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에 참석차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왔다. 일 때문에 오긴 했지만,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대로변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골목마다 숨어 있는 보석 같은 노천카페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호사를 부리기에 좋은 곳이 암스테르담이기 때문이다. 바흐를 들으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한 여행책자의 농담을 현실에서 확인하면, 이 도시가 보여주는 ‘낯선 것의 익숙함’이라는 특유의 코드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편안한 여행자의 심정으로 도시의 정서를 느끼기만 하기에 암스테르담에서 목격하는 것들은 현실의 무게감이 강했다. 과거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 것들이 내가 떠나온 곳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겹치면서 지금현재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초현실’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거리에 가득한 자전거 대열과 평화로운 운하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상징이라는 자전거와 운하야말로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진 쟁점이지 않은가. 사실 여기에 와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나 오세훈 시장이 왜 자전거와 운하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알만도 하다. 확실히 자전거와 운하만을 놓고 본다면, 환경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고 아름다운 관광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훌륭한 방편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겉모습만 본다면, 당장이라도 자전거나 운하가 한국을 암스테르담처럼 만들어줄 것 같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이 엄연히 다르다는 건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는 일이다. 이런 암스테르담의 장점을 한국과 서울이라는 ‘다른’ 조건으로 이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오세훈 시장이 자전거 길을 만들고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정착시키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서울 시내를 비롯해서 전국 각지에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라는 것의 모양새를 보는 순간 그 모든 말들이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한때 논란이 되었다가 흐지부지 사라져버린 자전거 터널이라는 발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정책에 담겨 있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분리’이다. 이런 분리정책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이 아니라 레저 활동에 머물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운하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럽의 국가들이 몇 백 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풍경을 몇 년 사이에 그대로 옮겨 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무가내는 제쳐두더라도, 복지나 문화에 투자해도 모자랄 어마어마한 공적 자금을 들이부어서 운하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수였다고 할 수 있다. 수변공간을 조성해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근본적인 취지가 잘못되었다기보다, 기본적으로 그 사업들 역시 생활과 관광이라는 영역을 서로 분리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왔다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대자들에 따라서 이명박 정부나 오세훈 시장이 아무런 철학이나 심각한 고민 없이 입 발린 소리로 이런 정책들을 추진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이나 시장이라는 개인의 자질 문제로 간단하게 환원하기에 복잡한 내력이 이런 ‘밀어붙이기’에 숨어 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뭔가 확신이 있고, 거기에 현실이 응답할 때, 집요한 추진력이 나오는 것이다.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한국도 이런 도시들처럼 살기 좋은 환경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러기 아빠’라는 21세기형 한국의 부권상징은 이런 열망이 파생시킨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정상국가에 대한 요청이 교육문제로 내려앉았을 때 가족들 전체가 일시적 이산을 과감하게 결행하는 모습에서, 민족을 위해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하고, 금의환향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하는 기이한 한국 사회의 역설을 읽어낼 수 있다.
유럽에서 발견한 ‘좋은 것’을 한국에서도 실현하겠다는 생각을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좋은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먼저 선행해야할 것이다. 유럽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함께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철학이다. 극단적 배제의 논리를 보여주는 블랙리스트와 권력다툼으로 시끄러운 한국 사회에서 언제쯤 공존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아직도 먼 이야기이기만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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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 게재되었음.
그러나 편안한 여행자의 심정으로 도시의 정서를 느끼기만 하기에 암스테르담에서 목격하는 것들은 현실의 무게감이 강했다. 과거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 것들이 내가 떠나온 곳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겹치면서 지금현재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초현실’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거리에 가득한 자전거 대열과 평화로운 운하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상징이라는 자전거와 운하야말로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진 쟁점이지 않은가. 사실 여기에 와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나 오세훈 시장이 왜 자전거와 운하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알만도 하다. 확실히 자전거와 운하만을 놓고 본다면, 환경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고 아름다운 관광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훌륭한 방편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겉모습만 본다면, 당장이라도 자전거나 운하가 한국을 암스테르담처럼 만들어줄 것 같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이 엄연히 다르다는 건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는 일이다. 이런 암스테르담의 장점을 한국과 서울이라는 ‘다른’ 조건으로 이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오세훈 시장이 자전거 길을 만들고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정착시키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서울 시내를 비롯해서 전국 각지에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라는 것의 모양새를 보는 순간 그 모든 말들이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한때 논란이 되었다가 흐지부지 사라져버린 자전거 터널이라는 발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정책에 담겨 있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분리’이다. 이런 분리정책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이 아니라 레저 활동에 머물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운하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럽의 국가들이 몇 백 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풍경을 몇 년 사이에 그대로 옮겨 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무가내는 제쳐두더라도, 복지나 문화에 투자해도 모자랄 어마어마한 공적 자금을 들이부어서 운하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수였다고 할 수 있다. 수변공간을 조성해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근본적인 취지가 잘못되었다기보다, 기본적으로 그 사업들 역시 생활과 관광이라는 영역을 서로 분리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왔다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대자들에 따라서 이명박 정부나 오세훈 시장이 아무런 철학이나 심각한 고민 없이 입 발린 소리로 이런 정책들을 추진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이나 시장이라는 개인의 자질 문제로 간단하게 환원하기에 복잡한 내력이 이런 ‘밀어붙이기’에 숨어 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뭔가 확신이 있고, 거기에 현실이 응답할 때, 집요한 추진력이 나오는 것이다.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한국도 이런 도시들처럼 살기 좋은 환경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러기 아빠’라는 21세기형 한국의 부권상징은 이런 열망이 파생시킨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정상국가에 대한 요청이 교육문제로 내려앉았을 때 가족들 전체가 일시적 이산을 과감하게 결행하는 모습에서, 민족을 위해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하고, 금의환향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하는 기이한 한국 사회의 역설을 읽어낼 수 있다.
유럽에서 발견한 ‘좋은 것’을 한국에서도 실현하겠다는 생각을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좋은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먼저 선행해야할 것이다. 유럽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함께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철학이다. 극단적 배제의 논리를 보여주는 블랙리스트와 권력다툼으로 시끄러운 한국 사회에서 언제쯤 공존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아직도 먼 이야기이기만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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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 게재되었음.



덧글
_浪_ 2010/07/20 17:29 # 답글
자전거를 타고 생활하게끔 하고 싶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길을 만드는게 아니라자기 동네에서 일하고 생활할 수 있게끔 '동네'라는 개념이 생겨야할 거같은데
막상 서울이나 수도권에 모든것이 밀집되어 있고 어떤 의미에서 이를 더 심화시키고 있으면서도 그런 '말'을 하니 애석하네요.
이택광 2010/07/20 17:44 #
정확한 지적입니다.
asianote 2010/07/20 18:22 # 답글
뜻밖에 이택광 님께서 오시장 님과 주어 없는 분을 꽤나 좋게 평가해주시는군요. 한계는 명확히 지적하면서요.
2010/07/20 20:27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검투사 2010/07/20 20:37 # 답글
하도 유럽에 환장한 자들이 많은 나라다보니... 0ㅅ0
검투사 2010/07/20 20:38 # 답글
아무튼 저들이야 자전거를 탈 때 평상복 그대로 타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좀 탄다는 자들 옷차림을 보면..."저런 새퀴들을 위해 내가 낸 세금으로 자전거길을 깔고, 지하철에 자전거 전용칸을 만든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치밀죠.
bird20 2010/07/20 21:47 # 삭제
여기 쥔장님은 공존의 미덕을 말씀하시는데, 님은 극단적 배제의 감정을 무섭게 토해내시네요. 무엇 때문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자전거용 의복입은 사람들한테 너무 적의를 가지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그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들은 그냥 자전거 의복이 주는 기능을 즐기고 이용하려는 사람들일 뿐이랍니다.
스폰지 2010/07/20 22:05 # 삭제 답글
공무원들 걍 해외연수 안보내는건 어떨까요?
사현군자 2010/07/20 22:29 # 삭제 답글
바르셀로나도 그렇지만, 유럽 도시들은 좁은 골목길 차로와 자전거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바탕위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특히 서울은 구조적으로 중형 사이즈 이상 승용차의 '마초적 욕망',혹은 히스테리를 정치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한강이나 그 지천으로 자전거도로가 주변화되는 것일테지요. 도시문화가 이모양 이꼴이 된 원인을 과잉노동과 분단체제로까지 거슬러 가는건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쉽지 않은 일인것 같습니다.
virustotal 2010/07/20 23:04 # 답글
자전거는 막장이다. 현재도 타지면 솔직히 교통비가 아까워서 타고 언제 차에 박어서 뒤져도 모른다는 생각은 항상하죠그래도 저지입는 사람보면 그 넘어지면 청바지나 그런거 안입으면 사고날때 살점날라가는데
이해가 안되죠
아무튼
자전거도로가 자전거길이면 치중대도 특공대고 오리너구리가 조류다.
자전거길 마치 소개팅해달라고 하니 마네킹에 여자라고 적어놓고 소개팅했다고 우기는것과 같죠
자전거도로 인도사이에 있고 여기저기 대충대충 주행을 하라는건지
전용도로면 주행권 어느정도 유지되야지 안되죠 인도사이에 사람들 다닌데 대충 만들고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결국 자전거운전하면서 신호위반하고 무식한 짓을 하게되는게 권리도 없는 사람은 의무도 없다 그런식으로 하게 되니
차없을때 사람없을때 빨리가야 사망위험이 없고 솔직히 막장이죠
그걸 아니 경찰도 단속도 하기어렵고 권한도 애매하고 처벌도 애매하고 그냥 앞에서 신호위반해도
그냥 넘어가는데
간접흡연 금연장소 흡연처벌없는것처럼 아마 이**로 계속 갈겁니다.
법리적 제도적으로 계속 멍청이라.
랄프386 2010/07/21 05:44 # 삭제 답글
저도 베르린에 좀 머문적이 있었는데 자전거를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었습니다.자전거도로에 사람이 서있거나 하는것을 본적이 없는게 아주 인상적이었죠.
(자전거 통행에 방해가 없다는 뜻)
서울에서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다 보면 울화통이 치밉니다. 이건 머 전시행정은 고사하고
한번이라도 만든 자가 직접 자전거를 타봤는지... 가다가 없어지고 가로수에 사람에...
그나마 한강을 낀 자전거도로는 쓸만하지만 한강라인에 고립되어 있고 거기만 벗어나면
다시 지옥이죠.
지난주 오사카에 다녀왔는데 자전거 주차료가 300엔이더군요..5천원.. 헉. 그래도 그런 인프라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어쨌든 서울의 자전거 정책은 대단히 작위적이고 전시성입니다. 운동을 위해 한강변을 달리는 사람을 제외하고
비즈니스나 생업용으로는 '목숨'내어 놓는 일이지요.
아뭏든 저는 자전거,스쿠터,차를 그때 그때 이용하며 삽니다. ^^ 요새 북유럽도 꽤덥죠?
울 어렸을적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녹색베개 2010/07/21 11:56 # 삭제 답글
북유럽의 베니스는 스톡홀름(스웨덴)으로 알고 있습니다.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까지를 북유럽으로 치고,
네덜란드는 북유럽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택광 2010/07/21 14:43 #
유엔은 그렇게 명시하고 있지만, 관습적으로 네덜란드와 영국 일부,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 일부 지방을 북유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