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여론 세상읽기

말 많던 인사청문회는 후보자들의 줄 사퇴로 막을 내렸다. 과거에 비추어 보자면 보기 드문 일이다. 말은 사퇴지만 사실상 낙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결정적 힘이 야당에서 나왔다고 보기 어렵다. 야당은 들러리에 불과했고, 정작 숨은 공신은 바로 트위터로 대표되는 ‘인터넷 여론’이었다.

한국의 우파에게 인터넷은 램프 밖으로 나온 지니와 같은 것이다. 램프에서 불러냈지만 다시 들어가게 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인터넷을 괴담과 유언비어의 온상으로 포장하고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다시 확인했듯이, 이 지니의 힘은 단순하게 환상에 그치지 않는다. 실질적인 완력을 가진 것이다.

한국 사회에 특유한 이런 현상을 ‘인터넷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이 민주주의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한때 민주주의는 ‘정언명령’과 같은 것이었고, 언제나 ‘좋은 것’을 대변하는 기표였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비치는 민주주의 모습은 정치의 조건이나 환경에 가까운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민주주의 자체를 어떻게 잘 구현할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요구하는 어떤 민주주의인가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국가에 대해 사회 구성원 개인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요구행위라는 점에서 결코 ‘하나’일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2007년과 비교해서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한마디로 이 변화를 요약하자면 ‘중성국가에 대한 요청에서 정상국가에 대한 요청’으로 양상이 변화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성국가가 시장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는 국가라면 정상국가는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국가다. 중성국가와 정상국가에 대한 요구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는 두 가지 요구 모두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모순적이었다.

촛불은 이 모순이 나타난 것이었고, 이를 통해 한국의 정치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라고 파악된다. 촛불은 꺼졌지만 그 빛이 남긴 여운은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먹고사니즘이 지상최대의 명령이었던 사회가 인문학적 사유를 요청하고, 마치 아이돌그룹을 지지하듯이 ‘정의’라는 말에 매혹 당하는 것은 사소한 징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시장주의가 만들어놓은 매끄러운 판은 작은 힘으로도 얼마든지 큰 바위를 옮길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한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의지를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좌파’정부를 비판하는 것 외에 뚜렷한 정치적 명분도 없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가 세종시라는 대못을 박아놓았다고 비난하던 이들이 마찬가지로 4대강이라는 뽑기 어려운 말뚝을 박고 있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거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면서, 자신들의 국정운영 능력을 과시하던 이들이 보여준 형편없는 위기관리 방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명박 정부의 실패는 곧 야당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제 정치 양상은 여당 대 야당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 대 시민사회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했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목격한 일련의 과정은 이 사실을 새삼스럽게 증명하는 것이다. 정말 “비는 내리고 어미는 시집”가는 상황이 현실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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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게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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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순과 위선사이 : 세상 올라타기 2010-09-04 10:58:47 #

    ... 인터넷 여론http://wallflower.egloos.com/3428386이택광이나 허지웅을 비롯한 세상 읽기 전문가들은 진정 세상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부럽고도 ... more

덧글

  • ㅉㅉㅉ 2010/09/04 01:09 # 삭제 답글

    상대편을 까면 숨은 공신인 인터넷 민주주의이고 우리편을 까면 우려되는 현상인 마녀사냥이고.. 지식인들의 이중기준 신물이 납니다.
  • 으엌ㅋㅋ 2010/09/04 05:10 # 삭제

    본문에 뻔히 '한때 민주주의는 ‘정언명령’과 같은 것이었고, 언제나 ‘좋은 것’을 대변하는 기표였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비치는 민주주의 모습은 정치의 조건이나 환경에 가까운 것이다.' 이라고 써져있건만ㅋㅋ
  • Q 2010/09/04 14:01 # 삭제

    이 마녀사냥꾼아!!!
  • 스토리작가tory 2010/09/04 06:59 # 답글

    언제나 인터넷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노벨 평화상좀 받아야 될텐데.
  • 도르래 2010/09/04 21:33 # 답글

    인터넷의 등장을 '지니'로 비유하신 건 정말 절묘한 비유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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