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갈 때마다 인상적인 것은 공원이나 카페에 앉아서 철학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두꺼운 헤겔책을 들고 있는 고등학생들도 부지기수. 아무래도 입시에 철학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렇겠지만, 여하튼 인상적인 풍경인 건 사실이다. 영국의 경우도 프랑스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은 간다. 아마 영국대학의 이공계학생들이 한국대학의 인문계학생들보다 인문서적을 더 많이 읽었을 것이다. 최소한 문학이나 철학토론에 완전히 젬병들은 아니니 말이다. 이게 한국의 우파가 그토록 갈구하는 '교양의 힘'이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지만 거기에서 결국 하고 있는 말도 "어려운 인문학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다. 내 책은 어렵다는 낙인이 찍힌 상태이지만,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를 꼼꼼하게 읽고 촘촘한 질문지를 메일로 보낸 고등학생 독자를 보고 있으면, 어렵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홍대 앞 입시미술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이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라는 말을 전해듣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엘리트 집단'이 어려운 철학책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독서대중의 수준을 한없이 낮게 잡기에 급급한 출판상업주의의 피해자가 계급적으로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지만 거기에서 결국 하고 있는 말도 "어려운 인문학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다. 내 책은 어렵다는 낙인이 찍힌 상태이지만,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를 꼼꼼하게 읽고 촘촘한 질문지를 메일로 보낸 고등학생 독자를 보고 있으면, 어렵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홍대 앞 입시미술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이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라는 말을 전해듣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엘리트 집단'이 어려운 철학책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독서대중의 수준을 한없이 낮게 잡기에 급급한 출판상업주의의 피해자가 계급적으로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덧글
kalay 2010/08/23 11:15 # 답글
마지막 문장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갑니다그럴 수도 있겠군요.
삼수생 2010/08/24 15:05 # 삭제
kalay님은 맑스에 대해서도 "그럴 수도 있겠군요."라고 답하실 것 같습니다.
2010/08/23 11:5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랄프386 2010/08/23 12:03 # 삭제 답글
한국의 우파가 갈망하는 교양이라구요? 글쎄요..청문회를 보면 기득권층들의 교양과 논리적 수준이 처절하게 드러납니다.
체신머리도 교양도 없는 무식한 비논리적인 막말만... 쩝.
저는 적어도 철학개론정도는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어떻게 배우는지는 모르겠네요..
어제도 무식한 기득권자에게... 일반화의 오류, 중명사부주연의 오류에 대해서
한참 논박을 했습니다.
도대체 비논리적인 논법을 가지고 자기 의견을 강변하는 그 뱃심은 바로 무지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요?
이택광 2010/08/23 12:12 #
역시 랄프님은 386세대답습니다^^
병1신 2010/08/28 10:57 # 삭제
이택광님이 386세대 답다고 답변하는게... 랄프님은 랄프님이 말하는 대상과 이택광님이 말하는 대상이 달라서 하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멍청해서 ㅠㅠㅠ 누가 답변좀... 아무나 상세하게 써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답글을 한번도 안달았었는데 참 관심이 가고 또 충격적인 주제라서 안물을 수가 없었네요
highenough 2010/08/23 12:52 # 답글
고현정 씨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그 분들은 좋은 교육을 받으신 분들이고.."라는 대목이 어쩐지 떠오르네요.
이택광 2010/08/24 06:41 #
실제로 고현정씨는 삼성가 며느리시절 철학과외를 받았죠.
대학생 2010/08/23 17:22 # 삭제 답글
독서대중의 수준을 한없이 낮게 잡기에 급급한 출판상업주의의 피해자가 계급적으로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 소름 끼치도록 공감되는 문장이네요.가끔 저는 도대체 그 철학책 읽는 사람들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하는 생각 마저 듭니다. 전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지젝의 실재와 현실의 차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대단히 몰입했던 이유가 그겁니다. 마치 저는 주체와 욕망 따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근저에 존재하는 것 처럼 살아가지만(혼자서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상 제가 사는 실재에는 그런 사람들이 '단 한명'도 없어요. 물론 시골에서 나고 자라 최근에 상경해서 그런지는 몰라도....저의 실재는 친구들하고 모여서 성형에 대한 잡담을 하고 양악이니 가슴 수술이니 하는 얘기 들어주는 일이 무한 반복되는 거에요. 저 또한 오로지 거기에 모든 관심이 쏠려있는 척 살아갑니다. 대화할 떄 인문학의 '인'자도 안 꺼내죠. 이런 상황에서 여기서 말하는 그런 (철학개론서를 읽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는)현실이 정말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상황을 인터넷이나 책에서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아... 그렇구나, 있긴 하구나. 라고 생각할 뿐인 사람이 어떻게 남에게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인문학? 필요하지. 알아. 하지마 나 먹고 살기도 바빠." 이게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는 이 인문학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걸, 그럼 사람들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걸 체감하지 못한다는 겁니다.결국 내 주변에는 없지만, 단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있긴 있다는 걸 알기 위해선 대중매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대중 매체들은 어차피 '다들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보여주기 급급합니다. 신민아와 같은 8등신 미녀들은 실제로 단 한번도 보지 못해도 분명히 현존한다고 생각하더군요. 그녀들이 누리는 어떤 쾌락에 대한 의심으로 인해 다들 미친 듯이 성형을 합니다. 그러나 소위 지식인들이 누리는 어떤 쾌락(우월감이라던가)은 제지할 필요도 없어요.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쾌락은 무슨... 선생님 말처럼 피해를 입는 건, 인문학에 관련한 논의가 손에 잡히지 않는 허구의 무엇인가와 다름없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계급적으로 아래에 있는 같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돈이 없어서 교양을 쌓지 못한다." 이건 명백히 사기죠. 없는 사람들에게 학문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건, 그들에게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인문학을 하는 주체가 '있다'라는 것, 그들이 따로 누리는 '쾌락'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거니까요.
이택광 2010/08/24 06:42 #
마음이 가는 주장입니다.
polaron 2010/08/23 18:26 # 삭제 답글
김규항과 진중권의 논쟁으로 인해 선생님의 블로그를 알게되었습니다. 누군가 선생님의 글이 논쟁의 요지를 잘 정리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과연 그랬습니다. 이 글 또한 궁금하던 점 하나를 선명하게 해 주는데 크게 도움이 되네요. 왜 난장이는 인형안에 숨을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표현과 논리에 있어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글과 핵심은 거의 같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런 댓글들을 인터넷에서 남기다가 저는 노빠라는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과연 노빠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자유주의자와 좌파의 가장 큰 현실 인식의 차이는 바로 "좌파의 생태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만들어내는 공공영역의 확대와 일정하게 궤를 같이 한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입장에 발맞추어 부르주아에게 이런 공공영역의 확장을 요구하는 것은 실천공간을 상실한 좌파에게 중요한 일이다." 라는 시각에 대한 차이와 동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좌파는 스스로 그런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자유주의자들은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것이 자유주의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하는 것 같고.. 제가 걱정하는 것은 누가 맞느냐가 아니라 만일 좌파의 생각이 맞다면 그것이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 땅의 현재 우익이라 칭해지는 사람들과 좌파가 두 측이 되는 세상..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Freely 2010/08/23 18:51 # 답글
"그 책은 폼 잡을려고 들고다니는거냐?"라는 비아냥 듣기 익숙한 저로선 대박 공감이네요...
leereel 2010/08/23 21:03 # 삭제 답글
제가 아는 프랑스에서 온 친구는 전공이 생명공학인데도, 현대 영미소설에 관심이 지대해서 좀 놀랐었는데-단순히 좋아하는 영미소설 작가가 누구누구가 아니라, 18세기부터 현대까지 그렇게 범주화시켜서-, 한편으로는 그가 curriculum vitae에다 그런 독서클럽에서 활동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걸 보고는 그의 관심도 '자기계발'적인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주위에는 그런 이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얘기도 덧붙이더군요. 최근에 프랑스에서 사립학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지는 게 영어교육과 긴밀하다는 얘기도 전해듣고 보니 말이죠.
2010/08/24 07:5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이택광 2010/08/24 08:06 #
하하, 재미있는 말씀 감사해요. 이런 말들이 저에게 상당히 유익합니다.
ㅇㅇㅇ 2010/08/24 10:21 # 삭제 답글
전 이해가 안갑니다. 인문학책을 많이 읽어라는 자기계발서 저자 중 과연 인문학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있는 지 말입니다. 인문학책을 많이 읽었다면 그렇게 양산되는 자기계발서를 내지는 않을 것 같아요.제가 편견에 사로잡혔나요....?
들사람 2010/08/24 11:15 # 삭제
문과대/인문대 소속 교수들 중에도 인문학의 존재 의의를, 'ceo/기업가적 모험정신'을 떠받쳐주는 실용적 필요 차원에서 호소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경우는 무척 흔하죠. 글로벌 시대 인문학의 진화적 적응이니, 환골탈태라느니 핀트 나간 호들갑을 떨어가면서 말예요. 존속의 물적 토대를 이렇게밖엔 마련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씁쓸하기 이전에 참 안습인 거겠지만요. 아무튼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인문학의 필요성이란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거겠죠. 이마저도 가만 보면, 구미권 유명 씨이오들 중엔 소위 문사철 전공자가 적잖더란 사실을 그저 따라잡으려는 기지촌 마인드의 발로라고 해야겠지만요.뭐, 문사철 하면 자동적으로 반기업적 앎이란 통념 자체가 실은 편견일 수 있겠습니다마는.. 전 다 같은 문사철이라 해도 부자들한테 사랑받는 곤봉 및 방패용 문사철이 있고, 가난한 자들한테 비록 사랑받진 못해도 피와 살, 싸움의 무기가 되줄 문사철이 따로 있다고 봅니다.ㅋ 물론, 부자들의 문사철을 흥미로워하면서도 이건 부자들한테 사랑받겠구나 알아챌 수 있는 생각의 근력을 키우는 게 문사철 공부의 핵심 미덕임을 부정하진 않지만 말예요.
ㅇㅇㅇ 2010/08/24 11:40 # 삭제
그렇게 들으니 조금 이해가 가는군요......
야우리시민 2010/08/24 12:39 # 답글
출판상업주의... 절감합니다. 저도 고등학생이지만 주변 친구들을 보면 책 따위는 전혀 읽지 않죠.. 링크 신고합니다.
2010/08/24 18:5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이택광 2010/08/24 20:07 #
제 블로그는 고등학생들도 많이 찾아온답니다.
다행이다 2011/03/01 22:58 # 삭제 답글
저 위 대학생님 주장에 정말 공감합니다. 너무 소수이고 이런 학문을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소통의 부재 답답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학문이라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전혀 모르겠구요
생존신고해주셔서 참 다행입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한국의 지적풍토와 지식의 양이 남을 깎아누르고 자랑하기 위해 존재하는것에 억울해하는사람이 비단 저뿐일까요? 실제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지식은 시험을 통해 남보다 우월한걸 증명하기 위해 배우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쳤으니 모르는 사람에게 적대적이고 고압적으로 굴어도 된다는 듯한 느낌이.. 특히 인터넷에서.
외국은 한국과 문화가 많이 다른가요. 아는것을 말하자니 잘난척이 되고 입을 다물고 있자니 답답하고 기만이 됩니다.
특히 인문쪽은.. 젊은 세대의 관심이 0이나 다름 없다는 느낌이에요 전 공부하는걸 좋아해 여러 분야를 기웃거리지만 인문만큼 죽어있는 학문도 없더군요.
다른분야를 공부하자니 그 고압적인 포스와 공격적 태도들이란 유독 한국인들만 그러는건지..
특히 과학쪽을 기웃거리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 공격성과 유치함이란.. 이곳 주인장께서도 겪으신것 같
더군요 증오와 함께 복수를 위해 공부하는것처럼 되어버려서 마음이 씁슬해요.
솔직히 다른 분야는 전혀 모르겠고 유독 과학만 그런듯 합니다.
학문이란 특별한것이 아니고 물 흐르듯이 숨쉬듯이 하라가 올바른 학문과 사유에 대한 태도가 아닐까요?
죽어버린 표어지만, 동양의 전통에서도 언제나 깨어 있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라고 철저히 가르칩니다. 그런 전통을 거부하는 곳이란 변질된 기독교밖에 없는것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고사하고 그 말도안되는 어설픈 학문 나부랭이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지만 말아주세요 라는 말을 살아있는 일반민중들(수많은 글들과 주장들이 소수사람들 입에서만 나오는것은 아니기에)에게 해야되는거 같아서 마음이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