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도 덮지 못한 현실 세상읽기

올림픽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스포츠와 상업주의의 결합이라는 비판이 항상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이른바 ‘올림픽 특수’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 덕분에 언제부터인가 올림픽은 스포츠보다도 비즈니스에 더 가까운 느낌을 자아내게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그 많은 자금을 투여해서 올림픽이라는 거대 행사를 개최하는데 경제적 이해관계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올림픽 행사가 끝나면 흑자니 적자니 따지는 순서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셈이다. 선수 개인에게 메달을 따는 것은 곧 연금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일 테고, 기업이라면 후원을 통해 엄청난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올림픽을 텔레비전을 통해 관람할 수밖에 없는 ‘시청자’는 어떤 이득을 얻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이득을 얻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손에 땀을 쥐는 즐거움’이 시청자의 몫이다.

그러나 아예 올림픽에 관심이 없다면, 이런 즐거움은 애당초 성립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손에 땀이라도 쥐려면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는 선수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야 한다. 동일화가 되는 순간, 시신경 망막에 어른거리는 이미지는 내 자신의 몸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박태환 선수와 함께 물살을 가르고, 장미란 선수와 함께 역기를 들어올린다. 이것을 통해 시청자들은 잠시 현실을 잊어버릴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렇다. 올림픽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것은 어려운 현실을 잠깐이나마 잊게 해주는 착시효과이다. 물론 이것을 몰라서 올림픽에 넋을 놓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중은 그렇게 우매하지 않다. 간절하게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에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즐거움을 느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삶이 심심하기 때문이고, 업무 이외에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특이한 점은 시간대가 새벽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 점도 있지만, 초반 열기가 예전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올림픽 중계로 도배를 했지만, 시청자들은 과거처럼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올림픽 특수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불경기와 폭염 탓인지, 예전 같으면 치킨 집에 모여 맥주잔을 기울이며 집단 응원전을 펼치는 광경을 심심찮게 발견했을 텐데, 인상 깊었던 개막식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도드라졌을 뿐, 웬일인지 한산한 느낌이었다.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한 것은 심판의 불공정 판정이 불거진 이후였다. 유독 한국 선수에게 불리한 판정이 나와서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인터넷이 후끈 달아올랐고, 심판과 상대 선수의 ‘신상털기’와 페이스북에 욕설 남기기 ‘운동’이 벌어졌다. 금메달이나 올림픽 순위가 문제였다기보다, 공정하지 못한 판정과 그 때문에 벌어진 억울한 일에 대한 공감이 발생한 것이다.

트위터가 끓어오르고, 과도한 대응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이 사실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올림픽이라는 것이 어떤 판타지의 문제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박권일이 이야기하듯이, 공정하지 못한 심판에 대한 ‘응징행위’는 한국 사회에 내재한 ‘무능한 국가’ 대 ‘자력 구제하는 개인’이라는 보편 서사의 작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보편 서사를 만들어내는 ‘민족’을 둘러싼 판타지가 움직여야 비로소 올림픽은 흥행할 수 있다는 진실을 이번 런던 올림픽은 잘 보여준 것이다. 과거처럼 열렬한 민족주의가 올림픽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말해준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바로 민족주의라는 판타지가 어려운 경제라는 실체를 더 이상 덮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런던 올림픽에 대한 무관심은 절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먹고 살기 힘들게 된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올림픽이 덮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은 더 엄혹해졌다. 과거 같으면 올림픽에 묻혀 수면 위로 떠오르지도 않았을 컨택터스 사건(경비용역 업체 폭력 사건)이 본격적으로 의제화되고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매체 환경이 변화한 것도 한몫을 했겠지만, 한국 사회가 그만큼 어려운 현실에 공감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온갖 첨단 기술로 화려한 영상을 쏟아내는 지상파 방송의 중계가 공허하게 보였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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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에 게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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