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의 탄생 단상

문화비평가로서 나는 한국 문화라는 특수성의 장에서 만들어지는 보편적 장르의 가능성을 항상 탐색한다. 예를 들어, 최근 개봉한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 슬래시와 범죄스릴러를 뒤섞어 놓은 그 독특한 장르의 혼종성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 한국 아니면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비단 영화나 음악 같은 분야에서 새로운 장르가 나오는 건 아니다. 글쓰기에서도 새로운 장르가 나온다. 로쟈나 지승호가 이런 작가들이다. 로쟈의 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걸 무엇이라고 규정해야할지 몰라 상당히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모양새는 서평집이지만, 읽어보면 에세이집이나 인문학개론서 같기도 하다. 지승호 역시 그렇다. 인터뷰집인데, 책장을 열어보면 무슨 평전이나 르포물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한국인 지식인들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한국의 풍토에서 이런 장르의 탄생은 별반 의미 있는 현상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독특한 '존재에 대한 사유방식'은 새로운 장르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로쟈와 지승호는 이 방면에서 일정한 업적들을 쌓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 말고도 '글'을 쓰는 인문학자들이 있지만, 대체로 이들은 '학자'이지 '글쟁이'는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내가 주목하는 새로운 글쟁이 중 한 명이 람혼이다. 아직 뚜렷한 저작 목록이 없긴 하지만, 최근에 앤솔로지 형태로 참가한 아바타 관련 책에 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물론 주의해서 찾아보면 알라딘에 있는 블로그나 다양한 잡지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글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글을 무엇이라고 딱히 규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철학자 김영민을 연상시키는 도저한 나르시시즘이 별반 새로운 것은 아니겠지만, 글의 전체를 놓고 보면 요즘 보기 드문 '에쎄'(essai)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물론 그의 글쓰기도 김홍중의 경우처럼 결국은 '문학비평'이라는 기존의 장르로 흡수되어 버리거나 아니면 그에 대한 보완물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에게서 김현 따위와 다른 지독한 '인문학적 자의식'을 읽어내는 것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 인문학의 진리를 현실의 상황이 아니라 문학, 정확히 말하면 '시학'에 고정시켜버릴 때, 우리는 사유의 전도를 경험하게 되는 법이다. 지금 한국에서 인문학적 글쓰기의 역할이 있다면, 이런 전도를 폭로하고 깨트려서, 인문학 본연의 대상을 현실로 돌려세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람혼의 글은 '사유의 형식으로서 현실을 드러내는' 에쎄의 본령을 장르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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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sy 2010/08/25 18:25 # 삭제 답글

    재미있는 글에 댓글이 없어서리..
    [악마..]의 경우, 충무로라는 곳이 참 묘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저걸 블록버스터급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나름의 성취를 뽑아낸다는 것. 평단이나 관객이나 거기 나오는 잔혹함만 이야기한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 이택광 2010/08/26 09:29 #

    <마더>, <시> 이 두편과 더불어 최근 나온 윤리 3부작이라고 불러도 되겠더만. 김지운, 이번에 일냈어.
  • 야미 2010/08/26 14:34 #

    제가 언급하신 세 영화 모두 다 안봐서 어떤 의미에서 윤리 3부작이라고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잔혹한 영화를 싫어해서<악마>를 보지는 못했는데 스토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이 있었죠. <금자>의 복수엔 동의할 수가 없더군요. 금자는 교도소 동기들에게 은혜를 입혀가면서까지 자신의 복수에 끌어들이죠. 금자가 복수를 하는 이유는 구원받고싶어서인데 자기가 지은 죄를 용서받고 싶다고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게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올드보이>에서도 유지태도 자신의 복수에 사람들을 끌어들이지만 그들은 회사직원 내지는 조직원들이라는 점에서 금자의 친구들과는 다른 관계죠. 그런데 <악마를 보았다>의 스토리를 읽으니까 끔찍하더군요. 마지막 부분도 테러블하지만 자신의 연인이 그렇게 끔찍하게 살해당했다면 다른 사람도 똑같은 비극을 당하지 않기 위해 최민식을 붙잡아서 경찰에 넘겼어야했는데 복수를 위해서 죽을만큼 고통만 주고 풀어주고를 반복하잖아요. 이렇게 되면 누가 악마인지가 모호해지는데 물론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겠지만윤리적인 영화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던데요. 최근의 아시아 감독들은 사회의 잔혹함에 대해 굉장히 윤리적인 고민들을 하고있다고 들었는데, 쉽게 말해 내일을 걱정한다고 할까, 우리 감독들은 음.. 물론 좋은 영화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고 끔찍하게 죽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고싶지는 않아요. 그냥 신문으로 족하다는..
  • 2010/08/29 03:3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강냉이 2010/09/02 21:20 # 삭제 답글

    선생님 다른건 아니고 갑자기 생각나서 여쭤보는건데요. 학교다닐때 교양시간에 에세이하고 미셀러니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요 지금기억으로는 에세이가 학문적의미였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에세이의 개념보다는 미셀러니를 써야 맞다고 한 것 같은데요 에세이와 미셀러니의 차이가 알고있는게 맞는것인지
    잡스러운 글을 뜻하는말에 어떤걸 써야할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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