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진중권 논쟁 단상

발단은 김규항이 한겨레에 기고한 이 칼럼이었던 모양이다.

오류와 희망

이에 대해 진중권은 <씨네21>의 고정칼럼난을 통해 '공식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 중에서 압권은 다음 글이다.

유토피아와 좌파 바바리맨

사실 나는 이 글을 뒤늦게 읽었는데, 무슨 메니페스토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진중권의 글은 일부 '팬'들에게 '감정싸움'처럼 보였던 이 논쟁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진중권 특유의 '정리'가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역시 진중권은 논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정도에 견줄 만한 사람은 유시민 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데, 여하튼 김규항은 지금 진중권의 페이스에 말려 들었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다. 이번에 김규항이 블로그에 게재한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을 보면 사실이 더 명확해진다.

물론 페이스에 말려 들었다고 김규항이 손해를 보고 있는 건 아니다. 이 논쟁에서 승자나 패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김규항과 진중권이 대변하는 각각의 입장은 한국 사회에 '실존'(Existenz)하는 '한 줌의 좌파'를 규정하는 해묵은 두 가지 태도들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쟁으로 인해 각자 상처를 입긴 하겠지만, 두 사람이 의미 없는 '감정싸움'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논쟁은 '사회주의 vs. 자유주의'처럼 보이지만, 진중권의 칼럼이 명쾌하게 보여주듯, 사실은 '근본주의 vs. 실용주의'이다. 물론 여기에서 근본주의나 실용주의는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맥락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에서 말하는 '실용주의'는 이명박 정부가 내걸고 있는 '중도실용노선'과 전혀 관계가 없다.

김규항은 80년대의 용어법으로 진중권을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진중권의 노선은 사민주의를 지향하면서 방법론적으로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것에 가깝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도 현실에서 타당성을 갖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의 주장에 짙게 배어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기에 비한다면 김규항은 사회주의라는 원칙에 충실해야한다는 '믿음'을 강고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에 가깝다. 근본주의와 실용주의가 싸우면 실용주의가 이긴다. 이게 역사의 법칙이었고, 이런 측면에서 논쟁의 추이는 진중권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김규항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사회주의'라고 고집하는 그의 용어를 '공산주의'로 수정해주고 싶고, 80년대 사회과학서적을 벗어나기 위해 참고문헌목록을 좀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논쟁을 계기로 이른바 한국의 좌파들은 더 이상 '자유주의'라는 용어를 80년대적인 '욕설'로 사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근대주의'의 정치기획화이다. 최근 최장집 교수가 자유주의를 재평가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이 논쟁이 감추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문제는 자유주의라기보다 근대주의이다. 이 근대주의의 정치적 기획은 '정상국가'에 대한 요구로 현실화할 수 있다.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는 '사민주의 vs. 자유주의'가 아니라 포괄적으로 근대주의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점에서 진중권이 주장하는 '시민상식'도 근대주의적 기획에 대한 요청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사민주의는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근대주의적 정치기획'에 포함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이다. 사민주의가 오고 사회주의가 오는 게 아니라, 근대주의적 기획 내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한 '다른 체제'가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에게 이름을 먼저 붙이는 부모가 없지 않아 있지만, 모든 새로운 생명은 언제나 '이름' 없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름 붙이기에 열중하는 것보다, 새로운 생명을 위한 산파 노릇을 자임하는 것이 좌파다운 사명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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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항의 진중권 비평에 대해 2010/08/17 16:00 #

    wallflower.egloos.com/3408075 이택광이 뒤늦게 김규항-진중권 논쟁을 비평하여 나도 뒤늦게 한마디 거들 핑계를 찾게 되었다. 내 생각에 이 논쟁이 상이한 반응을 낳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규항의 진보신당 비평은 올바르되, 김규항의 진중권 비평은 오류이기 때문이다. 김규항의 글은 진보신당의 위기와 정체가 정체성 확립 부재에서 오고 있다고 진단하는데, 맞는 말이다. 그 문제를 사퇴한 심상정에서 뿐만이 아니라 완주한 노회찬에...... more

  • 문제는 근대주의다 2010/08/17 19:14 #

    김규항-진중권 논쟁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는 이택광사마시다.왜 한국이 다른 논쟁이 필요한가. 한국 뿐 아니라 미국도 아직 봉건적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다. 의식수준이 그렇다.거칠게 말해서 유럽, 호주 정도가 근대화를 마쳤다 할 수 있지 않나 한다. 무슬림국가, 아프리카의 독재국가들은 아직도 멀었고.잘산다고 근대화 된 것은 아니다. 미국을 보면 안다. 근대화 하자. 미신을 벗어버리자. 논리적 이성적으로 사고하자. 남들이 내 비판...... more

  • 진겔루스 노부스의 '베냐민'적 무식함! 2010/08/17 20:03 #

    아마 한겨레에서 김규항 씨와 진중권 씨가 설전을 벌였나보다. 김규항 씨가 진중권 교수를 진보신당 당적을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진중권 씨가 김규항 씨를 좌파바바리맨으로 놀리고 툭탁툭탁 ... 이 와중에 진중권 씨가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가지고 대충 이런 글을 썼단다(이건 이택광 교수 블로그에서 보고 링크를 쫓아가서 읽어봤다). 유물론적 신학 근데 진중권 교수가 해석하는 바에 따르면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가 말하는 "유토피아"...... more

  • 중권 유감 2010/08/18 11:55 #

    유럽에서만 생활하신 분들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또는 심지어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미국에서는 자유주의이다. 어쨌든 다음은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의 사회민주주의 관련 부분이다. 이거 읽어보지 않고 벤야민 운운하는 경우가 앞으로는 없기를 빈다. 내가 이토록 빌어봤자겠지만. XI The conformism which has been part and parcel of Social Democracy from the beginni...... more

덧글

  • hagne 2010/08/17 10:36 # 삭제 답글

    1. 애초에 진보신당의 전략에 관해 김규항씨가 언급하면서 너무 민주당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라는 지적을 했습니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일단 그 전략이 문제가 많다라고 생각되지는 않으십니까? 진중권씨가 논의를 확대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아니라면, 그냥 이 전략적 차원에서 고민하고 이에 대한 대답을 하면 끝날 논의였습니다.

    2. 실용주의라는 것은 그 계급의 실용주의를 말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흑인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미국에서 주류 백인 정치가 또는 언론인이 말하는 실용주의란 무엇일까요? 노예해방이 유토피아만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류 백인 정치인인, 링컨이 노예 해방을 이러냈다고 말하는 것은 흑인 노예 해방 운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이택광 2010/08/17 16:04 #

    정확하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논의를 애초에 확장한 건 김규항씨 아닌가요? 선거운동전략을 비판할 목적이었다면 자유주의 운운할 이유가 없었죠.
  • 뭉게구름 2010/08/17 11:33 # 삭제 답글

    진중권도 자신이 말하는 실용주의를 실현할 방법을 모르고 김규항도자신이 말하는 원칙을 지킬 방도를 모른다
    진중권의 실용주의도 김규항의 [주의]에 대당하는 [주의]로서 실용주의 일뿐이지 진정한 [실용]이 아니다
    둘다 뜬구름 잡는 소리일뿐
  • 뭉게구름 2010/08/17 12:00 # 삭제 답글

    진중권이 라캉,지젝 그리고 벤야민을 논거로 삼은 것은 [실용]이라는 텅빈 기표를 채울 방도가 없기 떄문이다
  • 장포쓰 2010/08/17 14:28 # 삭제 답글

    아니 형님, 형님은 왜 또 여기 계십니까!?!
  • 자파타 2010/08/17 19:12 # 삭제 답글

    캬 명쾌하다 ㅇㅇ!
  • ㅇㅀ 2010/08/17 23:38 # 삭제 답글

    existenz라는 건 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요?
  • ㅇㄻ 2010/08/17 23:59 # 삭제

    도기러
  • Wanderer 2010/08/18 06:52 # 삭제 답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근본주의와 실용주의의 대립이라는 명쾌한 요약이 논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근대주의라는 결론에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김규항이 사민주의 지지가 사회주의에도 '유리'하다는 말은 잘못 읽으신 게 아닌가 싶네요... 아마도 여기 나오는 이야기인 듯 한데( http://gyuhang.net/2042 ) 김규항은 사민주의 일부라도 구현하려면 사회주의 세력이 형성되어야 하고 그래서 자기는 사회주의 한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그 근거로 사민주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이 김규항의 위치를 정확히 보여주는, 소위 '사회주의'의 전형적인 사민주의 역사 이해가 아닌가 싶네요. 실제 사민주의는 20세기 초 사회주의 세력 다수가 소위 '개량주의'로 넘어오면서 생겨났고, 그 결과 다수 대중의 지지를 얻어 집권까지 하게되며 소위 급진사회주의자들은 소수파로 남게 되었다가 역사적 사실이 아닐까 싶은데...
  • 이택광 2010/08/18 10:40 #

    다시 읽어보니 그렇네요.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 들사람 2010/08/18 10:32 # 삭제 답글

    "근대주의"란 용어의 외연이 너무 넓거니와, 이 말이 추구하는 가치가 뭔지도 모호한 느낌입니다.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느냔 얘기기도 하겠죠. 번역어로야 다 "근대"라고 해도 "질서있는 사회변화"를 관장하는 계몽이성의 기획인 모더니티란 뜻이 있을 테고, 모더니즘을 뜻하더라도 문예사조로서의 용법과 건축사조로서의 용법이 서로 판이할 텐데 말예요. 근까, 어떤 가치를, 어떻게 추구하겠다는 건지가 근대주의란 말만으론 드러날 수 없잖냔 거죠.

    물론 전혀 없진 않은 게, "정상국가"에 대한 요구로 현실화할 수 있다고 하셨듯이, 도무지 "국가답지 않은" 국가 대한민국의 정상화가 이뤄지는 거라고 짐작할 순 있지요. 하지만 이마저도 대한민국이 "정상국가화"한다는 것, 혹은 대한민국 국가가 "정상화"한다는 것의 의미가 정확히 뭔지 밝혀주진 못하죠. 정치적 입장차에 따라서도 다 다를 테고요.

    가령 일본 우파에서 추구하려는 정상국가화 구상 같은 경우, 그것은 미군 점령에 의한 헌정적 굴욕을 털고 핵개발을 포함한 군사주권 확립에 나설 여건을 갖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남을 뜻한다고 하죠. 북한 지도부로서야 미일과 남한 괴뢰정권의 군사적 도발책동에 맞서 민족자존을 수호하는 강성대국이 되는 거라고 하고요. 국가간 관계에서 특정 국가가 정상화한다는 건 지정학적으로 판이하다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일 텐데요..

    뭐, 그러니까 요는, 국가의 정상화, 혹은 정상국가화란 근대주의적 기획이 자본주의 극복에 이르는 하나의 정치적 실천 경로란 말씀이 무척 낯설기도 하고, 의아하단 겁니다. 이게 레닌이 말하는 사회주의 국가처럼, 일종의 이행기적인 우회로를 뜻하는 건가 싶다가도.. 여하간 저로선 "좌파적인 스탠스"를 갖고서 국가를 정상화한다는 게 어떤 건지 와닿질 않네요. 가령 특정 국가 내에서 좌파들의 정치적 운신이 원활해지는 상황이 해당국가가 정상화된 결과랄 수 있을지도 의문이구요.

    제 깜냥으론 되려 좌파에게 필요한 정치적 기획은, 일테면 클라스트르란 정치인류학자가 말하듯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형성, 활성화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이런 입지와 실천들이 중장기적으론 국가를 왜소화하고 나아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정치적 경로겠구나 싶었달까요. 정상적이든 비정상적이든 간에 자본주의 극복엔 쌍심지를 켜는 국가와는 대별되는 정치적 공동체(들)로서 말이죠. 이택광님한테는 "정상국가"라는 게 아무래도 이런 정치적 공동체를 지칭하는 건 같지만, 그걸 왜 굳이 정상국가라고 해야 하는진 여전히 의문입니다.

    근대주의라는 말도, 사실 유럽적 보편주의나 자본주의적 식민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화신인 근대성에 대해 이런 걸 내면화하고 사회체제화하면 만사형통이란 입장을 가진 세력 내지 이데올로그들의 성향을 가리키는 뜻으로 이미 쓰이고 있기도 하고요. 예컨대 식민지적 근대화의 발전적인 양상들에만 주목해 자본주의적 식민주의의 문명화 효과에 만세를 외쳐온 이영훈 서울대 경제사 교수에 대해선, 코스모폴리탄 근대(지상)주의자란 비판이 익히 따라붙곤 했거든요. 이영훈씨 말고 그 전임자였던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도 있고, 식민지 경험의 경제적 효용에 주목하는 이들과 엄청 날을 세우긴 하지만 한반도 언저리에서 근대성을 "미완의 과제이자 영속화해야 할 가치체계"로 받아들인단 점에선 차이가 없는 '진보적' 민족주의 사학자들도 근대주의적인 면모가 있다고 할 수 있겠고요.

    이런 기존 용법 탓에, 제가 보기에 님께서 사용하시는 근대주의란 말은 여타 용례와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싶어요. 더구나 이영훈씨나 민족주의 사학자들도 대한민국이 서유럽적 근대 경험에 비춰 "파행"(?)을 겪었다는 국가인 만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정상화"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단 얘기는 방점을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하고도 있고요.
  • 이택광 2010/08/18 11:53 #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내가 언급한 근대주의는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그리고 68혁명 이후 발전해온 인권, 평등, 호혜, 민주주의 같은 가치체계를 뜻합니다. 이 가치체계는 근대국가라면 체제내화하지 않을 수가 없죠. 아무리 독재국가라도 민주주의 같은 가치체계를 '명분'으로 내세울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윤리적 시장경제"를 주장하면서 '공정한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자신들이 내세운 가치체계를 실현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정치기획이고, 좌파는 이런 시민사회의 요구에 개입해서 급진화해야겠죠. 물론 이게 과거처럼 좌파가 대중을 '견인'한다거나 '지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근대국가에 필연적으로 체제내화된 가치체계(근대주의)를 더욱 급진화하는 역할이 좌파에게 필요한 것이죠. 이걸 상상력이라 부를 수도 있고, 비판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정상국가'는 어떤 실체라기보다, 숱한 '대중들'로 이루어진 갈등의 공간, 시민사회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재현'해달라고 국가에게 요구할 때 내세우는 기표 같은 것이죠. 말하자면 어떤 정상국가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상국가에 대한 요구 자체가 정치적인 것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이 요구의 상황에서 항상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죠. 좌파는 그 정상국가에 대한 전망을 끊임없이 급진적인 것으로 제시해야하는 겁니다.
  • 박가분 2010/08/18 14:20 # 삭제 답글

    어이가 없군요. 이택광 선생님, 비평 그만 하세요.
  • 지젝 2010/08/18 17:07 # 삭제

    엄....
  • doh 2010/08/19 04:23 # 삭제

    글에 대한 반론을 쓰시고, 비평을 그만해야 할 이유를 말한든가, 아니면 다물든가
  • 깜놀 2010/08/19 22:25 # 삭제

    여기 댓글 다신 박가분 님이 내가 아는 붉은 서재의 박가분 님이라면, 왜 이택광 선생이 비평을 그만 둬야 하는지, 왜 본문 글이 어이가 없는지 정확히 지적하고 비판해주기 바랍니다.
  • 2010/08/20 00:17 # 삭제

    고도의 박가분 안티
  • 들사람 2010/08/18 14:32 # 삭제 답글

    이택광/ 네..^^: 제 식으로 정리하면, 근대국가가 그저 지속의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명목상 내걸어온 "민주주의적 가치"들을 실제로 구현, 제도화할 수 있도록 압박할 실천 전략이 필요하단 말씀 같네요. "갈등의 정상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혹은 대항헤게모니?) 형성을 기초로 해서 말이죠.

    이런 움직임에 방점을 찍은 정치적 기획이 일정한 의미를 지닌단 걸 부정하진 않지만, (제가 자본주의 극복엔 경계경보를 발동하게끔 맞춤된 역사적 제도라고도 했던ㅋ) 국가의 정당성을 외려 강화하는 역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진 회의적이다 싶네요.(이건 자신의 입론에서 "갈등의 제도화"가 자본주의 너머나 자본주의 극복을 염두에 두고 있진 않다고 분명히 한 바 있는 최장집 선생의 기본 각과 무관치 않겠죠.)

    전 좌파정치적 실천을 통해 앞으로 공론화해야 할 것 중 하나가, 국가가 제 스스로 말로만 해야 한다던 걸 실제로 좀 하게 만드는 것(국가권력에 대한 "내파" 전략?) 이상으로, 그 근대국가가 근대국가인 한 도무지 할 수 없는 게 뭔지 분명히 해 가는 거란 생각인지라서요. 선후관계를 일도양단하긴 힘들지 몰라도, 전자의 실효성은 후자 쪽 실천의 강화, 활성화 속에서 아울러 드러날 거라 보는 편입니다. 택광님이 염두에 둔 기획과 일정하게 겹치겠지만, 아무래도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적 결사와 이를 활성화, 제도화할 국지적, 지구적 네트워크 형성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할까요.

    이런 정치적 실천들이 활성화된다면, 설사 실질적 해방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움직임이 국가를 집단적인 주체로 앞세운 것이더라도 그건 국가가 장악(하거나 배제, 억압)해온 유무형의 자원 재배치를 압박하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덕분이겠다는 점에서 '정상국가'에 대한 요구와는 꽤 다른 양상을 띠고, 또 그래야 하잖나 싶은데요.. 이때 말하는 좌파적 의미의 정치란, (소위 자유시장과 연동하며 굴러가는) 국가라는 가상화된 시공간의 실효성은 부단히 약화시키되, 그와는 판이한 자유와 해방의 시공간을 창출, 지속해가려는 주체들의 공통된 역량은 그 규모와 강도 면에서 북돋우는 과정이겠다 싶어서 말이죠.

    여하간, 그래서 그런지 적어도 저로선, 택광님의 "근대주의적 정치기획"이, 그와는 다른 정치적 전략 속에서 전술적 위상을 가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 자체론 그다지 탐탁칠 않네요.^^:: 제가 보기엔 근대국가에 대한 내파적 개입 전술 정도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근대주의적 정치기획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구요.
  • 이택광 2010/08/18 14:35 #

    님이 말씀하시는 게 내가 언급하는 좌파의 급진화 전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국가를 어떤 실체라고 보는 게 아니라 불가능한 재현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상국가에 대한 '요구'가 님이 말씀하시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겁니다. 모든 정치의 에너지는 기본적으로 아나키라고 볼 수 있고, 이건 정상국가에 대한 요구와 분리될 수가 없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 들사람 2010/08/18 17:41 # 삭제

    이택광/ "정상국가에 대한 '요구'가 님이 말씀하시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라" 하셨는데,,

    제가 보기엔 거꾸로, 후자 쪽의 "사회" 강화, 활성화가 전자 쪽의 '요구'를 현실화하는 내파의 원동력 아닐까 싶네요..^^:: "국민국가"라는 상상된 공동체가 불가능한 재현인 건 저로서도 동의하지만, 이런 바보 같은 공동체를 상상해야 그럭저럭 굴러가는 사회관계는 국가라는 특정한 제도로서 엄연히 실재하는 거 아닌가도 싶고요.

    뭐 하여간 잘 알겠습니다. 성실히 응대해주셔서 감사했네요.^^
  • dorvi 2010/08/24 02:11 # 삭제 답글

    제가 보아도 이 글은 좀 실망스럽네요. 이건 비평이 아니라 논평이죠.
    일단 진중권을 너무 높게 보는 것 같고, 실용주의 비판을 이상하게 우회하거나 회피하는 것 같구요, 여기서는 확실히 김규항 쪽이 옳다고 봅니다. 판이 벌어졌는데 논평만 하면서 올바른 얘기만 주구장창 하시면 안되죠. 쳐들어가서 뒤집어놓는게 '비평'아닌가요? 알랭 바디우 그렇게 찬양해놨으면 좀 제대로 비평 작업을 하셔야죠. 이게 뭔가요. 김규항이 아무리 깜냥이 안된다고쳐도, 깜냥 그렇게 되시는 분들이 적확하게 짚어줘야지 감상평만 올리면 쓰겠습니까. 루카치가 보면 울고갈 일입니다.
  • ratm 2010/09/14 22:44 # 삭제 답글

    참 좋은 글 많네요. 물론 더불어 이해 안되는 글도 많구요. 퍼간다고 말씀드립니다.
  • 프락시스 2010/09/19 22:34 # 삭제 답글

    "이름 붙이기에 열중하는 것보다, 새로운 생명을 위한 산파 노릇을 자임하는 것이 좌파다운 사명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 - 적극 동감합니다.
  • 진똥개 2011/01/12 10:10 # 삭제 답글

    진중권의 말중 설명요함
    사실주의에 입각한 사민주의가 머니 쓰레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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