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파시즘을 생각하자 세상읽기

1. 파시즘이라는 극우주의

 

파시즘에 대한 논의는 한국에서 금기사항 중 하나이다파시즘이라는 말 자체가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다명백하게 파시즘적인 발언들예를 들어반여성적이거나 인종주의적인 언사를 쏟아내는 이들조차도 자신들을 향한 파시즘이라는 명명을 용인하지 않는다대신 '애국'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기도 하는데아이러니한 것은 '국가를 사랑한다'는 이 표현이야말로 극우의 특징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물론 위르겐 하버마스처럼 복지국가라는 유럽의 가치를 지키자고 긍정적 의미로 '유로애국주의'(Euro-patriotism)를 주창하기도 하지만,대체로 유럽에서 애국주의라는 것은 민족국가(nation-state) 이후 형성된 배타적인 국가중심주의를 의미한다.

정치적 경향성으로서 애국주의는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나지만여기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것이 파시즘일 것이다파시즘은 극우주의의 주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를 골자로 하는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현재적인 정치사상이다국가 별로 다양한 파시즘의 조류들이 있지만서로 공유하고 있는 지점은 반이민주의와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다게다가 파시즘은 고유의 포퓰리즘으로 인해 보수주의와 비슷하게 반여성주의적이고 권위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파시즘이 근거로 내세우는 인종주의는 우수한 집단과 열등한 집단을 서로 섞으면 역사발전에서 도태한다는 사회다윈주의의 영향에서 기인한다사회다윈주의는 위기에 처한 자유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면서공리주의적인 도덕이 아니라 최적자를 가려내는 경쟁을 중요한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파악한 사회이론이다역사발전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수한 인자를 열등한 인자로부터 지켜내야한다는 파시즘의 논리는 이런 사회다윈주의의 관점을 극단적으로 윤색한 것이라고 하겠다특히 독일의 나치즘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유태인의 유물론이라고 동시에 비판하면서 '주인 인종'(master race)으로서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회복해야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진화주의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 극우주의로서 파시즘은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깔고 있지만그렇다고 이런 특징이 파시즘만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사회다윈주의 자체가 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한 것이라는 점에서 파시즘과 친화성이 높을 수밖에 없겠지만과거의 전통과 단절하고 산업문명이라는 물적 토대 위에서 진행된 근대화 자체가 이런 특징을 배태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근대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계몽 이전의 세계를 미개하고 원시적인 것으로 대상화하고 경제를 중심으로 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재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최소한 공리주의는 개인을 '특이성의 존재'로 파악하고비교불가한 고유성의 구현으로 믿었다는 점에서 도덕철학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존 스튜어트 밀만 하더라도개인의 고유성을 훼손하는 문명의 발전은 오히려 인간의 삶에 해가 된다고 못박고 있다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변화무쌍할 뿐만 아니라 진보적이다우리는 지속적으로 기계를 발명하고그 기계들은 더 나은 것으로 끊임없이 교체된다우리는 정치교육심지어 도덕에서도 개선을 염원한다물론 이런 개선의 생각은 다른 이들을 우리 만큼이나 선하게 만들기 위해 설득 또는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진보에 반대하지 않는다반대로역사상 누구보다도 우리가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이라고 스스로에게 아첨한다우리가 전쟁을 선포한 상대는 개인성이다우리 자신을 스스로 어슷비슷한 존재로 만들었다면 도대체 우리가 이룩한 경이로운 업적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한다개인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유형에 내재한 불완전성을 깨닫고 타인의 우수성에 주목하거나아니면 둘의 장점을 합쳐서 둘 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따져보게 만드는 중요한 동기이다.

 

이런 밀의 진술은 최적자생존을 위한 경쟁만이 역사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다윈주의와 달라도 한참 다른 내용이다오히려 영국의 공리주의다시 말해서 경제적 자유주의는 경제를 제대로 관리경영할 수 있는 정부의 수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왜냐하면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정치의 목적은 자유로운 개인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러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미셸 푸코도 지적하듯이근대는 이렇게 공동체와 정부의 관계에 대한 자유주의적인 이론의 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그러나 여기에서 이론이라는 것은 통치술이나 방법에 대한 것이라기보다어떻게 개인을 훈육해서 대상화하면서 동시에 주체로 만들어낼지에 대한 것이다. 이전까지 통치의 문제는 군주의 권리였지만근대는 수직적 권력 관계를 수평적인 것으로 만들어내면서 인민(people)이라는 새로운 집단에게 주권을 부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이 과정에서 정치적 개인의 집합인 인민은 정치체제의 객체이자 동시에 주체로 새롭게 태어난다.

근대의 정치체제는 위에서 아래로 권력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권력과 지식을 서로 결합시킴으로써 개인의 마음을 간섭한다위로부터 실행되는 입법의 과정과 아래로부터 이행되는 규범의 체득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근대 권력의 작동방식이다따라서 근대에서 지배는 항상 복종과 쌍을 이룬다일방적인 지배와 복종은 없다언제나 동의를 전제하는 근대의 민주주의는 실제로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합법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파시즘과 같은 극우주의는 이런 근대의 작동원리와 연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오히려 과감하게 말하면 극우주의야말로 근대에 대한 열망 이외에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파시즘을 모태로 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이런 가설은 파시즘을 광기나 광신으로 규정해서 전근대적인 현상으로 인식하는 태도에 반하는 것이다그러나 파시즘의 양상이 전근대적인 것에 대한 지향이나 향수를 간직하고 있더라도파시즘 자체를 싸잡아 전근대적인 태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역설적으로 근대를 완성하기 위해 파시즘은 전근대적인 것을 복원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파시즘을 특이한 행동양태나 일탈행위라기보다 근대에 대한 하나의 이론이자 사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점이다파시즘은 일부 광신집단의 맹동이 아니라근대의 원리에 내재하고 있는 권력작용의 극단화라고 보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다이런 맥락에서 극우주의로서 파시즘은 실천력을 획득하려는 하나의 이론이자동시에 개인의 규범을 좌우하는 사상이다이런 까닭에 파시즘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근대와 정치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특수한 시기나 사례로서 파시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의 보편성을 토대로 전개되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이 극우주의 정치운동을 조명해봐야하는 것이다.

 

2. 발생적 파시즘론의 한계

 

이 글은 파시즘과 사회주의를 비교 분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전체주의라는 일반적인 정의로 포괄할 수 없는 두 정치이론의 속성을 언급하진 않을 것이다다만한나 아렌트로 대표되는 전체주의의 논의와 파시즘을 연결하는 것은 자칫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목적을 가졌던 파시즘과 사회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실제로 이런 환원주의를 한국에서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파시즘이 국가를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어내고자 하는 정치운동이라면,사회주의는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해체하려는 정치운동이다이 차이는 전체주의 논의에서 얼버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결과를 노정한다.

게다가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혐의가 짙다한국처럼 여전히 냉전 이데올로기가 위력을 발휘하는 조건에서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박정희체제와 북한체제를 하나의 범주로 포괄해버리기 위해 자주 동원된다이런 주장은 다분히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파시즘 대신 전체주의라는 용어를 차용하는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고스란히 자유주의적인 입장에 내재하고 있는 이론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전체주의로 파시즘을 뭉뚱그려 다루는 것 못지않은 편향을 지적하자면파시즘 자체를 특정한 정치적 시기에 발생한 특수한 사건으로 못 박아버리는 입장이다한국의 경우 이런 주장은 주로 진보적 자유주의자에게서 발견되지만넓게 보아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아래 있는 좌파적 입장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전자는 아마도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의 해부>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고후자는 니코스 풀란차스의 영향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팩스턴은 파시즘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서 파악하는 분류법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한데첫번째로파시즘 운동이 최초로 시작되고두번째로정당을 설립하고세번째로권력을 장악하고네번째로권력을 실행하면서,마지막으로급진화 또는 한계치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후일 팩스턴은 여기에 몇 가지 특징을 더 추가하는데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에 대한 강박적 몰두"와 "모멸감 또는 피해자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이 취하는 정치적 행동으로서통합과 에너지그리고 순수성에 대한 보상적 숭배에 빠지는 심리상태를 보인다고 진단한다이 과정에서 파시즘은 민주적 자유를 포기하고 폭력을 문제해결의 방법으로 동원하고 법과 윤리적인 제약을 뛰어넘어 내부의 적을 박멸하면서 외부로 자신의 생각을 확산시켜야한다는 목적을 제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기에서 눈치 챘겠지만이런 분류법 자체에서 팩스턴의 파시즘론은 내재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로저 그리핀이 제시한 '발생적 파시즘'(generic fascism) 논의에 영향을 받은 팩스턴은 파시즘의 특징을 현상적으로 나열함으로써 유형적인 차원에서 파시즘을 규정하고자 한다그러나 경험적 사례에 기반한 이런 현상학적 분류는 파시즘에 대한 근본 이해를 주지 못한다파시즘은 단순한 현상이라기보다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이데올로기적인 문제는 인식과 관련된 것이다근대는 공동체와 통치체제의 관계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의미한다자유주의는 이런 설명을 제공하는 이론이었다근대를 합리성의 출현이라고 규정한다면그 이유는 공동체를 통치하고 관리하기 위한 정부(government)의 문제에 대한 이론적 논의들다시 말해서 정치적 합의에 대한 대화의 장이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가능했기 때문이다무엇보다도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사법제도의 정립이다사법제도는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내는 거푸집 역할을 했다기승을 부렸던 마녀사냥이 사법제도의 확립을 통해 소멸한 것은 근대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만드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파시즘은 이런 자유주의와 다른 입장에서 근대를 설명하고자 했던 정치이론이다표면상으로 이론과 지성을 거부하고 비합리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이유로 파시즘을 종종 전근대적이고 퇴행적인 사상으로 규정하지만바로 그 자체가 파시즘의 논리를 형성하는 이론적 토대인 것이다마치 모든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냉소주의 자체가 이데올로기의 일종인 것처럼파시즘 역시 모든 이론과 지성을 거부하고 비합리성을 옹호하는 반이론의 이론인 셈이다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비합리적인 파시즘이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까닭은발터 벤야민이 일찍이 지적했던 '정치의 심미화'(the aestheticizatoin of politics) 덕분이다이 심미화가 바로 상품화의 원리이다상품화는 추상적 화폐가치의 매개를 통과한 비합리적인 물신화의 산물이다이런 원리에 따라 파시즘은 정치를 상품화함으로써 심미적인 정동(affect)으로 합리성의 자리를 대체한다.

팩스턴의 주장은 이런 파시즘의 특징을 유형학으로 환원시켜결과적으로 파시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파시즘을 파시즘이게 만드는 "최소적인 것"(minimum)을 밝힌다는 명목으로 파시즘과 관련한 현상만을 나열함으로써 상대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분류법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분명히 파시즘은 팩스턴이 사례로 드는 특징들을 보여준다그러나 이런 특징들은 '성공한 파시즘'에 한정해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유럽이라는 지역을 벗어났을 때특히 한국처럼 파시즘과 자유주의가 끊임없이 경합을 벌이면서 근대화를 이룩한 국가에서 파시즘은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3. 극우적인 것의 구조

 

파시즘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전간기(interwar period)의 현상으로 국한해서 파악하는 태도에 대해 '발생적 파시즘'을 주창한 그리핀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최근 들어 그리핀은 유럽지역을 넘어서서 전개되고 있는 현재적 파시즘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에 대한 연구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의 접근은 앞서 팩스턴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유형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결과적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기준으로 다른 지역의 파시즘을 진단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이런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 풀란차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풀란차스는 <파시즘과 독재>라는 책에서 파시즘을 제국주의라는 자본주의 최후단계에 조응하는 이데올로기로 보았다. 그의 주장은 레닌의 정의를 따른 것으로자본주의와 파시즘의 문제를 연관시키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풀란차스는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파시즘에 대한 역사주의적 접근을 버리고 파시즘의 "예외성"에 대한 이론적인 고찰을 제공하고자 하는데이런 논의는 역사적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파시즘을 역사적 산물로 치부하고 박물관의 유물로 만들어버리는 기존의 입장들과 다소 다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풀란차스의 분석에서 흥미로운 것은 "예외적인 국가"와 파시즘의 문제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예외적인 국가또는 "극단적인 국가"라는 개념은 파시즘을 병리학적인 차원에서 규정하던 기존의 경향과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이런 풀란차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면파시즘은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예외적 국가"를 정당화하기 위한 인식적 토대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이 "예외적인 국가"가 파시즘의 산물이 아니라벤야민이 말하듯이부르주아 국가의 항상성이라고 볼 수 있다면파시즘 역시 과거의 유물로 간단히 치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게 된다풀란차스의 지적처럼파시즘은 부르주아의 민주주의를 통해 야기된 정치 위기다시 말해서 계급투쟁의 산물이면서 역설적으로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위해 복무하는 이중성을 보인다파시즘이 부르주아 정치 위기의 산물로서 오히려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아 부르주아 독재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는 것이라는 관점은 충분히 수긍 가능하다.

그러나 파시즘에 대한 구조적 접근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면서도풀란차스 역시 파시즘을 역사적인 정치체제로 보고제국주의라는 자본주의 최후단계라는 특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현상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그리핀처럼 발생적으로 파시즘을 파악하는 논의의 맹점을 되풀이하고 있다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분명히 자본주의의 연장 또는 심화로서 제국주의를 고찰할 수 있게 하지만그럼으로써 동시에 전후에 전개된 새로운 냉전체제의 복잡성을 제국주의의 문제로 일원화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내 생각에 파시즘을 풀란차스나 그리핀처럼 전간기에 등장한 특수한 상황으로 규정하는 것은 극우주의로서 작동하는 파시즘을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다여러 극우주의 중 하나로서 파시즘을 파악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오히려 극우주의 뿌리에 파시즘이 있다는 것다시 말해서 극우주의는 세계 대전을 통해 극적으로 19세기 경제적 자유주의가 위기에 봉착함으로써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고전적 파시즘의 변용이자 귀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파시즘은 "포스트자유주의적 자본주의(postliberal capitalism)에서 등장하는 정치적인 상품이자 이데올로기적 생산의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파시즘은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상품이다자본주의 체제에서 상품은 단순한 사물에 그치지 않고대중에게 세계관을 부여하는 소통의 수단이다앞서 언급했듯이,여기에서 소통이라는 것은 정동의 교환을 의미한다파시즘은 '신념'에 기반을 둔 절제된 자기규율화를 요구함으로써 "불쾌한 쾌락"을 발생시킨다. "즐겨라"라고 속삭이는 자본주의 쾌락원칙과 이런 파시즘의 요구는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 모순이 바로 파시즘을 대중에게 인준하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범람하는 자본주의 쾌락에 맞서 자기를 규율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이중성이 발생하는 것이다이런 규율적 정동의 효과는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정치에 대한 동의로 나타나기도 하는데파시즘은 바로 이런 대중의 원리에 근거해서 영웅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이 정의에서 중요한 것은 파시즘이 자유주의의 붕괴 또는 위기에 조응한다는 사실이다이런 관점에서 파시즘은 신자유주의처럼 경제적 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하나의 정치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다시 말하면 자유주의의 통치기술이 실패하고국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파시즘은 '극단적인 국가'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파시즘은 자유주의를 통해 억압된그리고 통치와 경제의 불일치라는 균열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의 귀환이라고 볼 수 있다풀란차스의 지적처럼 파시즘 운동은 분명히 계급투쟁이라는 정치 위기의 산물이다다만 그 정치가 부르주아의 지배구조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그것을 정상화 또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4. 파시즘과 신자유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파시즘은 신자유주의의 권위주의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신자유주의는 반대로 자유주의 정부의 역할을 폐기하지 않는다물론 아시아 국가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파시즘은 필요에 따라 자유주의와 연대함으로써 보수주의의 색채를 띠기도 한다그러나 근본적인 불화가 둘 사이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파시즘과 달리 신자유주의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다윈주의에서 경쟁주의를 차용함으로써 공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하는 이데올로기이다경쟁의 문제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규범의 문제로 흡수함으로써신자유주의는 파시즘과 달리 자유주의의 합리성을 극대화하고자 한다자유주의는 파시즘의 인큐베이터라고 볼 수 있는데이런 관계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칼 폴라니의 논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거대한 전환>에서 폴라니는 자유주의 정부의 자가당착을 논하면서 "자유방임주의에서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지적한다. 단도직입해서 말하자면정부의 개입 없는 자유시장경제 따위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공리주의다시 말해서 경제적 자유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유방임주의를 제시했지만오히려 자유방임주의는 수단이라기보다 달성해야할 목적이었다고 폴라니는 비판한다.경제를 우선에 두는 자유주의 정부에게 자유방임주의는 사실상 표면적인 명분일 뿐이었다는 말이다따라서 자유주의 정부는 서로 모순된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데정부가 개입해서 시장을 창출하는 한편그 개입을 제한하는 메커니즘도 수립해야 했다또한 자유주의 정부는 시장 중심 사회로 이행하는 운동을 지원하는 한편시장 메커니즘에 저항하는 시민 사회의 "반대 운동"도 허락하고 강화해야했다이 모든 모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이를테면 푸코가 말하는 자유주의 통치기술일 것이다왜 이렇게 자유주의 정부는 모순된 개입을 실행할 수밖에 없을까바로 경제성장이라는 통치의 목적을 달성해야하기 때문이다폴라니에 따르면당시 공리주의자들은 경제 요소의 시장화가 자본주의 성장의 전제조건이라고 믿었다따라서 경제적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경영국가'는 시장경제와 시민사회를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규제하고시장의 역동성을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그로 인해 시민사회가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해야하는 이중의 임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경제적 자유주의 정부는 항상 내재적 모순을 배태할 수밖에 없고이로 인해서 파시즘의 반동과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것이 폴라니의 진단이다. 1920년대의 경제위기는 자기규제적인 시장을 복원하기 위한 정책들을 촉발했고그 결과로 금융자본이 경제활동의 우위를 점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통화안정과 세계무역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자유주의 정부는 공적인 자유와 민주주의적 삶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이 시기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으로 보는 것인데파시즘은 이렇게 작동하지 않는 시장의 증상이자 동시에 19세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종언으로 인해 등장했다는 것이 폴라니의 주장이다이처럼 폴라니는 붕괴한 시장-사회의 매커니즘을 회복하기 위해 경제를 폭력적으로 재사회화하려는 정치적 기동으로 파시즘을 파악한다폴라니의 분석은 자유주의와 파시즘의 연관성을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그러나 폴라니의 주장에서 문제는 파시즘을 19세기 자유주의 이상의 종언으로 읽어내는 부분이다말하자면그에게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파국인 셈이다.

이런 견해는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지금까지 논의한 파시즘의 역사화(historicization)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시각이다파시즘은 19세기 자본주의의 실패로 출현한 일시적 증상이었다는 뜻인데만일 폴라니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문제는 달라진다파시즘 이후의 역사가 폴라니의 생각처럼 국가의 귀환을 통해 시장의 통제라고 볼 수 없다면케인즈주의가 사회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대책이자자유주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신자유주의(New Liberalism)이었다면파시즘을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특수한 과열현상으로 치부하기 어려워진다.

피에르 다르도와 크리스티앙 라발은 이런 폴라니의 한계를 지적하면서자유주의 정부가 시장을 창출하고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 이외에 "시장의 작동을 위해 개입"하는 메커니즘도 있다고 말한다. 전후 붕괴한 시장을 재건하기 위해 케인즈주의가 내세운 것이 국가의 개입이었다면복지제도로 인해 교착상태에 빠진 시장의 작동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신자유주의가 내놓은 이론이 바로 경쟁주의였다앞서 언급했듯이신자유주의자들은 스펜서의 사회다윈주의에서 경쟁 개념을 차용경쟁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시장경제를 활성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당연한 말이지만그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당사자는 그 누구도 아닌 정부이다이런 까닭에 신자유주의 정부는 자신을 통해 자신을 폐기하는 아이러니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푸코가 말년에 분석한 신자유주의의 출현 과정이다폴라니가 미처 천착하지 못했던 지점은 시장의 작동을 유지하는 것과 자유방임주의의 실현은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신자유주의적 경제학자들은 과감하게 시장경쟁주의를 위해 자유방임주의를 폐기할 수 있었다왜냐하면 그것이 경제를 성장하게 만들고 시장을 계속 작동시켜야하는 자유주의 정부의 존재이유였기 때문이다신자유주의는 폴라니의 주장과 달리 국가의 축소나 해체라기보다 새로운 국가의 개입주의를 승인하는 이데올로기 또는 규범체계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5.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파시즘은 자유주의 정부의 개입에 대체하기 위해 출현한 정치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정치이론은 정치이론이되자유주의의 합리성을 거부하는 반이론의 이론이다따라서 파시즘의 비합리성은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그렇게 비치는 것이지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정치이론으로서 나름대로 내적 논리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파시즘이 일종의 증상이자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국제적인 운동의 양상으로 확산되어서 유럽이 아닌 지역에서 공감을 획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특히 민족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했던 20세기 초반 아시아 국가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자유주의를 우회한 아시아적인 근대화가 파시즘과 일정하게 결합되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미국의 개입으로 자유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이전까지 아시아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더불어 파시즘은 엄연히 혁명적 정치이론으로 대접 받았다신해멱명의 주역이자 국민당의 창설자인 쑨원이 대표적인데중국 재건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산업문명에 기반을 둔 마르크스주의라기보다 민족의 재생을 주장하는 파시즘이라고 보았다

강력한 엘리트집단의 독재를 통해 민족적이고 국가주도적인 경제개발을 시행하는 것이 중국혁명의 우선과제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한국도 예외라고 보기 어렵다박정희가 공공연하게 히틀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파시즘을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주의이다자유주의적인 규정이 없다면 파시즘은 민족주의와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는다자유주의적인 시각에 비치는 아시아적인 민족주의는 종종 파시즘의 특징과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파시즘의 양상을 다른 극우주의적인 현상들과 구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겠지만극우주의 자체가 파시즘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극우주의가 전제하는 근본주의의 밑바탕에 놓여 있는 것은 근대를 통과하면서 상실된 원형적인 민족성이다이런 원형성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극우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합리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정치를 포섭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그 방식은 합리적인 것이라기보다 정동의 교환이라는 심미적인 것이다나름대로 교환의 형식을 따르는 셈이다정치적인 상품으로서 파시즘은 쾌락원칙에 충실하다이런 까닭에 파시즘은 기원적으로 포퓰리즘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다양한 극우주의는 파시즘의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이 서로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파시즘은 포퓰리즘적인 특징으로 인해 보수주의적인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런 맥락에서 파시즘의 보수화는 경쟁주의를 핵심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에 따른 결과이다따라서 어떤 현상을 두고 파시즘이냐 아니냐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은 극우주의의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시급한 것은 현상적인 차원에서 파시즘을 분류하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자본주의의 모순이 지속되는 한경제를 우선에 놓는 자유주의와 파시즘은 언제나 구조적으로 연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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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4년에 발간된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에 처음 게재되었다. 최근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그리고 마리 르펜의 약진 등을 지켜보면서 파시즘에 대한 몇 가지 논점들을 함께 짚어보자는 취지에서 공개한다. 편의상 각주는 모두 생략한다. 필요하신 분은 책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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