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생태계 단상

나의 칼럼은 기본적으로 중간계급과 합리적 우파를 잠재적 독자로 삼는 글이다. 이런 글에서 나의 스탠스는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 스탠스를 알고자 한다면 내가 논의하는 이론적 지평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가 왜 이런 이중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지(사실 이 자체가 절대적 보수국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나의 문제의식을 구성하는 조건이기도 하겠지만) 시간이 나는대로 밝히도록 하겠다.

진중권이 김규항에게 하고 있는 말은 내가 '이중전략'이라고 칭하는 이런 전술적 곤혹감에 대한 성찰이 김규항에게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간계급의 보수주의가 진보를 자처하는 한국 사회에서 샌델이 잘 팔리는 것이나 자유주의자 김규항이 '사회주의자'로 통할 수 있는 어떤 조건이 분명 있다. 사람들은 쉽게 좌파와 우파를 한국에서 거론하지만, 한국에서 좌파는 한줌일 뿐이다. 우파는 좌파를 대등한 존재로 보고 싶겠지만, 현실은 절대적 비대칭이다. 이 비대칭성을 은폐하면서 우파는 좌파의 존재를 침소봉대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것이 한국의 합의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좌파가 과격한 발언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존재를 도드라지게 만들면 만들수록, 이런 '합의'의 정당성은 더욱 강해지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상단을 점거하고 있는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존재는 '새로운' 좌파적 주체의 형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좌파가 자신을 주장하려면, 끊임없이 눈 앞에 현시하는 현실사회주의'국가'와 자기의 정체성을 구별해야하는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사회주의국가의 한계와 실패에 대한 비판은 한국 좌파의 형성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김규항의 '사회주의자 선언'은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백하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좌파는 서식지를 갖지 못했다. 내가 좌파생태계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한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좌파라는 것은 공부한 머리로 '규정'해서 현시시킬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펼쳐지는 이른바 '좌파논쟁'을 보고 있으면, 모두 관념 속에서 선규정된 어떤 좌파의 상을 현실에 투영시키는 역전현상을 확인할 수가 있다. 김규항도 대표적으로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 기준에 들면 좌파고 아니면 자유주의자라는 것이다. 이건 고깔씌우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좌파의 현전성이 이런 규정을 통해 달성될 것 같지는 않다.

좌파의 생태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만들어내는 공공영역의 확대와 일정하게 궤를 같이 한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입장에 발맞추어 부르주아에게 이런 공공영역의 확장을 요구하는 것은 실천공간을 상실한 좌파에게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쾌락의 평등주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구가 임계점에 도달할 때, 좌파에 대한 요구가 발생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이중전략이라는 것은 한국 좌파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것이지 일시적이거나 임시적인 것, 더 나아가서 단계적인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와 함께 시민사회를 넘어갈 수 없는 '좌파 수도사'는 시민사회가 좌파를 요구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내면에 빠져 경전이나 인용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모든 것을 '객관'에 기탁해버리고 현실에 근거한 실천적 고민을 '프티부르주아의 된장질'로 보는 안이한 태도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좌파적 상상력을 지지부진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 이런 이중전략이 곧 우리에게 필요한 좌파의 정체성이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wallflower.egloos.com/tb/3414383 [도움말]

덧글

  • 마사회 2010/08/22 09:27 # 삭제 답글

    히힝~~! 1등~~~!
  • 빈센트 2010/08/22 12:12 # 삭제 답글

    좀 살만 하고 어지간하면 그럭저럭 자리 유지도 할 수 있으면서 공부 많이 한 사람의 핑계로밖엔 안 보입니다. 평소에 택광님 글을 잘 읽는 사람이건만, 이번 글은 좀 아니군요. 그래도 김규항씨는 뭐라도 하고 있습니다.
  • 이택광 2010/08/22 12:18 #

    '좀 살만하고 어지간하면 그럭저럭 자리 유지도 할 수 있으면서 공부 많이 한 사람'이 뭐가 나쁜 걸까요? 문제는 모두가 이렇게 살지 못하는 현실이죠. 철밥통이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철밥통이 되어야하는 거죠. 그렇게 될 수 없는 현실을 바꾸는 게 중요한 겁니다. 한국 사회는 이게 전도되어 있어요. 내가 철밥통을 못 가지니까 다른 놈도 가져서는 안된다, 이런 사고방식은 공산주의를 요청하는 게 아니라 파시즘을 호출하는 것이죠. 모두가 철밥통을 가질 수 있는 사회, 나는 이게 '좋은 사회'라고 보거든요.
  • 들사람 2010/08/23 09:39 # 삭제

    빈센트/ 제가 보기엔, 걔중 평소의 문제의식을 명확히 드러내주셨단 점에서 젤 나아보이는데요.ㅋ 더구나 뭐라도 하고 있는 게 김규항씨뿐만도 아니거니와, 뭐라도 하고 있대서 시비해야 할 대목서 마냥 너그러워질 수도 없는 노릇일 테고요.
  • 4시40분 2010/08/22 12:18 # 삭제 답글

    오랫만에 덧글을 답니다. 참으로 좋은 글입니다. 마지막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것이야말로 영성적인것이지요. 선생님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바로 이를 반증하지요.
  • 이택광 2010/08/22 12:40 #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소식은 간접적으로 듣고 있습니다^^ 제가 진 빚이 커서 갚을 길이 막막하네요.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요.
  • 질문 2010/08/23 08:42 # 삭제

    내가 알기론 평소 김규항씨의 생각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는 것이지요.
    영성이 없는 혁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바로 그러하구요.
    <'좌파논쟁'을 보고 있으면, 모두 관념 속에서 선규정된 어떤 좌파의 상을 현실에 투영시키는 역전현상을 확인>확인할 수가 있다고 하셨는데 예를 들면 김규항의 어떤 주장이 그러한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또한 <진중권이 김규항에게 하고 있는 말은 내가 '이중전략'이라고 칭하는 이런 전술적 곤혹감에 대한 성찰이 김규항에게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 진중권에게는 그런 성찰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 이택광 2010/08/23 08:56 #

    질문/ 이런 식의 질문, 솔직히 반갑지 않습니다. 결국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이런 얘기를 듣고 싶으신거죠. 소녀시대 팬질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이 논쟁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몰라서 이렇게 물으시는건가요? 밝혀두지만 나는 누구의 편도 들고 있지 않습니다.
  • 이택광 2010/08/23 09:04 #

    아, 그리고 참고로 김규항이 말하는 영성은 내가 말하는 영성적인 것이 아닙니다. 김규항이 말하는 영성은 '예수같은 사람이 되자'는 겁니다.
  • 질문 2010/08/23 09:09 # 삭제

    누구의 편도 들고 있지 않다고 하시지만 글의 맥락이나 뉘앙스는 진중권보다는 '김규항같은 부류'를 비판하고 있는 글로 읽혀집니다. 김규항의 주장에 전면 동의하는 바 아니지만 그의 진보정당의 정체성에 관한 글이 이런 식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소녀시대 팬질과 같은, 이라는 표현은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이런 질문 하나로 소녀시대 팬질이 되는 겁니까?
  • 이택광 2010/08/23 09:21 #

    '김규항 부류'를 비판하면 잘못된 건가요? 진중권 부류도 틀린 건 틀린 거죠. 그리고 그 정체성 논쟁은 '이런 식'으로 확대되는 게 바람직합니다. 이 논쟁을 진중권-김규항이라는 개인에 묶어두려는 태도가 문제라는 취지였습니다. 표현상 불쾌했다면 사과드립니다.
  • 질문 2010/08/23 09:33 # 삭제

    김규항 같은 부류를 비판하면 안된다는 게 아니라 누구의 편도 들고 있지 않다고 하시지만 진중권의 주장에 더 힘을 실어주는 글을 보고 한 말이었지요. 또한 김규항의 오류와 희망이란 글에 양가죽을 쓴 늑대라는 진중권의 대응글로 촉발된 이 논쟁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김규항이 말하는 영성은 '예수같은 사람이 되자'인가요? 그렇게 한마디로 규정해 버리는 근거가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이택광 교수께서 말하는 <영성적인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이택광 2010/08/23 09:44 #

    질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게 중간에 서 있는다는 의미는 아니죠. 나는 굳이 영성이라는 말을 쓰진 않습니다. 다른 분들이 나의 생각을 푸코가 말한 '정치적 영성'에 빗대어 표현을 하신 것이지요. 나는 욕망의 배치나 주이상스의 정향이라는 말을 더 선호합니다. 저 아래에 정치적 영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제 견해를 밝혀놓았으니 참고하세요. 그리고 님은 최근 나온 김규항의 인터뷰집을 읽지 않으신 것 같군요. 거기에 보면 '내면의 성찰' 운운하면서 좌파는 예수를 따라 배워야한다고 말해 놓았습니다.
  • 질문 2010/08/23 09:53 # 삭제

    네, 답변 감사드리구요,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상단을 점거하고 있는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존재는 '새로운' 좌파적 주체의 형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좌파가 자신을 주장하려면, 끊임없이 눈 앞에 현시하는 현실사회주의'국가'와 자기의 정체성을 구별해야하는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사회주의국가의 한계와 실패에 대한 비판은 한국 좌파의 형성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김규항의 '사회주의자 선언'은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백하다> 이러한 진단에 완전 공감합니다. 바로 그러한 한계로 인해 드러내는 김규항의 약점이 분명 있긴 하지요.
  • 2010/08/22 13:14 # 삭제 답글

    저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에 언급하신대로 논쟁의 승패 여부를 떠나 김규항 진중권 논쟁은 시사해주는 바가 많은 것 같네요. 여러모로 많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 마름 2010/08/22 13:28 # 삭제 답글

    본문은 갸웃거리면서 읽었는데 빈센트 댓글에 대한 댓글이 되려 마음에 와닿네요..모두가 철밥통을 갖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야 김규항씨나, 진중권씨 모두 같을텐데 과정에서의 마찰음이 오해와 갈등으로 귀결되지 않길 바랄 뿐..치워야 할 똥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청소부들끼리 청소방법을 두고 싸우는 거 같아서..
  • 놀이네트 2010/08/22 15:17 # 삭제 답글

    현전성이 뭔가요?

    한겨레21 맨 뒤장에 님하글이 실렸는지 확인하고 앞에서 주르륵 읽어갈 때가 참 재미있었는데...

    R이 얼마나 오래 나올 수 있을는지와 이번 포스팅의 주제가 잘 엮였으면 합니다.
    학교에서 제가 수업하는 반에 한 권씩 돌렸는데 아무래도 어려워 하는 듯 해요.
    여하간 알을 읽고 성장하는 세대가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작업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알이 오래도록 출간되어 집에 동거하는 소녀들이 십대 이십대가 되어도 계속 나와주고
    알만큼 알찬 기획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저도 한 몫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이택광 2010/08/23 00:08 #

    현전성이라는 건 지금 현재 존재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알에 보내주신 관심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잡지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겠죠.
  • 지나가다 2010/08/22 15:24 # 삭제 답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공영역의 확장에 대한 요구를 좌파가 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에만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거의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 전체에서 강조되어온 전략적 상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예요. 그래서 지금 어쩌자는 것이냐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진중권이 말하는 '무상급식' 처럼 한나라 빼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실천에만 우리의 실천을 제한하자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건지, 아니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명확히 밝혀 말하실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이택광 교수의 이번 글은 너무 아무 말도 하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 이택광 2010/08/23 00:22 #

    지나치게 진중권의 프레임에 맞춰서 이 포스팅을 읽고 계시는군요. 나는 이중전략이라고 말했지 위장전략이라고 말한 게 아닙니다. 두 패를 가지고 번갈아 내보이는 것과 한 패를 숨기고 한 표만 내보이는 건 엄연히 다르죠. 그리고 나는 좌파운동은 정당정치로 국한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님처럼 '정당정책'에 국한해서 자꾸 좌파를 판단하는 오류를 보면, 오히려 한국 좌파에게 진보정당은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게 아니라 제약하는 주범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군요. 그리고 사회주의 전략의 상수 운운은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 지나가다 2010/08/23 02:02 # 삭제

    위장전략이 아니라 이중전략이라고 말하니 더 아리송해지는군요. 그럼 지금 한국 좌파, 그리고 김규항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공영역 확장에 대한 요구를 안 하고 있다는 겁니까? 진보신당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진보신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좌파도 민주주의 확장 요구를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영역 확장을 옹호하는 것은 볼쉐비키의 활동만봐도 알 수 있는 겁니다. 사회주의자들의 두 가지 전술이라는 텍스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못 들은 척 하지 마시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면 다시 읽어보세요.
  • 이택광 2010/08/23 07:20 #

    본색을 드러내시는군요. ㅎㅎ 결국 한 수 가르치겠다는 심보였죠? 님은 아직 이 포스팅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회주의 전략에 해박하시니 굳이 추가 설명은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진보신당보다 더 왼쪽에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좌파가 이렇게 위상학적으로 설정될 수 있는지도 의문), 님은 김규항처럼 단계론에 빠져 있는 것 같군요. 볼셰비키의 전술과 21세기 좌파의 전략이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에서 이미 모든 건 다 드러나고 있죠.
  • 지나가다 2010/08/23 09:20 # 삭제

    ㅎㅎ 본색은 무슨 본색. 기억이 안 나시는 것 같아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요구와 사회주의의 요구의 이중전략을 구사할 것을 주장했던 고전적 텍스트 하나를 상기시켜드린 거에 불과하죠. 걱정하지 마시길. 전 이택광 교수와 논쟁을 하고 있는 거지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전 이택광 교수가 21세기 좌파인지 아닌지도 잘 몰라요.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볼쉐비키의 이중전략하고 이택광 교수의 이중전략이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면 됩니다. 지금 해야할 것같다고 여기는 실천들에 대한 대략적인 상까지. 지금 올려주신 글만 가지고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럼 다음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이택광 2010/08/23 09:32 #

    이 포스팅 하나로 달랑 저의 생각을 파악하시려니 그런 겁니다. 제가 쓴 다른 글들을 읽어주세요. 한 가지 지적질을 드리자면, 계속 좌파의 문제를 '정체성' 문제로 보시는데, 정체성은 징후적인 것이지 선험적인 것이 아닙니다. 좌파의 정체성 이런 거 없습니다. 이런 발상 자체가 상당히 전도된 것이예요. 그리고 내가 21세기 좌파인 게 아니고, 지금 우리가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좌파는 항상 이해받지 못하는 '괴물성'으로 출몰할 겁니다. 정치적 영성은 이런 괴물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사회주의 따위가 과연 21세기의 괴물성이 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말하자면 나에게 김규항의 주장은 너무 '상식적'이예요.
  • 지나가다 2010/08/23 12:30 # 삭제

    근데 제가 어디서 좌파 '정체성'에 대한 말을 했다고 좌파를 정체성 문제로 본다고 말하는지?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 봐도 저는 정체성 말은 한 적이 없는데요? 제 대글들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김규항에 대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했나요? 전 지금 이택광 교수가 한 이중전략의 정체가 뭐냐고 묻고 있을 뿐, 다른 이야기는 한 적이 없습니다.
  • 이택광 2010/08/23 12:54 #

    정체성이라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프레임이 정체성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진보신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좌파"라거나, "21세기 좌파"라거나, 이런 전제들 자체가 좌파를 정체성의 문제로 본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장 왼쪽과 가장 아래쪽을 가장 좌파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은 정반대의 경우도 많죠.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과 비슷한 얘기를 하고, 가장 아래쪽이 있는 사람이 가장 윗쪽에 있는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좌파를 정체성 문제로 규정하면 안된다는 까닭이 이 때문입니다.
  • 지나가다 2010/08/23 13:22 # 삭제

    아니, 21세기 좌파는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이택광 교수가 한 말 아니요? 난 이택광 교수가 그렇게 본인이 말한 21세기 좌판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한 말인데, 그걸 나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해서는 안되지요. 또 진보신당보다 왼편에 있는이라는 말도 내가 고정된 스펙트럼 상에서 모든 조직을 분류해서 체계화 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진보신당보다 더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대놓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공영역 확장을 반대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한 것인데, 이게 무슨 정체성에 따라 내가 좌파를 사고하고 있다는 증건가요? 만일 정체성에 따라서 좌파를 말한다면, 사회주의를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조직은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않아야 된다고 주장해야 그게 정체성에 따라 좌파를 사고하는 경우죠. 자, 쓸데 없는 트집 잡지 마시고, 말씀하신 이중전략의 구체적 상이나 좀 들려주시요. 나도 배우는 게 있을지 또 아오? 이택광 교수는 교수이니 나한테 한수 가르쳐도 되요. (또 이렇게 말하면, 교수 정체성 가지고 생각한다고 할라나?)
  • 더불어 2010/08/23 20:11 # 삭제

    저도 이중전략의 구체적 상이 궁금하긴 합니다.
  • 이택광 2010/08/24 11:13 #

    지나가다/ "그럼 지금 한국 좌파, 그리고 김규항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공영역 확장에 대한 요구를 안 하고 있다는 겁니까? 진보신당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진보신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좌파도 민주주의 확장 요구를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영역 확장을 옹호하는 것은 볼쉐비키의 활동만봐도 알 수 있는 겁니다." <-- 요기에서 '지금 한국 좌파=21세기 좌파"가 아닌가요? 내가 21세기 좌파라고 쓴 건 님의 용어법을 따른 겁니다.
  • 지나가다 2010/08/24 17:02 # 삭제

    ㅎㅎ 참 그런 심오한 뜻이 있을줄이야. 그러나 내가 지금 한국의 좌파라고 말한 것은 그냥 한국에 있는 좌파중에 라는 묘사의 성격을 갖는 것에 불과했을 뿐, 21세기 좌파의 정체성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었다는 걸 이택광 교수 본인도 아실텐데요. 됐고! 구체적 이중전략이나 빨리 들려주시길.
  • / 2010/08/24 21:32 # 삭제

    지나가다// 님 그냥 하는 말이 '답이 감이 안 오니 답 좀 굽신'이잖소. 거기다 뭐 이래저래 덧붙이는 게 많소. 그게 그리 궁금하면 이택광씨의 블로그를 살펴보면 되잖소.
  • 지나가다 2010/08/25 03:36 # 삭제

    이미 블로그 검색해 봤습니다. 이중전략 검색어 넣고. 아무것도 없던데요?
  • 들사람 2010/08/25 03:52 # 삭제

    지나가다/ 흐음.. 여기서 말하는 이중전략은 제가 이해하기론 이래요. 즉, 좌파적인 그러니까 '자본주의 너머'를 내다볼 계급주체의 형성-확장을 바탕으로, 가만냅두면 늘 표리부동하려 드는 부르주아민주주의 국가의 명실상부화를 동시에 압박하는(=민주주의의 급진화) 전략. 이 둘은 가령 "후자가 먼저 전자는 나중에"라든가, "전자에만 집중하고 후자 따위 부르주아지/파워엘리트들의 마실이거나 말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 전자는 물론이고 후자에 대한 개입 모두를 앞으로 대두할 좌파적 요구/의제들 속에 기입해야 한다는 얘기겠죠. 어떻게 얼마나 기입하느냔 의제나 국면 여하에 따라 달라야 할 테고, 국가 자체에 대한 메시아주의적 환상 같은 건 애당초 접더라도 말예요.
  • 이택광 2010/08/25 08:40 #

    들사람님은 너무 친절하시군요^^ 지나가다님,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두 패를 가지고 번갈아 내보이는 게 이중전략이라고. 제 말이 쉽습니까, 들사람님 말씀이 쉽습니까? 여기 달린 댓글들을 꼼꼼이 보세요. 이미 답은 다 나와 있습니다.
  • 지나가다 2010/08/25 11:36 # 삭제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고 말하든 아니면 자본주의 너머를 바라보며 자본주의 내부에서 부르주아의 표리부동을 비판한다고 하든, 어쨌든 자본주의 너머를 실천한다는 말이죠?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달라는 거예요. 왜 이렇게 간단한 질문을 계속 못알아 듣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뭘 해야 하는지 말하시라고요.
  • punky 2010/08/22 15:40 # 삭제 답글

    모두가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뭐라도 해야한다는 당위로 타인의 안정적인 삶을 냉소와 조롱으로 자신의 욕망을 은폐시키면 안되는거지요. 하지만 일상 직장생활에서는 안정적인 정규직 지식노동자들에 대한 냉소가 내것을 빼앗아 누린다는 게 아니라 상대적 결핍감을 값싼 감정적 반응으로 대신하는 게 서글픈거죠.
    저도 직장에선 그러니까요. 아마도 소외된 노동과 스스로에 대한 더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계급 사다리를 올려다보며 푸념과 함께 분노의 대상을 포착하게 되는 파시즘의 도래가 오는거겠죠.
    "내가 철밥통을 못 가지니까 다른 놈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놀부 심술보를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거라고 봅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가지신 그러는 당신은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그렇게 묻고 있는건 아닐까요? 이런 논쟁과 논의를 통해서 다른 계급들간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하지 않고 쌍심지를 키고 달려드는 분들의 말이 '억울하면 출세해라'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철밥통을 차고 싶은데 산업사회에서 그때그때 쓰고 버려지며 또다시 자신의 노동을 위해(절대 노동력이 아닌!)떠돌아다니는 불안정 노동 노마드족들을 대변해서 변명 비스므리하게 했습니다.
  • 이택광 2010/08/23 00:24 #

    뭘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논거는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지나가다 2010/08/22 15:40 # 삭제 답글

    그리고 다시 읽어보니까, 이중전략이라는 것은 단계론이 아니라 항상적인 근본적인 것이라고 말하셨던데, 그럼 좌파적 요구는 계속 숨겨야 된다는 말씀이신지? 또 다른 한 편으론 "쾌락의 평등주의"가 임계점에 달하면 좌파에 대한 요구가 나온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때도 좌파가 자신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면 안된다는 말씀인지? 그 때는 더 이상 이중전략을 활용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인지? 이 경우 왜 단계론이나 대기론이 아닌지? 이런 점들도 함께 좀 정리하셔서 생각을 밝혀주시면 이해하는 데에 좋을 것 같습니다.
  • 들사람 2010/08/23 10:10 # 삭제

    지나가다/ 저기,, 이중전략이 항상적인 근본성을 갖는다는 건, (진중권씨의 바바리맨 글에서 보이듯이) 좌파적 요구를 숨겨야 한단 얘기가 아니라 외려 버젓이 드러내되 그 요구가 이미-항상 "시민 아닌 시민" 내지 "계급 아닌 계급"이란 사회적, 주체적 조건 속에서 이뤄지는 것임을 놓치지 말잔 얘기로 읽히는데요. 이건 말하자면 계급투쟁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게 정세적으로 어떻게 이뤄졌을 때 더 효과적일 수 있겠냔 물음이겠다는 거죠.ㅋ

    택광님이 말하는 이중전략은 아마도, 이런 좌파적 요구의 근본성이 자유주의 국가(=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결국에는 태생적으로 표리부동한 것에서 마지못한 것이나마 명실상부한 것으로 내몰아 가리란 전망 속에서 나온 표현 아닐까 싶은데.
  • 이택광 2010/08/24 10:23 #

    들사람님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해인 2010/08/23 03:13 # 삭제 답글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좌파는 서식지를 갖지 못했다.
    내가 좌파생태계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한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 이중전략이라는 것은 한국 좌파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것이지
    일시적이거나 임시적인 것, 더 나아가서 단계적인 것이 아니다.

    * '좌파 수도사'는 시민사회가 좌파를 요구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영성에 빠져 경전이나 인용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
    이런 이중전략이 곧 우리에게 필요한 좌파의 정체성이다.
    --> 이 부분에서 사람들이 헛갈려 하는 것 같군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말이 좌파의 주장을 요구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앞의 어느분 덧글처럼 "영성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 겠지요.
  • 이택광 2010/08/23 08:39 #

    이렇게 정확하게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죠. 감사합니다.
  • 에규데라즈 2010/08/23 10:06 # 답글

    좌파 수도사.... 너무 적절한 표현이네요 ㅎㅎ
  • 종이한장 2010/08/23 15:52 # 삭제

    김규항이 진중권을 비판하는 것은 이중전술이라고 부르는 전술의 곤혹감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좌파 수도사"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좌파"에 대한 몰이해 내지는 적대감 때문입니다. 그 근간에는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 중요성을 강조하며 노동자를 조직하고 투쟁을 준비하는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고요. 김규항은 그러한 활동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고 그런 활동에 대해 비아냥 대는 것을 비판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요즘 경전'만' 주구장창 외고 다닌다고 할 만한 사람들이 있긴 하던가요?
  • 에규데라즈 2010/08/23 16:17 #

    전 그 단어만 가지고 이야기 한거에요 .
    다른 아주 어렵고 어려운 그리고 중요한 말은 저 같은 놈이 끼어들 만한건 아닌거 같은데
    저 단어는 무척 맘에든다는거죠..

    저의 무식으로 인해 언짢으신 감정이 있으실거 같아요,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
  • 들사람 2010/08/23 17:15 # 삭제

    종이한장/ 종이한장님 말씀이 지극히 타당하더라도, 그게 "좌파적인 것"의 진정한 대중화는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답 내지 길 찾기와는 별 무관하거나 도움이 안 되는 것 또한 사실이죠.

    물론, 전 이런 상황이 언뜻 정보사회론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진중권식 "신인류화" 따위로 해결될 거라곤 보지 않아요. 진중권 특유의 빈정거림은, 아무리 포스트1968/"몰락 이후"의 좌파이론 동향에 대해 노동운동계가 보여온 이런 지적, 문화적 완고함-보수성에 대한 대응이라고 해도, (신)자유주의 우파 꼰대들을 향했을 때완 달리 그래서 생산적인 촉매가 못 돼고 지리한 교착을 유발하는 면이 있죠, 분명. 그렇다고 김규항씨처럼 "구관이 명관"인 양 단순하고 심지어 지루하기까지한 반복을 옹호 내지 변호하면서, 어찌 보면 좌파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역사유물론적인 시각관 젤 거리가 먼 방식으로 자신의 당파성과 이론적 문제설정을 "물화"해버리는 좌파분들만으로 돌파구가 열릴 거라고도 보지 않고요.

    근까, 1987년 이후 특히나 1997년을 거치며 고용 없는 성장 추세가 구조화된 지금 정세 속에서 "노동자"와 "현장"을 어떻게 재정의하고 이에 입각한 조직화의 방법과 시각은 어찌 새롭게 벼리면 좋을지 하는 식의 내적 갱신 움직임이 없거나 (가령 전국일반노조협의회에서 선구적으로 보여줬던 것처럼) 있어도 취약했다는 거죠. 좌파적 의미의 온고지신이란 게 무슨 위정척사론 같은 건 분명 아닐 텐데도 말예요. 물론 이런 갱신이 왜 지체될 수밖에 없었는지, 즉 짐짓 중립적인 듯한 국가 제도나 민주노총 조직의 관료화된 권태가 어떻게 이런 갱신을 막거나 힘들게 했는지도 반드시 아울러 환기돼야겠지만요.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 쳐도, 노동운동계 내 주사파 내지 국민파 쪽에서 국민의 정부 이후 한심한 교섭주의에 끄달려오면서 계급투쟁에 필요한 교육적, 조직적 근력 강화를 방기해온 거야 아예 논외로 하고, 좌파 쪽에서 견지하겠다는 시각과 방법이 그 가치지향관 별개로 지금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한 성찰이 부진했음도 부인하긴 어려울 듯해요. 주사파/국민파 계열이 워낙 한심했던 바람에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말예요. 지금 노동운동계 좌파 혹은 노동운동판에서 "그래도 좌파적 이상을 올곧게 지키며 조직, 투쟁하는 이들이 엄연히 있는데, 어떻게.."라는 수세적인 변호만 하기에 상황이 아주 녹록치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일 텐데요.. 반면, "좌파적인 것의 대중화" 전략에 바탕한 새로운 조직화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는 듯한데도 말예요. 헌데 이런 데다가, 그래도 뭔가 하고 있는 좌파 분들이 없지 않다고만 하는 걸로 과연 되겠냔 얘기 아니겠어요, 지금 이런 얘기가 오고가는 건. 문제제기하는 쪽에서 그걸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구요.
  • 지푸리 2010/08/23 21:27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dorvi 2010/08/24 02:18 # 삭제 답글

    백번천번만번십만번 옳은 얘기고! 홀라홀라!

    근데요. 이런 식으로 뒹굴거리는 이야기는 문화비평에서는 아주 소름끼치게 좋을 수 있지만, 벌어지고 있는 논쟁판에서 이런 식의 감상평은 항상 비겁하게 '작동'된다는 걸 잊으시면 안됩니다. 정말 이렇게 밖에 정리 안되나요? 아 답답하네요. 하악하악거리며 삶-정치에선 무능하거나 허무주의적이고, 인터넷에선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하마평만 쏟아내는 우리 인터넷 진보 오덕후들을 생각하셔야죠. 본인한텐 핑계가 아닐지라도, 우리 오덕 아해들이 '이론적 핑계' 잘 찾아서 하악거리고 있잖아요. 이런 애들이 진보진영의 진정한 실용주의자들이거든요. 여기서는 무조건 안티-실용주의가 옳고, 논쟁에 개입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 간디사랑 2010/08/24 11:12 # 삭제 답글

    본문과 덧글들을 여러 번 읽기 위해 담아 갑니다. 해가 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사진도 한 장...)
댓글 입력 영역


[위자드팩토리] 블루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