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쓰기에 대하여 책읽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소소한 소설가의 일상으로 채워져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하루키만한 '작가'는 아니지만, 글쓰는 게 본업 중 하나인 나에게도 하루키의 에세이는 적잖은 위안으로 작용한다. 나처럼 '글쓰는 직업'을 갖고자 하는 바람이 '가족'으로부터 전혀 이해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여하튼, 하루키는 '일본'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복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는데, <1Q84>를 읽으면서 그 생각이 더 짙어졌다. 3년을 꼬박 썼다는 이 소설에서 나는 '이야기꾼' 하루키의 집중력을 곳곳에서 확인하며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야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현실의 하루키를 잘 보여준다. 이 현실의 하루키에서 나는 글에 대한 비슷한 태도를 발견하고 기뻤다. 그는 글쓰기와 달리기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이런 생각이 나와 상당히 비슷했던 것이다. 하루키에게 달리기가 있다면 나에게는 싸이클링이 있는 게 다르다면 다를까. 따라서 글쓰기는 집중력의 문제이고, 인내심의 결과물이다. 달리고, 쓴다, 이것이 하루키 글쓰기의 핵심인 것이고, 나 역시 이런 글쓰기를 지향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나는 글쓰기를 '문체' 따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편일률적으로 소설가 아무개는 '문체가 좋다'는 근거 없는 상찬들이 신문지상을 오르내릴 때도 나는 도대체 이들이 문체라는 용어의 의미나 제대로 알고 이런 말을 지껄이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김현의 비평을 두고 문체가 좋다거나, 신경숙의 소설을 보고 문체가 아름답다고 했을 때, 비평의 문체와 소설의 문체는 동격에 놓인다는 말인가. 과문해서 그런지 나는 이런 상식적인 의문에 대해 진지하게 답변을 시도하는 소위 '문체론자'를 한국에서 본적이 없다. 이런 무반성적 발언들이야말로 시장의 논리에 글쓰기를 종속시키고, 바야흐로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한국문학의 위기 내지는 비평의 죽음을 초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솔직히 김훈과 하루키를 비교해보라. 둘 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았다고 평가되는 작가들이지만, 그 간극은 얼마나 넓은가.

소위 김훈의 밥벌이론이 글쓰기를 육체노동에 비유하는 하루키의 문학관에 비해 얼마나 추상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인지 조금만 공정한 시선을 갖고 비교해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둘의 간극은 문학이라는 것이 문체라기보다 세계관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사실 김훈의 한계는 그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문학 자체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나마 전지구적 감수성에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했던 황석영이 <바리데기>를 발표했을 때 내가 느꼈던 '실망감'은 사실 한국문학의 한계가 실로 진보로 포장된 심각한 보수성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든 계기였다. '노벨상 맞춤형' 작품으로 노벨상을 받아보겠다는 이 '민중작가'의 행보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루키는 이런 시속의 시선으로부터 일찌감치 멀리 떨어져 있던 작가였다. 그는 문체론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진지한 순수문학의 극장에도 가담하지 않는 '이상한 소설'을 썼다. <1Q84> 한국어판을 번역출간한 문학동네의 공격적 마케팅 덕분에 하루키 바람이 호들갑스럽게 불고 있지만, 하루키의 인기는 이미 세계적인 차원에서 검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인기는 사실 일본소설이면서 전혀 '일본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역설에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하루키의 문제점으로 지목되었던 '무국적성'이 전지구화의 국면에서 장점으로 바뀌는 역전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하루키의 인기라면 한국이 좀 때늦은 것이라면 때늦다고 해야할 것인데, 문학사상사가 독점하다시피 쏟아낸 촌스러운 디자인의 하루키 책들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1Q84>에서 확인하는 '세련된 하루키'의 이미지가 낯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나에게 하루키는 달리기를 하듯이 글을 쓰는 근육질의 글쟁이라는 점에서 깊은 동류의식의 대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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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Zzz 2010/08/14 14:03 # 답글

    인상비평이랑 다를 바 없는 문체비평이 문학 좀 읽는다 하는 이들 사이에 퍼져 있다는 지적에는 동감합니다. 저도 문체가 좋다는 게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독성? 아름다운 수사? 말씀대로 문학은 세계관으로 평가되어야만 합니다. 더구나 근대문학 종언 이후 문학은, 문체라는 특수주의적 지역주의적 표현형식보다도 세계관이라는 보편주의적 세계주의적 가치에 매진할 의무가 있으며 비평 역시 이 추세에 따라가야 하겠지요.

    그런데 글 말미에 가서는 고개가 약간 갸우뚱해집니다. '문체론 그물에 걸리지 않는' 하루키를 부각하며 한국작가들을 비판하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과연 하루키가 그들보다 문학적으로 나은 세계관을 제시하는 작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소설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다고 하루키 소설이 한국소설보다 우위에 있을 건 뭔가요. 뻔한 상대주의를 펼치려는 게 아니라, 하루키 세계관이라는 게 그리 대단치 못하다는 겁니다. 까놓고 말해 허무맹랑합니다. 1Q84만 두고 얘기하자면 도대체 이 소설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무엇이 유의미한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타일만 난무하고 알맹이는 없는 듯한. 하루키의 주종목인 '연애에 대한 탐구'는 이전에는 없던 관점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만 한데, <스푸트니크의 연인들> 이후 '세계'에 대해 쓰는 그의 글들은 조금... 차라리 요새 유행하는 라이트노벨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하루키가 물론 '재미' 있는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건 맞습니다. 그리고 재미는 픽션의 필수요소기도 하지요. 이조차도 달성하지 못하는 게 한국작가들의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문학적 가치는 재미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재미가 있느냐, 의 문제에 대해서 (물론 이것도 중요한 문학적 평가기준입니다) 하루키는 한국작가를 씹는데 동원할 수 있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세계관이 어떠냐, 의 문제에 대해 하루키나 한국작가나 뭐.. 저는 차라리 김훈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그리고 이 글만 보자면, 택광님의 황석영에 대한 비판도 정당한 문학적 비평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감상이라고 보여집니다. 저 역시 황석영을 싫어하지만, '행보'로 세계관을 비판 하는 것은 문체로 문학을 비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가 아닐까요.

  • 이택광 2010/08/14 14:59 #

    그 '말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 하루키의 세계관이겠죠. 나는 오히려 이런 게 더 '정직'한 거 아닌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김훈보다도 하루키가 낫지 않나, 왜냐하면, 하루키는 그래도 느끼하진 않잖아, 뭐 이 정도 얘기죠. 세계관의 문제에서 하루키를 내가 지지하진 않습니다. 또한 그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릴만한 대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다만 내가 강조한 건, 그가 최소한 글쓰기에 정직하다는 것이고, 근육질이라는 거죠. 문학의 의미가 사라진 시대에 그는 구체적으로 글쓰기 자체를 고민하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리고 황석영에 대한 비평은 '정치적 행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 특히 <바리데기>에 대한 평입니다. 이 작품 상당히 징후적이예요. '현지'에서 쓰여진 것처럼 위장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 작품은 신문스크랩 이상의 에피소드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현실에 대한 작가의 핍진성이 없다는 말이죠. 개입의 지점 같은 걸 전혀 못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묘사'는 할 수 있는데,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국 문학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는 생각이 들어요. 참고로 나는 황석영 선생이 무슨 정치적 행보를 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만, 그게 이런 작품의 한계와 무관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 cleo 2010/08/14 15:56 # 답글

    ㅋㅋㅋ.. 문학사상사가 독점하다시피 쏟아낸 촌스러운 디자인의 하루키 책들.. ㅋㅋㅋ
    제 주변 많은 이들이 '하루키 열병'을 앓고있을 때도 전, 별 관심없었던 이유가 말씀하신 그거였군요~

    하루키의 '재즈에세이'를 비롯한 수필집들은 몇 권 읽었습니다.
    작가도 아니고, 달리기도 사이클도 안 하지만... 저역시 '현실의 하루키'와 비슷한 태도를 저에게서 발견하고 반가웠지요.
    <1Q84>는 진작에 사다놓고는 아직 읽지못했습니다. ( 언젠가부터 '소설'이 잘 안읽히더군요-.-)
    선생님 글 읽으니까 다시 한 번.. ' <1Q84> 읽기'에 도전해봐야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 2010/08/14 17: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ereel 2010/08/14 20:21 # 삭제 답글

    2000년 독일의 '문학 사중주'라는 문학 프로그램에서 '상실의 시대'에 대해 (일본적인 것 대신 미국적인) '문학적 패스트푸드'라고 비판했던 비평가가 도중 하차한 일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녀의 비판이 비난으로 들리는 게 아마도 무라카미는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일종의 지진계 같은 역할을 해서 그런 게 아닌 가 싶어요.(한국에서 그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봐도 그렇고) 독일에는 더 이상 시인도 없고, 서점에는 대중추리물들 외에 다른 문학서적을 찾기가 쉽지 않은 그런 풍경들을 정확히 그의 소설들은 반영하고 있는 거겠지요. 세계문학의 의미도 그와 관련해서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를테면, 교환된 뒤에야 그 의미를 획득하는 것으로서의 세계문학, 읽히기 전에도 항상 발견되지 못한 보편적 가치가 내재해 있다는 생각 대신에 말이지요.
  • 쟁가 2010/08/15 00:50 # 삭제 답글

    하루키는 그가 의식했든 아니든, 고진이 말하는 문학, 문학적인 것과 결별하는 것이 '세계적인 것'과 조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란 걸 몸소 증명해보였지요. 그러므로 한국의 작가에게도 이른바 문학, 구체적으로는 한국문단과 관련된 모든 것과 철저히 결별하는 게 세계적 공통성('세계문학의 보편성' 따위가 결코 아닌)과 만나는 필요조건이지 않을까요. ㅎㅎ
  • 이택광 2010/08/15 08:19 #

    날카로운 지적이군요.
  • yg 2010/08/15 11:47 # 삭제 답글

    김훈과 황석영이 한 문단에서 언급된다는것이 의미심장하네요. 비슷한 취지인데, 저는 두 사람이 (그 유명한) 상반되는 개인적인 인생편력에 비한다면, 실제로 작가로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뭐냐하면 '즐거움'이 아니라 '의무감'이 글쓰기의 추동력이라는것. 하루키는? 당연히 앞쪽에 해당하는 작가겠지요.

    무조건 외국의 classic한 유명 작가들을 기준으로 국내소설의 조악함을 폄하하는것도 무책임한 비평이지만, 이제는 한국 작가들의 소설이 "대체 왜 그렇게 재미가 없는가"에 대해서 평론가들이 해명해야 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김훈의 소설 같이 한국사회를 벗어나면 그 아우라를 대부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정서의 소설들이 보편적인 독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것인지도요.
  • 푼크툼 2010/08/17 05:43 # 삭제

    yg님 견해에 매우 공감합니다.

    사람들이 김훈과 고종석을 예찬하는 이유에 대해 저는 고심중입니다. 실제로 그들의 글을 읽으면 엄청 지겹거든요... 근데 김훈과 고종석을 예찬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자칭 유미주의자죠...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계신 분들이죠. 저도 유미주의의 테제에 무지 매혹되는 사람인데, 문제는 고종석과 김훈의 문장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너무 지겹죠... 상징계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어떤 구원이 되겠어요?
  • 지나가다 2010/08/15 14:07 # 삭제 답글

    그리고 "재미"라는건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른 주관적 평가인데요. 정확히 말해서 하루키는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대중적인 작가"라고 표현해야겠죠.
  • -.- 2010/08/15 15:46 # 삭제 답글

    "지껄이는"....

    무의식인지 말버릇인지.

    재미있네요.
  • 지나가다2 2010/08/15 20:43 # 삭제 답글

    일본에서 소설가로서 구체적으로 글쓰기 자체를 고민하고 진지함을 따지기로 치면 하루키보다는 히라노 게이치로를 논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좀 너무 정석적이라 분석의 대상으로서는 재미없긴 하지만요.
  • just 2010/08/16 05:19 # 삭제 답글

    좀 이상한 질문일 수 있는데요,

    하루키가 문학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난 문학을 하고 있기 때문에 -> 멋지고 -> 그래서 세계가 반응한다라고 제가 이해한게 맞나요? 언뜻 보기에 꼭 세계에 그에게 반응하기때문에 문학에서 벗어난 문학을 하고 있는 하루키가 멋지다는 걸로 읽히기도 해서 여쭤봅니다.
  • 이택광 2010/08/16 10:05 #

    '멋지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요? 느끼하지 않다고 했을 뿐입니다. 문학의 죽음이 현실화한 조건에서 그래도 글을 읽고 써야할 이유에 대한 암시를 준다는 것이지요. 이건 기존에 우리가 문학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대체로 낭만주의로부터 공급된 미신들)을 해체하는 것이기도 하겠죠.
  • ] 2010/08/16 14:47 # 삭제

    저도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문학이 죽어도 글을 읽고 쓸만한 이유는 있다는 게 확 와닿는군요
  • 지나가다 2010/08/17 17:37 # 삭제 답글

    덧글 삭제합니다. 별 대단한 말도 안 써있지만 사람 많이 방문하는 블로그에 제 흔적이 남는게 싫어서요. 그리고 애초에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른 사람한테 말 꺼낸게 제 실수네요. '시비건다', '말꼬리 잡는다'라는 식의 어조도 별로인데다가 무엇보다 여기서 떠들어봤자 저한테 득될게 하나도 없으니깐요.
  • 찌질과 쿨사이다 2010/08/18 18:37 # 삭제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어차피 익명성인데 뭐가 그리 존심이 상해서리..

    그냥 깔끔하게 가시지.. 뭐, 구차하게 또 자기변명을 남겨두는지...
  • 지나가다 2010/08/19 13:05 # 삭제

    삭제되는게 내 답글뿐만 아니라 남의 답글도 있는데 그럼 말도 없이 가버림?
    이렇게 남겨둬도 어차피 여기에 시비거는 인간 생길 줄 알았음.ㅋㅋ 남이사 구차하게 생각하든말든..그리고 이건 자기변명이 아니거든?
  • 지나가다 2010/08/19 13:10 # 삭제

    게다가 그 답글들 다 캡쳐해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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