도 좀더 풍성하고 날카롭게 벼려가야 할 국면/정세일 텐데 말이죠. 사실 따지고 보면 이명박식 지랄맞음이 "근대사회의 상식"이 공고화됐다는 데서들 아예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요. 물론, 구미권 쪽이 일단 발생한 사단에 대해 확실히 엄정한 처리로 "현상유지"가 무척 괜찮은 선택이란 대중화된 환상을 그럭저럭 잘 조성해내긴 하지만요.ㅎ 그나마도 요즘엔 그닥 신통치 않아 보이긴 해도요,, 암튼.
저로서는 배링턴 무어 할배가 꽤 오래 전에 썼다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을 눈여겨 봤음 싶은데요. 이 책의 핵심 주장은 흔히 잘못 알려져 있듯 "서유럽산 부르주아민주주의가 보편화될 수 있는 조건은 뭐냐" 같은 게 아니라, 실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조응하는 통치 형태는 대의민주주의에서 파쇼화된 독재까지 지정학적, 지리적 위치와 맥락에 따라 다양한데, 그 모두는 엄연히 자본주의 경제에 맞춤해 나란히 움직이는 근대적 권력양식의 "내부"라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차마 눈뜨고 봐주기 힘든 각종 패악질도 이미 개별국가들이 한 세트로 굴러가는 근대적 국민국가체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해야지, 뚝 떼놓고서 (이데올로기화된) "상식"에 따라 비교, 평가하는 게 얼마나 효과적인 "비판의 무기"일진 솔직히 모르겠어요. 비판의 의의 자체야 충분히 존중, 인정하더라도 말이죠.
2010/07/13 18:39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꾸꾸 2010/07/14 23:13 # 삭제 답글
택광아 경향에서 니글 잘보고 있다.. 책은 아직 못샀다.. 미안.... 블로그 잇다길래 인사할라고 들왓지.. 나.....향란이 누나....살아있지롱~~ 시간빌때 또오께.. 여긴 방명록 없니? 그래서 덧글에 찍 쓰고 나간다.. 휘리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