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방송은 요술거울이다 세상읽기

Mnet이라는 케이블방송에서 방영한 ‘4억 명품녀’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출연자가 자신의 몸에 걸친 명품만 쳐도 4억원에 달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 계기였다.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죄목으로 그 출연자는 연일 인터넷에서 두들겨 맞았고, 그녀의 미니홈피는 초토화되었다.

예상 가능한 일이지만, 출연자는 처음에 ‘악플러들’을 조롱하는 글을 남기다가 이로 인해 사태가 더욱 소란스러워졌고, 급기야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절차를 밟았다. 특정 방송 하나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파장은 대단했다. 이에 따라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방송을 여과 없이 내보낸 프로그램을 중징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해프닝은 우리가 항상 목격했던 비슷한 사건의 되풀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파문의 중심에 케이블방송이라는 ‘형식’이 있다는 사실이다.

케이블방송이었기 때문에 지상파방송과 달리 ‘과감한 내용’을 여과 없이 내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Mnet은 케이블방송 채널 중에서도 10대와 20대 시청자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예외적 쾌락’을 보여주고자 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명품은 실제로 시청자 대부분에게 실현 불가능하지만, 실현하고 싶어하는 상상적 이미지를 대변하는 것이다. ‘명품녀’는 이런 쾌락을 아무 제재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쾌락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4억원’이라는 화폐가치이다. 명품을 가질 수 없는 까닭은 현실적으로 4억원이라는 화폐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Mnet이 설정하고 있는 10대와 20대 시청자에게 이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아직 이들에게 명품은 동경의 대상이지 현실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특정한 세대의 취향을 떠났을 때, 상황은 복잡해진다. 과거처럼 케이블방송이 소수 시청자만을 향유 집단으로 확보했을 때와, 지금처럼 훨씬 확대된 시청자 집단의 관심을 받는 때는 해당 방송의 수용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케이블이든 지상파든 방영 내용에 대한 관심과 효과를 확대 증폭시키는 매개는 바로 인터넷이다.

흥미롭게도 케이블방송과 인터넷은 서로 공생 관계를 이룬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쾌락의 평등주의’에 근거한 민주화의 과정을 겪어왔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은 쾌락을 공평하게 나누어가질 것을 요구하는 ‘민주적 공론의 장’으로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트위터는 인터넷 민주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인터넷의 속성은 케이블방송이라는 ‘하위문화’의 자유를 즐기면서도 동시에 규제하는 이중적 효과를 발휘한다. 지상파나 케이블은 모두 인터넷을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표현 수위에서 케이블방송은 지상파방송의 한계보다 훨씬 더 넓은 보폭을 갖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지상파방송은 케이블방송을 벤치마킹하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지상파방송의 예능 프로그램 다수는 저예산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케이블방송의 ‘형식’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상파방송에 비해서 케이블방송은 세분화된 시청자 집단에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다품종 소량 생산’에 부합하는 제작 방식이 케이블방송의 특징인 것이다. 이로 인해서 독특한 케이블방송만의 형식들이 개발되고 장르화했으며, 지상파방송에도 영향을 끼쳤다.

과거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올리브TV의 <연애 불변의 법칙>은 ‘나쁜 남자’ 신드롬을 만들어낸 주역이기도 했다. 케이블방송의 장점을 정면에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지상파방송에서 금지되었던 ‘솔직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주목되었다. 지상파방송이 ‘연속극’이라는 허구의 형식을 통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연애 불변의 법칙>은 생생한 리얼리티 TV 형식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남녀관계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 만한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tvN에서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남녀탐구생활>도 지상파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을 시도해서 성공한 경우이다. <남녀탐구생활>은 기존 사연을 재구성해서 실제 상황으로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한번쯤 들어본 이야기들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재확인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케이블방송은 지상파방송보다 더 현실에 근접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하는 것이 좋은 방송이라는 ‘계몽적 논리’를 내재하고 있다고 하겠다.

케이블방송이 항상 선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까닭은 사회적 금지의 경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케이블방송이 욕망의 금지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금지를 교묘하게 타고 넘으면서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명품녀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케이블방송이라고 해서 완전하게 표현의 자유를 허락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하위문화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개방성이 케이블방송을 지상파방송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케이블방송은 일상에서 우리가 원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공식화해주는 구실을 해왔다. 회사 ‘뒷담화’ 문화라든가, 남녀관계라든가, 더 나아가서 개인의 성취를 다룬 감동적인 사연까지…. 케이블방송은 지상파방송이 금지할 수밖에 없었던 욕망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요술 거울’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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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에 게재되었음.

덧글

  • 독문과포석 2010/10/13 21:32 # 답글

    4억명품녀랑 4억쇼핑몰 어쩌구녀랑 많이 헷갈리네요. 4억이 대센가.
  • 라덴 2010/10/13 23:36 # 삭제 답글

    엠시몽 의사가 양심선언 했던데 이제 더 이상 엠시몽 쉴드는 안치시나보네요. 못치는건가.
  • 비극 2010/10/14 02:10 # 삭제

    넌 왜 사냐?
  • 우루사 2010/10/14 15:10 # 삭제

    이러기 위해 사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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