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말이지만, 이 책이 이렇게 많이 한국에서 팔린 까닭은 제목에 붙은 '정의'와 '하버드 명강의'라는 타이틀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국 특유의 허세 문화가 여기에 작용한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공동체'라고 하면 '진보'라고 착각하는 천박한 한국의 정치이념지형도 크게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책을 읽은 이들이 제대로 샌델의 논지를 성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일보에 실렸던 장동진 교수와 이루어진 로쟈의 인터뷰도 이 책의 반응에 대한 '문화적 원인'을 지적하는 것이었지, 샌델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검토는 아니었다. 샌델의 주장을 따라가보면, 결국 정의의 완성은 공동체의 덕성을 체현한 '엘리트 통치'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노선과 대립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책을 휴가 때 들고 갔다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장동진 교수는 샌델을 '중도좌파'라고 소개했지만, 어디까지나 미국 내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유럽 지형으로 가져오면 그의 주장은 우파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샌델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칙에서 정의를 어떻게 '도덕'의 문제로 전유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 이런 논의는 좌파적 담론의 지평과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최소한 좌파라면 정의를 도덕 따위의 문제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좌파에게 정의란 도덕의 한계에서 비로소 진리로 드러난다.
대다수 한국 독자들이 착각하는 것과 달리, 샌델은 '집단적 복리'의 증대를 정의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복리라는 것이 너무도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일전에 차명진 의원이 최저생계비 체험을 한 뒤에 내세운 논리와 유사하다. 그래서 샌델에게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동체 개념이다. 합의를 전제하는 공동체만이 어떤 것이 정의이고 어떤 것이 불의인지를 판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하나의 사회에 속하는 구성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는 것을 '정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동체에서 중요한 것은 덕(arete)이라고 불리는 '최선의 상태'이지 개인의 자유나 권리가 아니다. 말하자면 샌델의 공동체는 '도덕'이라는 집단적 합의가 정의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행복이나 선이라는 범주는 '공정한' 판단의 기준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투브에 올라온 동영상(에피소드1)에서 샌델이 묻고 있는 것도 이 문제이다. 솔직히 이런 샌델의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 좌우파를 막론하고 횡행하는 공동체우선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남용'될 소지가 충분하다. 자기 편을 찍지 않으면 빨갱이거나 아니면 '무뇌아'라고 매도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샌델의 주장은 무력할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솔직히 샌델이 제기하는 정의라는 개념 자체도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런 반성 없이 이 개념을 한국의 맥락에 갖다붙이는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의 안이함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바마 정부가 표방하는 정의를 곧바로 한국의 정의로 일반화시키는 태도의 오류는 천안함 국면에서 충분히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샌델이 주장하는 정의는 한 마디로 '선'을 규정하기 위한 공동체적 합의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어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그 합의는 누가 제기하고 도출한단 말인가? 이명박 정부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지금 한국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나 정의라는 개념 자체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좌파라면 그 민주주의와 정의의 기준을 누가 결정하는지를 심각하게 물어야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조선일보도 삼성도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정의를 말하는 현실,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보수적인 책이 진보주의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냉철하게 파고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의 국면에서 본다면 샌델보다 차라리 롤즈를 읽는 게 더 '진보적 독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역설적이지만 이 사실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대한 한국 진보세력의 반응을 징후적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다. 한국의 진보는 사실상 위장된 보수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이 책의 인기는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덧글
모에시아 총독 2010/08/16 11:37 # 답글
흐음, 아직 사놓고도 제대로 읽질 못했는데 그런 시점이 녹아있었군요.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또다른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Katz 2010/08/16 12:12 # 답글
'국내 정서에 도움되는 독서'를 따지자면 물론 동떨어진게 맞지만 이런 분류의 서적이 인기몰이를 한적이 최근 거의 없다는 면에서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제가 서점갈때마다 이런 대중과 동떨어진 책이 상위권을 유지하는건 본적이 없는 것 같네요) 충분히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되더군요. 가치라고 말하기에도 좀 어색하긴한데, 최근에 정부에 대한 정치적 반감이 높은 투표율을 끌어올렸듯 한국식 허세 문화에 잘 박혀서 사람들이 이런 글들을 좀 읽어보고 하는 것도 좋다고 느꼈습니다....그런데 왠지 이것도 사긴 샀는데 대충 흝거나 제대로 읽지도 않아서 심도있는 토론이 불가능한 상태로 '하버드 학생들이 배우는 정의에 대해서 읽어보니까 이렇더라 저렇더라' 하는 허세용 아이템으로 전락할 확률도 적지 않은것 같아요-_-);
이택광 2010/08/16 12:23 #
제 주장에서 중요한 건 '허세'가 아니라 이 책의 내용이 실은 이명박 정부와 한국 우파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는 말이죠. 님도 동의하시고 계시지만, 허세는 나쁜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허세를 부릴 '자유'와 '권리'를 가젔어요.
궁금증1 2010/08/16 12:13 # 삭제 답글
한국 진보개혁세력 중에 마이클 샌들의 정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전유하는 집단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택광 2010/08/16 12:19 #
전유까지야...다만 '반이명박=정의'라는 익숙한 명제에 대한 증명을 이 책에 전가하고 싶었겠죠. 이 책 읽고 민주당 찍자는 얘기들이 많았으니 말입니다. 유시민씨는 이 책 꼭 읽어보라고 트위터에 올리기까지 했죠.
공인재능낭비사 2010/08/16 13:18 # 답글
'정의란 무엇인가'의 내용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번역의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한숨을 쉬며 읽었습니다. 법철학 또는 정치철학을 전공한 사람한테 맡겼어야 하는 책인데... 수학과 출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에게 맡긴 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팔리고 있는 현실이 놀라울 따름이고요. "윤리학 101조"라고 되어 있던 오역이 아직도 기억에 있네요. 역자가 '101' 이라는 단어와 'Article'이라는 단어를 오해한 탓이겠지요. '윤리학 기초과목(101)의 과제물( Article)' 정도로 번역됐어야 할 겁니다.
이택광 2010/08/16 13:24 #
저는 영어본으로 읽어서 번역 수준을 논할 처지는 못됩니다만, 말씀하신 내용도 상당히 징후적이네요. 한번 한국어본도 살펴봐야겠습니다. 번역을 통한 수용의 맥락이란 것도 있을 테니 말이죠.
oIHLo 2010/08/17 11:28 #
헉... 그건 좀 심한 오역이군요;
학문적클린턴 2010/08/16 14:12 # 답글
이 책이 진보개혁세력에 안어울린다는데는 동의합니다. 매우 보수적인시각이죠. 근데 이명박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다? 거긴 절대로 동의할 수 없군요.
구라구라 2010/08/16 15:22 # 삭제
이택광씨가 '이 책이 이명박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해석하지는 않았다고 보이는데요. '좌우파를 불문하고 남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보는 부분, 충분히 동의가 됩니다.
자두 2010/08/16 16:16 # 삭제 답글
반가운 포스트입니다. 읽는 내내 기묘한 의문이 들어서 '난 어쩌다 이리 삐뚤어졌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선생님 글 읽으니 아무 이유가 없지는 않군요..개인적으로 제일 먼저 표지를 보면서 한참 생각했었습니다. '하바드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명강의..라니.. 내용과 상관없이, 카피 참 촌스럽군..'
유치찬란 2010/08/16 17:48 # 삭제 답글
이책 귀찮아서 안읽고 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적 공동체 개념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읽을 필요가 없겠군요.;; 아리스토텔레스적 윤리쪽이 어째 이상하게 요즘 미국 남부쪽에선가 유행하려는 조짐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애초 저는 동의를 안하니 말이죠.뭐 다만 이명박이 악도 아니고(이 부분은 동의하지 않는분이 많을지도..), 이명박과 대치되지 않는다고 해서 들어오지 말아야한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파쪽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개념이라는 사실에는 일정부분 동의합니다.)
다만 본문에서 "합의를 전제하는 공동체만이 어떤 것이 정의이고 어떤 것이 불의인지를 판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쓰셨는데 이부분은 동의하기가 조금.. 저렇게만 쓰신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아저씨가 섭섭해할듯.. 오독의 여지가 있군요. 공동체라는 말 자체도 좀 개념상 차이가 있기도 하고요. 거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 내의 분배개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나요?(사실 그래서 복지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진보쪽에서 들여올 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 타인에게 좋은 것 을 행하는 것을 정의라고 지껄이기도 하신 분이니;;;
(아 물론 센델교수는 어떤지 모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현대적 변화양상은 정확히 모르겠, 근데 이런저런 규율이 완화된 정도라고 들었는데...;;;)
이택광 2010/08/16 18:33 #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 개념에 분배개념이 있죠. 그런데 그건 행복, 권리의 문제와 관련이 있거든요. 샌델은 이 부분을 배제하고 논의를 펼치고 있는 것이겠죠. 공평한 행복의 분배(이게 벤담의 공리주의가 추구하는 것이기도 한데)에 근거해서 정의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는 게 모호하다는 것. 유투브 강의 마지막에 행복을 공평하게 분배해야할 '근본적 권리' 같은 게 있느냐, 반문하는 까닭이 이 때문이죠.
zigz 2010/08/16 17:53 # 답글
이 책은 일본에서도 지금 베스트셀러인 듯 합니다. 책방에서 쌓아놓고 팔고 있었으니까요-_-; 몇 개월 전에 NHK에서 저 아저씨의 정의론 강의를 "하버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강의"라고 홍보하며 주말 밤 10시 시간대에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왜 하필이면 지금,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정의론을 팔아치우는 사람들이 나타난 건지 참 신기하네요. 그저 미국에서도 잘 팔렸기 때문일 수 있겠으나, 그래도 신기신기~
Frozenbreak 2010/08/16 18:33 # 답글
센델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센델의 주장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미칠 수 있는 파급력이 마음에 안 드시는 것인지, 혹은 센델의 주장을 멋대로 인용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고까우신 것인지 잘 모르겠군요. 셋 다인가요?전 센델의 주장 자체는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미국인답게 전체주의에는 충분히 경계하면서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의의 개념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미덕의 문법으로 다시 그려내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공감했구요.
'자유주의자들이 논의하기 꺼리는 곳에는 항상 극단주의자들이 들어선다.' 노무현 정권을 거친 이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는 극단적인 경험을 한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공감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말이죠. 게다가 이재오나 김문수같은 좌파 극단주의자들이 우파 극단주의자들로 변신하는 모습을 본 입장에서는 센델의 말하는 자유주의와 극단주의가 반드시 고전적인 의미에서 좌파와 우파의 그것으로 분류하기도 좀 꺼림직하구요.
이 책이 많이 팔렸는지는 몰랐습니다만, 적어도 한국과 일본에서 많이 팔렸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두 나라 모두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집단주의의 전통이 매우 강했다가 미국식 자유주의에 의해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로 공동체가 와해된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죠. 자유지상주의는 적응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집단주의나 전체주의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그 중간 지점을 모색할 수 밖에 없죠. 센델의 공동체주의는 그런 점에서 충분히 파급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하버드 빨'이라고 보기에는 그렇게 많이 팔린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택광 2010/08/16 18:45 #
샌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이유 때문에 포스팅을 한 건 아니겠죠. 자칭 한국의 진보개혁세력들이 반이명박전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샌델을 이용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문제는 진보개혁세력인 것이지, 대다수 국민은 아니죠. 대다수 국민은 하버드대학 교수의 명강의니까 한번 들어보자는 '자기계발적 욕망' 때문에 이 책을 들었다고 보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대체로 김영사 책들이 그렇죠. 이 책이 한국에서 쓸모가 있다면 자칭 우파들에게 제대로된 보수주의자가 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준다는 것이겠죠. 이 정도 선에서 이 책의 정치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님이 말씀하시는 그 '공동체주의'가 한국 같은 나라에서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억압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미국과 엄연히 맥락이 다른 측면이 있는 것이죠.
Q 2010/08/16 19:12 # 삭제 답글
미국에서 중도좌파정도면 한국에서는 빨갱이 입니다.
레이니 2010/08/16 19:30 # 삭제 답글
'하바드 명강의'라는 타이틀란 게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소재라면,하바드라고 붙은 책은 모두 어느 정도 흥행해야 신빙성이 있는데, 하바드 붙이고 실패한 책들도 많이 봤거든요.^^;
출판사가 마케팅과 영업을 잘했다고 봅니다. 입소문도 괜찮았고, 어느 정도 팔린 시점에서 저자 내한을 타이틀로 이벤트도 한게 주요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산 독자를 과도하게 진형 논리로 해석로만 해석하는 것도 무리라고 봅니다.
독자들이 어떤 이유로 선택했다고 볼 만한 근거자료도 없을 뿐더러(간단한 설문조차 없지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단순히 상식에 근거한 사회란 뭔지 해법을 찾고 싶어서 이런 책을 선택한 분들도 주변에 많거든요. ^^
흠... 2010/08/17 10:28 # 삭제
"독자들이 어떤 이유로 선택했다고 볼 만한 근거자료도 없을 뿐더러~"꼭 찍어드셔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가시는 건지...
뻔한 걸 가지고 증명하자고 달려드시는 걸보면.. 수학블로거를 찾아가시는 게..
흠흠 2010/08/19 13:09 # 삭제
그럼 틀릴 수도 있는 전제에 대하여 말도 없이 지나감? 별걸 다 꼬투리잡네..
yoongL 2010/08/16 21:57 # 답글
으잌 가독성이 좀 좋게 문장배치를 하면 좋겠어요
마나™ 2010/08/16 22:53 # 답글
의외로 안 중요할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요소가 또 하나 있는데,비슷한 부류의 사회과학 대중서들 가격의 절반밖에 안됩니다.(정가 15000원)
번역 질은 잘 모르겠는데 출판사의 양심적인 가격 설정에는 그저 감사하지요.
안즈 2010/08/17 00:11 # 삭제 답글
그나저나 이명박이 휴가 때 이걸 들고 갔다는 기사는 오보였다고 나왔었는데요..
이택광 2010/08/17 00:29 #
http://poisontongue.sisain.co.kr/1604 저간의 사정이 이렇더군요. 오보를 방조한 혐의를 완전히 벗기가 어려울 듯...
트위티 2010/08/17 09:23 # 삭제 답글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그들은 어차피 엘리트(이거나, 엘리트가 되거나,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엘리트들이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중점을 두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010/08/17 11:54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umberto 2010/08/17 14:05 # 답글
음... 아직 샌델의 책을 읽어 본 것도 아니고, 아리스토 텔레스의 공동체 개념에 대해서도 이해가 부족해서 끼어 들기가 그렇습니다만.국내에서 아리스토 텔레스의 공동체 개념을 진보적 관점에서 이용한 예가 처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대한 전환>을 번역한 홍기빈 씨가 아리스토 텔레스의 공동체 개념으로 보수우파의 자유시장경제론을 비판한 전례가 있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란 책이죠. 아마 아리스토 텔레스와 경제를 연결한 아이디어도 폴라니에게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책을 읽으면서 아르스토 텔레스적 공동체론이 궁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말씀하신대로 아리스토 텔레스의 공동체론을 진보진영에서 이용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면 아리스토 텔레스적 공동체론으로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까요?
이택광 2010/08/17 17:07 #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를 '진보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홍기빈의 책은 샌델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줄 수 있다고 봅니다. 행복의 분배라는 측면과 그것을 요구할 권리에 대해 초점을 맞춰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을 수 있죠. 루카치도 대표적으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샌델은 개인의 행복과 권리라는 관점에서 정의를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공동체를 공공선으로 파악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런 논의가 미국 내에서 일정하게 '진보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건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보수라고 하면 총기 자유화 문제에서 보듯이, 절대적으로 개인(정확하게 말하면 시민)의 자유를 존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국의 상황에 오면 샌델의 주장은 남용될 소지가 많죠.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동체를 강조해서 보수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샌델의 정의론이 한국적 맥락에 맞지 않다는 말입니다.
SoftWish 2010/08/17 21:44 # 답글
이 책을 거의 처음에 샀는데요.. 이후 이렇게 많이 팔릴지는 몰랐습니다. 이 책이 많이 팔린 이유는 한국의 상황과 섹시한 제목 덕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입 전 리뷰하는 수준에선..학부생 수준 정도의 내용이기도 하고 말이죠.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는데 다른 분들은 교수님처럼 읽지는 않았군요. (그런데 하바드 명강의..이러면 거부감이 들지 않나요? 사실 제가 이 책을 살까 말까 하던 지점은 그곳이었거든요.)
너구리 2010/08/19 06:35 # 답글
제가 읽으면서 든 생각이 한국 독자 입맛에 맞겠구나 싶었습니다. 몇몇 철학적 내용의 허세와 정말 쉽게 풀어쓴 내용들이요. 일단 대다수의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토론해보지 못한 공동체-개인의 이익과 선에 대해서 충분히 비유하고 사색해볼 수 있게 던져진 예시들과 설명이 좋았습니다. 거기에 한국의 전통적 정서인 공동체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들이 독자들에게 와닿을 듯 싶더군요. 그 공동체 부분때문에 저도 좀 불편하긴 했지만요.아무튼 국내에 나와있는 샌델의 다른 책(국내에 초청해서 연설한 내용을 모아놓은)도 대충 훑어봤었는데, 미국의 개인주의에 가득찬 대학생에게는 저런 강의가 괜찮았겠구나 싶더군요. 한국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취몽 2010/08/26 12:29 # 삭제 답글
전 종교 부분에서 확 걸리더 군요.
흔들리며 피는 꽃 2010/11/21 20:21 # 삭제 답글
한국에는 진정한 좌파도 진정한 우파도 없이 그저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정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