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단상

어제 미국에서 온 피터를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위스콘신대학 밀워키 비교문학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피터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4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한국어도 꽤 이해를 잘 한다. 최근에 SF에 대한 훌륭한 책을 출간했는데, 한국어 번역본을 위해 내가 한 출판사에 추천을 했다.

지난 주는 세계비교문학대회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온 지인들을 만난다고 원고 쓸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한국을 구성하던 세계가 확실히 좁아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을 두 번째 방문한 피터는 북적이는 대형서점의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책을 사기보다 책을 읽는 데 열중하고 있더라는 것. 그래서 한국에서 대형서점이 갖는 '문화적 역할'에 대해 이래 저래 설명을 해주었다.

방외자의 눈에 비친 한국은 문화적으로 역동적인 건 사실인 것 같다. 다만 너무 소비주의에 경도된 느낌을 주는 것 같고, 피터도 지적하듯이, 요즘 들어 한국이 점점 동남아 국가의 분위기와 비슷해진다는 것도 부정하기 힘들다. 날씨까지 동남아처럼 스콜이 빈번하니 우연 치고는 묘하다.

피터도 역시 한국 영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DVD를 잔뜩 사서 비닐봉투에 담아서 들고 왔다. 한국어를 이해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안 그랬으면 일일이 영어로 설명을 해줬어야할 상황이었다. 다음 학기에 정치철학을 가르칠 생각이라는 말에 흥미가 돋았다. 미국은 보수적이라서 토크빌을 잘 읽지 않는다는 피터의 말에 한국은 보수적이지만 아무 것이나 읽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자기계발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읽는 사회가 한국 아니던가. 이제 더위도 한풀 꺾인다는데, 일정도 거의 끝났다. 이번 여름은 뭘하고 보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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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오즈 2010/08/23 16:30 # 답글

    진심으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동남아와 비슷해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요?
  • 이택광 2010/08/24 06:24 #

    표면적으로 보이는 도시 풍경이 그렇다는 겁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닙니다.
  • 들사람 2010/08/23 17:33 # 삭제 답글

    흠, 토크빌 같은 보수주의자를 보수적이라서 잘 읽지 않는다는 미합중국 쪽 사정도, 그러고 보면 참 대략난감한 거 아닌가싶어요..;;
  • 2010/08/23 18:46 # 삭제 답글

    피터.. 성이 팬인가요?
  • 이택광 2010/08/24 11:04 #

    팩(Paik)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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