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노조의 조직이기주의 세상읽기

현대자동차노조가 단협안에 노조원 자녀 우선 채용을 명시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물론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자녀에 한해 “채용규정상 적합할 경우”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가 여전히 산재한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현대자동차노조의 단협안은 ‘조직이기주의’의 극치로 비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고 현대자동차노조원들 과반수는 문제의 단협안을 통과시켰다. 노동운동의 정당성이 심하게 훼손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단협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 사태를 두고 “사주는 경영세습, 노조는 고용세습”이라는 세간의 비난이 이어졌다. 일부 보수언론은 ‘귀족노조’라는 낡은 부적을 다시 끄집어냈다. 사실 현대자동차노조가 노동운동의 공공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 이기주의에 빠진 노조를 ‘귀족’에 빗대는 것은 형평성을 잃은 수사학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는 귀족처럼 놀고먹으면 안 된다”는 편견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까닭은 언젠가 귀족처럼 대접 받는 삶을 살기 위한 것 아닌가. 이것은 근대 이후 인간 사회가 합의한 폐기할 수 없는 평등의 이념이다. ‘귀족’이라는 말과 ‘노조’라는 어울릴 수 없는 어휘의 결합은 조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사회에 드리워져 있는 노동천시 풍조를 역설적으로 폭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위기에 편승해서 개탄의 목소리나 높일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먼저 현대자동차노조원들의 선택을 이해하려면, 쌍용자동차노조원들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사업장에서 쫓겨나다시피 해고된 뒤에 이들이 선택한 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거나 아니면 살아도 죽은 것 같은 목숨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이런 쌍용자동차노조원들의 비극이 말해주는 것은 자명하다. 한번 전락한 삶을 되돌릴 기회가 한국 사회에서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누구는 복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른 직장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순진하게 되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해서 과거와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재기의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 따져볼 문제이다. ‘낙오한 자들’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 한국 사회이기에, 미끄러진 계단을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길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이다. 잡은 동아줄을 생명줄로 알고 놓지 않는 것이다.

비단 이와 같은 처지는 해고노동자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까딱하다간 발밑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해서 다시 올라오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실패했다가 살아난 수많은 성공신화들이 양산되지만, 그 밝은 면이 만들어내는 짙은 그늘을 묻어버리기 십상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도대체 누가 이토록 고통스러운 지옥을 만들어놓은 것인지를 근본부터 묻는 것이 순서이다.

신자유주의는 우리 모두에게 부르주아가 될 것을 주문한다. 노동자도 자기 계발서를 읽고 창업전선에 뛰어들어 성공신화를 만들기 위해 분투해야 ‘창조적 인재’인 것이다. 이번 현대자동차노조의 단협안은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논리를 ‘조직의 이해관계’로 착각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계급이기주의가 아닌 조직이기주의에 사로잡힐 때 노동운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는 사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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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게재되었음.

덧글

  • 도르래 2011/04/23 00:35 #

    글 내용에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다만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이번 단협안 속 문제의 내용들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이런식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결국 뻔한 결론을 낼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노조가 역으로 가장 이기적일 수 있는 선택을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분위기가 이들의 이기적 선택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지만, 그런 사회적 흐름을 노조 차원에서 어떻게 깰지를 전혀 고민하는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것이 현대차 노조 뿐 아니라 한국의 힘있는 노조 전반의 분위기와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조들 역시 무언가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힘이 세면 셀수록 그런 고민을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죠.
  • 이택광 2011/04/23 01:27 #

    그 부분에 대해 이의가 없습니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단협안은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상이죠.
  • 들사람 2011/04/23 12:41 # 삭제

    도드래// 제 생각엔,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그 힘을, 자본축적의 매트릭스에서 노동자들이 맺어야 하는 "계급적 힘관계" 속에서 보지 않고선, 말씀하신 타당한 지적도 결국 자족적 훈계에 그치잖을까 걱정이네요. 비록 현대차 노조를 지칭한 거였다 해도 "광의의 노동자조직" 내지 결사체들이 사회정치적으로 그렇게나 강력한 힘 내지 응집력을 가지고 또 발휘할 수 있었다면, 이런 옹색하기 짝이 없는 요구안 따위가 나왔겠는지 '우리 모두' 자문해 보잔 거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강력한 힘이란 뭐, 가령 재능교육이나 삼성반도체,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롯데손해보험 출신 내지 소속인 산재+해고+불안정 노동자들을 둘러싼 상황을 중지, 타파, 봉인할 수 있는 상호부조적 연대와 "계급 형성"의 능력을 뜻한다고 해야 할 텐데요.. 근데 가만 보면, 이런 능력을 키울 궁리들은 안 하고 이런 능력이 고르게 커지는 덴 깽판을 놓는 권력의 매트릭스 안에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려 용쓰고 있지만요. 현대차 노조의 이른바 지도부도 이렇게 해야 자신들이 힘이 커질 수 있다는 착각으로 꽤 오래 전부터 헤맸다고 해야겠죠.

    전, 현대차 이경훈 류가 내는 (따지고 보면 애국애족적 지향과 동심원 관계에 있을) 이른바 실용적이고 "애사적"인 목소리가, 흔한 비유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개 같은 상황과 엇비슷하다고 해얄 것 같거든요. 얼핏 사납게 개소릴 내니 저놈 힘 좀 쓰나보다 하겠으나, 실은 정 반대로 두려운 나머지 일단 무슨 소리라도 짖고 보는 상황. 저마다 "긍정의 힘"을 신앙하며 슈퍼맨이라 자부 혹은 자위하나, 실상은 우루사를, 컨디션을 먹어도 피곤은 가실 줄 모르는 상황, 혹은 우리. 그런 의미에선 이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걸 테죠 사실.

    그래서 더 긴장하고 정말 두려워해야 할 대목은, 실은 우리 모두 잠재적으론 이런 자기파괴적인 덫에 스스로 갇힐 수 있다는 점이겠다고 할까요. 언제부턴가 "민주화" 혹은 민주개혁적 진보 좀 됐답시고 죽은 개 취급이나 받던, 상호부조적 연대와 계급적 주체형성 능력을 확장, 강화하지 않는 한 말이죠.
  • 똠방 2011/04/23 07:31 # 삭제

    '비난' 일색의 기사와 칼럼 속에서 '무릅을 치게'하는 글입니다. 몇가지 팩트들이 한 순간에 머리속을 지나면서 한 코에 꿰지는 것 같네요. 가계의 낮은 저축률과 높은 부채율, 불안정한 취업과 재취업 구조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 심리의 본능 등... 위기가 닥치면 견딜 수 있게끔 하는 완충장치가 전혀 없는 현재의 한국 사회.. 결국 취약한 구조는 약간의 '몫있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그 몫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을 하게 된다는 것...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함께 떠올리면서 많은 사유의 끈이 이어집니다.

    <당신과 나의 전쟁>에서 주인공이 쌍차 투쟁 이후 정육점에서 일하는 장면도 떠올려집니다. 육식동물로서의 생존 경쟁이 주는 잔인함과 또한 그렇게 잘려지는 고기처럼 내몰리는 노동자... 그 나락의 충격이 그들에겐 얼마나 컸을까... 이 영화에서 정육점 장면은 제게 크나큰 이미지였었지요.

    "새로운 공산주의는 맑스의 개념들에 기초한 과거의 공산주의 기획이.. 왜 자신의 절대적 대립물로 귀결되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하거나 더 나쁜 것을 생산할 것이다." 네그리와의 논쟁에서 나온 발리바르의 언급에서, '공산주의'를 '노조'로 '맑스'는 '계급'으로 전환시키게 되면 현대 자동차 노조의 이번 단협안에 대한 이해 실마리가 풀릴 것도 같은...

    사유의 실마리를 던져준 택광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meteora 2011/04/24 02:43 # 삭제

    쟤네들은 소위 지들이 마르크스주의자라고들 하는데, 전혀 하는 짓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미국의 뉴딜을 가능하게 했던 3대 스트라이크중 하나이 1933년 미니애폴리스 파업의 지도자들은 마르크스의 reserve army of labor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실업자들을 조직했습니다. 당시 근로자들이라고 실업자에 비해 월등히 나은 생활을 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농부들의 지원은 두 계층 모두에게 이루어졌고, 근로자들은 얼마 안되는 월급으로 실업자들을 도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무산자계급이 유산자계급과의 투쟁속에서 강고한 연대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3년이상 계속된 이 파업끝에 자본가들의 대빵인 루즈벨트는 뉴딜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미국이 보다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들이 좌파라고는 하는데 주사파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르크스가 봤으면 귀싸대기를 때리지 않고 못 배겼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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