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업 단상

이제야 정신을 좀 차리고, '본업'으로 복귀하는 중이다. 8개월 동안 타지를 돌아친 까닭에 나도 모르게 심신이 지쳐 있었나 보다. 2개월 동안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비워놔서 엉망이 된 거처도 정비하고 고장난 컴퓨터와 프린터도 교체하고 제법 서재를 그럭저럭 바로잡았다. 

용감하게 '본업'이라고 했다만. 나 스스로 가끔 묻는다. 나의 '본업'은 무엇일까. 나는 비평을 내 '본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게 이 비평이라는 것은 한국처럼, 문학, 영화, 음악, 무용, 건축, 이런 식으로 분야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장르비평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발굴하고 추상화(또는 총체화)하는 일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일을 왜 하게 되었는지 되물어보면 그 이유를 마땅히 대기가 쉽지 않다. 처음 유학길에 올랐을 때는 결연한 의지 따위가 있었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랬던 것 같다. 뭔가 비평의 목적 같은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글쎄다. 

내가 문화비평(독일적인 의미에서)을 하고자 했던 이유는 글로써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켜보겠다는 의지, 더 솔직히 말한다면, 비평으로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80년대 학창시절의 관성이 나를 이렇게 살아오게 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동안 벤야민을 열심히 읽었던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나의 관심은 서구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자신의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인지에 쏠려 있었고, 나름대로 그 해답을 문화비평에서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내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다. 비평은 더 고립되었고, 그나마 남은 영토도 '인문학'이라는 무소불위의 상품에 묻혀서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비평을 몰라주는 '우매한 대중'을 원망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요즘은 정밀한 비평보다 내밀한 정념의 고백이 아픈 이들의 마음을 위무하기에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뿐이다. 이 와중에 나는 루카치의 말년을 떠올렸다. 소련군의 탱크가 부다페스트로 진입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본 루카치는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고 한다. 가택연금을 당하고 일절 정치적 글쓰기를 할 수 없게 되자 루카치는 감시의 눈을 피해 '문학비평'에 매진했다. 장르비평을 통해 현실정치를 우회한 '정치에 대한 철학'을 재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과연 이런 전략이 지금도 유효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한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말년의 루카치처럼, 나 역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나를 존재하게 만든 그 '사건들'을 현재로 불러들일 것이다. 이게 내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본업'이지 않은가. 누가 뭐래도,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깊숙히 들어와버렸다. 

덧글

  • ㅔㅣㅡ 2015/01/05 20:14 # 삭제 답글

    왠지 먹먹해지는 글이군요...
  • 자그니 2015/01/06 10:48 # 답글

    돌은 죽었어도 바둑은 계속 되니까요...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5/01/10 21:4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1/11 07:1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힘내세요 2015/01/11 14:33 # 삭제 답글

    항상 멀리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 2015/02/17 22:1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권문정 2017/06/05 01:15 # 삭제 답글

    교수님 ㅎㅇ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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