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신정아 단상

신정아씨가 <4001>이라는 책을 들고 돌아왔다. 표지를 봤는데, 야릇하다. 책은 개인적 기록에 가깝다고 했지만, 실제로 일으키고 있는 파장은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개인적인 사연이 정치적인 차원으로 순식간에 전화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일단 말이 신정아씨의 입술을 떠난 이상, 익명이나 은폐는 통하지 않는다.

신정아씨의 책은 정확하게 포르노그래피의 정치성을 보여준다. 원래 포르노그래피는 귀족집단을 공격하기 위한 부르주아의 발명품이었다. 방탕한 귀족집단의 위선을 폭로하기 위한 정치팸플릿이 후일 하나의 장르로 고착된 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포르노그래피이다. 포르노그래피라는 장르의 논리는 '폭로'와 '고백'에 있다. 그러므로 '국민의 알권리'를 최우선에 놓는 후기 자본주의의 시장논리를 따르는 한 매스미디어는 일정하게 포르노그래피의 원리에 근거한 황색저널리즘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신정아씨 책에 대한 호의적 보도가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포르노그래피의 형식논리가 어떤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정운찬 전 총리가 거론되고 있지만, 사실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유부남'인 그가 신정아씨에게 추파를 던졌다는 사실보다도, 서울대학교 총장의 신분으로 '미술관장직'과 '교수직'을 가지고 신정아씨를 유혹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이런 진술이 사실로 판명 난다면, 정운찬 전 총리는 회생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 또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기성 정치인'과 다를 게 없는 존재라는 것이 폭로된 것이니 말이다.

신정아 사건은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어떤 방식으로 동종교배를 이루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신정아씨의 폭로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이런 사실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방어본능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상하이 스캔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의 엘리트집단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뒤섞어버리는 행태를 보인다. 이런 현상은'자수성가'와 '출세'를 최고의 가치로 치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스폰서 검사의 경우에서도 확인했지만, '내가 노력해서 출세했기 때문에' 지금 누리는 권력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이상하지 않은 곳이 한국이다. 신정아씨의 폭로가 가져올 '정치적' 효과와 별도로, 신정아 사건이 우리에게 던졌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돌아온 신정아'의 선정성에 눈이 멀어 이 문제의식을 간과하는 것이 오히려 더 우려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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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그 동네에서야 2011/03/23 13:45 # 삭제 답글

    서로가 서로의 잠재적 경쟁자이고 적이니 신정아의 재등장이 반가운 분들도 있겠지요..삼성입장에선 적당한 때 정운찬 바보 만들어주니 좋고 진..호씨 얄미워하는 부류들도 고소하다 싶겠네요.. 근데 책 표지도 그렇고, 어제 인터뷰 모습도 그렇고.. 이 여자분의 사고방식은 이미 어떤 단계를 완전히 넘어 가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코 정상(?)은 못되겠지요..
  • ssy 2011/03/23 18:40 # 답글

    "내가 노력해서 출세했기 때문에" ... 그저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는 게 그리 어려운지. (묘한 건 정말 빡세게해서 잘풀려가는 친구들은 되레 '운이 좋았어', '이것도 한때야'라고 이야기 하더라는 거죠)
  • dhghd 2011/03/23 18:46 # 삭제

    사기꾼 과대망상환자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상식선에서 이해될 인물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 지나가다 2011/03/23 18:45 # 삭제 답글

    장자연 편지 2막이구만...
  • 123 2011/03/23 21:32 # 삭제 답글

    배신당한 여자의 복수.....흥헿헿헿
  • 백범 2011/04/08 22:18 #

    글쎄... 배신당한 여자라 할수 있을지?
  • leereel 2011/03/23 23:49 # 삭제 답글

    이토순야의 '701호 혹은 41호 여죄수 사소리'라는 일본 영화가 문득 떠오르네요. 탈옥한 미모의 여죄수가 뭇 남성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인데,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7,80년대 일본 '로망포르노'의 계열-만화에 원작을 두고 있는-에 속한다는 점이죠. 4001호 여죄수였던 신정아가 귀환하는 서사와 유사해 보이네요.
  • 이택광 2011/03/24 11:57 #

    복수의 서사는 닮아 있는 법 ㅋㅋ
  • 2011/03/24 08: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백범 2011/04/08 22:18 # 답글

    학위도 가짜, 학력도 가짜... 이젠 그 자서전인지 뭔지하는 휴지조각도 누군가 대필한건 아닌지 의심스럽군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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