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화국과 일유동조론(日ユ同祖論) 세상읽기

얼마 전 황호덕 선생 덕분에 어쭙잖게 끼어들었던 일본과 유럽 문예공화국(Respublica literaria)에 대한 토론에서 얻게 된 몇 가지 영감을 따라 가다가 마주친 단상들을 기록해 둔다. 이 단상들은 지금 내가 집필을 준비하고 있는 '철학의 공화국'과 일정하게 맞물려 있다. 2020년에 최종 원고를 완성할 요량으로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교토학파의 왼쪽을 담당했던 미키 기요시가 쓴 <독서와 인생>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는 않지만 브릭스였지 않은가 싶은데, 나의 재학시절에 다쓰노중학교에도 처음으로 외국인 교사가 부임해 왔다 (...) 이 미국인 선생님이 부임 인사를 할 때 자기는 태평양을 건너왔는데 이 바닷물이 일본의 해안에 밀려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세계는 하나라는 것을 깊이 느꼈다고 한 말이 지금도 이상하게 내 귀에 남아 있다. (29)


이 언급이야말로 문예공화국 이전과 이후의 단절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데나 굿맨(Dena Goodman)에 따르면 중세 유럽의 시대에 군주의 영토에 따라 분할되어 있다고 믿었던 세계를 과학적 세계관에 따라 하나로 인식하게 된 것이 문예공화국의 역할이었다.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기 위해 대서양을 가로지르기로 결심한 것도 문예공화국의 세계관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가 하나라는 생각은 이윽고 세계는 하나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나아갔고, 그 증거로 언어가 제시되었다. 인도유럽어나 우랄알타이어 같은 용어법이 생겨난 배경이다. 이런 어원에 따른 세계 기원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데, 예를 들어 멕시코 인디오들을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버젓이 멀쩡한 학술지에 게재될 정도이다. 다음과 같은 논문이 대표적이다: "멕시코의 국명 및 지명 연구

물론 근거 없는 주장일 뿐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여기를 참조: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이 우리와 같은 말을 썼다는 주장의 실체"


그럼에도 이런 주장이 되풀해서 나타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문예공화국이 사실상 세계의 단일성을 발견한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공간 확대에 따른 잡다한 지식의 '서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탁월한 성찰이 바로 데리다의 <포스트카드>일 것이다. 데리다의 말을 전유하자면, 인쇄와 서신을 하나로 아우르는 '저널'의 등장이 바로 근대의 지식체계를 만들어낸 물적 토대이다. 근대는 끊임없는 잡학의 분출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근대의 특성은 자본주의와 연동하면서도 갈등한다. 이 둘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후자 없는 근대를 이야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후자의 발전은 곧 문예공화국을 분열시키는 식민주의의 문제로 귀결하기 때문이다. 레닌이 말했듯이, 식민주의는 자본주의 최후 단계인 제국주의의 결과물이다. 이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제국의 논리를 내면화한 것이 민족주의이다. 문예공화국이라는 유럽의 논리는 식민주의와 조우하면서, '자강론'이라는 새로운 계몽의 논리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멕시코 인디오 한국 기원설" 같은 주장의 효시를 들자면 아마도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일 것이다. 최남선은 일본에 대항하는 '민족 신화'를 창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항은 일본을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조선이 하나의 문화권임을 '인정' 받는 것을 의미했다. 이 '괴작'에서 최남선은 인도나 중국 문화와 다른 '불함 문화'를 주장하는데, 여기에서 '불함'이라는 말은 중국의 신화집 <산해경>에 나오는 지명으로, 동이족의 강역으로 추정되는 대인국의 불함산(不咸山)을 지칭한다. 흥미롭게도 최남선 역시 어원학을 새로운 인식의 틀로 제시하면서 한국어로 '밝다'는 말과 한자의 희다는 '백(白)이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남선은 이를 통해 중국과 한국보다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더욱 부각시키면서 중국이 아니라 일본을 한국의 '자매국'이라고 부른다. 확실히 이런 세계관은 중국에 대한 '사대'를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았던 조선의 그것과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불함문화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당시의 과학이 언어학이었다는 것은 재미있다. 이런 광경은 조금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1960년대에도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른바 '제 3세계'를 발견한 유럽의 지식이들이 '언어 구조'라는 틀로 세계의 보편성을 인식하려고 했던 것과 이런 문예공화국의 전통은 크게 다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구조주의'를 비판하면서 이후에 등장한 '탈구조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이 세계를 단일성으로 파악한 문예공화국의 계몽을 전복시키려는 기획이기도 했다.

언어학과 함께 단일 세계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이들이 즐겨 사용한 것이 인종이론일 것이다. 인종이론의 바탕은 생물학과 인류학이다. 오늘날 이런 조잡한 이론을 '과학'이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가 과학에 대한 실례이겠지만, 당시에는 가장 첨단의 과학으로 권위를 부여 받고 있었다. 이 인종이론에 바탕을 둔 세계 단일 기원설은 대체로 파시즘의 자양분으로 쓰인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독일 민족의 아리안 기원설일 것이고, 그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묘하게 동일한 논리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 일유동조론이다. 일본인(야마토 민족)과 유태 민족이 같은 형제라는 주장이다. 세 가지 설이 있는데, 성서에 등장하는 고대 유태종족의 12지파 중에 10지파가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설, 12지파 모두 일본으로 건너왔다는 설, 고대 일본 민족이 유태 민족의 조상이라는 설이 각각 그것들이다(위키피디아 참조).

흥미롭게도 이 주장을 처음 펼친 당사자들은 모두 서양인들이다. 예수를 아리아인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기도 꽤 오래되었다. 일본을 방문했던 독일인 엥겔베르트 카엠페르(Engelbert Kaempfer)가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다카마가하라가 고대 바빌론이라는 주장을 처음 내놓은 것이 17세기였다. 19세기 일본을 방문한 스코틀랜드 상인 니콜라스 맥레오드(Nicholas McLeod)가 1878년 나가사키에서 처음으로 <일본과 잃어버린 이스라엘 부족들 (Japan and the Lost Tribes of Israel)>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함으로써 일유동조론을 정교하게 만들었다. 


이 일유동조론의 아류가 바로 한유동조론이다. 이 한유동조론의 기원도 사실상 일유동조론에 있는데, 맥레오드가 일본으로 남하하던 고대 유태 부족 중 '단 지파'라고 불리는 부족이 한반도에 남아서 단군이 되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기에서 '한국인과 유대인'이라고 입력해서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한국인과 유태인의 유사성을 주장하는 글을 찾아볼 수 있다. 1971년 중앙일보에 게재된 다음과 같은 글도 그 중 하나다.

"한국인과 유대인"

이 칼럼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이들은 1천9백년이라는 오랫동안을 분산되어 유랑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이 민족과 동화·흡수되지 않고 고유집단으로 머물러 있다. 유랑이라는 냉혹한 환경에 도전하며 민족·종교·문화를 유지해온 의지는 대단한 것이다. 또한 하급의 야만한 민족 속에 매몰되지 않는 거부의 프라이드도 놀랄만하다. 이민족으로부터 받는 가해를 배척하는 그 반동적 투지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세계의 이단아 같은 오늘의 이스라엘을 지탱하고 있다. 지난 67년의 중동전쟁 때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태인들의 연대감은 실로 감동, 그것이었다. 우리는 유랑의 역사는 갖고있지 않다. 그러나 일본제국의 식민치하에서 고통을 받던 기억은 새롭다. 감정의 문제이긴 하지만, 그 고통이 가혹하면 할수록 우리의 민족혼도 냉철하게 맑아지던 것은 사실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현상을 뚜렷이 체험한 것이다. 이런 점에선 유태민족의 역사를 이해하고 동정할만하다.


이 칼럼은 "한국인은 인류애 속에 포함되는 세계의 일원"임을 강조하면서 한유동조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과격한 민족주의를 경계하자는 제스처도 취하고 있다. 물론 이런 가설을 꽤 학술적으로 주장하는 경우도 많은데 서울대 총장을 지내다가 박정희 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기천 같은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1985년 영생교 신문인 <승리신문>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어보자.

"한국인이 이스라엘 잃어버린 10지파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유신독재에 맞서 싸운 세계적인 형법학자이자 "자유와 정의의 지성"으로 추앙 받는 법학자가 한유동족설을 철썩 같이 믿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오마이뉴스에 그의 전기 출간을 전하는 기사가 실려 있는데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유신독재와 싸운 세계적 형법학자의 삶"

"어슬픈 지식은 오히려 위험하다"는 유기천의 말에 비추어 한유동족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코스모폴리타니즘과 민족주의의 관계는 결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이라는 사실을 여기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세계적인 삶을 살았던 이가 누구보다도 민족의 기원에 집착했다는 것은 계몽의 변증법을 다시 되뇌이게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가야사를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한국의 민족주의는 저항적 민족주의라서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모든 민족주의는 같은 논리를 구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동일한 민족주의가 다른 정치적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민족주의는 한 편으로는 가야사 복원의 의지로 나타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태극기부대 집회에서 태극기와 함께 휘날리는 이스라엘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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