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의 <정녕 그대를> 세상읽기



ㆍ또다시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그대’ 

삶을 물들인 많은 노래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가수 김수철의 <정녕 그대를>을 꼽는다. 바쁜 일상에 잠깐씩 찾아오는 멍한 시간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곡이다. 1983년 내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들은 이 곡은 지금까지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다. 같은 가수가 부른 <두 보조개>도 <정녕 그대를>에 견줄 만한 노래지만, 내 마음은 후자에 더 기울어 있는 것 같다. 이 노래는 그저 그런 사랑노래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이 노래는 일상에서 매일 우리를 흔들리게 만드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을 마치고 정처 없이 유학길에 오를 때였다.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더께를 걷어내고 싶은 마음도 절반은 있었다. 학문의 길로 나아간다는 결기가 개인적인 감회를 덮어버린 그 시간에도 나도 모르게 흥얼댔던 노래가 <정녕 그대를>이었다. 조그마한 비행기 창으로 그때까지 발 딛고 있던 땅이 가뭇없이 사라지는 순간 김수영이 읊었던 거대한 뿌리를 문득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대한 뿌리는 나라는 한 인간을 만들어왔던 정체성의 기원이었다. 육체적 장소를 옮김으로써 나의 정체성은 이제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녕 그대를>은 이런 나의 심정을 그대로 들려주는 노래였다.

마찬가지로 군복무 시절 끝없이 펼쳐진 강원도의 산맥들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리듬을 불러냈던 노래도 바로 <정녕 그대를>이었다. 연둣빛으로 찾아올 봄날을 기다리면서 나는 마치 벤야민이 말한 것처럼 만났던 연인들과 만났을 수도 있었던 연인들 모두를 상상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지금 다시 들어도 이 노래에는 내 심금을 울리는 무엇인가가 녹아 있다. 마치 저녁노을처럼 마음이 저무는 한 시절이 되면 그냥 그렇게 흘러나오는 노래가 <정녕 그대를>인 것이다. 이 노래의 미덕은 ‘어떻게 살 것인가’ 따위를 가르치지 않고 ‘삶은 어떻게 살아지는지’를 노래한다는 것에 있다. 삶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결정한다는 것.

가수 김수철은 인기 정상을 달리던 무렵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음악공부를 하겠다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에게 ‘그대’는 음악 자체였던 셈이다. 최근 출간된 그의 회고록은 가수 김수철의 음악여정에 대한 중간결산이었다. 책을 읽고 나니 더 절절하게 <정녕 그대를>이 내 귓가를 맴돌고 입가에 머문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는 법인 모양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소년은 이제 50대로 접어들었다. 386세대로 불리고 더 이상 ‘젊은 패기’ 운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한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정언명령을 따르던 ‘철부지 시절’도 있었다. 여전히 ‘철없는’ 동시대인들이 비일비재하게 사고를 치고 있지만, <정녕 그대를>에 담긴 성정을 가슴에 담는다면 그나마 나 자신이라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대’를 그리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되어서라도 찾아가는 그 사랑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다시는 안 보리라 다짐해놓고 
난 또다시 그대를 찾아 헤매네
생각을 안 하리라 다짐해놓고 
난 또다시 그대를 그리워하네

정녕 그대를 못잊는다면 
한 조각 구름이 되어 흘러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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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에 게재되었음.

덧글

  • Barde 2018/03/15 01:13 # 답글

    하하. 왜 이렇게 낭만적이신가요.
    "386세대로 불리고 더 이상 ‘젊은 패기’ 운운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한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정언명령을 따르던 ‘철부지 시절’도 있었다. 여전히 ‘철없는’ 동시대인들이 비일비재하게 사고를 치고 있지만, <정녕 그대를>에 담긴 성정을 가슴에 담는다면 그나마 나 자신이라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구절에 특히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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