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는가 단상

다시 블로그로 돌아와서 글을 써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한 동안 모국어가 아닌 타국어로 글을 써야할 처지라서 예전만큼 자주 포스팅을 할 수는 없겠지만, 떠오르는 단상을 그때 그때 남길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이 블로그를 다시 '수줍은 이들을 위한 잡담'으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최영미의 시 "괴물"이 조명 받으면서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다시 터져나왔다. 최영미의 시에 등장하는 En시인을 고은으로 추정하는 것이 대세이긴 하지만, 최영미 본인도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듯이, En시인은 고은을 포함해서 한국 문단에서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문인들'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다음 링크에 걸려 있는 글이다. 


'일반인'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질펀한 술판'이 이 글에 묘사되어 있다. 심지어 이 글에 보면, "괴물"이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나 '성추행'에 해당할 만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가 2011년이었으니, 그때까지도 이런 '일탈'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문인들의 행태"를 일찍이 비판했던 이가 바로 김명인이었는데, 1987년 출간된 무크지 <문학예술운동> 1호에 실린 "지식인 문학의 위기와 민족문학의 새로운 구상"이라는 글에서 그는 당시 작가들과 시인들에게 술이나 마시고 신세한탄이나 하는 "룸펜의 삶"을 청산하고 '운동의 현장'으로 가야한다고 요청했다. 김인숙처럼 그의 제안을 실천하려고 했던 작가들도 없지 않았지만, 2011년 글을 보면, 김명인의 주장이 그렇게 설득력을 발휘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이번에 본인이 편집주간으로 있는 <황해문화>에 최영미의 시를 실어줌으로써 김명인은 다시 한 번 문학인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동계급이 젠더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일 수도 있는데, 부디 이 문제제기가 유야무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문제와 별도로 나는 솔직히 앞서 링크에 걸려 있는 글에 도저하게 흐르고 있는 '잡놈' 정서의 기원이 어디인지 탐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비단 '문단'이라고 불리는 곳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이런 정서가 만연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과거 '비키니 논란'에 휩싸였던 나꼼수를 보자. 이들 역시 자신들을 변호하면서 내세운 논리가 '잡놈'이었다. 어떤 술자리든 이런 '잡놈'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고 좌중을 주도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정서가 우리 고유의 것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딱히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최근 마주친 몇몇 연구들을 보면서 이런 '잡놈' 정서가 나름대로 20년대와 60년대에 구미를 휩쓴 성해방의 논리를 한국식으로 전유한 것이라는 혐의를 찾게 되었다. 

덧글

  • Barde 2018/02/18 02:30 # 답글

    "비단 '문단'이라고 불리는 곳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이런 정서가 만연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의합니다. "최근 마주친 몇몇 연구들을 보면서 이런 '잡놈' 정서가 나름대로 20년대와 60년대에 구미를 휩쓴 성해방의 논리를 한국식으로 전유한 것이라는 혐의를 찾게 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권력 관계의 문제임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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