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의 '보도'에 대해 단상

지젝 특강을 '보도'한 참세상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팩트에 문제가 있는 주장이지만 혹여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내가 목격한 것을 적어둔다.

기사는 마치 지젝 교수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시간강사 해고에 대한 질문을 회피한 것처럼 적어놓았지만, 사실상 특강을 위해 입장하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지젝 교수에게 제대로 의사전달이 되지 않았다. 내 기억에 따르면 정황은 이랬다.

음악대학 세미나실에서 중앙일보 인터뷰를 마친 뒤에 지젝 교수는 특강을 위해 장내로 입장하려고 했다. 내가 지젝 교수 옆에서 같이 계단을 걸어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서 무엇인가를 지젝 교수 손에 쥐어주었다. 뭔가 싶어서 보니 한글로 적힌 유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누군가는 자기 소개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지젝 교수 옆에서 웅얼거리는 영어로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잠시 듣던 지젝 교수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I don't know what you are saying, sorry)고 대답했다. 이게 "지젝은 정작 본인이 강의하고 세계적인 지성인으로 초대받은 경희대의 해고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눈과 입을 닫았다"고 소위 민중언론이라는 한 매체가 보도한 사건의 전말이다.

한국인인 나조차도 당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어리둥절했는데 지젝 교수가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경황이 없어 나도 한글로 적힌 유인물을 못 읽을 판이었는데, 한글도 모르는 지젝 교수가 그 한글 유인물을 어떻게 이해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지젝이 피켓팅을 피해서 옆문으로 입장했다는 주장도 있던데, 경희대 크라운관은 구조상 음악대학 세미나실이 뒷쪽에 있어서 계단 옆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피켓팅은 중앙계단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계단 중간쯤에서 보면 글씨가 작아서 무슨 내용인지 읽히지 않았다.

진정 이 분들이 그토록 지젝 교수를 만나서 이 사실을 알리고 공감을 얻고 싶었다면(솔직히 왜 그래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 연락을 취하든지, 아니면 강의실로 찾아갈 수도 있었다고 본다. 지젝 교수는 지난 토요일에 입국해서 이미 여름학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모든 정보는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분들은 왜 하필 특강을 하기 위해 지젝 교수가 입장하는 그 짧은 순간에 나타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번에도 나를 보자마자 지젝 교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소식부터 물었다. 한상균 위원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되었다고 하니 비극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지젝 교수를 깎아내려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의아하다. 솔직히 이 분들이야말로 지젝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여하튼 의도야 무엇이든 최소한 팩트 왜곡은 하지 않는 것이 '언론'을 이마에 달고 있다면 지켜야할 준칙이라고 본다. 이번 해프닝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한국에서 좌파나 진보랍시고 나대는 이들이 우파의 나쁜 점들만 따라배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덧글

  • ㅌㅌ 2016/07/08 02:48 # 삭제 답글

    이런 한숨나오는 사건이. -_-

    제 정치적인 입장은 아마 좌파 계열에 가까운 것 같은데, 한국에서 스스로 좌파다, 진보다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상함이란 이런 것입니다. 이를테면 스스로 마이너리티가 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함께하려고 하기 보다는 "넌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지? 무식하고 천박한 것. 전근대적인 인간 같으니라구. 파시스트! 개저씨! 꼰대!" 이런 식으로 말하려는 경향만 보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에 대한 견해가 주류와 달라 괴로워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자세히 관찰해 보면 마치 그것을 즐기고 (주이상스처럼)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히스테릭하달까요.
  • ㅌㅌ 2016/07/08 02:51 # 삭제 답글

    어떻게든 자신을 박해받는 사람으로 내보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주류와 달라서 주류로부터 박해를 받는 그런 면도 분명 있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들은 박해받는 위치를 고수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세상을 어떻게든 악으로 묘사하고, 자신들을 (그들 입장에서 '우리편' 으로 분류된 사람들) 제외한 모든 다른 사람들을 악으로 몰고 싶어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 oo 2016/07/08 12:36 # 삭제 답글

    윗댓글 '박해받는 사람으로 내보이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해고되었다고 스스로를 네이밍하는 분도 사실은 11학기 연속강의를 하며 특혜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죠. 규정대로라면 박사학위가 없기 때문에 4학기 연속강의 하고 한 학기를 쉬어야 합니다. 자신은 강의평가도 좋고 학교에 이렇게 헌신했는데 왜 계속 특혜를 주지 않느냐는 주장과 다를바 없으니, 웬간해선 노동자 편을 들어주는 지방노동위에서도 결국 학교편을 들어준거죠. 아예 강사에게 부당한 사회구조를 타겟으로 싸우던가. 학교를 계속 악의축으로 몰아가며 박해받는 사람 연연하는 모습. 실소를 짓지 않을수 없습니다.학생들만이라도 그만 부추겼으면 좋겠습니다.
  • 여백이 2016/07/08 12:57 # 삭제


    11학기 연속이 누구를 위했던 것인지, 학교측에서 인원을 활용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사이에 그 8학기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 상황이었을 수 있기도 하고, 자세히 알아보지 않을 거라면 특혜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 것은 부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강사분도 온라인 상에서 그 부분들에 대해 반박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경희대가 돈아낄려고 교수들 시수 늘리면서 학과개편 핑계로 강사들과 직원들 구조조정해서 잘랐다는 건 사실이고, 제대로 근로기준법을 지키거나 강사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실질적으로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런 항의 과정에서 그 강사분도 학교에 문제제기를 했던 것 아닌가요? 지젝도 오히려 강사들 편을 들었을 겁니다.
  • ㅇㅇ라는분 2016/07/08 13:45 # 삭제

    11학기한건 어떻게 아세요? 혹시 객원교수인가요?
  • p 2016/07/11 00:40 # 삭제 답글

    지방노동위가 왠간해선 노동자편을 들어준다고 누가 그럽디까? 지노위에서 해도당했다고 신청서 접수 받는 순간부터 적이되는데....ㅋㅋㅋㅋㅋ 할수 없이 학교편을 들어줬다고라?
  • 디엠지 2016/07/11 13:47 # 삭제 답글

    지젝이 강사편을 들어줬을 거라고라? 지젝은 경희대가 고용한 푸들입니다. ㅌㄱ이한테 잘 보여야 합니다. 지젝이 관심이 있는 민중사건은 카메라세계 터지는 쌍용차 같은 것일 뿐입니다. 오늘 그의 책들을 다 아파트 복도에 내놨습니다.
  • ㅌㅌ 2016/07/11 14:17 # 삭제

    설령 지젝이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왜 그 사람 책을 버리죠? 기존에는 그 사람 책에 담긴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이 님 맘에 들어서 구입만 했을 뿐,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던 건가요? 그렇다면 납득이 됩니다만..
  • 2016/07/11 16:56 # 삭제 답글

    지젝을 경희대에 모셔온 것은 이교수님의 공적 맞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여 지젝을 자극하는 일은 이교수님께 무척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경희대를 나가기라도 한다면, 지젝을 '모셔온' 그의 공로가 사라지는 것이고, 그것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려는' 그의 욕망 전선에도 차질이 생기는 것일테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발벗고 나서시는 것이겠죠.
  • ㅌㅌ 2016/07/12 03:42 # 삭제

    헐... 지젝이 밈 님 머릿속에서 무지막지하게 엄청난 인물로 부풀려져 있는 것 같은데요
  • 알쌤 팬 2016/07/12 00:56 # 삭제 답글

    디엠지님 뼛속까지 hierarchy
    위계체제?? 가 가득한 분이시네.
    단순히 고용됬기때문에 푸들이라고여?.? 강의하는 사람이 누구한테 잘보이고 말고가 어딨습니까? 지젝은 신도 아니고 푸들도아니고 그냥 한 학자에요. 너무 많은걸 바라시는듯. 그래서 억측도 하시고..
    지젝이 모든 이슈들에 다 지지의견을 표명해야합니까?
    다 알기도 어렵겠다..
    내가 이렇게 영웅이고 정의롭다. 나랑 같은것을 보지않다니 못쓰겠구먼. 푸들이야 푸들. 그가쓴 책은 다 버려야쥐~~
    나랑 같은것을 보지않았다고해서 그가 정의롭지 않은건 아니죠
  • 디엠지 2016/07/12 13:17 # 삭제 답글

    알썸 팬님 말씀이 옳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지젝이 ㅌㄱ이하고 손잡았다는 사실만큼은 의아합니다. 저런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와 손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젝은 평소 자신이 말했던 '나는 위협적인 철학자'라는 말을 먹어버리는 겁니다. 지젝에게 큰 것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경희대가 시간강사들을 때리는 학교라는 것을 지젝 자신이 '알고 있다'고 한 상황에서, 아직도 에미넌트스칼라를 경희대에서 하고 있는 것은, 그가 주장한 '신적 폭력'(피를 흘리지 않는,그것으로 세상을 전복하는 폭력)의 수행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는 말입니다. 어쩌다가 지젝이 이 꼴이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구매력은 너무나 뛰어난 게 사실입니다.
  • 디엠지 2016/07/12 13:20 # 삭제 답글

    자유주의적 좌파인 ㅌㄱ이 같은 존재는, 지젝의 표현에 따르면 '살롱에서 칭얼거리면서 부르즈와들을 즐겁게 해주는 자'입니다. 지젝만큼은 그러지 않기는 바랐는데, 이 철학계의 아이돌은 경희대라는 기획사로 들어왔습니다. 파국입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데 완벽할 수는 없는 법, 지젝의 이후 행보를 기대해 봅니다. 경희대를 뜨는 일에서, 자기 포지션을 바꾸는 일에서 그의 윤리는 다시 장전돼야 합니다.
  • 롱타임노씨 2016/07/18 14:13 # 삭제 답글

    이교수님이 고생하신다는 것 압니다. 그러나 말씀 좀 가려하시는게 어떠질 지 싶어요. 가령 어디서 버르장머리없는 짓만 배워온 좌파는 이교수님께 좀 더 배울 수 있는 것도 있어요. 민중을 위하는 말을 해가는 '척'하면서 기득권을 더 탄탄하게 유지시키는 그런 방법 말입니다.
  • 2016/10/05 16:2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택광 2016/10/06 09:58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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