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사건과 여성혐오 세상읽기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은 그 동안 한국 사회에 잠재해 있던 뇌관 하나를 터트렸다이 뇌관은 엄연히 존재했지만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 되었던 문제를 수면으로 띄워 올렸다바로 그것은 여성차별이다겉으로 보기에 이 문제는 여성혐오’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속내를 파고들어 가보면 더 복잡한 층위들을 감추고 있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처음에 여혐에 근거한 증오범죄인지 아닌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불타올랐다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증오범죄보다는 조현병의 망상에 따른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되긴 했지만여전히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개인적으로 나는경찰의 발표대로 이 살인행위가 증오범죄라는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최소한 여혐과 조현병의 망상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조현병의 망상이 현실적 접촉을 누락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망상의 구조는 상당 부분 상징계의 간섭에 근거하기 때문이다하필이면 그 조현병의 망상이 왜 여성을 대상으로 삼은 페미사이드였는지이 문제를 질문하는 것은 사건의 진실과 무관하게 중요한 것이다그리고 지금 현재 이 문제는 묻지마 범죄인지 증오범죄인지 여부를 가리는, 이번 강남역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의 차원을 넘어서서 진행 중이다.

나는 이번 사건의 현재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상이 일베의 행동이라고 본다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일베는 왜 강남역에 갔는가이다어떤 이들은 일베를 여혐종자들이 모여 있는 특수집단으로 간주하지만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오히려 일베는 보통의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극단적으로 희화화해서 보여주는 사례에 불과하다한마디로 일베는 개그콘서트의 열화버전인 셈인데일베는 규범을 넘어서는 파격성을 통해 집단적 쾌락을 즐기는 '사디즘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논란이 되었던 옹달샘 파동’ 역시 이런 관점에서 몇몇 정신 나간 개그맨들이 일으킨 문제라기보다 정규방송에서 규범적 제약 때문에 하지 못했던 여성 비하 발언들을 팟캐스트라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매체 특성을 이용해 마구 쏟아냄으로써 선정성을 노렸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정치적 올바름의 규범이 강화될수록 이런 선정성을 통해 얻는 해방감은 더욱 강렬해지는 법이다물론 그렇다고 한국이 미국처럼 전방위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이 관철되고 있는 곳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남성 중심적인 해방의 코미디는 상당히 문제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파시즘을 통해 근대화를 달성한 한국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자유주의적 규범은 여전히 넘치면서도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 가보자도대체 왜 일베는 강남역으로 갔을까말 그대로 강남역은 추모의 공간이었다그 추모의 공간에서 일베가 외친 것은 이 사건을 남녀 대결로 몰아가지 말라는 것이었고, ‘묻지마 살인을 증오범죄로 포장함으로써 남혐을 조장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이런 주장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지만남성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평소 당했던 수많은 여성차별의 사례들을 증언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남성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왜냐하면 이들은 여혐이라는 것이 매너 없는 일부 남성의 문제일 뿐이고대다수 남성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더 나아가서 이들은 몇몇 꼴페미들이 선량한 여성들을 선동해서 무고한 남성들을 미워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일베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여혐이란 것이 단순히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사실 지금 통용되고 있는 여혐이라는 말은 misogyny의 번역어인 것처럼 보이는데이 말은 단순하게 여성을 미워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Misogyny는 여성적인 것을 얕보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문화적 태도나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개념이다이 개념에 근거해서 살펴보면인류사 자체가여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여혐의 역사는 장구한 것이고이런 관점에서 여혐은 특정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인류 문명 자체에 내재한 구조적인 논리임으로 판명 난다.

그러므로 여혐에 대응하는 남혐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난센스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워렌 패럴(Warren Farrel)이 만들어낸 이 개념은 가부장제의 피해자가 여성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그러나 당시 여성인권의 처지를 감안해서 생각해본다면 이런 패럴의 주장은 남성 노동자가 처해 있던 계급적 불평등을 젠더 문제와 혼동한 결과물일 뿐이었다남성 중심주의가 계몽주의와 근대성의 근본 원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근대 이후의 사회에서 남혐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따라서 남혐이라는 개념은 여혐에 대칭상인 것처럼 위장되어서 여성차별의 구조성을 은폐하고 문제를 남녀대결구도로 환원시키는 착시현상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에 불과하다.

레이첼 보울비(Rachel Bowlby)가 지적하는 것처럼근대 자본주의는 여성을 소비와 여가에남성을 생산과 노동에 위치시키면서 이른바 현모양처의 신화를 만들어냈다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성차의 문제는 근대를 구성하는 본원적 축적에 구조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본질을 회피하고 여성차별 문제를 남녀대결로 수렴시켜서 이익배당의 경쟁구도를 강조하는 논리는 상당히 악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통해 불거져 나온 여성들의 발언들은 이 문제가 단순하게 남녀대결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여성차별과 여성대상 범죄의 경험을 성토하는 여성들의 발언들은 참으로 광범위했고다양했을 뿐만 아니라전형적이었다이 발언들이 전형적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젠더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준다.한국 사회에서 여성 차별의 문제는 일상적인 것이지만그 일상의 평범성에 깔려 있는 여혐을 넘어서서 여성 문제를 돌아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물론 한국 역시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페미니즘 활동가의 활약이 있었기에 이만큼이라도 젠더 감수성이 확립될 수 있었다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아직 갈 길은 멀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강남역에 간 일베는 특수한 남성들이 아니다마치 미국의 트럼프가 그렇듯이이들은 지지를 얻기 위해 어릿광대짓을 서슴지 않았을 뿐이다몰락한 백인 남성 노동자의 지지가 없었다면 트럼프도 없었듯이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한국 남성이 없다면 일베도 없다일베는 이런 한국 남성을 대표한다고 자처하기에 당당히 강남역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이 상대적 박탈감은 분명 여성 때문이 아니지만,일베를 비롯한 한국 남성은 여성 때문이라고 믿는 것 같다내 생각에 이런 믿음은 일베 만의 것이 아니라한국 사회의 평범성을 구성하고 있는 일상적 기제이다.

나는 한국의 가족구조와 생산관계가 결과적으로 이런 여혐을 통해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가장 핵심적인 증거는 바로 임금 차등이다.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입사해서 일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노동자는 임금을 적게 받는다이 문제는 이미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불거져 나온 것이다당시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와 똑 같이 일하면서도 임금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았다이런 차별은 이른바 경제개발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여성 노동자는 언제나 임시였고, ‘보조였다남성은 큰일을 해야 하고 여성은 현모양처로서 남성을 뒷바라지해야한다는 가족 이데올로기는 이런 경제구조를 재생산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였다여성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일베가 토로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여성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이런 가부장제를 중심 이데올로기로 구축했던 근대적 경제모델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20년간 한국은 전후 국가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청년세대는 취업은커녕 결혼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성장제일주의는 경제구조를 지탱하는 전통적 가족 구성이라는 최후의 마지노선마저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전체를 조망할 수 없이 파편적 사실만을 통해 진실을 추단하는 편견의 사고는 눈앞에 보이는 약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게 된다. ‘한국 남성에게 다른 소수자들은 보이지 않는다오직 지금 한국 남성에게 가장 빈번하게 목격되는 약자는 바로 여성이다.

여전히 한국은 다문화적이지도 않고 인권을 중시하는 사회도 아니다장애인은 통행권을 얻지 못하고이주노동자들은 특정 지역에 밀집해 있을 뿐이다동성애는 강고한 도덕적 금지의 벽에 갇혀 일상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이들은 여전히 소수약자인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여성은 한국 남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거의 자신들과 대등하게 보일 수 있다빈번하게 자신들과 대면하면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은 그러나 일베를 비롯한 한국 남성들에게 자신들보다 열등한 존재여야 한다일베가 강남역에 간 까닭은 이처럼 남성보다 열등한 여성을 알리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이런 일베의 태도와 평상시에 여성을 대하는 한국 남성의 태도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강남역 살인 사건은 묻지마 범죄이든, ‘증오범죄이든사실상 한국에서 여성이 소수약자라는 사실을 증명한 계기였고일베는 이 진실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일베의 강남행이 증명하듯여성은 여전히 한국에서 소수약자이다이 소수약자는 소수약자이기에 다른 소수약자와 연대함으로써 여혐의 구조를 타파하고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치적 주체인 것이다.


덧글

  • ephemeral 2016/05/30 23:04 # 삭제 답글

    * Misogyny는 여성적인 것을 얕보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문화적 태도나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 여성이 군대에 가지 않고, 가더라도 허접한 체력검사를 통해 장교나 하사관으로 가서 편하게 (남자들보다) 노닥거리다 오는 것이야말로 여성이 약하다고 무시하는 Misogyny 아닙니까? 왜 그건 지적하지 않으시는지요?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스라엘같은 징병제 국가의 여성에 비해 뭐가 약하고 부족해서 그런 취급을 받습니까? 여자는 약해서 쉽게 장교시키고 쉽게 경찰 임용시키는 것, 이게 바로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Misogyny 아닌가요? 이게 바로 여자들을 얕보고 무시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 가장 핵심적인 증거는 바로 임금 차등이다.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입사해서 일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노동자는 임금을 적게 받는다.
    - 정신나간 회사가 아니라면, 회사는 회사에 이윤을 가져다 줄 사람이라면 남녀 외국인 침팬지 가리지 않고 승진을 시키고 월급도 많이 줍니다. 어떤 정신나간 회사가 능력도 없는데 남성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더 줍니까? 여성이라서 임금을 적게 받는 게 아니라, 능력이 부족해서 임금을 적게 받는 겁니다. 남자들도 능력없으면 임금 적게 받고, 여자도 일 잘하면 승진 잘 합니다. 오랑우탄이라도 돈만 많이 벌어온다면 회사는 그를 중용할 겁니다.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닙니다.
  • 소년의 노래 2016/06/08 05:22 #

    성재기씨가 생각이 나네요.
  • 월간병신 2016/06/15 18:34 # 삭제

    룸펜이여.. 얼마나 적막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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