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과 장희민 세상읽기

강용석의 발언은 왜 여성 비하이고 장희민의 발언은 왜 군대 비판일까? 강용석의 발언은 반론이 불가능하지만, 장희민의 발언은 반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용석은 '아나운서는 다 주는 직업'이라는 자신의 판타지, 더 나아가서 한국 주류 남성의 욕망구조를 '액면가'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면, 장희민은 일정하게 환원주의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긴 하지만, 반론이 가능한 페미니즘이라는 '이론적 입장'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강용석의 경우는 그렇지 않지만, 장희민의 경우는 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이론적 판단들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타당성을 합리적으로 주장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강용석은 규탄 받는 게 당연하지만, 장희민은 진지하게 반론을 받는 게 정당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한 마디로 똥오줌을 못 가리기 때문일 뿐이다. 또한 비하와 비판이 헷갈린다는 건 기본적으로 두 의견을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한 인문학적 사유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종교가 기복 신앙과 철저하게 결합해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주류 부르주아의 내면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비합리적이라는 건, 삼성의 재벌총수가 '관상'을 보고 직원을 뽑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이기도 했던 김진호 목사는 이런 지점을 파고 들어서 한국 사회의 비합리성을 기독교의 부실성에 찾고 있는데,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주장이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이들이 구룡마을에 있는 맹인 지압사에게 건강을 의탁하기 위해 외제 승용차로 장사진을 치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관이 한국 이외에 다른 어느 '근대국가'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부르주아의 미덕으로 통하는 이런 비합리성의 이데올로기가 중간계급의 반지성주의를 구성하고, 결국 이를 중심으로 한국 시민사회의 세계관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 혁명'은 아직 도래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권력의 직접 현시이자 집행자인 '군대'가 파시즘적 혁명을 주도했던 것이 한국의 근대사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폭력은 한국에서 일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하나의 조건이고 합리적 비판은 이런 비합리성의 순수를 짓밟는 망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용석의 발언과 장희민의 발언이 놓여 있는 지형은 이렇게 서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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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김원철 2010/07/27 20:42 # 삭제 답글

    "부르주아의 미덕으로 통하는 이런 비합리성의 이데올로기가 중간계급의 반지성주의를 구성하고" 이게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 이택광 2010/07/27 20:47 #

    비합리성이라는 건 실체라기보다, 합리성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이데올로기입니다. 합리성보다 비합리성이 더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가 반지성주의인데, 이걸 부르주아와 중간계급이 서로 나눠가졌다는 뜻이예요.
  • - 2010/07/27 22:53 # 삭제 답글

    허영만이 생각나는군요.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0:36 # 삭제 답글

    물어볼 곳이 선생님밖에는 없어서..

    무라카미하루키에대한 질문인데요.. 그의 소설은 왜 희트를 치는 걸까요?? 사실 제가봐도 재밌을 요소는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정도로 희트를 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전세계적으로(라고 하던데..) 말이죠.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평범을 가장한 비범한 주인공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보통사람 주위에는 유명인은 잘없죠.. 근데, 더 드문 존재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 인물들이 하루키 소설속에서는 그려지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제 불만은 여긴데요... 하루키 소설속의 자존감을 가진 인물이, 제 생각에는, 한꺼풀만 들쳐보면 꽤나 비현실적인 인물이란 거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누구말처럼 독자들의 유치함 때문이 아닐까라는...

    저는 유치하지 않다고 이런 글을 쓰는게 아니구요... 저도 하루키의 소설에 끌리는 면이 있거든요... 그것도 꽤나 말이죠.. 그래서 질문드립니다. 하루키 소설이 인기 있는 이유는 정말 문학적 가치란 게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불과한 걸까요??

    좀 더 노골적으로 질문드리자면 그가 죽은 뒤에도 명작으로 길이 남을 작품이 있을까요??

    p.s: 질문 드리다 질문이 하나더 생겼느데... 명작이란(혹은 문학적 가치란) 건 뭘까요?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0:40 # 삭제

    요즘 드는 생각은 문학은 재밌으면 "장땡" 아닌가 싶은데요. 그 이외에.. 철학적 요소랄까.. 그런 것들은 덤이 아닐까라는...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튼 하루키 소설이 희트를 치고 있으니 (제가 생각하는) 문학으로서의 사명은 다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최소한 하루키 소설이 대단한 해악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테니까...

    문학을 단순히 재미의 수단으로만 보는 건 너무 저질인가요??

  • 이택광 2010/07/28 11:47 #

    질문하신 내용은 문학의 본질과 관련해서 아주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쟁점입니다. 문학은 원래 재미가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다가 모더니즘에 오면 '예술'로 승격되는 거죠. 여하튼 문학적 가치라는 건 모더니즘이 만들어낸 일종의 이데올로기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고급예술로서 문학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어요. 하루키는 모더니스트는 아닌 것 같고, 그런 면에서 통속적인 측면이 없지 않아 있죠. 아무래도 그 통속성이 인기의 비결이 아닐까 싶군요.
  • ...... 2010/07/28 11:52 # 삭제

    하루키의 소설이 인기있는 것은 말그대로 '있어보여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많이 언급을 하고 겉은 훌륭해 보이지만 두껑을 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허무주의 정도?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 여러 철학자들을 언급해놓았지만
    그것역시 주인공의 허세에 가까운 수준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죠.
    문학이란 그 시대를 반영하고, 그에 따라 당연히 사람들에게 자신들과 주위를 둘러 볼 수 있게
    해주어야합니다.
    만약 문학이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그런 장르일 뿐이라면, 하루키 소설이 좋을 수도 있겠네요.
    흡입력은 좋으니까요.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2:14 # 삭제

    ......// "문학이란 그 시대를 반영하고, 그에 따라 당연히 사람들에게 자신들과 주위를 둘러 볼 수 있게
    해주어야합니다." 님 말씀에, 요즘의 저로서는, 동의하기 좀 힘든게요. 그걸 굳이 문학을 가지고 구현해야할 필요가 있냐는거죠... 독자에게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지 않냔 얘기입니다. 얼마든지 요약해서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설을 읽고 자신의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독자라면 소설아니더라도 충분히해냈을 사람이고... 소설이 재미없다고 그 일깨움(?)을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이라면...

    아무튼 저는 그렇습니다.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2:21 # 삭제

    ......// 얼마전에 배꼽 잡은 댓글이 있었는데요... 미국 명문대에 합격한 걸 비롯한 스팩이 상당한 학생의 기사를 보고 자신의 생각흐름을 순서대로 기록해 놓은 댓글였습니다. 1. 감동한다. 2. 나는 도대체 뭘하고 있었나,라며 후회한다. 3. 나도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지 결심한다. 4.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다른 오락거리나 기사를 검색한다.

    저는 이런 이유로 소설이 굳이 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목적성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물론 있어서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구요.)
  • ...... 2010/07/28 12:29 # 삭제

    문학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이 시대에 살고있는 만큼, 이 시대에 대한 그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학에는 그러한 그 사람의 세계관이 묻어 나올 수 밖에 없죠.
    그리고 독자는 그러한 것에 깊이 생각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이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문학말고 다른 것으로 그렇게 할 수 있죠.
    문학 중에서 재미를 주는 요소가 많이 없지만 많은 사상을 드러낸 책들이 있습니다.
    단순한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는 것만을 표현하는 것을 문학이라고 하면 너무 문학이 소비형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문학에 반드시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요소는 있어야한다고 봐요.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2:56 # 삭제

    작가가 자신만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게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사람인데 자신의 세계관을 안가지고 있는게 더 이상하겠죠...물론 질적인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한가지 되묻고 싶은 것은, 문학이 주는 재미를 다른 무엇이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긴지.. 영화나 다른 매체를 예로 생각하신다면... 그건 자본을 무시할 수가 없죠(문학은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롭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릴 수도 있는거구요. ex마광수)

    제 생각엔 님께서는 재미라는 걸 너무 간단하게 혹은 너무 우습게 여기시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말하는 재미속에는, 영화 인셉션을 보고나서 그 영화속에서 무엇이 꿈이고 현실 장면인지,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깊이 생각하는 것도 포함이됩니다. 작가의 세계관이란게 그런거라면 독자로서 당연히 얼마든지 깊이 생각할 이유가 있죠.(재밌으니까요!!)

    그러나 문학이, 어떤 가르침의(계몽) 늬앙스를 풍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해야한다는 건 너무 종교적인 게 아닌가란 생각이 저로서는 듭니다.
  • ...... 2010/07/28 13:02 # 삭제

    아니, 거기 학생의 글 가지고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그러한 가치를 필요없다고 합니까?
    그건 너무 이상한데요....문학을 읽고, 거기에 순간에 감동을 받고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결심하는 것은진정으로 그 작가의 세계관에 대해 고민한 것이 아니라 그저 얕게 읽었거나,
    아니면 그저 대중에 맞춘 소비형 문학을 읽었을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그리고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고민해서 고안해낸 것도 있겠지만 유행을 따르거나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만들어내기 쉬운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사상을 문학에 넣고 더불어
    내용과 어우러지게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3:11 # 삭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깊이 읽기란 어느정도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제 생각에는 문학교수수준이나 평론가 수준이라면 꽤나 깊이 있게 읽은 거라 생각하느데요(대부분의 독자라면 그정도수준은 안되겠지요??)

    그런데 과연 그분들이 인생을 하나같이 깨끗하게 사시고 계실까요? 타직종의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그러하다면 님말씀에 동의할 수 있겠습니다만..
  • ...... 2010/07/28 13:19 # 삭제

    작가가 어떻게 생각했던 어느정도 그 사람의 글에 대해 시대적 상황이나 그 작가의 생애같은 타당한 근거를
    들어(어려운 문학이론 같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작품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보이면 그저 작품을 보고 줄거리만 보는 것보다 깊이 읽는 것이 되죠. 그게 아주 가치가 있거든요.
    근데 제가 선생님까지는 아닌데......저는 아직 대학생이에요....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3:22 # 삭제

    한가지 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님이 말씀하시는 "얼마든지"수준으로 재밌는 소설이 쓰여질 수 있는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키류의 소설이 아무나 쓰기 쉬운 소설은 아닐 거라 생각든단 말이지요(그럼 저도 작가하겟습니다. 부자 되고 싶거든요)

    다음으로..,

    님께서 말씀하시는 소설의 깊이 읽기란 건 대강은 어떤 의미인지 알거같은데요. 재미만 추구하기도 쉽지않은 일인데.. 이야기 이면에 현실적인 문제를 교묘히 집어 넣는다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겠죠. 저는 책을 깊게 읽는 능력은 솔직히 없습니다. 그러나 저역시 낄낄거리며 재밌게만 읽었던 소설이 사실은 작가가 사회현실의 단면을 "나름" 적날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쓴 작품이란 걸 평론가의 글을 읽고 이해하고나면 감탄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변하는 거 같지는 않거든요. 다시말해 제가 감탄한 것은 그 작가의 테크닉에 있는 거죠. 그런저로서는 그게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한사람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물론 변화를 보이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문학의 일반적인 기능이라 생각치는 않느다, 대단히 의문이 간다 뭐 그런 의미입니다.

    결국 저로서는 그련 평론 또한 재미의 일종에 불과(?)하다는 거죠. 어려운 퍼즐을 풀었을때의 쾌감같은거라할까요??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3:26 # 삭제

    ""아니, 거기 학생의 글 가지고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그러한 가치를 필요없다고 합니까?""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그런 가치가 필요없다는게 아니라, 재미말고 어떤 가치를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건지 저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 ...... 2010/07/28 13:51 # 삭제

    그래요...하루키 류의 소설에서는 하루키의 테크닉으로 많은 사람들을 휘어잡죠. 흡입력은 뛰어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은, 문학에 있는 세계관을 읽는 것에 대한 가치가 '얼마든지' 구상할 수 있는
    이야기나 화려한 테크닉으로 쓰는 글에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문학의 기원의 여러 주장 중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고, 유희 본능에 의해 생겨났다는
    설도 있지만 정말 문학을 읽는 데 의미를 두려면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까 그렇게 말한 것은 "님이 저는 이런 이유로 소설이 굳이 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목적성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라고 말씀하셔서 그랬는데, 문학을 깊게 읽는 것은 그 활동을 점점하게 되면서
    깊이 사유하게 되어 님 스스로 발전하게 되는 활동입니다.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6:41 # 삭제

    "깊이 사유하게 되어 님 스스로 발전하게 되는 활동입니다."

    그래서 님께서는 어떤 발전을 이루셨다는 건지요?? 정말 궁금해서 질문드리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소설들을 읽고 내 삶의 자세 혹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러저러하게 바꼈다"라고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2010/07/28 18:44 # 삭제

    하하.....저의 사례를 들어라구요...?
    일단 많은 텍스트를 깊이 사유하면서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지식의 범위가 늘어나고 더불어 사물을 통찰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계 여러 석학들이 단순히 처음부터 천재였던 사람들은 아니죠.
    전 아직 많이 부족하고, 그리고 여기서 제 구체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 자체가 사실 이상할 것 같은데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하하...그걸 정말 꼭 말해야 님의 궁금증이 풀립니까?
    제가 1984를 읽었습니다. 읽어보셨는 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말해서 과학기술의 발달으로 인해 밝은 미래가
    아닌 전체주의 사회가 되어버린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내었죠. 그러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에서
    전체주의 사회를 이끄는 자들은 인간들의 이중사고 등 여러 가지 감정을 이용하여 체제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만들어진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계도 사람들을 감시하며 악용되고 있죠.
    여기서 조지 오웰은 현대 사회의 발전 과정을 통찰하고 있으며 그것에 암울한 미래상을 그려낸 것이죠.
    한가지만 짚고 넘어가죠. 님은 정말 현대사회에 이렇게 심하진 않지만 비슷한 행동을 하는 존재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8:58 # 삭제

    뭔가 제가 이제것 한 말의 의미가 잘 전달이 안된기분인데요... 님께서 깨달은 그런 걸 굳이 소설을 통해서 얻어야 할 이유가 있냐는게 제 논지였습니다. 그런 소설이 아니면 그런 사유를 할 수 없나요??

    예를 들어 1984년을 읽지 않은 저는 님과 다른 게 뭐죠? 간단하게 요약하신 님의 말씀만으로도 저는그 정보를 흡수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그 책을 직접 읽었느냐 여부에 따라서 님과 저는 세상을 대하는 실천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나기라도 하나요??(그 책을 읽고 님께서 세상을 향해 어떤 실천을 행하셨는지요??)

    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사유능력 배양이나 세상을 이해하는 건 철학책이 훨씬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요?? 하다못해 이택광씨의 블로그를 들락날락하는 게 더 효율적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아닐까요?? 왜 굳이 님의 몇마디로 요약될 수 있는 걸 그런 긴 내용의 이야기로 읽어야 하나요??(재미가 아니라면 말이죠)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9:10 # 삭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소설이 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내용을 포함해서는 안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건 고작해야 부차적인 요인에 불과하지 않느냔 얘기죠. 이야기에는 감동이란 게 있으니까 그게 사람을 실천이란 측면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지는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감수성이 대단히 풍부한 사람이라면 1984를 읽은 경우와 단순요약본을 읽은 경우에는 실천이란 측면에서 차이가 날 여지가 있겠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케이스가 몇이나 될까요?(당장 님을 예로 들어 질문 드리고 싶네요. 1984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실천적인 측면에서 바꼈나요?)

    단순 지식의 습득이나 사유능력의 배양이라면 소설 보다 훨씬 효율적인 것들이 많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소설은 재미가(말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최우선이며 단순히 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효과가 없느냐 여부를 가지고 그 소설을 평가하기는 힘들다고 본다는 말입니다.

    이왕이면 다홍지마라고 님께서 말씀하시는 소설의 그런면은 덤정도라 생각하는 게 옳지 않을까.. 뭐 그런 얘깁니다.

    p.s: 제 생각이란 게 굳어 있어서 남의 말이 잘 안들어오는 경우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님의 논지는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주의사항: ""님의 주장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얼마전에 영화 인셉션을 봤습니다. 무슨 얘긴지 감이 잘 안오더군요. 그래서 검색해 보니 역시나 많은 설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중에서 어느하나도 확실한 해석은 없었습니다.(당연하죠. 애초에 불완전한 영화니까요) 그러나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에 반할 수 밖에 없는 글들이 있더군요. 제가 바라는 건 그런겁니다. 소설에 재미 말고 그못지않게 중요한 다른 요소가 있다면(직감적으론 있을 거 같습니다,저도!!) 그게뭐냐를 근거를 통해 설명해 주실 분 없느냐는 게 이제 것 제가 지껄인 얘기였습니다.
  • 또... 죄송합니만 2010/07/28 19:21 # 삭제

    담배를 하루 4갑씩 펴도 90넘게 사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그걸로 담배가 무해하다고 보기는 힘들 듯이.. 소수의 몇몇사람의 삶을 변화시켰다 해서 그게 소설의 특질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심지어 그들중 상당수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추측이긴 합니다만, 변화의 임계점에 다다른 시점에서 그 소설이 조그마한 방점을 찍은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그 소설이 아니더라도 변할 준비가 거의다된 시점였을 거란 얘기죠.. 뭐랄까 개점이후 10만명 돌파 기념 사은행사로 많은 선물을 10만번째 사람이 받는다 해서 그 사람이 본디 특별한 사람은 아니랄까.. 뭐 그런 얘깁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매체의 발달은 커녕... 대부분의 인간들이 문자조차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시절에야.. 작가란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지식층으로서 행사(?)를 할 수 있었겠죠. 그렇다면 님께서 1984 읽고 느낀 그런 감상을 단순히 얘기로 들려주는 경우 대부분의 무지한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겠죠..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형식의 소설로서 접근하는 게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지금과 같은 시대에 소설이 그런 기능을 담당하기를 바라는 건 좀 오버아닐까요.. 뭐 그런 얘기였습니다.
  • Kaleana 2010/07/29 09:12 # 삭제

    결론은 현실적으로 그런 케이스가 얼마나 있느냐...인 것 같은데, 전 충분히 많다고 봅니다. 카뮈나 카프카의 글을 읽고나서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소설은 철학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효율적입니다. 예컨대 처음부터 비트겐슈타인의 논고를 읽는 것보다는 논고가 저술된 배경을 통해 접근하는 책들이 더 효율적이라고 봐야겠죠. 소설은 여기에 감정적인 부분까지 들어가니, 더더욱.
    글쎄, 피로 쓰여진 책은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겠죠. 그리고 전 소설 또한 피로 쓰여질 수 있다고 봅니다 - 당연하죠? 물론 그렇지 않은 소설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하기야, 생각해보면 니체의 책도 그렇게 싫어하던 게으른 독자들에게 많이 당했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 Why?? 2010/07/29 10:44 # 삭제

    Kaleana// 정말 미니스컷때문에 강간이 더 발생하는 거라 생각하십니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거랑 자신의 삶이그 책 전후로 해서 바뀌는 거랑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죠.(저조차도 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책을 읽을 때는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결국 님도 제 의견을 어설프게 읽고(혹은 땡땡님의 의견만 읽고) 멋대로 추측해서는 제 논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하시고 계시네요... 물론 쓸데없이 글이 길어진 제 탓이 크다 생각합니다만... 그러니 안읽은 건 당연하다 생각하나 하지도 않은 얘기는 좀...

    주의사항: 제 논지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기에 효울적으로 써야한다는 전제하에서 쓰여진 겁니다. 즉, 시간이 무한하다면 인생을 돌아보는 수단으로 혹은 이 세계를 사유하는 시발점으로서 소설을 활용하는 것 또한 나쁠게 없다는 거죠.
  • Kaleana 2010/07/29 17:04 # 삭제

    결국 또 효율의 문제로군요.

    일차적으로 전 그런 케이스가 많다고 본다고 언급했다는 사실을 주지하시길. -. 카뮈나 카프카의 글을 읽는 순간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 혹은 놓치고 있었던 삶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변화지요.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변하는 것이 변화가 아니라고는 못 하시겠죠. 일회적인 것 뿐 아니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소설이 사고에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도 할 수 있는겁니다. (요약해보죠. 그런 책을 읽고 나서 인생의 의미나 존재에 대해서 이전처럼 말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되겠죠. 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지만 이 질문은, 이전처럼 가볍게 말 할 수 있는가, 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설마하니 인생을 사유하는 것 자체가 시간 아까운 짓이라고 생각하시는건 아닐테고, 그 시발점으로서 소설이 비효율적이라는 건가요? 존재와 시간이 그 어떤 소설보다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는 사람은 몇 봤습니다만...글쎄요, 존재와 시간이 카뮈나 카프카의 소설보다 효율적일는지는 모르겠군요. 접근성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 칸트,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류의 책이 아무런 준비 없이 읽을 수 있는건 아니죠. 뭐, 책값이라거나 번역의 문제에서도 그렇고. - , 드는 시간 따위의 문제에서도 그렇습니다. 자칫 오독의 문제도 있고.

    그렇지만 - 그렇게 어렵게 읽은 철학서가 딱히 변화를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드렸죠? 피로 쓰여졌다는 니체의 글도 게으른 독자들에게 얼마나 난자당했는지. 공산당선언 정도면 꽤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만, 그걸 읽고 나가서 실제로 투쟁한 사람들의 비율이 어느정도인가 하는 부분은 의심스럽군요. 이것도 결국 제가 위에서, 그리고 전 리플에서 말했던 사고 수준의 변화가 거의 대부분일 것 같습니다만.

    아, 그러고보면 인류는 효율적인 행동 변화를 위해 정신과 약물을 개발했습니다. 효율적인 재미를 위해 마약 같은 것도 만들었죠.
  • Kaleana 2010/07/29 17:07 # 삭제

    뭐, 장미의 이름이나 소립자 정도면 객관적인 의미에서도 꽤 효율적일 것 같군요.
  • Why?? 2010/07/29 17:22 # 삭제

    Kaleana// 누차 말씀드리지만, 제 글을 안읽는 건 이해하지만, 하지도 않은 얘기를 왜 멋대로 지어내서 하시는건지.. 님 글만 읽으면 저는 사유란 걸 중요시 여기지도 않는 사람으로, 혹은 소설에는 그런 부분을 넣어서는 안된다는 말로 들리네요. 또한 제가 언제 철학서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했습니까?? 소설로 그 사람의 삶이 근본적으로변화될 사람이라면(그런 사람도 없잖아 있죠. 그부부분이 이 이야기에서 중요치 않다는 건 이전 댓글에서 충분히 언급했구요) 철학책으로도 변하게되어 있다는 얘기죠. 그게 더 효율적이란 얘기구요!!

    1. 제 얘기의 논점은 (역시나 누차 말씀드리지만) a급 강사에게 더 저렴한 비용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왜 굳이 c급강사에 집착하냐는 겁니다. "c급 강사는 무가치하다는 얘기가 아니구요!!"

    우리 좀 솔직해 집시다. 철학서가 읽기 어렵다고 소설을 봐요?? 그럼 그 철학서가 이해가 됩니까?? 전문가의 해설서를 봐도 어려운데... 그리고 감히 단언하건데... 철학책의 어려움 보다는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게 더 어렵다고 봅니다.
  • Why?? 2010/07/29 17:31 # 삭제

    Kaleana// 님이라면 또 오해의 여지가 있을 거 같아 다시 언급합니다. c급강사란 건 소설이 철학에 비해서 못난 존재란 말이 아니라, 어떠 효용성을 기준으로 하냐에 따라 다르단 얘깁니다. 당연히 일반적인 의미의 재미란 관점에서(카타르시스) 보자면 철학은 소설에 비해 c급일 수 밖에 없는 거죠.(일반적인 의미란 말입니다!! 철학에서깊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도 분명있죠)

    이제것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같은 얘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네요.. 참) 소설에는 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요소를 넣으면 안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요소가 있느냐 여부를 가지고 소설의 가치를 재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얘깁니다.

    p.s: 이 저질 댓글들의 시발점은(즉, "저의" 시발점은) 무라카미 하루키였습니다. 정말 답답하네요.. 참..
  • Kaleana 2010/07/29 18:17 # 삭제

    제 논지는 소설이 종합적으로 볼때 C급 강사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 철학에 비교해서. 님이 중요시하시는 효율의 측면에서 그렇죠(철학서가 가지는 가치는 인식 확장의, 시간적 - 그리고 절대적 효율이 아니라 깊이의 문제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 자, 철학이라는 A급 강사가 소설이라는 'C급 강사'보다 저렴하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요? 이건 대중적 저변의 차원에서 생각해봐도 동일합니다. 또 뒤집어볼까요? 소설로 변화할 사람은 철학서로도 변화할 공산이 크기는 할 것 같긴 합니다(교양의 차원이죠.). 다만, 철학서보다는 소설 읽는거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단순히 소설과 그 대척점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재미, 성찰, 이런 파트로 나눠서 등급을 매기니까 마찰이 발생하는 거겠죠. 이 가치를 뭉뚱그려서 삶에 대한 성찰과 (님의 표현을 빌자면) 그 성찰에 이르는 효율성의 측면으로 보면 어떨까요. 이건 결론적으로 ......님의 논지와 일치합니다. 그런 차원 - 보다 전체적인 차원이죠? - 에서 보면 소설은 철학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즉, 마찬가지로 님의 표현을 빌면, 철학이 A급인 부분)에서도 충분히 효율적이고 뛰어나다는 겁니다.
    예컨대, 저같은 경우에는 소설이 재미 없어서 재미로 읽지는 못하겠더군요. 이런 식으로 소설을 읽는 이유에서 재미라는 부분을 잘라내보시면 문제가 꽤 명료해질겁니다.
  • Kaleana 2010/07/29 18:22 # 삭제

    그리고 또 하나. 성찰이라는 측면에서 소설과 철학서를 대치시킨 것 뿐이지 소설이 무슨 철학 해설서라는 의미는 아닙니다(그러면, 가장 가치있는 소설은 소피의 세계가 되겠죠?).

    여담이지만, 전 그 삶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부분이 모호한 것 같네요. 인식과 사고의 차원을 넘어서는,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고 소설이 쓰여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카프카의 성에서 기대할 수 있는 독자의 삶의 근본적 변화가 뭘까요? 저로선 잘 모르겠군요.
  • Why?? 2010/07/29 18:37 # 삭제

    님은 재미를 우습게 보는 듯(그보단 재미에 대한 정의를 저와는 많이 달리 하는 게 아닐까..) 아무튼 여전히 평행선이군요. 앞으로도 그럴거 같구요. 아무튼 여기서 멈추는 게 상책같습니다.

    p.s: 방금 박민규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를 읽었습니다. 낄낄거리며 넘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마디로 대~박!! 물론 아마도 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것들도 저차원이나마 느꼈,을 겁니다. 각설하고 저는 제 삶이 바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일까요?? ㅜㅜ
  • Kaleana 2010/07/29 18:47 # 삭제

    문학이라는 강사는 시간 1에 난이도 1, 그리고 깊이 1로 성찰을 가르칩니다. 철학이라는 강사는 시간 2, 난이도 2, 그리고 깊이 2로 가르칩니다. 효율을 따져보기 위해 곱해보면 문학은 1/1 * 1/1 * 1/1 = 1. 철학은 1/2 * 1/2 * 2 = 0.5. 문학이 훨씬 효율적이죠?(2배나!). 이건 문학의 깊이를 너무 폄하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여튼 그렇습니다.

    조지 가모브의 빅뱅이론에 대한 소설과 그의 빅뱅이론 논문 중, 일반인의 물리학과 빅뱅이론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에 더 효율적으로 - 크기면에서도 - 기여할 수 있는건 뭘까요? 일반인이 그의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거나 신기하다고 느낄때, 논문을 본다면 수식에 눌려 까무러칠게 분명하겠죠.

    한마디로,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성찰을 가르치는데 능한 철학...이건 맞을 것 같은데, 재미에 능한 문학...이건 좀 아닐 것 같습니다. 재미 차원에서만 보면 별로 효율적이지는 않을 것 같군요. 하나하나 분석해보면 글쎄요, 문학의 입지가 너무 좁아질 듯 싶네요.

    ps) 과학계에서도 소설이나 교양서가 일반인에게 지나치게 간단하고 쉬운 과학을 전달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 의미는 다르지만 논지는 님의 주장과 비슷하죠. - . 바로 이 '지나치게 간단하고 쉬운 과학교양서'가 바로 하루키의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겁니다. 물론 전 하루키에 대해 별다른 감정은 없습니다만.
  • ㅋㅋㅋㅋ 2010/08/01 22:03 # 삭제

    대중소설과 문학소설은 분명 다르다라는것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예를들면 사탕과 보약 의 관계 이라고나할까요?
    먹기에는 사탕이 달기때문에 많이먹고 많이 소비됩니다
    그러나 진짜 몸에좋은 보약은 쓰죠
    마찬가지로 대중소설은 달고 또 맛있습니다 사탕같은 개념이에요
    하지만 문학책같은경우에는 쓰죠 쓰디씁니다 읽기가 짜증나요
    왜냐? 문학이란것은 그시대의 현실을 (일반적으로 그시대현실중 어두운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을 토대로 다듬어
    글이라는 매채를 가지고 독자에게 전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글을 읽은 독자는 뭔가 깨닿게되는겁니다
    그 뭔가가 뭔지는 정확하게 말씀드릴수없습니다
    느끼는건 사람마다 다른거니까요
    편하게 운수좋은날 생각해보세요
    재미있습니까?
    그시대 사람들은 그책을읽고 하하 호호 웃고 떠들었을까요?

    철학적요소랄까 그런것들은 덤이 아닐까 라는 그런 생각을했다니
    너무 안타깝네요
    저도 님과같은 생각을하다 어떤 계기를통해서 생각을 완전하게 바뀐적이 있어서 말이죠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문학과 대중소설은 다릅니다

    문학책을 읽으면서 이런생각을해보세요
    이 책속의 어두운사회가 실제사회에는 어떻게 존재하고 또 확장되어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찾았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라는 겁니다
  • Q 2010/07/28 21:53 # 삭제 답글

    또...죄송합니만// 소설이 시대 예술은 아닌 게 확실하죠. 지금 시대 예술은 영화나 만화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영화/만화가 가질 수 없는 특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나 철학이나 아니면 만화나 모두 삶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이 담을 수 있는 삶의 부분은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안개의 축축함을 위의 네 개의 장르 속에서 어떤 게 독자로 하여금 가장 잘 느끼게 만들 수 있을까요? 안개가 조금씩 옷을 젖어 축축함을 느끼게 하는 이미지를 네 개의 장르 중에 어떤 게 가장 생생하게 담을 수 있죠??

    그 이미지는 촉각과 그러한 촉각을 인지하는 등장 인물의 생각이 결합된 이미지입니다. 따라서 이 두가지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도구 즉 언어만이 그 둘을 담을 수 있고, 또한 1인칭 시첨에서 느낄 수 있는 정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나 만화는 시각적/시청각적입니다. 또 기본적으로 3인칭적이죠.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만화가 위와 같은 이미지를 표현하려면 "시점의 전환"이라는 기법을 사용해야합니다. 하지만 이 "시점의 전환"은 기법이기 때문에 영화나 만화에서는 소설과는 다르게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반면에 소설은 3인칭 시점 소설에서도 이것이 자연스럽죠. "철수는 자신의 옷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한여름에 갔던 우포 늪이 떠올랐다."

    훌륭한 이야기는 독자의 몰입을 권장하고 지속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부자연스러움은 바로 이러한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입니다. 물론 뛰어난 작가/감독/만화가는 이러한 관습을 공격함으로써 새로움을 창조해내기도 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이야기는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이것이 소설이 영화/만화 와 다른 점이고 고유한 점이기도 합니다.
  • Why?? 2010/07/28 23:17 # 삭제

    제가 가지는 의문과 상관이없는 답변(?)이신 거 같은데요... 물론 님이 말씀하시는 얘기는 충분히 공감합니다.(물론 그런게 바로 제가 말하는 소설이 가지는 재미의 일종이죠)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 Q 2010/08/01 22:26 # 삭제

    바로 그 점이 소설 속에 인생이 담겨야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철학이 인생의 에센스를 담은 것이라면 소설 역시 철학이 담아내지 못하는 인생의 에센스를 담는 것입니다. 만약 소설이 다른 형식과 다르고, 형식에 따라 담길 수 있는 게다르다는 걸 인정하신다면 소설에 왜 사상이 담겨야 하는 지 알 수 있는 명확하죠.
  • leereel 2010/07/28 23:45 # 삭제 답글

    '비하'와 '비판'의 서로 다른 지형도도 제겐 흥미롭지만, '비판'이 왜 '환원주의'적이 되고 말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그 둘은 서로 연동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부르주아와 중간계급이 공유하고 있는 반지성주의가 가능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겠지만요. 지배적 환타지를 맘껏 발설할 수 있는 자리와 거기에서 박탈당한 자리 사이의 연동 혹은 영향관계도 이 두 사건을 연결시켜주지 않을까 싶어요. '비판'의 가능성은 그러한 환타지를 (지)향하지 않는 곳에서 시작할 수 있겠죠.
  • 이택광 2010/07/29 00:07 #

    흥미로운 논점이군요. 이 둘이 연동된다는 사실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집니다. 일정 부분 이런 측면이 없지 않아 있죠.
  • 야미 2010/07/29 13:32 # 답글

    최근에 문제가 된 두 사람의 발언을 비교하셨는데,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두 사람의 발언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어떤 직업군이 성상납을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주는게 아닙니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당사자들이 발언하기 상당히 예민한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군대 역시 자발적으로 가는게 아닙니다. 지금과 똑같은 조건에서 모병제를 실시한다면 군대 갈 사람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군대에서 살상기술 가르치는게 부분적으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선택의 자유가 없는 군필자들을 비난한 것이 비판이라고 보기 좀 어렵네요. 광주에서 공수부대가 저지른 짓을 비난한다면 그게 비판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겁니다. 말이란 항상 상황 속에 있는겁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황제의 식사도 백퍼센트 적극적으로 우호적으로 해석하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왜냐면 비유적 표현이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을 노여워하게 하는건 현실입니다.

    전 그 말을 한 문제의 강사를 비난하는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여자가 하는 일은 가치있고 남자가 하는 일은 다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공석에서 그런 발언을 했을 땐 적절한 제제조치를 받으면 되지 몰매를 맞아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 사람이 하나에서 백까지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 모두는 일상적으로 차별을 실현하는 주체니까요. 뻘소리라고 인정하고 좀 관대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제가 받은 인상은 왠지 우리 사회에서 남성들의 상처는 건드려서는 안되는 그 무엇같다는 느낌이네요.
  • 이택광 2010/07/29 13:45 #

    나는 님 같은 분이 참 신기해요. 나는 장희민씨 발언을 보고 무슨 상처를 건드린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나도 군대 갔다 왔는데 말이죠. 도대체 님이 말하는 그 '남성들의 상처'가 뭔지 모르겠어요. 자기 스스로 없는 상처를 상정해놓고 징징거린다는 느낌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니 저런 비판을 받아도 싼 거죠.
  • 야미 2010/07/29 16:11 #

    군대가 남성들에게 엄청난 고통이라는건 많은 여성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님 말씀대로 저도 장희민씨가 의도적으로 (있지도 않은) 상처를 건드리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경우를 예외로 하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는 타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몰이해 혹은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님은 비판이라고 하셨지만 군필자들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없습니다. 비판의 대상이 아닌 자들에게 하는 비판은 비판이 아니라 폭력일 수 있습니다. 군대가 상처가 아니라면 왜 남자들이 군대가는 꿈을 꾸며 식은 땀을 흘릴까요. 제 친구의 초등학교 동창도 군대에서 죽었습니다. 상병이 야밤에 라면이 땡긴다고 어두컴컴한 밤에 강물에 그릇 씼어오라고 시켰다가 강물에 휩쓸려서 죽었어요. 군대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분명히 상처입니다.
  • 강냉이소녀 2010/07/29 14:35 # 답글

    여하튼 국가보안법도 아닌데 무슨 말만하면 초토화가되니....
    그들은 군대에 대해서 입발린소리만 듣고싶은 걸까요 ?
    갔다왔거나, 갈사람들이고 본인의 성별은 바뀌지 않는데, 왜 항상 이럴까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합니다. 덧글들을 보고있으면, 본인이 '한국남자' 라는걸 망각한것 같기도합니다.
  • ] 2010/07/29 18:44 # 삭제

    근대 국가와 군대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학교다니면서 그런 건 못 배워서.
  • 남박 2010/07/30 14:13 # 삭제 답글


    죄송하지만 본질을 호도하려는 목적이 없다면 이번 논란에서 군대가 가진 역기능을 논하거나 대상에 대한 다원적 가치판단을 들먹일 이유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장씨의 발언 중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볼께요.



    "남자들은 비표준형을 주로 만들고요 여자들은 표준형을 만듭니다. 남자들이 쓰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니고요. 여자들이 쓰는 말은 어떤말? 좋은 말이죠? 역시 남자들은 폭력적이고 좋지 않아요. 남자들은 군대 갔다왔다고 좋아하죠? 자기가 군대갔다왔다고 맨날 떼쓰잖아요. 그죠? 군대가서 뭐 배우고 와요? 죽이는 거 배워오죠?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놓으면 걔네는 죽이는 거 배워오잖아요. 걔네가 처음부터 그거 안배웠으면 세상은 평화로워요."


    제가 보기에 장씨의 발언에 발끈하는 대부분의 댓글들은 반박 가능한 장씨의 이론적 판단이나 군대에서 살인을 가르친다는 명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걔네가 그거 안배웠으면 세상은 평화롭다는 주장'은 '그렇다면 병역기피자들 천지인 한나라당의 세상은 평화로운가'라는 눙으로 받아 넘기면 그만입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논거 없이 조롱 일색인 (혹은 조롱이 조롱을 논증하는) 장씨의 주장에서 살인기계라는 의미는 거의 예외없이 군대를 다녀 온 특정성, 즉 대부분의 성인남성들을 맹목적으로 비하하기 위한 맥락에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죠.

    특정 직업군, 특정 대상을 힐난할 목적이라면 장씨의 직업인 수능강사는 입시기계를 찍어내는 입시공장 공돌이 공순이로, 장씨가 사유재산 보호를 위해 고용한 아파트 경비원은 '몽둥이 든 감시기계'로 얼마든지 모욕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앞뒤 맥락을 고려할 때 장씨가 언급한 '살인기계'라는 묘사가 순수한 이론적 판단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렵지않게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군대발언이 남자들의 언어를 부정하는 주장에 대한 전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난의 지점이 군대 갔다왔다고 떼쓰는 일부남성에 국한된다'는 반박도 유효하지 않구요.

    저 발언을 비하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외려 똥오줌 못 가린다고 비하하는 이택광님은 제가 생각하기에 비하와 비판의 사전적 의미 차이를 알지 못하거나, 일상적 의사소통에 상당한 장애를 겪는 분 같습니다.



    ps: 발화자의 무의식을 고려한다면, 장씨의 발언에 말씀하시는 소위 '반론 가능한 페미니즘'이라는 이론적 입장이 정말로 전제되어 있다면 그 문제의 발언에는 한국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욕망구조가 액면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겠군요.
    말씀하시는 페미니즘의 이론적 입장이나 언어영역 강사라는 장씨의 의도된 환원주의적 오류가 욕망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 내일의죠 2010/07/31 00:24 #

    동감합니다.
  • Q 2010/07/31 09:30 # 삭제

    ㅋㅋ 장씨의 직업인 수능강사는 입시기계를 찍어내는 입시공장 공돌이 공순이로. 난 저게 비판으로 보이는데?? 비판아니냐??
  • 야미 2010/07/31 10:43 #

    전 님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군대가서 죽이는거 배워온다. 솔직히 전 이 말을 사람들이 심각하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일까 의문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어이없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서 살상기술 가르치는 것 맞고, 그건 침략전쟁에서 사용될 수도 있지만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그럼 뭘 가르칩니까. 군대에서 죽이는 걸 배워갔고 온다는건 초딩이들이나 하는 주장입니다. 제가 보기엔 남자들이 열받는건 군대 갔다왔다고 좋아하죠? 자기가 군대갔다왔다고 맨날 떼쓰잖아요. 그죠. 근데 거기서 뭐 대단한거 한다고, 죽이는거나 배우면서. 이 분은 현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수없는 댓글을 읽었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진심을 말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저도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건 사람들은 군대를 가기 싫어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단 자기가 갖다오면 남도 가야하는겁니다. 군대는 남자가 가야하는 곳입니다. 군대는 남자들 사이의 연대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매개죠.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에서 군대 문제에 남자들이 쿨해지기란 어려워요. 외국에서는 군대가 폭력기구라는 비판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고 하지만 외국은 징집제도 자체가 우리와 틀리기 때문에 다르다고 봅니다. 군대는 우리 사회에서 감옥 다음으로 억압적인 기구면서도 남자면 모두 가야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자리잡혀있는것 같아요. 전 남자들이 군대에 관한 한 피해의식, 보상심리 안 가지는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 야미 2010/07/31 12:35 #

    덧붙여 말씀드리면, 전 오히려 장씨의 발언이 비판인지 비하인지 이런 논쟁이 훨씬 더 소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장씨의 발언은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위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씨의 발언에 대해 남자들이 보이는 반응그 자체가 더 문제적입니다. 핵심은 군대 문제고, 적어도 군대에 관한 생산적인 비판이 가능하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특히 남성들이 군대에 대한 거리감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야합니다. 비판이면 어떻고 비하면 어쩔겁니까. 반론이 가능한 비판이면 다 생산적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류언론에서 화염병 소지자들을 어떻게 비판하고 있나요. 화염병을 들지 않으면 맞아 죽거나, 점거농성 자체를 못하는데도 왜 화염병을 드는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이 화염병을 살상무기로 묘사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화염병을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충실히 비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 아닌가요. 물론 반론도 가능하고 일정하게 사실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 순수논리적인 말들은 사람잡는 소리일뿐입니다.
  • 에규데라즈 2010/07/30 16:51 # 답글

    오른쪽에 남자는 상당히 웃긴 배우죠 ㄲㄲ
    여하튼 좀 답답한 일들이 많아요 ..

    그렇다고 설명은 힘들고 ;;

    여하튼 군대는 모두의 트라우마로 지어진 성전 같아요 ...
    확실하게 '모두' 의 투라우마를 대변하는 계륵 같은 과거의 기억의 총 집합 ... 적인
    (군대라는 단어의 파장을 말하는거지 군 부대를 말하는건 아니구요 .. )
    아무튼 깝깝합니다...
  • n. 2010/07/31 11:42 # 삭제 답글

    군대를 안갔다온 사람이 단순 몇마디로 2년의 세월을 매도하는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즉,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일반화 시켜버렸다.
    정도 되지않을까요?
    비판이라고 하기엔 뉘양스가 너무 적나라해서...

    적어도 전역한 한국남성이라면 누구나 피해의식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련하지만 아프거든요. 저도 허리가 많이 상했습니다.......
  • 이택광 2010/07/31 12:24 #

    이런 댓글보면 찌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요즘은 군대가 2년인가 보죠? 세상 좋아졌습니다.
  • 남박 2010/07/31 18:16 # 삭제 답글

    그러게 말임다.

    온갖 구타, 가혹행위로 꽉 채워진 3년을 견디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병신이 돼서 제대를 해야 어디가서 진정한 군생활을 했다 말할 수 있겠지요.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그딴 것도 상처냐고 큰소리 치는 위엄이 어디서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애들 군대 2년 띵까띵까 놀다 나오니 여자들에게 이딴 나약한 투정이나 부리는 겁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조언을 좀 했는데 핀트가 한참 어긋난 것 같습니다. 중증마초의 정신승리앞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 어이쿠야 2010/08/06 17:02 # 삭제 답글

    군대가서 뭐 배우고 와요? 죽이는 거 배워오죠? 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아놓으면 걔네는 죽이는 거 배워오잖아요. 걔네가 처음부터 그거 안배웠으면 세상은 평화로워요.

    글 올린 분은 이걸 보고 뭘 느끼십니까?
    이 강사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는 논리적 흐름은 군대에서 살인기술을 배워오지 않으면 세상은 평화롭다란 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우리나라의 장병들이 군대에서 살인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까이는 북한이, 잠재적으로는 우리를 호시팀탐 노리는 중국, 일본이 전쟁이 일어나도 사람 한 명 죽이는 법도 가르치지 않는 당나라 군대 정도야 가뿐히 무시하고 총칼을 앞세워서 진격해오겠죠? 국군이 있기 때문에 북한과 기타 국가들의 전쟁 야욕을 억제시키고 있는 것과 전쟁억제력이 없이 멀뚱멀뚱 있다가 선제공격을 당하는 것 중 무엇이 더 평화로운 건가요?

    이론적 판단을 해보세요. 과연 누가 후자가 더 평화롭다고 할까요? 당연히 전쟁을 억제하고 있는 게 평화로운 거지요. 즉, 이 띨빡한 언어 강사의 말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겁니다. 강씨처럼 말이죠. 둘 다 똑같이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있는데 왜 누구를 향한 글은 비난이고, 누구를 향한 글은 비판인가요?

    마지막으로 글쓴이에게 묻고 싶군요. 과연 똥오줌을 못가리는 게 누구인지 말입니다.
  • 대학생 2010/08/08 19:26 # 삭제

    님의 댓글이 이택광이 말하는 "장씨의 말이 비판인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겁니다.
    장씨의 말은 틀린 '비판'이기 때문에 반박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모 정치인의 말은 이런 류의 반박 자체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저런 구역질 나는 말을 할 수 있지?"라고 말할 뿐 그 말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선 지적할 수가 없죠. 왜냐하면 그건 이택광의 말대로 어떤 가치관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 개인의 은밀한 환상이 외설적으로 드러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이택광은 장씨의 말이 '틀렸다'라는 걸 인정하지만 '개거품 물지 말라'라고 말하고 싶은 거에요.
    장희민의 말에 엄청난 상처를 받은 체 하면서, "저런 군필자 비하 발언을 하다니! 쳐죽일.."라고 말하는 대신, "이러이러한 이유로 틀린 말이다."라고 반박하고 넘기는 쿨함을 보여야 한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저런 발언에 대한 분노는 "군대 체제의 비인간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저지시키기 때문입니다. 대신 다른 쾌락을 제공하죠. "씨바 니가 군대가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알아? 우리 상처를 알긴 해? 쥐뿔도 모르면서 지랄이야."가 계속 충족되려면 여전히 군대는 남성들의 폐쇄되고 외부 현실과는 이질적인 공간으로 머물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택광의 말을 인용하자면 쾌락은 언제나 '한번 더'를 외치니까요. 난 겪었지만 넌 겪지 않았어. 넌 쥐뿔도 몰라."라는 의미를 담아 상대방을 공격하는 행위가 주는 쾌락(물론 이 행동이 일어나는 시발점은 피해의식과 분노가 확실하지만, 이로 인해 집단적으로 항변할 때 쾌락이 발생합니다. 항변할 때만큼은 우리 모두가 군대에 희생된 '동등한' 피해자이기 때문이죠. 이건 광우병 사태에 분노한 대중들이 시위 자체를 일종의 '축제'로 즐긴 것에서도 나타납니다.)은 언젠가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되려 군필자들 사이에서 이 향락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은 묘한 불쾌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볼때, 장씨가 괘씸한 이유는 이러한 쾌락을 또 한번 부추김으로써, 항략에 동참하지 않는 (냉소적인) 군필자 남성들의 소외를 더욱 강화시킨다는 겁니다. 저는 사실 군대를 갔다와보지 않은 여자들보다 이들이 더욱 얄미운 존재로 여겨지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 ] 2010/08/08 20:52 # 삭제

    대학생님 정리가 참 깔끔하네요
  • 허허 2010/08/28 12:00 # 삭제 답글

    어쩌다 들어와서 읽게 되었는데요, 원글자의 글이야 말로 논리의 현학성에서 '쾌락'을 느끼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네요. 똑같은 논리로 이야기하자면, '비하와 비판도 구분 못하는 무지몽매한 쾌락주의 남성들'을 조롱함으로써 생겨나는 쾌락.

    "문제는 부르주아의 미덕으로 통하는 이런 비합리성의 이데올로기가 중간계급의 반지성주의를 구성하고, 결국 이를 중심으로 한국 시민사회의 세계관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의 '관상 인사'가 '부르주아의 미덕으로 통하는 비합리성의 이데올로기'의 한 사례라고 하셨는데, 한국의 부르주아들이 그렇게 비합리성의 이데올로기를 '미덕'으로 생각하는 순진함을 갖춘 것으로 일반화시키시다니..너무 순진하신 건 아니겠죠?

    그리고 위 대학생의 댓글에서 '광우병 사태에 분노한 대중들이 시위 자체를 일종의 '축제'로 즐긴 것'이라는 구절에서 소위 '진보'나 '합리적 비판'의 탈을 폭력적 담론(비하와 비난도 구분 못하는 무지몽매한 대중들(?)을 향한)이 될 수 있나를 또 확인하게 되네요.

    하기야, 이곳은 지적 쾌락을 위한 공간이겠지만요.
  • 오잉 2010/09/08 07:03 # 삭제 답글

    반론의 여지라니요? 이런식으로 해석하면 말 그대로 강요석의 경우는 강연에서 기분 전환차 농담조로 웃자고한 발언 아니던가요? 그것에 얽매여 물타기하는것 자체가 디스거스팅한 행동 아닐까요?

    장희민의 살인집단과 살인기계발언 그리고 아이를 낳는 즉, 생산적 행위를 하는 여성들의 창조물을 소멸시키는 행위를 하는게 남자가 되어버리는데 과연 반론의 여지가 있는것입니까?

    마치 모 영화평론가의 6.25는 남침과 북침중에 북침이라는 가능성이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미친생각과
    이 글은 묘하게 닮아있다고 생각되는데요?
    러시아의 문건까지 공개된 이 마당에 아직도 자신이 보고싶은것만 보려하는 미친인간들과 주인장은 별반 다를게
    없어 보입니다.

    놀랍군요. 주적과 대치하고있고 휴전중인 국가적 특수성을 싸그리 무시한채 이웃을 지키고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젊은 남자라면 당연히 가야만하는 군대가 살인 기계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주인장의 타당성을 한번 듣고싶네요.

    대단한 사람들...
  • ㅋㅋ 2010/09/14 15:48 # 삭제 답글

    빈수레가 요란하다는말이 괜히있는게 아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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