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한 미국인 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과거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의 언론들은 왜 전쟁위험을 강조하는 보도를 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생각할 때, 그런 식으로 사회불안을 조장하면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최대한 천안함 위기상황을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일각의 진단을 들려주었다. 여기에 덧붙여 뉴욕타임스에서 제기했던 일본의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분란과 천안함 사건의 지정학적 역학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미국인 교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한국에서는 언론이 정부에 협력해도 괜찮은가’라는 물음을 돌려줬다. 이 말은 정부를 지지하는 언론이 대중에게서 제대로 언론 취급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곤혹스러웠다. 한국에서 언론이 갖는 특수한 지위에 대해 이야기해준들 이 교수가 이해할 것 같지 않았다. 한국정치 전공자가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상식적인 관점을 가진 평범한 미국 지식인을 납득시키기에 한국의 현실은 너무도 복잡다단했다.
동일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밀러는 북한을 일컬어 “역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끄러진 괴물 같은 나라”라고 명명했다. 한국의 보수언론이 들으면 좋아할 말을 해준 것이다. 물론 밀러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이 사회주의를 통해 근대화를 달성하려다 실패한 나라라는 것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루마니아 출신인 밀러의 입장에서 북한을 따라 배우려다가 몰락에 이른 차우셰스쿠 정권은 끔찍한 트라우마의 기억이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증언은 전체주의의 현실을 생생하게 복기하는 소중한 기록일 것이다. 그러나 광화문에서 벌어진 광복절 행사를 보고 한국에 ‘민주주의’가 살아있다고 느꼈다는 발언은 대작가답지 않게 다소 성급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렇게 민주주의가 꽃핀 나라에서 민간인 사찰이 버젓이 되풀이되고, 4대강 사업 문제를 다룬 방송이 금지되는 사태가 벌어졌겠는가. 역사에 잘 적응한 이런 나라에서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시장질서를 교란시킨 기업가들을 마음대로 사면해줄 수 있겠는가. 밀러의 말을 듣고 마냥 좋아할 것이 아니라 우파라면 진정으로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일을 자신들이 하고 있는지 반문해봐야 할 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솔선수범해서 법을 지키고 도덕적 모범을 보여야할 우파가 앞장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회질서를 혼란시키는 모습이 너무도 한국 사회에서 흔하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미국인 교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여전히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밀러는 알지 못했을 뿐이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내한해서 놀란 것도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열광의 분위기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이 정치철학자는 “의견의 불일치를 받아들이고 도덕적 분쟁을 인정하는 것”을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 단계라고 말했다. 너무도 상식적인 이런 이야기가 한국에서 인기라는 사실에 샌델 교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도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정의를 갈구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징후적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보다 낫다고 위안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 북한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음.
그러자 이 미국인 교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한국에서는 언론이 정부에 협력해도 괜찮은가’라는 물음을 돌려줬다. 이 말은 정부를 지지하는 언론이 대중에게서 제대로 언론 취급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곤혹스러웠다. 한국에서 언론이 갖는 특수한 지위에 대해 이야기해준들 이 교수가 이해할 것 같지 않았다. 한국정치 전공자가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상식적인 관점을 가진 평범한 미국 지식인을 납득시키기에 한국의 현실은 너무도 복잡다단했다.
동일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밀러는 북한을 일컬어 “역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끄러진 괴물 같은 나라”라고 명명했다. 한국의 보수언론이 들으면 좋아할 말을 해준 것이다. 물론 밀러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이 사회주의를 통해 근대화를 달성하려다 실패한 나라라는 것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루마니아 출신인 밀러의 입장에서 북한을 따라 배우려다가 몰락에 이른 차우셰스쿠 정권은 끔찍한 트라우마의 기억이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증언은 전체주의의 현실을 생생하게 복기하는 소중한 기록일 것이다. 그러나 광화문에서 벌어진 광복절 행사를 보고 한국에 ‘민주주의’가 살아있다고 느꼈다는 발언은 대작가답지 않게 다소 성급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렇게 민주주의가 꽃핀 나라에서 민간인 사찰이 버젓이 되풀이되고, 4대강 사업 문제를 다룬 방송이 금지되는 사태가 벌어졌겠는가. 역사에 잘 적응한 이런 나라에서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시장질서를 교란시킨 기업가들을 마음대로 사면해줄 수 있겠는가. 밀러의 말을 듣고 마냥 좋아할 것이 아니라 우파라면 진정으로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일을 자신들이 하고 있는지 반문해봐야 할 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솔선수범해서 법을 지키고 도덕적 모범을 보여야할 우파가 앞장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회질서를 혼란시키는 모습이 너무도 한국 사회에서 흔하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미국인 교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여전히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밀러는 알지 못했을 뿐이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내한해서 놀란 것도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열광의 분위기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이 정치철학자는 “의견의 불일치를 받아들이고 도덕적 분쟁을 인정하는 것”을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 단계라고 말했다. 너무도 상식적인 이런 이야기가 한국에서 인기라는 사실에 샌델 교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도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정의를 갈구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징후적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보다 낫다고 위안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 북한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음.



덧글
c대생 2010/08/20 23:06 # 삭제 답글
아마 동일한 학술대회 앞에서 피켓팅을 하던 c대학 퇴학생은 '신성한 인문학 대회'에 먹칠을 한다고 c대학 교수들과 교직원들에게 욕을 먹고 반강제로 쫒겨났지요.
c대생 2010/08/20 23:07 # 삭제
그것을 촬영하던 한 대학원생은 당신 어디서오셨어요라고 압박받고, 학생증을 보여주고 학번과 이름을 확인받은 후에야 풀려났다는 후기가...
옥시덴탈리즘 2010/08/20 23:20 # 삭제 답글
미국인 교수도 웃기네요이라크 전쟁 할 때 미국의 모든 언론이 국방부 홍보부였는데
이택광 2010/08/20 23:36 #
저 미국인 교수는 자기 자신과 미국을 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에 저런 발언이 가능하죠. 이게 상식.
옥시덴탈리즘 2010/08/21 02:04 # 삭제
‘한국에서는 언론이 정부에 협력해도 괜찮은가’ 라는 문장은 미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않다는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죠 요것도 상싴
이택광 2010/08/21 07:03 #
이 분은 논리에 좀 서툴군요. 그 문장의 뉘앙스가 어떻게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으로 귀결하는 걸까요?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아이디는 멋으로 쓰시는지...
깨 2010/08/21 01:13 # 답글
글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위의 댓글에 대한 답글은 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한국인 교수가 영국 대학 학회에 참석해서 "왜 영국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동참했죠? 이해할 수 없군요."라고 말해도 아무렇지 않다는건가요? (저같으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한국의 지식인들은 왜 이라크 파병이라는 결정 앞에 무책임했고 무기력했는가를 따질 것 같습니다. 만약 영국인 교수가 한국이 이라크에 파병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아마 동일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저 평범한 미국인이 자국의 매스미디어의 행태를 모르지 않는다면 -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 한국의 언론을 유독 비상식적으로 보는 관점이 오히려 더욱 놀랍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수가 베트남에 가서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인민들에게 저지른 학살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교수는 자신과 한국(군)을 동일시하는건가요? 그렇다면 그런 동일시는 일종의 '성찰'의 의미로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어보이는데요.저는 그 미국인 교수가 '상식적인 관점을 가진 미국 지식인'인지, 아니면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만보는 지식인인지, 이 글만 가지고는 판단하기 어렵고 따라서 위의 댓글에서 충분히 새겨볼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택광 2010/08/21 07:07 #
그 상식이라는 건 '보수주의적 기준'이겠죠. 미국의 상식이니까. 그리고 한국 교수가 베트남 가서 과거 한국군의 잘못을 빈다면 그거야말로 국가와 자기 자신을 분리시킨 결과인 것이죠. 그리고 님의 논리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언론상황은 그게 그거라는 건데, 과연 그럴까요? 조선일보나 뉴욕타임즈나 그게 그거라고 해도, 분명히 다른 게 있죠. 저 교수는 그 '차이'를 말하는 겁니다. 언론이나 지식사회 내에서 반성의 기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죠.
창피한강냉이 2010/08/21 01:31 # 삭제 답글
상식이전혀통용되지 않아서 더 열광하는것도 같습니다.'자신과 미국을 동일시하지 않는 교수' 를 말씀하셨는데요..
대학때 생각해보면 과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어서 대학의 많은 단면과
교수님들의 생각같은것들을 생각지도 못하게 접하게 된 계기였는데요.
전부다 그런건 절대 아닐터이지만 저는 교수님들이 대체적으로 너무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요.
연구에 전념하지만, 정확한 노선을 가지고있고,전반적인 대세에 참으로 협조적이더라구요..
이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학생들을 위해 옳은소리를 해주는 교수님들은 잘 안계셨던 것 같아요.
이런글을 남기는 이유는 교수님처럼 이런 이야기 이렇게 적나라하게 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고,그래서 더
이곳도 잘 오게되고 사회전반적인 현상에 대해서 항상 코멘트도 해주시는게 저는 좀 처음에 신기했어요.
20대들에 대한 이야기도 교수님처럼 생각하고 표현을 한다는게 제가 생각해오던 '교수'의 이미지와
많이 달랐고 .. 교수님 같은 분들이 많으면 학생들도 덩달아 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답니다.
이런이야기 사실, 어디가서 들을 수 있을까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요. 교수님의 생각이 널리널리 퍼지기를
바래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된장과 응가를 구분짓기를 희망해보며.. 그럼 좀 상식이 통하게 되지 않을까요 .
prk 2010/08/21 01:46 # 삭제 답글
그 미국인 교수는 노엄촘스키의 manufacturing consent를 안 읽어봤음에 틀림없네요. 추천해주시길. 여론조작이라는 측면에선 미국언론이 한국의 조중동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건데..
이택광 2010/08/21 07:08 #
미국 언론이 조중동에 버금간다는 건 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군요. 촘스키가 조중동의 실상을 알았다면 미국언론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수정할지도 모르죠.
월광토끼 2010/08/21 06:06 # 답글
Wallstreet Journal 과 USA Today 가 있는 반대편에는 The New York Times와 The Los Angeles Times가 있는 법이고. 한국에서처럼 특정 성향의 언론 집단이 지나치게 언론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지요.TV에서는 Fox News가 있는 반대편엔 CNN이 있듯이.
ArchDuke 2010/08/21 07:04 # 답글
쓴건 뱉고 달면 삼키는 느낌도...
독자 2010/08/21 15:17 # 삭제 답글
택광님 '옥시덴탈리즘'의 댓글을 제대로 읽으실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언론이 정부에 협력해도 괜찮은가'라는 문장은 그러한 뉘앙스를 포합합니다. 그러한 뉘앙스를 풍긴다고 했지, '다른 나라에서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에 서툴다고 하시기 이전에 침착하게 읽어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옥세덴탈리즘의 첫 댓글에서 '조선일보와 뉴욕타임즈의 차이'와 언론이나 지식사회의 반성의 기능을 언급해주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님께서는 첫 댓글에 대한 대답으로 "자신과 미국'의 동일시"라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대답을 하십니다. 게다가 '그것이 상식'이란 말씀도 하십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깨님의 댓글과 같은 의문이 따라나옵니다. 그런데 역시 깨님의 의문도 님의 대답으로는 충분히 해소가 되지 않습니다. 님의 애초의 칼럼에서 저 교수의 물음은 "한국에는 언론이나 지식사회 내에서 반성의 기능이 있는지"에 대한 순수한 물음이 아니라, "니네 나라는 그런 반성의 기능도 없느냐"는 비난의 뉘앙스가 포함된 물음으로 읽힙니다. 그 교수가 자신의 기존 언론관에 수정을 가해줄 한국이라는 나라의 언론의 사례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미 미국교수의 질문에서 '개인과 국가의 동일화'는 전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택광님의 첫 (옥시덴탈리즘님에 대한) 댓글은 잘못된 대답일 뿐 아니라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깨님의 '상식적 관점'이라는 것은 '남의 티끌을 보기에 앞서 자신의 티끌을 살피라'는 일반적 맥락의 '상식'입니다. 이 '상식'이 왜 왜 미국의 상식인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 교수가 베트남에서 과거 한국군의 잘못을 비는 행위가 '국가와 자기자신을 분리시킨 결과'인지 궁금합니다. 깨님은 '개인과 국가의 동일화'의 맥락에서 사례를 제시한 것인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오히려 정반대의 경우라 하니 잘 남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택광 2010/08/21 15:41 #
"‘한국에서는 언론이 정부에 협력해도 괜찮은가’ 라는 문장은 미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않다는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죠" <-- 한글이 안 읽히세요? 풍긴다고 한 게 아니라 포함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참고로 논리학에서 '포함'은 "어떤 명제 p에서 다른 명제 p'를 추론(推論)할 수 있을 때에, 명제 p'를 명제 p에 하나의 범주로 함께 넣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들사람 2010/08/21 23:56 # 삭제 답글
옥시덴탈리즘님 덧글의 핵심요지는, 어느 국민국가가 됐든 소위 "국익"을 매개로 한 언-정-관-군-산-학 커넥션이 작동하고 있음이야말로 일반화된 "상식"인 마당에, '한국에선 언론이 정부에 협력해도 괜찮은가' 같은 질문을 던진 건 순진하거나 핀트가 꽤 어긋난 반응이란 얘기 아닌가요? 반문한 쪽이 "자신과 미국을 동일시하지 않는" 이라면 더더욱, 이를테면 '(지배적)언론의 대정부 협력이 공공연한 데 대해 비판적인 언론이나 기층여론의 동향은 어떻냐'라고 묻는 게 훨씬 더 "상식적"이지 않냐는 얘기겠죠.이에 택광님은 질문자가 자신과 미국을 동일시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대꾸하셨지만, 되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질문이 나오냐"는 반문을 누군가 던져도 딱히 의아해할 상황은 아니겠다 싶네요. 깨님이나 prk, 독자님이 남긴 덧글은 제가 보기엔 사실상 이런 반문을 하고 있는 셈인데요. 이런 반문이 나오는 거야, 미국인 교수가 "의아해하며" 던졌다는 질문이 "언론이나 지식사회 내에서 자성이나 반성의 기능"을 짚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읽히기엔 불충분하단 얘기기도 하겠죠. 더구나 천안함 사건 이후 대정부 협력에 열심인 언론과 다른 각을 세우는 언론 활동이 아예 없었냐면, 프레시안이나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레디앙 같은 중도-좌파계열 매체들을 통해 이뤄지기도 했구요. 이런 마당에, 또 9.11 때도 그렇고 이라크, 아프간 전쟁과 관련해 뉴욕타임즈 또한 애국주의 편향의 대정부 협력 여론 형성서 자유롭지 못했던 걸 알고 있는 이들이 볼 땐, 한국에선 언론이 정부에 협력해도 괜찮냐고 물으며 심지어 의아해했단 미국인 교수의 질문이 최소한 "좋은 질문"였다고 하긴 어렵잖겠어요? 헌데 이처럼 충분히 나올 법한 반문에 택광님은 자꾸 (신경질적으로?) 반박만 하시니, 그게 저로선 더 의아하네요.
또 이런 반문이 나오는 게, 단순비교하긴 확실히 민망하긴 해도, 뉴욕타임즈와 조중동의 차이를 무시하려는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슴다. 차이를 모를 리도 없을 테구요. 그런데 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엄존하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소위 메이저언론이 통상 해당국가의 "국민"언론을 자임하는 한 애국주의 회로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미국과 한국이 차이가 없건만, 인용하신 질문은 이런 '문제적 보편성'에 마치 작심하고 둔감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 아닐까요. 설사 오해라 한들 이런 뉘앙스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이네요. 특히나 지구화된 국민국가 체제하에서 소위 "국민-메이저"언론 치고 전형적인 이데올로기국가장치로 기능하지 않는 데가 없다는 것쯤은 촘스키 같은 이들한테 "상식"임을 염두에 둔다면, 촘스키가 아무리 미처 몰랐던 조중동의 패악을 알게 됐기로서니 미국 주류언론에 대한 기존 입장을 철회, 수정하기까지 할 공산도 별로 없을 듯싶고요.
그리고, 우리가 베트남전에서 빚어진 국가폭력에 대해 보이는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입장이 대한민국 "국가와의 동일시"를 안 한 덕분인 건 분명 맞지만, 이런 동일시를 거부하는 주체화의 계기가 좋든 싫든 대한민국 "국민"으로 호명돼야 하는 특정한 삶과 연루돼 있음 또한 부인할 수 있을까요. 근까 베트남전에 대한 성찰적 입장은 엄밀히 말해 전자와 후자 간에 이뤄진 변증법적인 되먹임의 결과 아니겠냐는 건데요.. 좌파적인 주체가 된다는 건 아무래도 국민국가의 국민이라는 보편화된 삶의 조건을 매우 특수할 뿐 아니라 문제적인 것으로 바꿔내는 과정이겠지요. 만약 택광님께 질문했다는 그 미국인 교수가 이런 과정의 일환으로서 미국의 이라크-아프간 침공을 둘러싼 미국 메이저언론 지형이 왜 제국주의 전쟁 반대가 아닌 "좋은/나쁜 전쟁" 구도로 흘렀는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이라면, 그런 사람이 왜 '한국에선 언론이 정부에 협력해도 괜찮은가' 정도의 질문밖엔 못 던지냔 의문이 드는 게 그렇게 무리한 걸까요? 아뇨, 충분히 들 만한 의문 같아요.
택광님 반응이 이런 의문들에 대한 적절하거나 속시원한 답변이냐면, 그건 좀 아닌 것 같네요. 막판에 논리학 얘기가 나온 것도 뜬금없어 보이구요. 저는 이게, 택광님이 사용하는 "상식"이란 말이 현실에 대한 가치판단 내지 정치적 입장 차에 따라 판이하고 심지어 상호모순된 내용을 가리킬 수도 있음을 아랑곳 않고서, 그런 상식을 과도하게 일반화된 논거로 삼으려 한 것과도 무관치 않단 생각입니다. 보통 "상식"에 기반했노라는 토론이나 주장들이 접점을 못 찾고 공전해버리기 쉬운 것도 그래설 테고요.
이택광 2010/08/22 08:24 #
들사람님은 매사에 너무 진지하시군요. 농담은 농담으로 듣는 지혜가 필요하죠. 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복잡한 속내 때문에 저런 질문이 나온 게 아닙니다. 이런 걸 보면 님도 좀 오타쿠 기질이 있으신듯. 아니면 인터넷 글쓰기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시든가. 내가 말하는 '상식'이라는 건 없습니다. 나는 상식주의자도 아니고 상식을 믿지도 않습니다. 상식은 말 그대로 상식인 것이죠. 나는 보통 상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비틀어 공격할 뿐입니다. '신경질적'으로 내가 반응했다는 근거는 뭔지 모르겠군요. 저는 지엽적인 말꼬리를 잡고 핵심을 벗어난 소리를 하는 걸 비꼬았을 뿐입니다. 저 칼럼의 요지는 '우파'의 상식을 깨트리는 게 목적입니다. 미국인 교수 에피소드는 그래서 나온 겁니다. 내가 저 미국인 교수말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님이 말하는 걸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건 여담입니다만, 님이 말한 내용 속에 님이 사용하는 이론적 패러다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재미있군요. 이래서 내가 네그리를 비판하는 겁니다. 큰 그림은 그리는데, 실천적 각론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죠.
들사람 2010/08/23 10:06 # 삭제
이택광/ㅎㅎㅎ; 맞아요, 제가 매사에 너무 진지한 걸지도. 농담이 농담처럼 안 들린 탓도 있겠고요.ㅋ 오타쿠 기질이 있는진 몰겠으나, 인터넷 글쓰기의 속성을 아랑곳 하지 않아 곧잘 욕을 (쳐)먹어요, 안 그래도.신경질적인 게 아닌가 했던 건, 안 그래도 물음표를 달았지만 옥시덴탈리즘님한테 닉넴은 멋으로 달고 다니냐고 한 거나, 한글 안 읽히냐고 반문했던 데서 그런 느낌이 들었단 건데.. 뭐 아니라시면 제가 잘못 넘겨짚은 거니 혜량하시고.
헌데, 제 얘기에서 네그리 냄새가 나나요? 네그리 책을 여럿이 읽고서 토론한 적이야 있지만, 네그리 얘기가 튀어나올 줄이야.ㅋ; 게다가 제 얘기가 실천적 각론을 막는다셨는데.. 흠, 굳이 말씀드리자면, 전 좌파계 한켠에서 '큰 얘기'와 '실천적 각론'이 양자택일식으로 헛도는 데 대해 굉장히 불만이 많은 쪽이거든요. 지금 회원으로 활동하는 모임에서도 그래서 이런 불만을 밑천 삼아 움직이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선지 무척 의외네요 그런 소릴 들으니.ㅎ;
말 난 김에 그럼, "어떻게"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건지 가르쳐주시면 어떨까요?^^: 저 스스로는 모르겠는 걸 발견하셨다니 어떤 식으로 드러났다는 건지 알아 두고, 필요하다면 당연히 고쳐야겠다 싶어서요. 뭐, 마니 바쁜데 무리하실 필욘 없겠지만.
이택광 2010/08/23 11:34 #
여하튼,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상당히 네그리 향기가 많이 나십니다. 님이 이야기하는 많은 부분과 접점이 있는데, 다른 점이라면 님은 상당히 탈근대적인 관점을 "의도적"으로 견지하신다는 생각이어요. 제 느낌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만, 근대=보편으로 보고, 이것을 극복하는 것, 또는 지양하는 것으로 '탈근대' 또는 '특수성'(님은 이걸 소수성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을 배치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근대의 반대는 탈근대가 아니고, 보편의 반대도 소수성이 아니죠. 그런데 위에 좌파의 생태계에 달아주신 댓글을 보니 이런 나의 느낌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짧은 댓글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겠죠. 내가 위에서 '여담입니다만'이라고 토를 달아서 적어 놓은 말은 님의 문제점이라기보다, 네그리주의의 한계 같은 걸 지적한 것이라서 크게 괘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들사람 2010/08/23 15:06 # 삭제
이택광/ 네.. 뭐 한동안 네그리를 섭렵하긴 했으니, (냄새도 아니고 무려ㅋ) 향기가 난대도 이상할 건 없죠. 사실 전 "근대일본령 조선" 같은 식민지 지배양식의 자본주의적 제도화 과정에 줄곧 관심을 가져왔던 터라, 월러스틴이나 아리기, 서발턴 연구그룹의 입론과 문제설정에 크게 영향받은 편입니다. 근대식민지라는 역사적 시공간의 창출이 근대성/근대화의 지체나 왜곡, 좌절, 파행 따위의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 자본주의 근대성 발전의 지정학적 표현이자 물적 토대였던 것으로 보자는 이네들의 주장에 크게 공감했거든요.그렇다 보니, 식민성의 지구화와 원리적 표리관계에 있는 근대성(혹은 유럽적 보편성)의 확산을 그 자체로 특권화하거나 일단 따르고 볼 가치로 전제하는 데 대해 일단 각부터 세우고 보는 편이예요.ㅋ 유럽적 보편성과 각을 세우고 있다는 민족주의적 특수성들도 유럽적 보편과 별개가 아니라 쌍생아적인 거울상 관계에 갇혀 있다고 보구요. 좌우파를 떠나 "근대(화)"를 무슨 선험적 목표치처럼 설파해온 그간의 입론과 역사서술들에 대해 "역사 구부리기"가 필요하다고 할까요. 월러스틴 할배의 표현을 끌어오자면, 21세기 좌파정치의 요체가 근대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인 "기술의 근대성" 탓에 길들여졌거나 박제화된 "해방의 근대성(자유와 평등, 연대)"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게 정말 제대로 되려면 일단 근대성의 역사적 계보, 즉 자본주의 근대화의 더러운 내력들을 동시에 까발려야 한다고 보는 쪽입니다.ㅋ 이 와중에, 근대유럽적=자본주의적 보편성의 위세 탓으로 홀대받아온 비유럽권 특유의 해방적 가치들과 삶들도 자율적 입지를 강화하면서 좌파정치적 실천에 큰 힘이 되줄 거라고도 보고요.
여하간 저로선, 향후 좌파적 전망과 실천 과정에서 중요한 건, 이 쌍생아적 관계를 해체-지양할 정치적 "제3항"을 자본주의 삼종세트(근대국가, 소위자유시장, 거대기업 권력) 안에서 빚어지는 모순들 "속에서" 어떻게 형성, 확장해갈 거냐에 있다고 보는데요. 이렇게 보자면, 몇 가지 지점에서 꽤 입장이 다르긴 하지만, 저도 택광님과의 차이를 적대로 돌리고 싶은 맘은 전혀 없고, 오히려 왜 입장이 다른지 갖구 "쓸데없는" 멱살잡이를 하기보다는 말씀하신 대로 많은 접점들이 어떡함 정치적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더 많다고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